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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한
이삼한은 자신을 Tathagata(如來)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1942년4월6일 한국 경상남도 하동 인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안우동골'이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그의 집은 마을 뒤편 나지막한 산등성이 너머 외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중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고 곁에는 철부지 아이들 넷이 더 있었다.
변변한 생활 기반도 없이 살고 있었던 가족들은 초근목피에 의존하여 근근이 살고 있었으니 그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는 어느 누구의 환영도 받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가 1살 때 아버지가 죽었고, 같은 해에 두 형제가 또 죽었다.
그가 2살 때, 어머니와 함께 '안우동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복골'이라는 마을로 이사를 했고, 남은 가족들은 제각기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쉬는 날 없이 날마다 남의 집에 일을 하러 다녔고,
그는 아침부터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빈 집에 혼자 남아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 어머니마저 죽게 되니 세상에는 누구도 그를 돌봐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그때까지 살았던 집마저 빚쟁이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어린 몸으로 살 길을 찾아 그 산골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때 그의 수중에는 간신히 버스표 한 장을 살 수 있는 돈이 전부였다.
버스가 부산이라는 곳에 도착하자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고 그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발생되는 일들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온종일 심한 노동을 해야 했고, 일감이 다하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시내를 떠돌아야 했다.
연이어 끼니를 잇지 못해 배가 너무 고프면 길가에서 수도꼭지를 찾아 물로 빈속을 채웠고,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비굴해지기 싫었던 그는 기운이 너무 부족해지면 바닷가로 가서 해초를 뜯어 먹으며 연명을 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방법들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니며 온갖 고통과 싸우며 살아야 했다.
그는 성장하는 동안 인간사회의 정을 모른 채 살아야 했고, 자신에게 닥쳐지는 온갖 시련 속에서 자신과 싸우면서 자라야 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소년기 동안 어떤 문제도 남기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찍부터 만고의 풍상을 겪어야 했던 그가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자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 힘든 그 만의 순수한 꿈과 이상을 갖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자신의 젊음을 어디에 써야 할 것인가'하는 일이었다.
그는 20살이 넘으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5살에는 한 정당에서 중요한 간부로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28살에는 당시 전국 최연소 나이로 정당의 지역 후보로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31살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었으며,
1남1녀의 자식들이 태어나자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가던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사업을 하기로 했다.
아내가 융통해 온, 적은 돈을 밑천으로 하여 짧은 기간 내에 큰 성공을 이루자,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그의 능력과 수완에 대해 크게 놀라워했다.
그러자 그를 정치 지도자로 양성하려는 사람들의 성화를 뿌리치지 못하고 또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야 했다.
두 번의 선거를 치르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는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는 정치의 중심으로 나가는 일이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끊임없이 박해를 받게 되었고,
자신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그는 사업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잘되던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사업에서 손을 떼고 모든 사회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삶 속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으며, 거짓을 싫어했고,
어떤 경우에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으며, 옳지 않은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결혼을 한지 10년이 되었을 때, 그는 아내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였다.
강경하게 반대를 하는 아내와 어렵게 합의를 하고, 거의 1년을 노력한 끝에 한 장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곳은 한국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면 연화리 라는 지명을 가진 남해안의 작은 섬 '연화도'였다.
그는 42살이 되던 해에 집을 나오게 되었다.
1984년 11월 13일, 그가 선택하고 머물게 된 곳은,
여객선이 닿는 연화도 포구마을 뒤편 산기슭을 한참 올라가야 있는 '십리골'이라는 곳이었다.
작은 섬에서도 외진 곳에 동떨어진 그의 거처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그가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쉬면서, 오랫동안 지쳐있던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했고, 뒷산 높은 곳에 올라가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일로 소일을 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11월 중순 오후 3시경,
그는 집안에 있었는데,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사색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지나간 과거들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일들을 하나씩 되새기며 의문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자 그의 심중에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입신의 경지로 들어가라’
그 말을 듣고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식을 더듬고 있는데,
그 대답이 또 자신 속에서 튀어 나왔다.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려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면 된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 누워 모든 생각을 정지시키고, 자신의 나이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42, 41, 40, …” 하고 자신의 나이를 거꾸로 세면서 그 속에 있던 일들을 들어내 보는 것이었다.
“…, 4, 3, 2,…"
마지막 하나를 세고 나자, 그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을 보았고,
그가 본 공간에는 밝은 물체 하나가 빛을 내면서 깜깜한 어둠 속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금세 평소의 상태로 돌아왔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그에게는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고 감정이 무디어졌으며,
그의 몸은 술이나 고기를 거부하였고, 욕정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한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명예와 물질에 대한 생각들을 잊게 되었다.
또한 어떤 일이라도 의식하면 그 일이 어떤 문제에 의해서 생기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자의 느낌이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죽은 자도 아니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을 Tathagata(如來)라고 말하게 되었으며,
이 시대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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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그가 세상을 통하여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었던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신(前身)이 극락세계에 있던 如來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금과 같은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세상의 시간으로 서기 1900년이 시작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높은 차원에 머무르고 있던 신들의 세계에서 몇 명의 신들이 모임을 갖고, 한가지 중요한 일에 대하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 모임의 주제는 ‘누가 말세의 세상에 가서 진리 속에 있던 일들을 밝히고, 인간세계에 자신들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알리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모임에 참석한 신들 중에서 누구도 그 일에 자원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일을 두고 모임은 몇 차례나 거듭되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논의되던 일들이 점차 주변의 다른 신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극락세계에 있던 如來는 이 모임에 있던 일들을 알고부터 혼자 고뇌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대상자(적임자)는 천지에 있는 많은 신들 중에도 몇 되지 않았고,
누구도 이런 일에 자원하려 하지 않는 것은 말세의 인간 세상에 나서 진리 속에 있던 일들을 밝혀야 하는 일은 너무도 외롭고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如來가 이 일을 두고 고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적임자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고뇌하던 如來는 또다시 신들의 모임이 있던 날, 그 곳을 찾아가서 如來 자신이 그 일을 하기 위해 세상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如來의 말을 들은 다른 신들은 모두가 간곡히 만류했지만 누구도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如來의 결정을 바꾸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결국 그가 인간 세상에 오게 되었고,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천대와 멸시와 학대와 박해 속에서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런 그는 42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그 자신의 근본 속에 있던 如來를 스스로 찾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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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후,
1985년 봄, 어느 날 밤이었다.
그는 그의 심중을 통해, 먼 공간의 세계로부터 전해져 오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으며, 며칠 후 또 다른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양심과 정의와 사랑을 통해 세상을 구하라는 진언이었으며,
두 번째 메시지는 진리를 알면 외롭고, 진리를 말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일을 알려준 말이었다.
메시지가 전달되던 순간마다 그의 가슴 속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으로 터질 것만 같았고 그때마다 메시지는 심중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자신 속에 있던 비밀들을 알고 난 이후, 그가 사람들을 만나려 하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입을 열면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점차 시일이 지나면서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누구인지 모르는,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날마다 세상을 떠돌아야 했으며, 그 결과는 언제나 같은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서 누구를 찾아야 할 것인지 막막했고, 세상의 일을 잊고자 하면 오히려 천근같은 중압감이 자신을 짓눌렀다.
그는 첫 번째 메시지의 진언은 지킬 수 있었지만, 두 번째 메시지의 진언에 대해서는 지킬 수가 없었다.
남의 불행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그가 세상의 일들을 보면서 진리 속의 일들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리 속에 있던 일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의 생애를 끝없는 방황과 좌절의 시련 속에서 보내야 하는 특별한 삶을 살게 했고,
지금도 70세 노구(老軀)를 이끌고 홀로 세상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가 如來라는 사실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오래 전부터 인간 세계에 전해져 오던,
말세의 시대에 나타날 것이라던 眞人(義人)의 모습과 그대로 닮았다는 것이며,
더욱 놀라운 것은 義人(眞人)이 지니고 온다고 전해지던 증표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인간 세계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깨우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시대가 한 세상의 끝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앞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일을 두고 인간들 속에 있던 문제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 · 과거 · 미래에 자신들에게 있게 되는 일들이 어떤 문제들에 의해 존재하게 되는 지를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끝없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가 진리 속에 있던 일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던 파멸을 막기 위해서이며,
그는 이 일을 위해 우리 앞에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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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중에
1. 如來의 출현
나는 마흔 네 살이 될 때까지도 나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남다르게 겪어야 했던 시련보다 더 외로운 꿈이 있었다.
인간의 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던 나는 날마다 자신이 자랐던 사회를 생각했고, 그 사회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속에 피어야 했던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주변에는 내 꿈을 피울 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나의 양심은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내 자신을 통하여 세상에 대한 고독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 일들에 대한 항변의 수단으로 글을 써 내기도 했지만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자는 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1983년 4월경, 한 낯선 사람이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며칠 동안 매일 같이 나에게 회유와 협박이 담긴 말을 계속했다.
“잘 먹고 잘 살 것인가, 이 시대에서 죄 없이 억울한 죄인이 될 것인가.”
자신을 ‘윤’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자신의 주민등록증까지 보여주면서 이런 제안을 해왔다.
만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의견을 진실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면, 내 가족이 일생동안 지극히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재물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재물은 어떤 부지(敷地)와 최고의 이권(利權)이 걸린 허가권을 함께 알선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었을 때 이유모르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내 눈물 앞에 그자도 숙연해졌다.
나는 그날 꽤 오랜 시간을 울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말했다.
“돈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는 돌아갔고, 다음날도 여전히 찾아왔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돈을 쓸데가 없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지 그는 어제의 내 대답을 되풀이하며 감탄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나의 사정을 내 가족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 나의 태도가 어떻게 그들에게 이해될 수 있었겠는가.
그만한 이권(利權)을 조건 없이 제시할 수 있는 확실한 자라면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지 않더라도 그의 임무나 신분은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자 그는 더 이상 나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홀가분해져야 할 내 마음이 다시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위 사람 중에는 누구도 나의 행동을 이해하는 자가 없었다.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실망시키는 말만 했고 세상일을 위하여 안타까워하던 내 마음은 나를 붙잡고 술만 마시게 했다.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는 내 자신을 보면서 위대한 국가와 위대한 민족에 대한 내 꿈이 패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새로운 선택을 했고 아내에게 내 결심을 전했다.
몇 년이 될지 모르겠으나 집을 나가겠다는 내 말에 아내는 매우 강경한 태도로 반대하였다.
이 일은 쉽게 합의가 되지 않았지만 나의 확실한 결심과 단호한 행동에 아내도 시간이 가면서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들은 내 아내로 하여금 내 일을 승낙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의 선택을 위하여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고, 거의 일 년이나 소비한 끝에 한 장소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곳은 경상남도 통영군 욕지면 연화리라는 작은 섬이었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나는 무지한 이웃들의 운명을 보며 그들의 앞날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이런 시로써 탄식도 했다.
양심이 죄가 되니 나설 곳이 없고
만고에 풍상 겪어 펼 곳이 없네
천사람 능력 지녀 쓰지 못하니
세상에 태어남이 운명뿐인가
그러나 그들 속에 자신의 앞날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그들로부터 버림받아야 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 속에 살면서 내 자신의 양심과 용기를 두고 바칠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탄뿐이었다.
1984년 11월 13일,
나는 세상에 와서 내 자신을 바꿀 수 없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스스로 바다 가운데 외딴 섬으로 유배의 길을 정하고 말았으니 이로 인하여 내 자신의 모든 것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섬에서도 외진 곳에 동떨어져 있는 나의 거처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또 만날 사람도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지쳐있던 내 마음을 안정시키는 일을 했고, 무료한 시간이면 혼자 뒷산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보는 일로 소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자신이 누구인가?
내 자신의 그런 일들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강한 의문이었다.
그러자 한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그것은 입신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입신의 경지는 자신의 몸이 생기기 이전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한 시도를 하기로 했는데 그것은 내가 내 몸으로 인하여 담게 되었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들어내 보는 것이었다.
나는 나이를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43, 42, 41, .....”
생각들을 하나씩 모두 들어낸 끝에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세계에 이르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서 마음 하나를 보게 되었으니 그 마음이 바로 나의 근본이었다.
그 후로 부터 나의 삶 속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나의 마음은 깨달은 자만이 볼 수 있던 세계와 깨달은 자만이 경험할 수 있던 몸의 일들을 보게 되었다.
제일 먼저 내가 보았던 것은 번뇌와 망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감정이 무디어진 것이었다.
나는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자의 느낌이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죽은 자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이 여래(如來)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몸은 술이나 고기를 거부하였고 욕정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한 탐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명예와 물질에 대한 생각들을 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여행을 하게 되었으며 어떤 사람이 매우 불쾌한 일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분노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큰 기쁨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런 일을 보고나서 세상의 일을 노래한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스승이로다.
저마다 대하고 보니
만나고 헤어짐도 가르침이 있도다.
만물은 은혜를 지니고 있고
기쁨은 나에게 있으니
축복이란 지키고 행하는 일이
농사일과 같도다.
1985년 봄 어느 날 밤,
나는 먼 곳으로부터 심중을 통해 전해지던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기분은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은 감동으로 차 있었고, 나의 마음은 온통 그 감동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내 심중에서는 이런 말이 들려 왔다.
“양심과 정의와 사랑을 통해 인간의 세계를 축복하라.”
그리고 며칠을 사이에 두고 또 한 번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
“진리를 알면 외롭고, 진리를 말하면 저주를 받는다.”
그때마다 나의 가슴은 감동으로 터질 것만 같았고, 메시지는 심중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던 것이다.
만일 하늘이 이 두 개의 메시지를 그때 나에게 전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연화섬에서 2년가량 머물다가 뭍으로 나와야 했다. 내가 해야 할 일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의 일을 알고 그 일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찬란하게 빛나는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멀고 먼 길 찾아온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외로운 님 찾아 나선
보물 짐 진 나그네
나는 나그네
짐 진 나그네
세상에 찾아와서
주인 찾는 나그네
세상을 위하여 인간들에게서 진실을 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그들을 구하는 일을 하자 보통의 사람들과 나와의 사이에는 너무나 큰 벽이 있었다.
아내는 내가 깨달은 자라는 말과 내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하자 오히려 내가 잘못된 줄 알고 설득을 하려고 했다.
제발 부처 될 생각은 그만두고 똑똑한 남편 노릇이나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아내와 자식들을 설득하는 일조차 용이할 수가 없었다.
나와 가까웠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나의 진실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그들은 그 말을 듣자 나의 곁에서 등을 돌리고 말았다.
결국 내가 3년 동안 노력한 결과는 한 사람의 진실한 자도 만나지 못한 채,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만 쫓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다른 인간들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보아야 했다.
하늘은 나에게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일을 두고 너무나 큰 시련을 요구했다. 나는 내 속에서 끝없이 나타나는 기대와 절망과 좌절을 보고 지내야 했다.
어느 곳을 가보아도 나 자신이 아니면 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날이면 자신이 너무나 외로워 이런 기대까지 했다.
‘누가 나의 일을 조금만 도와준다면 그가 원하는 모든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약속까지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나의 말을 믿는 자가 없었다.
간혹 소원을 말하는 자가 있어 만나 보면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나 그런 자의 소원이라도 들어주면 나에게 조금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가져 보았지만 나로 인하여 병을 고친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병만 나에게 주고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궁리를 해도 진리를 인간들에게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갔었지만 어디서도 나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다.
그날도 나는 어느 곳으로 찾아 갔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그들을 보고 책임자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보고 그 일을 조금만 도와주겠다고 약속한다면, 먼저 나는 이곳에 찾아오는 불행에 시달리는 자들의 병을 낫게 해 드릴수도 있고, 이곳에 찾아와서 진실로 소원을 기원하는 자가 있다면 모든 재앙이 그들로부터 물러가는 일을 보여 줄 테니 당신이 그런 일을 배우고 가르치는 자가 되어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 사람은 매우 거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불쾌한 말을 하여 나로 하여금 더 이상 말을 붙일 수 없게 했다.
나는 온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 곳을 나오고 말았다.
도로를 건너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던 나의 발걸음에는 좌절감만이 쌓이고 있었다.
2. 한 알의 씨앗
깨달음을 얻고 나서 어느 곳에서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 못하던 나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이 오히려 당연한 일같이 여겨지면서도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맥 빠지는 일들뿐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얼마나 더 많은 수모와 방황 속을 헤매야 하는가.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잠시도 중단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가 나를 버린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그들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요, 내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차안을 둘러보았으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좌석에 여승(비구니(比丘尼))이 앉아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여승이 뒤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린아이가 잘못을 들켰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고, 죄인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스님, 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먼저 상대에게 승낙을 구하고 나서 다시 물었다.
“스님, 혹시 스님 주위에서 진실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내 질문에 여승은 조금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는 버스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잊고 여승에게 말을 계속했다.
“나는 부처의 말을 아는데 그 가르침을 전할 곳이 없구려. 만일 스님이 나에게 진실한 사람이 있는 곳을 알려 준다면 나도 스님이 원하는 것이 있는 곳을 알려 드리겠소.”하고 말했다.
그러자 여승은 잠깐 동안 나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나는 영도까지 간다고 대답했고, 스님 자신은 초량에서 내리는데 나에게 차를 대접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버스가 초량에 도착하자 나는 여승을 따라 차에서 내렸다.
내가 앞장서서 주변에 있던 찻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승에게 먼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었으나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심조심 석가모니의 삶을 통해 보는 세상의 일을 이야기 했다.
여승은 나의 이야기에 지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4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나는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그곳 종업원의 말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나는 스님에게 집 전화번호가 있는 명함을 건네면서 시간이 있거든 연락해 달라고 당부를 했다.
다음날 나는 오랜만에 나를 찾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어제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여승이었다.
그녀는 나의 집 약도를 물었고 나는 그녀에게 어떤 기대를 갖지는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신바람 나는 일이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전부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열심히 들어 주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에 이른 자이며 나는 자신을 여래(如來)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를 앞설 자가 없습니다.”하고 내가 말했더니 그녀도 이런 말을 했다.
어떤 큰 스님이 그녀를 보고 깨달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물어 보았다.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자신이 깨달은 자라고 생각합니까?”
나의 질문에 여승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장님이 눈을 떴다면 스스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눈을 뜬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세상을 볼 때 마다 알게 될 것입니다. 깨달음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여승은 내 말을 듣고 돌아갔는데 다음날도 내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찾아왔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깨달음이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근이 피고 져서 수없이 계속되는 동안에 하늘도 땅도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이 그 속에 피어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책을 통하여 이런 일을 알 수 있다면 왜 지난날 많은 수행자 속에서 깨달은 자가 나지 못했으며, 기도나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수 있다면 어찌 과거에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깨달음이란 오직 공덕을 통하여서 오는 것이니 먼저 그 근본이 있어야 하고 다음은 그 바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모든 이치가 자연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릇된 자가 있어서 자신을 깨달은 자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자는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니 그런 자는 나를 만나지 않거나 나를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오늘도 나의 말을 듣고 마음에 닿는 것이 없다면 나와 함께 깨달았다고 하는 자가 있다는 곳으로 여행을 해보면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듣고 돌아갔던 여승이 다음날 다시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자기에게 돈이 십만 원 정도 있는데 정말 여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면 당신이 어떤 사람들을 만날 것인지 먼저 상대를 정하라. 그리고 이 여행에서 다섯 군데 정도의 상대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나의 의견을 말했다.
나는 여승과 함께 다음날 여행을 출발했는데 처음으로 찾아가서 만난 상대는 자신은 깨달은 자도 아니며 또 소문처럼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자도 아니라고 부인을 했다.
나는 여승과 함께 미리 선정했던 다음 상대를 만나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상대가 머물고 있다는 곳을 찾아가면 그 곳에는 상대들이 없었다.
나는 몇 군데를 더 찾아보고 나서 그들은 깨달은 자가 아니라고 여승에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 비밀을 말해 주었다. 여승은 그때마다 나의 말을 관심 있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있던 진실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전해 주었다.
여승은 과거 성인(聖人)들의 삶과 삶 속에 존재했던 일들에 대해 나의 말을 듣고나서 더 이상 여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여승과 함께 마지막 방문지로 조계사를 찾아갔다. 내가 그곳에 가자고 한 것은 행여나 이 나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한 수행자들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마침 풍채가 당당해 보이는 승려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매우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스님께서는 나의 말을 다르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혹시 스님께서 진실한 분을 알고 계시나 싶어서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승려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대뜸 “어떤 자가 진실한 자인가?”하고 물었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승려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여승을 보고 따라오라 하고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한참을 걸어서 몇 개의 골목을 돌아서 어떤 찻집 간판이 걸린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는 빈자리로 가서 앉더니 우리에게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우리의 의향을 묻지도 않고 차 석 잔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나를 먼저 시험해 보겠다고 하면서 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알아보아도 좋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승려는 이렇게 물었다.
“캄캄한 밤중에 금 까마귀 날아가는 도리를 아십니까?”
나는 그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세상에 금 까마귀가 있기는 있는 것이요?”하고 확인했더니 승려는 벌컥 성을 내더니 혼자 나가 버렸다.
나는 그들의 삶에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전하고 있단 말인가.
그때까지 내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승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 주었다.
“장님은 없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고, 눈을 뜬 자는 있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한다.”
나와 여승은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여승은 내가 진실로 깨달은 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아직 확신이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여승은 자주 연락을 했는데, 그녀가 알고자 하는 대부분의 질문들은 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만나더니 시험을 하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만나자고 하면서 시간을 물었다. 내가 좋다고 했더니 어떤 찻집으로 갔다.
여승은 그녀가 필기해 두었던 글을 꺼내 읽으면서 무슨 글인지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글을 듣고 나서 내용에 대해 말했다.
“저 말을 한 자도 깨달은 자이다. 저 말을 한 자가 누구인가?”
그러자 여승은 오열을 터뜨리며 지금 자신이 읽은 글은 부처님의 말씀을 보살이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승은 다음날 나의 집으로 찾아와서 내 앞에서 세 번을 절하고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나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지 3년이 지나서야 첫 제자를 두게 되었다.
여승은 나의 제자가 되고 나서 자신이 겪었던 지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삶의 바른 길을 찾기 위해 승려가 되었으나 진리를 알지 못해 방황해야 했던 지난 일들을 고백했다.
나는 그 여승에게 「소연」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3. 시련의 길
나와 소연은 그때부터 스승과 제자로서 세상을 위하여 같은 길에 나서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성자는 인간의 무지를 이용하지 않는다. 성자는 인간의 무지를 깨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러 온 자이다."
소연도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따르는 것에 모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먼저 진실을 찾는 자를 찾아서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소연과 나는 이 일을 두고 하루에도 몇 차례나 궁리를 해보았지만, 날이 새면 대답은 언제나 제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연과 나는 시내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내 가까이에 있고 싶었던 소연이 자신의 의견을 나에게 말했다.
영도(影島-부산시 영도구) 중턱에 중이 없는 절이 하나 있는데 당분간 그곳에 의탁하고 있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럴 수 있으면 그렇게 해보라고 하며 나의 의견도 말했다.
그때 소연이 내 얼굴을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여래님 얼굴에 백호광이 나왔어요!”
나는 소연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내 손으로 얼굴을 만져보고 나서야 아침까지 없었던 것이 이마 한가운데 무엇인가 나타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서 소연이 나의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송남원」이라는 절로 거처를 옮겨왔다.
소연은 그곳에 와서 처음부터 연이어 며칠 밤이나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참다가 결국은 나에게 말하게 되었다.
나는 소연을 위해 그곳 대웅전으로 찾아가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하여 법문을 했다.
“나는 여래이며, 소연은 나의 제자이니 모든 신들은 소연을 도우고, 소연을 따라 지난날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를 바라노라.”하고 일렀다.
소연은 그날 밤부터 충분한 잠을 잘 수 있었고, 마음에 느껴지던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소연은 그 절에 찾아오던 여러 사람들에게 나를 스승이라고 소개했다.
소연은 하루하루 달라졌다.
소연은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나를 돕기 위해,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자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나서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연은 나에게, 절에 오던 신도 한사람이 점심 공양을 드리고 싶어 하는데 승낙해 달라고 말했다. 모처럼 하는 소연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 점심 한 끼 정도라면 응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소연이 나를 안내한 곳은 부산역 근처의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절에서 언뜻 본 것 같은 한 여자가 일을 하다가 우리를 쳐다보고 인사를 했다. 나를 오늘 이곳으로 초대한 사람이 누구냐고 소연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연은 조금 전에 인사를 하던 바로 그 여자라고 했다.
그 여자는 원래 이 레스토랑의 업주였는데, 빚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지금은 주방 일을 한다고 했다.
그때 웨이터가 가지고 온 메뉴판을 보고 나는 당황했다. 만일 그곳에서 두 사람이 점심을 먹고 간다면, 저 여자가 3일 동안 일을 해야 되는 금액을 지불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소연에게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 그 여자를 부르게 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오늘 약속을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무척 당황해 하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거듭해서 말했다.
“만일 당신이 오늘 나의 이 난처한 입장을 구해준다면 내가 보답을 하겠다. 그러니 지금 내가 그냥 가는 대신에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무엇이든지 들어주겠으니 스님 편으로 말해 주시오.”하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그녀도 나의 행동을 더 이상 막지 않았다.
며칠 후 소연으로부터 그녀의 남편을 한번만 보아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나는 그 부탁을 듣고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며칠 전에 내가 했던 약속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소연이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연이 있는 절에 가서 그 남자의 손을 잡고 보아주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아침부터 자리에 드러눕고 말았다. 머리에서는 터질 것 같은 통증이 시작되었고 머리카락 밑 두상이 진물러졌다.
나는 이후 며칠간 그 남자의 머리 안에 있던 가스(gas)를 없애기 위해 힘들게 싸워야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던 날 그 남자의 몸에서도 고통이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해 겨울 소연은 세상 일에 쓰기 위해 탁발을 시작했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할 사람들을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떠돌아 다녔다.
부산에서 상당히 소문이 있던 한 의사를 찾아갔다. 나는 그를 만나서 그를 소개해준 사람의 이름을 말했고 그는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내주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을 소개해준 그분은 당신을 매우 진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신분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당시 내가 지니고 다니던 명함을 건네주었다.
「自然科學硏究學會 會長 李三漢(자연과학연구학회 회장 이삼한)」
그는 내 명함을 보고 찾아온 용건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나는 세상의 일을 보면 그 일에 대해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노령에도 불구하고 의사 일을 계속하고 있던 그는 다른 시간을 약속해주었다.
그들은 일요일마다 오후 3시에 자신의 사무실인 이사장실에 모여 성서 연구를 하고 있으니 나에게 그때 찾아오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일요일 오후, 나는 그를 찾아갔다. 그의 사무실에는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의사는 자신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도 자리를 내주었다.
그들은 성경책을 읽고 찬송가를 합창하였으며 각자 개인적으로 예수에 대한 찬양을 오랫동안 말하기도 했다.
나는 2시간이 넘도록 그들이 하는 일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사장의 직책을 가진 그 의사가 나에게 말했다.
“15분의 시간을 줄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하시오.”
그래서 나는 오늘 같은 날, 이런 자리에서 그들이 말했어야 할 사실들에 대해 설명했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의 이름이나 찬양만으로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그런 일은 그들 앞에 영원한 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예수의 가르침을 알고 그 가르침을 따라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을 구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나의 당당한 말에 그곳에 있던 어떤 사람도 아무런 공박을 하지 않았다.
그들 속에 약간의 동요(動搖)가 생기자 그 의사가 “당신이 속해있는 단체는 몇 사람이나 모이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지금은 하나요.”
그러자 그 의사는 “보시오. 우리는 여럿 아니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나를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곳을 나와야 했다.
나는 날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외면당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잠자리에서 깨고 나면 나에게 있던 기대 때문에 차마 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좌절과 절망을 느꼈고 그런 나 자신을 잊으려 몸부림쳐야만 했다.
나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잘못을 버리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꿈꾸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대구에서 가장 큰절이 있다는 팔공산을 헤매고 다녔다.
만나는 승려마다 붙들고 진실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요즘 세상에 진실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대답했다.
어떤 암자를 지나게 되었을 때 두 여승(비구니)이 글방에 모여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 떠들고 있었다. 나는 한 여승에게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분만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 여승은 다른 여승에게 귓속말을 하고 오더니 나를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서 잠시 기다리자 두 여승이 소반에 차와 음식을 차려서 들고 들어왔다.
나는 먼저 여승에게 인사를 하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분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는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두 여승에게 지금까지 본 것이나 배운 것 중에서 진실을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두 여승 모두 입을 다물고 있더니 자신들은 바쁘니 가라고 하면서 아직 손도 대보지 않은 소반을 도로 들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전라도에 가면 이 나라 안에서 가장 청정한 중이 있다고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만나러 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당장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나 걸려서 그 중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중은 외딴곳에 지어놓은 암자에 혼자 살고 있었다. 내가 암자에 도착한 즈음에 그 중과 함께 있던 어떤 젊은 여자는 볼일을 다 보았는지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 중은 나를 보더니 무엇을 숨기다 들킨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나는 먼저 나의 소개를 하고 상대의 이름을 확인하자 본인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진실한 사람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면서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금새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뒤꼍으로 갔다. 잠시 후 그가 손에 들고 온 것은 밭갈 때 쓰는 쇠스랑이었다.
그 중은 쇠스랑을 높이 쳐들고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세상에 모든 자가 다 진실한데 누가 진실하고 진실하지 않단 말이냐!”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그러자 그 중은 나의 태도에 질렸는지 쇠스랑을 내려놓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 사람들은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를 두고 진실한 자라고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본 사실에 대해 웃고 말았다.
소연은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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