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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나의 얼굴로 다가들었다. 하마 같은 몸매에서 방금 먹은 양파 섞인 시큼한 냄새가 얼굴로 쏟아졌다. 으악, 너 왜 그래. 너 술 먹었어? 저리 못 가? 으앙. 아빠 뽀뽀. 커다란 덩치가 작은 나의 몸을 눌렀다. 싫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몸은 전보다 더 불어 있었다. 그냥 좋아서요. 아빠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어요. 아들은 그 큰 몸에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리는 부드러운 몸짓이었다. 나는 TV의 혼자 사는 다큐멘터리를 끄고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의 딸, 진은 오늘도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때마다 딸은 속으로 웃었다. 자기들이 나를 알아? 경칠 녀석들. 두고 보라지 이 잡화점 곧 없어질걸. 그 홀아비 냄새나는 사장은 왜 그리 내 몸을 흩어 보는지. 그녀는 영 그 사람의 눈초리가 지렁이같이 셔츠를 올라오는 것 같았다. 아. 그러나 어디 가서 일을 구하나. 한숨은 늦은 저녁 행인들 뒤로 점점이 따라갔다. 수원 가는 전철은 그녀를 구석으로 깊숙이 밀어냈다. 조금만 참자. 얼마 안 남았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도. 한편으로 살찜 없는 어깨로 뒤로 붙이는 녀석의 가슴을 밀치며 노약자 좌석이 있는 창가로 다가갔다.
아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장바구니를 풀었다. 아차. 2 천 원짜리 오이가 어디 갔지? 내 금방 여기에 넣었는데. 이리저리 찾아봐도 없다. 깜빡깜빡 기억력이 없어진다고 스스로 느꼈지만 돈 허투루 쓰지 않은 습성에 생채기가 났다. 현관문을 나서 승강기 앞까지 나가봤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계속 시장길을 되새김했다. 어디지? 아! 그 버스. 앞 동 아줌마와 수다를 떨다가 내가 인심 썼지. 손사래 치는 것을 억지로 쥐여주며 동사무소 회의에 꼭 나오라고 당부했지. 내 정신 좀 봐. 에이. 얼른 애들 아빠가 오기 전에 된장국을 끓어야지.
나는 아직 어둑한 도로를 따라 걸었다. 출퇴근하는 차를 아파트에 두고 반년 째 버스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성준 부장님. 오늘 차 안 갖고 오셨어요? 언제나 화사한 미국 여배우를 닮은 소희 씨는 나에게 인사했다. 아니 요즘 전철이 편해. 가끔 버스도 타고 사람 구경이 쏠쏠하거든. 네. 그렇군요. 지난주에 먹은 저녁은 근사했어요. 부장님. 스커트 자락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가 그의 앞을 스쳐 갔다. 그래. 다음에 저녁 한 번 더 사지. 그쪽 부서는 편안해? 그럼요. 아니 부장님 밑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빠요. 그때가 좋았어요.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보다 화색이 환하게 돌고 있다고 느꼈다. 얼마 전에 부장으로 승진한 후배 밑이 좋겠지. 그리고 젊은 남자 사원들로 붐비는 그쪽이 더 신나겠지 하면서 나는 잠시 머릿속을 굴렸다. 하지만 예전만큼 판단이 예리하지 못하고 감정이 먼저 앞서간다는 것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아빠! 후루 밥 줬어?”
“응? 아니.”
“지금 몇 신데?”
나는 채널을 돌리며 딸의 눈치를 살폈다. 부랴부랴 밥그릇을 들고 먹이를 부는 딸의 뒷모습을 보며 주말을 컵라면으로 때운 속이 허전했다. 허겁지겁 먹는 녀석은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 나보다 낫네. 녀석은 다 먹고 나서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점박이가 제법 커졌다.
“아버지. 강아지 어떻게 할까요?”
“버릴까요? 인제 와서 어떻게 하나요. 네?”
아들은 자고 있던 나를 깨우며 격정을 토로했다.
“후루라고 불러요.”
“후춧가루?”
“놀리지 마시고. 그냥 후루요.”
얼마 전에 아들은 애견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를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래 봬도 독일산이고 매우 영리하다고 떠들어 댔다. 6개월 동안 서로 대화도 없었던 여동생이 급격히 말문을 튼 것도 그 강아지 때문이었다. 번번이 떨어지는 취업 면접에서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올랐을 거라고 나는 참아왔다. 오히려 동생과 예전처럼 수다를 떨고 밥상을 같이 한다는 데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 기침은 어느 정도 강아지와 거리를 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개를 무척 좋아했다. 이름은 자키라고. 검은 잡종견이었는데 초등학교까지 따라다녔다. 우리가 다른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득달같이 달려와 그 개의 목덜미를 무는 사나운 개였다. 우리에게는 순종적이고 가을 산에서 족제비를 잡아 오는 용감한 개였다. 운동장에 잡아놓은 독사를 쫓다가 물려 며칠 보이지 않더니 주둥이가 퉁퉁 부어 학교 운동장으로 찾아온 개였다. 그 가을날, 마을에는 어른들의 술잔치가 벌어지고 누구도 그 개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 뒤로 개는 주위에서 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어갔다.
닥스훈트라고요. 오소리와 토끼를 잘 잡는다고 아들은 떠들었다. 지금 이 시절에 어디 가서 그런 것을 잡을까마는 한 마리 강아지에 대하여 오누이의 지극 정성을 보며 거실에는 좀처럼 나가지 않은 나였다. 그런데, 오늘 아들의 득달에 잠이 깨워지고 황망한 생각에 이성을 잃은 아들의 모습에 주마등 같은 아득한 과거가 생각났다. 얼마 후에 딸 진이 없으면 누가 강아지를 길들이며 용변을 훈련하느냐에 대하여 딸과 아내에게 계획을 물은 적이 있었다. 귀여움으로 데려와 강아지가 커지면 버리는 뉴스를 예로 들면서 앞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지 물었다. 10여 년을 같이 먹고 자며 생활을 같이 영위할 터인데 각오가 단단한지도 물었다. 무엇보다도 털에 대한 기침 알레르기가 있어서 나는 밖에서 키우는 개일 때에만 허용한다고까지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집에 데리고 온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인제 와서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며 잠든 아버지를 깨운 것이었다. 개보다 못한 잠을 깨고 며칠이고 나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야, 인마! 나도 너 좋아. 흐흐”
배 위에 올라가 얼굴을 이곳저곳 핥아 손으로 밀치자 후루는 나의 사타구니로 내려와 냄새를 맡았다. 옆에서 아내는 연신 웃고 있었다. 나는 거실 바닥을 뒹굴며 후루를 찾았다. 녀석은 다가와 손을 한 번 노려보더니 냉큼 아내의 가랑이 사이로 올라갔다. 4개월이 지났다. 주먹만 하던 강아지가 팔뚝만 해졌다. 제법 눈치를 알아보고 자기가 나설 때와 제집으로 들어갈 순간을 가렸다. 하지만, 소변을 깔아놓은 패드에 실례하는 것 외에 변은 끙끙거리다 제멋대로 쌌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스스로 작은 고구마 같은 똥을 치웠다. 물론, 그때마다 투덜거리며 소리 질렀다. 야, 똥 좀 잘 싸! 후루는 그럴 때는 각기 다른 색깔의 눈망울을 굴리며 엉긍엉금 제집으로 들어가 주위가 조용해질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모두 외출한 어느 날이었다. 내가 퇴근을 하니 아무도 없고 현관 펜스를 넘으려고 꼬리를 치며 깡충거리는 후루를 보았다. 작게 짖기도 하는 후루를 보고 나는 놀랐다. 여간해서 내 근처로 오지 않던 녀석의 꼬리 침에 싫지가 않았다. 샤워하고 나와 녀석에게 “간식”하자 후루는 빨리 내 무릎 밑으로 달려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눈치를 보는 녀석에게 간식을 주자 얼른 물고 제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을 하다가도 녀석이 오면 말을 걸었다. “엄마, 형은 어디 갔니?” 강아지가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신기하게도 후루는 고개를 현관으로 돌렸다.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짖기 시작한 지가 2개월이 지났는데 현관 밖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후루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 나가면 낑낑거리며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서서히 녀석은 식구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후루의 태생은 모른다. 정상적으로 키워진 어미 견에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소위 공장에서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한 주먹 마한 강아지가 집에 들어와 조금씩 커가는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며 녀석의 과거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태어날 때 혼자가 아니었을 텐데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안고 들어왔으니 물을 겨를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데리고 온 아들 녀석에게 오히려 항의를 듣고 요즈음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상태였다. 어찌 돌려보낼 수도 없거니와 가족 모두 후루를 한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가장으로서 묵인된 허용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아지의 미래가 단지 귀여움으로만 덮이고 있는 지금이 가장 문제가 되었다. 귀여움이 후루의 생명 끝까지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나는 최후통첩을 가족에게 던지고 말았다. 거실에서 밀려나고 가족 구성원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술을 잔뜩 먹고 들어 온 날이었다.
“강아지 돌려보내. 아들이나 당신이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면 하루빨리 좋은 곳으로 말이야.”
나는 그 말을 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지만, 가족들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무언으로 나에게 시위를 하며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에게 일종의 비난과 일찍 표현하지 않은 것은 방조에 가깝다며 이것은 모두의 공동 책임이라고 되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러한 추궁을 피하며 거실과 안방을 격리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럴수록 후루는 빤히 내 표정을 보며 나에게 접근을 은근히 두려워하였다. 내가 없으면 신나게 뛰어놀다가 내가 나타나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영리한 녀석이다. 사람의 심리를 알아차리는 후각과 청각 기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본능적인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후루와 나는 결정의 한가운데서 서로 대치를 하고 있었다. 녀석은 정기적인 예방접종을 마치고 조금씩 몸짓이 커가고 있었다.
“이모부! 후루 보내지 않으면 안 돼요? 제가 이모네 집 가서 후루 잘 볼게요. 그리고 저도 공부 열심히 할게요. 네?”
“미현아, 미안하다. 후루에게도 권리가 있단다. 행복할 권리 말이야.”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참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열린 문으로 작은 개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이었다. 회의하던 직원들이 모두 놀라고 주의를 그쪽으로 향하였다. 회의는 둘째 치고 4층까지 어떻게 올라온 건지 궁금하였다. 한데 몸꼴이 지저분한 강아지는 직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런 녀석이 이리저리 냄새를 맡더니만 잠시 후 밖으로 나갔다.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고 며칠이 흘렀다. 비 오는 어느 날 분수대 옆을 지나는 녀석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모습은 더욱 말라 있었다. 이번에는 사람을 피하고 구석으로 도망을 쳤다. 그 뒤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인터넷에서 본 영상이 생각났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놓은 작은 강아지가 주인 차를 죽을 둥 쫓아가는 영상이었다. 영상은 뒤차 블랙박스에 그대로 녹화되었다. 그 강아지는 결국 그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주인 차는 멀어져갔다. 그 강아지는 차에 치여 상처를 입거나 살아도 다른 동물 영상에서 보았듯이 계속 저 도로 위에서 밤낮으로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후루는 진의 조련으로 조금씩 사람의 말귀를 알아갔다. 기다려. 손. 밥. 간식. 붕어. 쉬 등등의 뜻을 진은 잘도 교육했다. 차츰 가족과 친해지고 더욱더 익숙한 생활을 구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아들은 병원 검진에서 개털의 알레르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자 후루를 제 방으로 안고 들어가 같이 자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만은 계속 기침으로 개를 멀리하였다. 후루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계속 내 곁으로 오는 것을 피했다. 언제나 용변 때문에 바로 야단치는 소리를 알아듣고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에게는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살갑게 굴었다. 가족이 한 명이라도 나가려면 현관문으로 달려가 낑낑거렸다. 그때에는 간식을 거실로 던져주고 잽싸게 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짓도 통하지 못하고 가족은 서로 쩔쩔맸다. 유독 나만 예외였다.
딸의 이모가 들고 온 간식에 후루는 환장을 하였다. 진이 이모는 후루 입양을 심도 있게 고민하였으나 남편의 반대로 포기한 뒤였다.
“아니,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것보다 개가 죽으니 더 크게 울더군요.”
어느 날 나와 술잔을 들며 동서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개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돼 죽자 처제는 화장하고 한동안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언니네 집에 와서는 후루를 본능적으로 무척 사랑스러워했다.
“징가징가 물어 와.”
후루는 아내의 지시대로 소리 나는 장난감을 물고 왔다. 이번에는 “물고기” 하자 녀석은 두리번거리다 금방 물어왔다. 밤이면 잠도 자지 않고 둘은 소파 위에서 TV를 켠 상태에서 잘도 놀았다. 강아지가 자야지만 아내는 불을 끄고 침대로 들어왔다. 새벽이면 안방을 박박 긁어 곤한 잠을 깨웠다. 그 정도로 녀석은 식구들에게 골탕을 먹였다. 그래도 아내는 하품하면서도 금방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후루는 점점 커졌다. 등이 길어진 만큼 다리는 더욱더 짧아 보였다. 그래도 녀석은 식탁이나 거실 싱크대 등으로 달리며 놀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파 위로는 오르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 반동으로 달려와서 점프하지만 번번이 앞다리 외에는 올라오지 못하였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약이 오르는지 계속 반복하였다. 아내가 더는 안쓰러웠는지 잡아 올려주면 신이 나서 소파 위를 뛰어다녔다. 그 순간 초인종이 울리면 냅다 뛰어 내려가 현관 앞에서 짖었다. 그러다 누가 들어오면 다시 소파로 달려와 올라오려고 낑낑거렸다. 아내가 먹는 것은 무엇이든 달라고 짖었다. 무도 먹었고 배추도 먹었다. 어떨 때는 약봉지도 물고 달아났다. 그럴 때는 기겁을 하고 녀석의 입에서 빼앗느라고 소동을 폈다. 녀석은 하나의 식구이고 강력한 일원이었다. 그것을 후루는 즐겼으며 항상 짖는 것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였다. 녀석이 잠들어 있을 때 식구가 모두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얼마 후 녀석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제집에서 나와 아무 곳이나 용변을 보았다. 그리고 아내의 옷을 찾아 물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어떨 때는 그 위에서 침울하게 머리를 박기도 하였다. 울타리를 쳐놓은 현관 앞을 넘지 못하여 한동안 신발을 물지 못하자 녀석은 전깃줄을 무조건 물었다. 충전 선이나 주인들의 냄새가 밴 모든 물건을 복수하듯이 물었다. 여러 번 새것으로 샀지만, 녀석은 호시탐탐 노렸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어느샌가 녀석은 사고를 치고 있었다. 언젠가 나의 충전 선을 물어 머리를 호되게 때린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녀석은 안방으론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잠시, 아내만 혼자 있을 때나 아무도 없을 때는 언제나 들어왔다, 그리하여 안방 문은 닫히게 되었고 내가 있으면 녀석은 한 번 냄새를 맡고 휙 지나쳤다. 그리고 창고 겸 서재로 들어가 실례를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기 집으로 다시 들어가 얼굴을 밖으로 내밀고 눕는다. 내가 안방에서 나오다 눈을 마주치면 머리를 반쯤 돌려 무관심하게 머리를 숙였다. “너 사고 쳤지?”라면 더욱 눈을 돌린다. 냄새를 찾은 나는 소리소리 지르며 소변이나 똥을 치우며 투덜거렸다. 녀석은 머리를 안쪽으로 돌려 외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화가 잔뜩 난 내가 집 앞으로 가서 손을 넣으면 배를 발라당 까고 두 발을 벌렸다. 제 딴에는 항복을 하는 것인데 나는 용서치 않고 녀석의 꿀밤을 깠다. 그런 사실을 나중에 안 진은 득달같이 달려와 나를 나무랐다.
“강아지가 뭘 안다고. 때릴 때가 어디 있어요?” 하며 눈을 부라렸다. 나는 슬그머니 피하며 “냄새가 나잖아?” 하였다.
“어머니! 후루 입양 갈지 몰라요.”
“언제?”
“내일 데리고 나가봐야 해요. 적당한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아내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했는데 집에서 정말로 후루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먼 훗날인 줄 알았다.
“아들이 키울 거야? 아니면 당신이?”
“확실히 해요. 누가 책임지고 녀석을 키울 거냐고.”
저녁을 먹으며 언성을 높이자 후루는 조용히 제집으로 들어갔다.
“냉정해보세요. 아들은 직장에 나가고 당신이 강아지를 봐야 하는데 24시간, 그것도 제 생명 연장 10여 년을 책임질 수 있어요?”
“그건, 좀.”
아내는 후루가 들어온 후부터 밖으로 출타를 무척 자제하였다. 그리고 얼마 전 친구들과 긴한 약속을 포기했던 아내는 머뭇거렸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들이 있는 시간에 셋이서 의논을 하였다. 결론은 파양하는 것으로. 후루를 가장 잘 보살피며 다루는 딸 진이도 며칠 전 도쿄로 떠나며 집안 사정상 후루는 키우기에 너무 부족한 환경이라고 했다. 그래서 강아지가 좀 더 어릴 경우 한시라도 속히 다른 가정에 적응을 위하여 보내기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날이 바로 내일이라니.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퇴근하니 후루가 제집에서 후다닥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약간 풀이 죽어 있다가 갑자기 현관문 소리에 고개를 바짝 들고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샤워하고 나오니 녀석은 거실에서 나를 반겼다. 녀석이 좋아하는 간식을 주자 허겁지겁 먹고 또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모두 어디 갔니?”
녀석은 꼬리만 치고 내 손을 줄곧 쳐다봤다. 뉴스를 보며 한 조각 던져주자 냉큼 물고 제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와 식탁에 걸린 아내의 옷을 물고 끌어내렸다. 그 위에 장난을 치다가 물끄러미 옷 위에 누워 머리를 처박았다. 내 눈치를 한 번 보고 이제는 더 간식이 없는 줄 알고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녀석은 집에서 사라졌다. 아들 녀석이 후루를 입양하여 왔던 곳에 재입양시키려고 친구네 가게로 데려갔다. 가서도 녀석은 이 사람 저 사람 넉살 좋게 따라다녔다고 했다.
“후루야! 엉아 간다.”
그래도 녀석은 들은 채도 않고 바닥을 쏘다녔다.
아내는 그날 밤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바로 후루는 안양으로 입양 갔다고 했다. 10년 된 시츄 견이 있는 집이라고 했다. 새벽이 오는데도 아내는 멍한 눈으로 마냥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후루의 맑고 동그란 눈을 마주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후루야! 잘 있니? 보고 싶어.”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밀린 일들을 분주히 처리하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의 전화가 왔다. 녀석의 목소리 높이가 착 내려가 있었다. 지난주에 승용차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내리던 강아지가 앞쪽으로 달려간 뒤에 생긴 일이었다.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 그 아줌마는 얼굴을 가렸다고 했다. 작은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나서 돌아봤다고 했다. 장소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서관 앞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구름 한 점 떠가는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들과 나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첫댓글 소설이긴 하지만, 동물의 생명과 심성(?)을 아주 가벼히 보는 인간들이 아직은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사실...
말은 못하지만 강아지들도 다 눈치와 감정은 있거늘...
아예 끝까지 책임지지 않을 거면 절대 개를 데려 오지 말아야 한다. 그저 장난감처럼 다루는 생각없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교훈이 될 만한 작품입니다. 오늘도 별이(말티즈)와 귀남이(푸들)와 함께 한강가도 가고, 같이 잠을 자는 사람이...
인권도 있지만 견권 묘권 다 있지요. 우리도 이젠 변해야 합니다. 하지만 후루는 잘 살고 있답니다. 형님 말처럼 미물이 사람보다 나을 때가 많지요. 편한 밤 되시기를...
인터넷이 시원치 않아서 서보암카페도 자주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고국에 들려서야 미둔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정진하소서
큰형님. 헤어진지 엊그제 인데 많은 날이 흐른 것 같습니다. 동행은 못하지만 부디 안녕히 돌아가시고 뵐 날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