노태우-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했던 그 사람이 정말 맞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온통 스스로의 정치역정과 삶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으로 점철되어있다. 국민들이 왜 이회창 대신 노무현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신 열린우리당을 선택했는지 완전히 망각한 듯하다.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급전직하를 거듭하고 있는 요즘 형국이다.
아마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3당 합당에 홀로 맞서서 반대하는 "소신있고 고집있는" 노무현에 반했을 것이고, 무모할 정도로 혼자서만 지역감정의 높은 벽에 온 몸으로 맞서는 그 노무현에 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만한 소신과 고집이 있는 지도자라면 대통령으로 당선시킬만하며, 그가 이끄는 정당 역시 충분히 과반수를 줄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노대통령이 화두로 던진 "연정"은 도무지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가치와 소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민주당 분당 및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지금까지 그가 고집스러울 정도로 당정분리 원칙을 지켜온 이유가 바로 정파를 초월한 국정운영에 전념함으로써 여당 프리미엄을 통한 비리와 월권의 오랜 관행을 끊겠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인위적 정계개편, 즉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킨 3당 합당,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의 의원 빼오기 및 꿔주기 등 파행적 정당 운영을 하지 않는 이유 역시 과반수 여당이 갖는 프리미엄에 의존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에 입각한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그러나, 야당과 국민의 냉소적인 시선에도 불구 계속해서 "연정"을 쟁점화하기 위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합심하여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자면 안타까움의 차원을 넘어 분노와 허탈감을 수반한 착잡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과반수가 중요하고, 그렇게 여당의 전폭적인 동원이 필요하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과거 3당 통합을 비롯한 인위적 정계개편에 반대한 것이었을까?
"권력이양" 및 "연정"을 물어야할 상대는 야당이 아닌 국민이다
현행 헌법은 내각제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가미되어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행정부로의 과도한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쪽으로 개헌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져온 권위주의 독재정치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업고 추진된 것이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의결, 국무총리의 각료 제청권, 국정조사 및 국정감사, 국무위원 출석요구안 의결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요소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았듯이 국회의원 역시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다. 그 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국민"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즉, 2,000만명의 선택은 "국민의 선택"이고, 20만명의 선택은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국회가 자신을 뽑아준 국민들을 의식하여 온힘을 다하여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대통령 역시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여 여대야소 혹은 여소야대의 상황에 적합한 처신과 정치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리더쉽이다. 압도적인 과반수를 만들어주고 국정운영을 하라고 했을 때 못할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정치적 변동 혹은 국제정치적 긴박함 속에서 현명하게 처신하면서 국론을 모으고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대통령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리더쉽이자 위기대처능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의는 국민들을 매우 크게 실망시키는 처사이다. 정말로 국회 과반수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검찰을 동원하든 정치적 밀실거래를 추진하든 인위적으로라도 과반수를 만들어서 국정운영을 하면 될 일이다. 그 대신 그에 따르는 정치적, 법률적 책임 역시 본인이 전적으로 감당하겠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차라리 김영삼이나 김대중은 그와같은 배짱이라도 있었다.
특히, "과반수가 안되서 국정운영을 못하겠고 이와같은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라면 차라리 대통령 후보 시절에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치뤄지는 총선거에서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면 대통령직을 내놓겠습니다"는 공약을 내걸었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다면 과반수가 붕괴된 지금 시점에 와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그 상대가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민노당이건 그토록 "연정"을 하고 싶었다면 "연정"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먼저 국민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물었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연정"을 통해서라도 자신에게 계속 국정운영의 기회를 부여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의 판단을 촉구했어야 한다. 그래야 "연정"에 대한 진정성을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다. 이와같은 의식과 절차가 결여되어 있기에 현재 국민과 야당으로부터 "연정"은 냉소주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과반수를 말하기 전에 과반수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말하라
지금 국민들이 "연정"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는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과반수를 만들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총선을 통해 국민들은 분명히 여당인 열린우리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문희상 당의장이 이야기했듯이 "연정" 파트너로 한나라당도 좋고, 민주당도 좋고, 민노당도 좋은 것이라면 도대체 "연정"을 통해 과반수를 얻어서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것인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같은 뿌리였던 민주당이야 그렇다치고,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정책적, 이념적 스펙트럼이 사뭇 다른데 그 두 정당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면 과연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민주주의 정당이 결코 변절할 수 없는 확고한 정강과 정책을 가지고 가는 이유는 바로 정당이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계파에 의해 사유화되는 것을 막고, 당원들의 총의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열린우리당 정책을 한나라당에 맞도록 우향우 하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민노당에 맞도록 좌향좌 하겠다는 것인가?
이러한 정당정치의 기본에 대해 확고한 원칙과 소신이 없는한 "연정"을 통해서 탄생할 과반수 권력의 실체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친 또 하나의 야합 혹은 거대한 사조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과연 그렇게 형성되는 "연정" 세력이 과거 노대통령이 그토록 비난해 마지않던 김영삼-노태우의 3당 합당과 무엇이 다른지 과연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해답에 대해 국민들에게 명쾌하게 이야기할 수 없는한 "연정" 논의는 결코 한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니, 설령 진전을 보았다 할지라도 결코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김영삼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며, 그 직접적 행위로 나타난 것이 바로 3당 합당이었다. 권력을 부여하고, 이를 인정하는 주체가 바로 국민들인데 그것을 스스로 참칭하였으니 어찌보면 실패는 너무도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민자당은 230석에 육박하는 의석으로부터 과반수인 150석에도 못 미치는 형국으로 급전직하했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역시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않는한 대통령 노무현과 집권여당 열린우리당의 패배는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연정"이 성공하려면 그 속에 국민이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3당 합당 당시 처럼 이미 성공한 "야합"을 사후 통지하는 객체로서가 아닌 분명한 주체로서 말이다. 이제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이와같은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스스로 몸을 낮추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