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보면 남자 주인공인 잭 블랙은 여자들의 외모에만 집착하는 얄팍한 남자이다.
잭 블랙 자신도 그렇게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닌데도, 일단 여성을 볼 때 그 여성의 내면은 무시한 체 외모만 보고 그 여성을 판단하고 좋아한다.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만 보고 상대를 좋아하니 진정한 사랑이 결여되어 진실되게 대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의 사랑은 그 여자의 겉모습인 단순히 예쁜 얼굴과 날씬한 몸매 그 자체만을 좋아한 것이므로 오해 지속될 수 없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다가온 새로운 변화는 바로 사람의 내면이 겉으로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나중에 기네스 펠트로 처럼 쭉쭉빵빵한 모습이 아닌 그 여자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는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외모지상주의란 무엇인가?? 외모가 개인간의 우열뿐 아니라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 또는 그러한 사회 풍조를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을 판단 할 때 먼저 외모를 보는 경향이 많다. 예를 들어 취직을 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 남자보다 여성들의 경우 학창 시절에 아무리 학점이 좋았더라도 외모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하면서, 외모로 인한 경쟁력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기업에서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지만 지금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취직을 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사례가 흔히 생기고 있다, 그리고 결혼을 할때에도 남성들은 여성을 볼 때 특히 외모를 가장 많이 따지는 경향이 있다. 못생긴 여성들은 결혼을 하기도 어렵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요즘 여성에게 성형이나 다이어트의 열풍이 부는 것도 이러한 현상 때문이다. 또한 대중 매체도 이러한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TV를 보면 여자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날씬하다. 물론 그들도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성형을 한다.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그런 외모를 부러워 하고 그들에 비해 자신이 못났다고 비하시키고 그들을 따라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리고 미스코리아 대회를 보더라도 얼마나 몸매가 잘 빠졌고 얼굴이 작고 눈,코,입이 아름다운가를 점수화 하여 순위를 매겨 우리나라의 최고 미인을 뽑는다, 미인을 뽑는데 지적인 아름다움 이나 내적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려는 노력은 보기 힘들다.
왜 우리는 미인의 기준을 보이는 외모에만 치중하여 판단 하는가..??사람한테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외모는 겉포장 일 뿐이다. 흔히 외모의 아름다움은 일시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피부도 노화되고 얼굴의 주름살도 생겨 예전의 모습을 유지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이든 아줌마나 할머니들은 아름답지 않고 추하다고 볼 순 없는 것이다.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은 바뀌어야 된다. 외모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멋있는 사람은 마음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겉모습에 너무 많은 정신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야 한다. 겉모습을 치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왜 먼지 낀 우리의 내면세계를 가꾸는 데는 인색하다. 물건이나 돈을 잃어버렸을 때는
찾으려 애쓰면서 왜 잃어버린 우리 마음들은 찾으려 하지 않는것인가? 매일 손과 얼굴을 씻듯 자신의 마음을 정갈히 가다듬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내 마음이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아 가꾸어 가는지,내 주위에 많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고맙다고 말하는지, 너무 많이 화를 내는 것은 아닌지, 내 가슴속에 평생을 두고 떠올려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는지, 내가 나의 삶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 앞에서도 지금 나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은지, 시간을 너무 함부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야 할 것들 보다 하고 싶은 일에 더 많은 마음들을 쏟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자신의 내면을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날씬한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다. 젊음이 다하면 꽃이 지듯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사라졌을 때 자신에 대한 실망은 물론이고 주위사람들과의 사이도 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논하면서 이런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외모지상주의란 선입견을 비판한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하면서 실제로 이런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 내가아닌 다른사람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은연중에 그렇게 따르고 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이유는 뭘까?사람을 만나면 무엇보다도 눈으로 보게 되는데 그것이 첫인상이되고 선입견이 되어서 판단을 하게된다. 한 사람에 대해서 깊이 알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는게 전부가 될 수 있다. 내가 미팅을 나갔다고 해보자. 상대 남자 두명이 있는데 한명은 키도크고 잘생겼고 다른 한명은 옥동자같이 생겼으면 당연히 잘생긴 남자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사람의성격이 어떤지 처음 만나서는 알 수 없고 그 내면을 보고 그사람의 매력을 바로 알아차리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도 다른사람에게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이 더 대접받는 이 사회에 살고 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화를 예를 들어 보면, 풍선장사가 선전용으로 빨강, 노랑, 초록 풍선에 수소를 넣어 띄웠는데 아이들이 몰려와 하나 둘씩 사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물꾸러미 지켜보던 한 소년이 "아저씨, 까만 풍선도 저렇게 하늘 놓이 올라갈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 풍선장사가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꼬마야. 풍선이 뜨는 이유는 풍선의 색깔 때문이 아니라 풍선 속의 내용물, 즉 수소때문이란다."
이렇듯 검정색은 색깔이 짙다고 해서 무거운 것이 아닌데 이런 선입견에 사로잡혀 까만 풍선은 무겁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는 그 풍선속에 있는 수소라는 그 내용물 때문인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기 쉽다.
이 예와 비슷하게 외모가 예쁘다고 해서 성격도 좋고 착한 것은 아니다. 험악하게 생긴사람도 오히려 더 착한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든 내면적인 모습이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큰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쌍꺼풀이 없는 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결정하는데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일상생활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관련하는 개별적인 감각사물이나 개별적인 행위는 그것 자체로 따로 분리시켜서 보면, 어떤 관점에서는 아름답고 올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는 추악하고 옳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얼굴이나 생김새는 변하게 되더라도 그사람의 인성이나 그 사람의 내면 즉 성격이나 마음가짐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렇듯 플라톤이란 철학자는 개별 사물들에는 이데아가 모두 존재한다고 보았다. 육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뜻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떤 사물이나 행위는 그것 자체로 따로 분리시켜서 보면, 어떤 관점에서는 아름답고 올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는 추악하고 옳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데아는 어떠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같다. 즉,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보는 원은 겉보기에는 둥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원자현미경을 들여다보면 미세하게라도 다소 쭈글쭈글한 모양이 나올 수도 있지만 이데아의 세계에서 원은 완벽히 둥글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데아계는 보편적인 개념 내지 도덕법칙을 내세우기 위한 하나의 관념적인 것이고 플라톤이 내세운 하나의 가상공간일 수 있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즉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를 더 들면 우리가 앉아서 공부하는 책상이나 의자도 시간이 흐르면 낡고, 나중에는 부러지거나 버리게 되어 쓰레기장으로 가서 서서히 분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데아계의 의자는 그것의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모델이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예를 보면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현상계와 이데아계의 관계를 비교하였다. 즉, 동굴 안에 갇혀져, 쇠사슬로 묶여져 있는 죄수들은 절대 뒤를 돌아다 볼 수 없다. 그들은 동굴 벽면에 비치는 사물들의 그림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들은 사물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그 껍데기죠... 당연히 진짜 모습은 동굴 바깥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역시 그 죄수처럼 현상 세계에서 보는 사물들을 원래의 본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고 현 세계에서는 가 볼 수는 없지만 어딘가 이데아 계에서는 사물들의 진짜모습, 변형되지 않은 동굴 바깥의 그대로의 모습이 존재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논할 때 왜 내면인 정신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할수 있는가? 예를 들어 사물의 껍데기는 자기를 보호하고 감추는 기능은 있지만 그 속의 진실은 껍데기와 관계가 없다. 외모나 옷파림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별개의 것이고 외면은 언젠가는 변질되는 것이지만 내면에 가지고 있는 심성은 변치않고 바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면적 아름다움을 갖추지 못하고 오로지 외모만 아름 다운 여성에 빚대어 자신을 비하하지 말고 지금 이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소중히 하여야 한다.
첫댓글 "선입견에 사로잡혀 까만 풍선은 무겁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말 감명깊었구요. 419를 국치일이라고 말하면 혼날 거 같아요. 아니구요, 우리나라 파병동의안 통과된 날이라고 말씀드렸거든요. 많이 쓰셨는데, 미안하군요. 담 학기에 들어오셔서 더 알차고 충실하게 커뮤니케이션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