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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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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 (2008년 2월 12일) 기술복원가능시대의 문화재와 스펙터클의 사회
브릭 추천 0 조회 251 08.02.14 12:26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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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2.14 15:37

    첫댓글 문화재라고 하는 문화의 권위에 반사적 과잉반응을 보이고 있는 우리 내면의 단층들은 그만큼 스스로 우리가 아직은 문화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의 사태들로 ‘스펙타클하게’ 보여준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삭고 불타고 이즈러진 그림자체도 페허 그대로도 남길 수 있는 ‘숭고함’이 하나의 문화적인 저변으로 우리 내면에 편안해 질 때 비로소 우리는 이런 염려아닌 염려의 유령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겠지요. 분명 우리는 이렇게 무엇인가에 쫓기고 강제된 스펙타클에 집단적으로 휘둘릴 때 아직은 어디엔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누리고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으로 긍정해서 이것을 한편의 성장통이

  • 08.02.14 15:38

    라고 자위하고 싶지만---모든 것이 부정되었고 사물의 그 모든 것들이 연속적으로 부서지고 파괴되었던 지난한 과거력을 떠올리면 부서지고 불탄 것에 대한(전쟁들과 폭격에 대한 기억과 화재로 인한 소실의 현사태간 시간적 간격은 서로 마주칠 정도로 가깝다.) 폭력적 시선과 과잉반사들을 쏟아내는 사태들 또한 그렇게 멀고 낯선 얼굴들은 아닌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이렇게 너무 가까이 겹겹으로 중첩된 상처와 틈새들로 인해 협소하게 내몰린 내면에 비해 우리 사회의 광속 디지털 시스템은 너무 벌어져 있는 걸까요?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사유의 틈새를 그 광속의 기능적 속도가 대체하고 있고 이렇게 사태가 스

  • 08.02.14 15:38

    펙타클의 자극으로 직결, 과월해 버리는 범람들이 손쉽게 발생하고 있으니---결국 많은 그림이 몽환적으로 너울거리지만 그림이 없는---. 님의 글로 인해 늘 거기에 있을 수 있는 문화재의 자리를 새삼 고맙게 생각해 봅니다.

  • 08.02.14 18:24

    4차선 도로 한 복판으로 유폐되어 그저 버스를 타고 가면서만 바라볼 수 있던 숭례문, 한국 관광공사에서 발행한 카렌다 사진들에서나 '한국적인 것'을 대표하는 것으로 '공인'된, 그것도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주위를 질주하는 수많은 자동차들 한 가운데 섬처럼 고립되어 찍혀 '급속한 근대화 속에서도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한국'이라는 이미지를 아이러니컬하게 광고하던 숭례문은, 제가 보기엔, 결국 '전시적 가치'만을 지니고 있던 문화재였습니다. 오세영 시인이 국민일보에 특별기고한 저 과장된 복고풍의 글에서 처럼 정작 그것의 소실로 인해 '애통하고 애통해'할 사람들은, 거기에서 추위를 피하고 라면을 끓여먹었다던

  • 08.02.14 18:31

    노숙자들이겠지요. 차라리 숭례문에 비하면 애인과 데이트를 하며 거닐던, 혹은 그 곁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던 덕수궁 돌담길이 더 우리의 문화적 기억에 남아있는 진정한 '문화재'일 것입니다. 저 과장된 상실과 애통의 제스쳐들은 오히려 그전까지 우리 삶으로부터 분리된 숭례문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그리고 거기에 그를 부여하려고 전혀 노력하지도 않던 어떤 '진정성'을 그것이 소실되고 난 후 상상적으로 불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제게는 무척이나 의심스럽습니다. 이후 모든 문화재들에 더 많은 감시 카메라와 더 철저한 경비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그것들은 더욱 우리 삶의 맥락으로 부터 떨어져 박제된 '전시품'으로 전락할

  • 08.02.14 18:33

    운명을 맞이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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