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린에게 (7) : 편지 기뻤다. 세상에서 너의 글 읽을 때 같이 즐거운 때는 없다. 너라는 동생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만 해도 나에게는 존재 이유가 있는 것 같고 살 맛이 난다. 정말 '동생을 가져 봐야 아는 동생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요새 여기는 섭씨 10도로 내려갔다 25도로 올라갔다 맘대로다. 한국은 아직 덥지? 여기도 수박이니 참외(라기보다 멜론에 가까운)니 오이, 가지, 호박...... 등이 나와 있는 것이 한국을 연상시킨다. 책상 위에 채린이의 큰 사진을 세워 두고 매일 보고 있다. 채린이와 같은 지성과 성격과 교양(천성의)을 가진 딸을 낳고 싶은 것이 나의 크나큰 소원이다. 매일매일 보면 아마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의 약한 몸으로는 아기를 낳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아마 무리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낳고 싶다. 죽음을 마음 속 깊이 각오하고 있다. 생명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깨끗한 일이 아닐까. 요새 하늘을 보아도 또 바람에 나부끼는 포플러 잎을 보아도 무언지 죽기 바로 전에 보는 것 같은 깊은 감동을 가지고 보게 된다. 만약 내가 죽거든 채린이에게 나의 기념품으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니체 전집(내가 말한 새로운 전집, 정말로 밥을 굶고 모은 돈 73마르크 주었단다)을 남기겠다. 종이 곽에 든 세 권의 책인데 오렌지 빛 포장지로 덮여 있고 포장지를 벗겨 보면 회색 헝겊으로 장정돼 있는 뚜껑에 자주빛으로 니체의 사인이 씌어져 있다. 다른 책과는 달리 이것만은 머리맡의 라디오 밑 선반에 세워 두고 밤낮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 책들이 제일 나를 전해 줄 것 같아서 너에게 남겨 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영혼이 들어 있다. 나의 영혼들이.
사랑하는 동생 채린! (8) : 창 밖에 눈이 오고 있다. 어젯밤에는 극장(진짜) ― 한국 것과는 다름 ― 에 가서 '파우스트'를 보았다. 저녁 7시에 시작해서 11시에 끝났는데도 조금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 유명한 세리프(대사)를 전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복했다. 처음에 천사와 메피스토와의 싸움이 있은 후에, 장면이 바뀌어서 파우스트 박사의 방이 나오고, 파우스트가 '나는 공부했다. 철학과 법학과 의학을. 그리고 유감히도 신학까지도. 뜨거운 정열로 노력하였으나 지금 나는 여기 서 있다. 한 바보로서!' 라고 중얼거리는 저 유명한 긴 파우스트의 모놀로그(독백), 또 메피스토(악마)가 학생에게 타이르는 달콤한 말, '온갖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빛 나무는 녹색이다.' 라고 할 때 또 천사와 악마의 투쟁에서 천사의 말(아마 인류의 구제가 될 유일의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은 잘못하는 것이다' 등 감격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감격한 것은 마르가레테였다. 영원한 여성적인 것의 본질인 '지키는 것(자기를)', '받는 것', '참는 것', '기다리는 것', '용서하는 것', '사랑하는 것'으로서의 한 완전한 여인의 모습이 온갖 죄악의 피안에 서 있는 창백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누구의 가슴 속에나 파고 들었고 눈물나오게 했다. 마르가레테는 파우스트의 유혹을 받고 애기는 낳았으나 파우스트는 다시 오지를 않아서 애기를 강에 던져 죽였다. 또 파우스트와 랑데뷰하기 위해서 방해자인 자기 어머니를 파우스트가 준(악마에게 받아서) 약을 먹여서 어머니를 죽게하고 천사 같던 누이 동생을 망친 파우스트에 격분해서 결투를 한 마르가레테의 오빠는 파우스트의 칼에 찔려서 죽고 만다. 그리고 마르가레테는 사형당한다. 사형당하자 메피스토가 승리의 찬 얼굴로 '그 여자는 처형당했다' 라고 외친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천국의 합창이 은은히 울려 오고 '그 여자는 구제당했다!' 라는 천사의 음성이 들려 온다. 마르가레테의 목소리가 멀리서 '하인리히, 하인리히(파우스트의 이름)' 하고 부르고 막이 내린다. 정말로 무대 장치, 배우, 모두가 거창한 대연극이었다. 막이 내린 후에 박수가 맹렬했고 주역 배우들 ― 파우스트, 메피스토, 마르가레테가 몇 번이나 나와서 인사해도 그냥 박수가 안 멎어서 결국은 여덟 번이나 막을 올려야 했다. 짧은 휴계가 두 번 있어서 그동안에 커피와 햄과 달고 시게 절인 오이를 얹은 빵을 먹었다. 채린이와 같이 봤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싶었다. 어제가 독일에 와서 두 번째 가 본 극장 구경이다. 또 한번은 레싱이라는 독일의 대고전 작가의 '현자 나탄'이라는 것을 보았다. 극장은 영화관보다 값이 다섯 배쯤 비싸고 사람들이 다 요란한 옷들을 뻐기고 가서 오페라 글라스로(우리도 어제 망원경만큼이나 큰 구식 오페라 글라스를 빌려 갔었다. 발코니에 앉았었기 때문에) 서로의 옷을 조사 구별하는 일종의 상층 계급(소위 하이 소사이어티)의 고급 사교장이 되어 있다. 유감스럽게도. 눈보라치는 날인데도 어젯밤의 여인들은 모두 소매 어깨가 없는 가슴을 깊게 데콜한 것을 입고 왔더라. 남자들은 곤색 또는 검은 색 아래 위가 같은 세비로를 입었고...... 여기서는 남자들은 보통 아래 위가 다른 빛깔의 세비로를 입고 또 곤색, 검은색(골덴은 제외)은 식이나 장례식 때밖에는 안 입는다. 그래서 일본 사람과 한국인 유학생이 다 약속한 듯이 곤색 세비로를 해 입고 오면 여기서는 우스운 것으로 되고 만다. 또 여자도 무늬없는 무지곤색 투피스는 거의 절대로 안 입는다. 항공 회사 여직원과 스튜어디스를 제외하고는. 요새 우리 집 근방 영화관에서 무슨 생각이 났는지(정말로 처음 이래) '만리 장성'을 하고 있더라. 리리화가 주연이래. 승희 생각이 나더라. 참 다들 어느 학교에 갔니? 궁금하다. 영이가 서울대에 간 것은 한국 일보를 통해서 알았다. 사강이 결혼한 것 알지? 인제는 바지도 안 입고 아주 엘레간테하게 차리고 있더라. 사진을 보니...... 피카소, 콕토 등이 축하장을 보냈대. '드디어! 브라보!' 라고 써서...... 채린이와 엄마의 옷 모양 카탈로그 받았는지? 그리고 이번 생일에는 무엇이 갖고 싶은가 솔직히 알려주기 바란다. 중간에 분실되지 않을 것 같은 것으로...... <뮌헨 * 1957년 11월 2일>
채린아 (9) : 빛나는 일요일 아침이다. 지금은...... 채린이의 편지(정말의)를 받아 본 지도 오래된 것 같구나! 나는 그동안 그럭저럭 무난히 지냈다. 학교에서도 '아이헨도르프' 와 '티크' 같은 세미나에 참가하고 있다. 그외에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안네'의 일기<한 어린 아이의 자취>를 다 번역했고 지금은 문장을 다듬고 있다. 아주 재미 없는 글(르뽀르타쥬가 주고 안네의 작품은 극히 조금인 프래그먼트(단편)로서 나와 있을 뿐이다. 사실이지)이라서 걱정이다. 문장을 가꾸고 나서는 또 얇은 종이에 정서해야 하니까 그럭저럭 한 주일은 더 걸릴거야. 이 책을 다 번역하고 났을 때 다시 말하면 아주 자세히 읽고 났을 때 나에게는 안네에 대한 말할 수도 없이 큰 애정이 엄습해 왔다. 그 빛나는 눈동자와 어둠 속에서 햇빛이 안 보이는 다락에서 말라빠지게 못 먹어도, '나는 인간 속에 있는 선의를 믿는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 소녀를, 특히 그 소녀의 말로 '집단 수용소에서의 참사'를 생각할 때 전율할 만한 감동을 받았다. 그동안 겨우 몇 푼으로 먹고 살고 또 몹시 싸게 덤핑으로 파는 축음기 판이 있어서(L*P는 아니고 물론 그저 칠팔회 짜리지만)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며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 등을 1장에 2마르크 주고, 또 기타 작은 샹송판 2개를 1장에 1마르크 주고 사 놓았다. 가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이것은 내가 독일에 오고 처음 있었던 일이니까 이후에는 아마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너와 같이 축음기라도 듣고 또 차라도 마실 날이 언제나 올까? 아마 영영 나는 구라파 사람이 될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예감도 있곤 한다. 구라파에 매혹되고 정복당하고 말 것 같은...... 독일의 비길 데 없는 이성과 선의에 가끔 지고 말 것 같은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뮌헨은 올해가 8백 년째 되는 해다. 그래서 6월부터 9월까지 축하절이다. 너도 록펠러라면 비행기로 잠깐 다녀갈 수 있으련만! 6월 13일에 있던 축하식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라는 노벨상 수상자인 물리학자(뮌헨 출신)가 뮌헨의 찬사를 했는데 그 속에서 슈바빙 없이는 뮌헨은 없다고 하고 슈바빙의 예술에 있어서의 대담성과 자유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에는 물리학자의 입에서 나왔으니만큼 더 호감이 갔다. 특히 '미쳤다'는 말을 곧잘 하는데 '미쳤다는 것도 슈바빙에서는 인정되고 있는 생활 방식의 하나다' 라고 하이젠베르크 교수가 말했을 때는 전부가 웃고 박수 갈채를 했었다. 하여간 훌륭한 사람이다. 이번에 내가 번역해서 보낸 Jancke의 <카프카와의 대화>라는 글은 주로 채린이에게 보이고 싶어서 번역한 것이다. 특히 카프카에 관해서 무슨 힌트를 주기 위해서...... 그럼 너도 힘차게 앞날을 위해서 싸워 나가자! 온갖 가짜와 추악에 타협하지 말자. <뮌헨의 슈바빙에서 * 1958년 1월 15일>
채린아 (10) : 조용하게 눈이 내리고 있는 밤이다. 오늘 너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몹시 반가웠다. 한국에서 나에게 온 것은 그것이 두번째였다(첫번째는 희원 언니로부터). 어제, 오늘, 내일은 가게문도 닫힌 정말로 조용한 성탄절이다. 온 집안 식구가 난롯가에 모여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촛불도 켜고, 성가를 들으면서 조용한 명상과 대화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독일의 성탄절이다. 나의 하숙집(하숙이라기보다 셋방)에 사는 여러 사람들 중에(옆방에 살아도 여기서는 서로 목례 정도로만 지나는 것이 예의로 되었다) 늙은 할머니(올드 미스 ― 60세 가량)와 늙은 할아버지가 있는데 왜 그런지 구슬프게 보인다. 할머니는 내 앞방에 사는데(이사온 지 2개월 쯤 됐다) 어젯밤(이브에) 빨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안됐더라. 어떤 운명의 사람인지 일가도 가족도 전혀 없고 편지도 안 오고 매일 새벽 5시에 어딘지 일터에 나가고 있는 60이 넘은 폴란드 사람이다. 왜 그런지 집단 수용소의 고생에서 살아 남고 가족은 거기서 잃은 사람같이 자꾸 생각되게 아무 소리도 안 내면서 우울하게 살고 있고 밤에는 통 잠을 안 자는 할아버지다. 주인 할머니는 마침 주인 할아버지가 12월 22일 새벽에 죽었기 때문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올해 76세로 아주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아프지도 않다가 정말로 거짓말같이 조용히 가 버렸다. 12월 20일 밤에 나는 12시경에 자려고 불을 껐더니 갑자기 어둠 속에 크나큰 심연이 열리고 내가 끝없이 깊깊이 빠져들어가는 것 같고 천장도 벽도 아무 것도 없어진 것 같은...... 말할 수 없이 무서운 느낌이 나서(그런 느낌은 정말로 생전에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음을 하면서 불을 다시 켜야만 했다. 그리고는 일어나 앉아서 책을 암만 읽으려고 해도 머리에 안 들어오고 자꾸 떨리고 심장이 질식할 것 같이 아파서 심장약을 몇 번이나 먹으면서도 신음해야 했다. 그렇게 불을 켠 채 책상 앞에서 이 책 저 책 뒤지면서 이유 없는 공포와 불안에 허덕이고 있는 중에 새벽이 되었다. 새벽 4시경에 돌연 주인 할머니가 낭하(마루)에 나와서 전화 거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잘 안 들렸지만 그때 전화를 건다는 것이 이상했고 나는 직감적으로 '아, 할아버지가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나 혼자 밤에 어둠 속에서 느낀 것, 본 것이 '죽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새삼스럽게 소름이 오싹 끼쳤다. 아침에 과연 낯모를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장의사 사람들) 정오경에 변소에 가려고 낭하로 가니(변소 바로 옆에 주인집 부부의 방이 있다) 어두운 낭하에 길고 가는 갈색빛 널이 놓여 있어서 그만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어제 24일이 그의 장례식이었다. 이 집 사람이 다 간다기에 우리도 갔다. 슈바빙의 '북공동 묘지'에서 있었다. 할아버지의 화환에 싸인 얼굴은 놀랍게 희고 깨끗하고 맑고 평화로웠다. 조금도 안 무서웠다. 신자였기에 목사의 짧은 기도와 설교가 있은 후에 널이 땅 속에 놓이고 모두 다가가서 작은 삽으로 흙을 세 번씩 그 위에 끼얹었다. 눈이 펄펄 날리는 추운 날이었다. 요새 나는 자기의 무지를 더욱 더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그래도 절망은 안 한다. 다만 나의 몸에 지나친 부담을 끼치더라도 나의 정신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자기 훈련으로서 보내고 싶다. 번역보다 급하고 목마른 것은 자기 교육이다. 요새 내가 읽은 책은 릴케의 전기(최근에 출판된 것, 독일 현대 시인인 홀투젠이 쓴), 또 어떤 젊은 독일 사람이 쓴 <현대 문학소사>, 그리고 릴케의 친구였고 31세에 죽은 표현주의의 천재적 여류 화가였던 폴라 벡커의 일기와 서간집 등이다. 지금 내 방에는 아주 싸게 산나무(잣나무)를 주인 집 할머니에게 빌려 색색가지 유리공, 은실, 빨간 초, 또 금종이를 접어서 만든 별 등으로 장식해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서 있다(초는 아끼느라고 안 킨다). 음식은 안 먹더라도 트리만은 꼭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에 제일 아름다운 것은 나무와 노래 같다. 나무를 장식할 때는 어렸을 때의 동화의 세계가 그대로 재생하는 것을 느낀다. 그때 같이 즐거울 때는 없고, 다 장식한 나무를 바라보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오 탄넨바움!' 과 '고요한 밤' 을 듣고 있으면 정말로 방 안에 천사가 내려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낀다. 밤에 교회에 갔었다. 아무도 없고 향불 냄새만 그윽히 담겨 있는 어두운 교회 속에서 잠시 동안 기도를 드리고 나왔다. 흰 눈에 덮인 집들과 그 속의 불빛은 정말로 동화 그대로였다. 고요한, 고요한 밤이었다. 아는 독일 사람들(학교 친구, 동네 사람, 옥낙안 Echardt 교수 등)로부터 온 작은 선물을 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과자, 책, 편지지, 달력, 초와 촛대에서부터 수놓은 손수건 하나 또는 자기가 손수 담근 사과잼('1958년 8월에 담았음'이라고 써 붙여 놓은) 한 병을 보낸 사람 등, 물건이 커서가 아니라 정성이 기쁘고 고마운 선물들이었다. 지금 나는 이 편지를 촛불 밑에서 쓰고 있다. 눈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내 속에 고요한 하모니가 깃들고 있다. 고독이 얼마나 필요 불가결한 물건인가를 절실히 느낀다. 예술은 고독 속에만 탄생될 수 있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괴롭고도 자랑스러운 투쟁의 순간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방안에 뮤즈의 날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파스테르나크의 <독일 학생시대>는 문장이 상징적이어서 읽기가 어려울 것이다. <의사 지바고>는 퍽 문장이 평이하더라. 거기에 비해서...... 그의 자서전은 전부가 그런 난해하고 지극히 번역하기 어려운 상징적 문장으로 씌여 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한글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자꾸 막혀 버리고 만다. 무엇보다도 내가 기도드리는 것은 '건강'이었다. 내가 더 많은 일(정신적)을 하기 위한 건강을 주십사 하고...... 그것밖에는 소원이 없다. 정신은 온갖 구름을 타고 훨훨 자유로 날아다니는데 몸은 날개를 꺾이고 땅 속에 묶여 있어야 하는 괴로움은 정말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 하여간 자기의 내면에서 외치는 필연의 목소리에 따라서 사는 데까지, 짧더라도 긴장된 생을 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면 새해에 너의 행복을 빌면서 이만 그친다. <독일서 * 1958년 12월 28일 * 혜린이가>
채린아 (11) : 이제는 진해에도 좀 익숙해졌니? 왜 그런지 지금쯤 너는 결국 어디나 마찬가지였구나! 하고 깨닫고 슬퍼하고 있을 것만 같다. 결국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의식뿐이지 기타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는 것을 네가 깨달았다면 그것은 큰 여행 수확이지 결코 도로는 아니리라. 보들레르가 'anywhere' 운운하고 덤빈 것은 북극이나 모스크바나 달나라나 니스가 아니라 우리들 이 피부의 감방에서 구출해 줄, 다시 말하면 죽음의 낙인 찍힌 살 속에의 감금에서 우리의 의식을 구제해 줄(또는 구제의 일류전을) 즉, 마취를 줄 무엇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세계 지도를 가졌고 단추만 누르면 우리의 심장은 어느 곳에서나 임의로 정지한다는 것은, 보들레르의 첫번 발견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편이나 에테르도, 술도, 시도, 미덕도, 아무 것도 없는 우리다. 실로 기막힌 이 살덩어리와 추한 피부밖에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행'뿐이고 그것이 환멸로 끝날 것은 미리부터 약속되어 있는 까닭에 출발이 그다지도 정다웠고 마음 아픈 환희를 주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해녀같이 피둥피둥한 갈색 피부가 되어서 바다와 포옹하고 태양과 땅에 얼굴을 비비면서 그들을 받아들이고 마치 <이방인>의 마리처럼 갈색 바지에 흰 가죽 샌들을 신고 소금기 띤 입술로 꽃같이 미소하는 여자가 되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생과 자기의 감각에 대해서 부정적인 제반 인식을 잠시나마 잊고 오랑의 물 긷는 소녀처럼 밝고 싱그러운 갈색으로 있으라는 것이다. 각설하고, 집안 소식 1. 살로메의 입술처럼 진홍빛으로 무르익은 달디단 수박이 남아 돌아간다는 것. 2. 오이지 담갔단다(1천 개). 3. 어제부터 비가 온다는 것. <서울서 * 1960년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