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두방정 한글론 -
한글 세계화의 원조들: 원세개, 유소기, 제임스 맥콜리 -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념해온 제임스 맥콜리 교수를 위하여 -
1999년 4월 15일 시카고대 언어학과에서 35년을 가르치다 타계한 제임스 D. 맥콜리 교수의 장례식이 있었다. 61세의 나이로 그의 아파트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한 맥콜리 교수의 장례식에서 그의 제자 대표로 바바라 니드(Barbara Need)는 조사 가운데 다음과 같이 엄숙하게 말했다.(이하 인용문들은 맥콜리 교수 추모 사이트인 http://humanities.uchicago.edu/depts/linguistics/McCawley.htm 참조)
지금 우리나라는 한글날을 공휴일이 되지 않는 국경일로라도 다시 회복하자는 여론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코리안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그가 죽은 1999년까지 한글날을 20년 동안 공휴일로 하고 기념파티를 열어온 사람이 시카고대 언어학과 맥콜리 교수였다. 그의 개인적인 연례 행사 중 한글날 기념 파티가 그의 친구들과 동료교수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하여 마련한 연례행사들 중에 그 첫번째 행사였다. 맥콜리 교수는 한글을 읽기도 할 뿐 아니라 한국을 여러차례 방문한 바 있기도 하다.
바바라 리드의 회고에 따르면 맥콜리 교수는 본래 스코트랜드에서 태어났으나 5세 되던 해부터 시카고에서 성장하였다. 그런 연유로 그는 그 자신의 말씨가 스코틀랜드 모음에 시카고 자음 발음의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생애동안 결코 자동차를 가져본 일이 없고 드라이브를 배워본 일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아파트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그랬다. 그는 클래식 뮤직을 좋아했으며 아시안 음식을 좋아했다. 특히 한글에 대한 애호감은 대단했다. 랜디라는 제자는 한글날 수업을 하지 않고 언어학과 사람들의 공휴일로 기념하여 맥콜리 교수댁에서 특별한 파티를 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신이 코리안들로 하여금 한글을 만들게 했다'고 말하는 맥콜리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자랑스럽게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수업대신에 그의 아파트에서 제자들과 지인들과 함께 한글 창제를 기념해 온 것이다. 생전의 맥콜리 교수는 한글을 해독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자들이나 코리안들이 그에게 편지를 쓸 때는 한글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해외에 나와 한글을 사랑하고 아리는 여러가지 강연도 해온 필자로서 외국인으로서 한글의 역사적 의미를 새기고 공휴일로 지켜온 이만한 인물이 있다는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Professor, James D. McCawley 1938-1999
지난 1997년 10월1일 유네스코에서 우리 나라 훈민정음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한글은 음을 표현하는 최대 효과를 내는 문자로 일컬어져 왔다. 초성, 중성, 종성을 각각 포함시켜면(19 x 21 x 28) 모두 11172자 까지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어는 3백개 중국의 한자는 4백개 정도에 불과하다. 소리를 표현하는 만능의 한글이기 때문에 문자가 없는 현재의 세계 여러 종족들의 글자 표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자로 한글이 뽑혔다. 1998년부터 2002년 말까지 유네스코가 조사한 것을 토대로 문자가 없는 세계의 종족들이나 글자가 없이 말만 존재하는 세계의 2900여종의 '말'을 글자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문자로 한글이 최고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1996년 한글날 KBS 방송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세계언어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학술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은 프랑스 학술회의에서만이 아니라 일찍이 중국에서도 한글을 자신들의 국어로 채택하려는 몇차례의 움직임이 있었다.
1910년대 중반 이후부터 중국인들이 문화운동을 하면서 사회개혁을 시도했다. 한문의 어려움으로 상위 5%만이 한문을 해독하는 극심한 그들의 문맹률을 해결하기 위하여 대안을 찾아왔다. 그래서 그들이 간자화 노력으로 핀인을 만들어내기까지 유소기에 의하여 한글이 그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글은 넷 검색으로도 찾아볼 수 있는 <중국인들에게도 부러운 한글 - 한글에서 자극받은 중국의 핀인 개혁>이라는 글 속에서 다룬 바 있다. http://cafe.chosun.com/club.menu.bbs.read.screen?p_club_id=dreamview&p_menu_id=43&page_num=2&message_id=405620
6.25 전쟁이 일어나던 1950년, 유소기가 한자혁명의 그 모범 문자로서 우리나라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강조했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유소기가 살아남았더라면 우리나라 한글은 중국인들에게 보다 중요한 '선진 문자'로 인식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소기는 중국 문자 혁명을 위하여 한글 상황을 파악하러 학생이나 학자들을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사실이지 않을 수 없다.
그 한 방법으로 한글을 그들의 국어로 검토한 일이 있어왔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19세기에 조선을 방문한 바 있는 원세개도 가졌다. 원세개는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조선에 파견되어 1894년 청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의 여러 정치적 상황에 개입하면서 한글을 접하게 되었다. 청조가 멸망하고 그가 실권을 장악했을 때 한글을 중국인들의 문명 해결 방법으로 도입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있기까지 했다.
결국 중국인들은 한문이 가지는 문맹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18년 ‘주음자모(注音字母)’를 거쳐 1926년 ‘국어 로마자’가 제정을 하기도 했고, 1931년 취츄바이[瞿秋白] ·우위장[吳玉章] 등이 ‘라틴화 신문자’를 제창하기도 했다. 결국 오늘날 중국인들이 고전 한문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핀인(병음)을 개발한 것은 지난 1956년부터 '한자간화방안' 이래 1964년 간화자총표'에 2400자의 핀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핀인 제도는 도리어 한자 숫자를 더 늘여 더 복잡한 문맹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아직도 중국인들이 한글을 다시 도입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설 [대지]로 우리에게 유명한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은 '한글이 전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글자이며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했을 뿐만이 아니라 세종대왕을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극찬하기까지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 지 1994년 6월호에 레어드 다이어먼드는 '한글은 독창성이 있고 기호 배합 등 효율 면에서 특히 돋보이므로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하면서 ‘한글이 간결하고 우수하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맹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다 ’고 극찬한 바 있기도 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는데 그 1위는 자랑스럽게도 한글이다. 영국의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의 제푸리 샘슨(Geoffrey Sampson) 교수는 한글의 위대성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기본 자소에 덧붙여서 글자를 만들어낸 특별한 문자가 한글이라면서(ㅈ-ㅊ, ㄱ-ㅋ, ㄱ-ㄲ 등) 한글은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글자 모양 체계(feature system)를 가진 문자라고 강조하였다. 필자가 자주 강조해온 것처럼, 한글을 너무 소리글자로만 국한시켜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중세 라틴어가 교부들의 전용으로 읽혀지고 일반 평민들이 읽을 수 없도록 되어 있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세계의 문자들이 통치자들의 제의적 주술에서 문자를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자신들의 의사 소통을 위하여 문자를 만든 유일한 글자가 한글이다.
한글은 창제 역사가 5백년을 넘겼지만 온 국민이 모두 쓴 역사는 겨우 1백년을 헤아릴 정도 밖에 안된다. 유네스코에는 문맹퇴치나 언어학적으로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세종대왕상을 제정하고 있다. 1989년 이래 제정된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 바로 그것이다.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되어 있어 종대와 횡대를 같이 쓰면서도 컴퓨터에 입력하면 종성이 없는 글자와 모양을 맞추어 종성이 있는 글자가 들여 쓸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자판기에서 기본적으로 자음은 왼편 모음은 오른편 손가락으로 타이핑하는 유일한 문자가 한글이다.
필자는 그동안 한글에 대한 무수한 칼럼과 창의적으로 한글을 쉽게 배우는 한글 틀시들을 발표해 왔다. 특히 전체 미국의 한글학교 교장 및 교사들 6백명이 모인 전미 한글학교 총회 및 학술 세미나에서 발표한 여러 작품들 가운데 아래는 자판기에서 한글 자모의 위치를 몰라 아직도 한글 타이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한글 자판 순서를 쉽게 외우도록 필자가 오래 전에 고안하여 발표한 한글 자판기 노래이다. 맥콜리 교수가 살아 있다면 필자의 이 <한글 자판기 노래>를 전달해 주었을 것이지만 그가 외국인으로서 공휴일로 기념해온 그 한글날이 아직 본국에서는 공휴일로 되살아나지 못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2005년 한글날을 맞이하여 아직도 국경일로 회복하지 못한 채 원세개와 유소기 그리고 맥콜리 교수가 생각나면서 왜 이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2005년 10월 9일 한글날 오두방정)
고종의 밀사로 활약하며 대한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활동한 호머 헐버트(1863~1949·사진) 박사의 '한글 사랑'을 보여주는 희귀자료가 3일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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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원문보기 글쓴이: 오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