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날이 꽤 되었으나 약속한 시점에 답글을 올릴 수 있게 되어서 다행스럽고 또한 기쁩니다.
님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한번 그 내용을 볼까요?
"요즘 각 지역마다 크리스챤 개인 혹은 교회가 주체가 되어 성시화 운동이 많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독교인 = 시민' 이라는 등식이 거의 성립했던 그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다원주의 시대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따라서 이러한 운동도 뭔가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 일고 있는 이 운동은 거의 목회자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자칫 타종교 내지는 반기독교적인 시민들과의 갈등을 초래하는 현상을 빚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운동 자체가 성경적인 것인지, 성경적인 것이라면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은 없는 것인지 답을 구하고 싶습니다.. ^^"
나는 님의 이 질문을 처음 대할 때 예전부터 늘 들어왔던 '한국 복음화'라든지 '세계 복음화'라든지 또는 '도시(서울, 대구, 부산 기타 등) 복음화'라든지 하는 '복음화'를 곧 머리에 떠 올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관점에서 답변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답글을 써 나가면서 '성시화'라는 것의 성격이 단지 '복음화'와는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성시화 운동'을 검색해 보고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시화는 홀리 클럽(Holy Club)에서 주창해 온 것이었으며, 한문은 '聖市化'였습니다. 그러니까 성시화 운동은 '거룩한 도시'로 만들어 가고자 해서 전개해 나가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먼저 도시의 복음화였습니다. 이미 지난 날인 5월 29일부터 6월 2일에 있었던 포항의 성시화세계대회에 대해 기사를 썼던 뉴스앤조이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와 개요를 설명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응한 전국 홀리클럽 부회장 이건오 장로(포항선린병원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 13.5% 정도에 불과한 복음화율을 50%를 넘겨 실질적인 ‘거룩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영적 각성과 도전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예전부터 주장해 왔던 '도시의 복음화'에서 '성시화 운동'의 출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렇게 도시의 복음화를 이루어서 시민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으면, "인구 52만의 포항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통해 건강한 도시로 변모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거룩한 신(神) 도시화'될 것이기 때문에 마약을 비롯하여서 온갖 범죄가 만연한 이 도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회개와 성결, 이웃 사랑에 힘씀으로써 '도시의 거룩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힘써 왔던 '도시의 복음화'에 '도시의 거룩화'가 더해진 운동이 '성시화 운동'이었던 것입니다.
님은 이러한 성시화 운동에 대해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과연 이 운동이 성경적인 것인지...만일 성경적인 것이라면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그래서 고려되어야 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왜냐하면 가령 과거 칼빈이 제네바에서 해 나갔던 '하나님의 도성'과 관련하여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갖는 당연한 의문이었습니다.
나는 이 질문에 답변을 해 나감에 있어서 먼저 이 성시화 운동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부터 말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글이 있었습니다. 홀리클럽이라는 까페(cafe.daum.net/HolyClub)에 오학수 목사(남부교회)가 'Holy Club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올려 놓아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니까 홀리클럽의 기원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1729년 영국에서 J.웨슬리(요한 웨슬레)는 옥스퍼드대학을 중심으로
그의 동생 C.웨슬리, 그리고 G.휘필드와 함께 거룩한 운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신성 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하여 메서디스트(Methodist:격식주의자)
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성경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그리고 감옥의 죄수들을 찾아 전도하기에 힘썼다.
홀리클럽 회원 여러분~
우리도 서서히 운동의 전략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주께서 이 운동(홀리클럽모임)을 원하시면 지혜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
이렇게 홀리클럽은 J.웨슬레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는데 옥스퍼드 대학을 중심으로 펼쳐나간 '메소디스트 운동'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네 교계에서 불고 있는 '성시화 운동'은 바로 이 메소디스트 운동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도시 곳곳에 홀리클럽이 조직되고 또한 각 까페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홀리클럽을 알려 나가며 성시화 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에 의해서 시작된 메소디스트 운동은 후에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과 그 계통을 찾아 올라가면 요한 웨슬레의 메소디스트 운동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이 웨슬레 신학과 메소디스트 운동에 기인하고 있지만 감리교회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19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만국성결운동'을 통하여 계승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명직이 활천 제85호에서 쓴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결교회의 신앙개조는 그리스도와 그 사도들노 말매암아 나타내심과 요한 웨슬레의 성경해석의 근본적 교리와 '만국 성결교회'의 신앙개조를 토대로 주강생 1925년에 공포하야 성서학원과 온 교회와 신도들에게 가라쳐 영구하도록 직히는 신경으로 하나니라." 여기서 말하는 '만국 성결교회'는 만국 성결운동을 통하여 계승된 교회를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웨슬레의 신학에 성결운동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만국 성결운동의 강조점은 19세기 미국 남북 전쟁을 전후하여 미국의 대부분의 감리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침체되고 교회들이 극심한 형식주의에 바져 원래 감리교회에서 가장 중심적이었던 성결의 도리가 망각되고 다만 교리로만 남아 있는 정도에 반발하여서 강한 부흥과 전도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웨슬레가 외친 성결(기독자의 완전)의 부흥 운동이었으며 이는 곧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어서 이를 성결-오순절 운동(holiness-pentecostal movement)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네 교계에서 한창 신앙 운동화를 일으키고 있는 '성시화 운동'은 이것에 기인하고 있으면서 이를 좀더 도시화 운동으로 그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날의 성시화 운동이 칼빈이 제네바에서 펼쳐나간 '하나님의 도성'과관련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하며, 또한 이를 이해하여야 하는가를 보겠습니다. ‘ 그것은 님은 "요즘 각 지역마다 크리스챤 개인 혹은 교회가 주체가 되어 성시화 운동이 많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기독교인 = 시민' 이라는 등식이 거의 성립했던 그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다원주의 시대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따라서 이러한 운동도 뭔가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봅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네 교회에서 벌이고 있는 '성시화 운동'이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단 님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시화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분들의 대체적인 생각이 제네바[Geneva;쥬네브]시에서 유래되었으며 칼빈은 여기서 도시를 거룩회시키는 운동을 일으킨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가를 보겠습니다. 칼빈이 교회의 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등장한 것은 그가 27세 때인 1536년에 기독교강요[*초판은 라틴어로 출판되었으며 1539년에 2판이 출판되었을 때는 11장이 추가되어 분량이 초판에 비해 3배에 이르렀다. 이후 1541년에 프랑스어판이 출판되었으며, 1543년 라틴어 개정판(3판)과 1545년 프랑스어 번역판이 출판되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1550년 개정판(4판), 1551년에 번역판, 1559년 최종판(제5판)이 출판되어서 모두 23년간에 걸쳐 책의 개정 작업이 이루어져 왔으며 이 과정에서 외형상 초판에 비해 많은 부분이 지속적으로 증보되었다. 기독교강요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가장 영향력 있으며 권위 있는 교의신학의 지침서가 되었다.]를 출판한 이후입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강요를 출판했을 때인 프랑스의 교회적 상황은 프로테스탄트 교회[개신교;개혁신교]가 격심한 박해를 받고 있는 시점이었습니다. 이 박해는 이교도들로부터가 아닌 기독교에 의한 박해였으니 곧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받고 있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의 출판으로 신학자로 인정을 받았으며 교회의 개혁에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그가 프랑스에서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이에 칼빈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영내로 망명할 결심을 품고 1536년에 프랑스를 떠나게 됩니다. 칼빈은 스위스를 경유해서 독일로 가고자 하였으며, 7월 하순(또는 8월)에 제네바의 한 여관에 하룻밤을 머물러 있으면서 개혁자 파렐(William Farel)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기서 그는 파렐의 권유를 받아들여 제네바에서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관한 상황을 잠시 보면, 칼빈이 들렀을 당시의 제네바 상황은 수 세기 동안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지배를 받아온 중에 로마 카톨릭 교회를 거부하여 추방하고 그에 따른 종교적 공백기를 프로테스탄트의 목사들인 파렐과 프러멘트(Anthony Fromnet), 비렛(Peter Viret) 세 사람에 의해서 메꿔가고 있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제네바 시민들의 혁명 정신을 일깨웠습니다. 이 중에서 파렐은 베른(Bern) 시에서 교회의 개혁 운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었는데 1532년 여름 제네바에서 속죄권(면죄부) 판매가 시행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갈 때 제네바에 와서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여기에는 베른 시의 원조와 두 친구인 프러멘트와 비렛의 협조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파렐의 제네바에서의 교회 개혁은 매우 유리하게 진행되어 갈 수 있었습니다. 파렐의 설교는 제네바의 교회 개혁을 진행시켰으며 제네바가 개혁교회로 서는데 커다른 비약을 위한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결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서 1535년 8월에는 시의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미사를 금하고 프로테스탄트의 예배로 이끌어 가도록 가결을 하였습니다. 제네바가 이와 같이 교회 개혁을 이루어가자 그는 이제는 자신이 해온 개혁교회를 조직화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침 기독교강요의 저자인 칼빈에 제네바에 도착하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하나님이 제네바에 허락해 주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칼빈이 머물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 그가 제네바에 머물러 있으면서 목회를 하여 줄 것을 권유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서 파렐은 마침 제네바를 들른 칼빈을 만난 자리에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자 하는 계획을 피력하는 칼빈에게 제네바 교회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권유하였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신의 학문 연구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선언하오. 당신이 만일 이 주의 사업에 우리와 함께 동참하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저주하실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를 추구하지 않고 당신 자신을 추구하기 때문이오." 이때 들은 파렐의 말은 두고 두고 칼빈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을 칼빈은 후에 시편 주석의 서문에서 소개하였는데 그는 말하기를, "파렐은 복음 사업을 위한 비장한 열심에 불타 있었다. 그는 나를 붙잡기 위하여 몹시 애를 썼다. 나의 뜻은 조용한 학문 연구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업에 관계하지 않겠다는 말을 듣자 그는 간청만 가지고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저주의 말과 함께 만일 내가 이와 같은 중대하고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몸을 돌이켜 거부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찾고 있는 것과 같은 평안과 조용한 연구는 하나님에 의해서 저주되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말에 의해 나는 매우 놀라게 되었고 두려움을 느껴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했다." 여행도중 파렐로부터 강력한 권유를 받은 칼빈은 당초 자신이 가진 마음을 바꿔 제네바에서 사역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이에 칼빈은 우선 바젤로 간 후에 다시 제네바로 돌아와서 성경 교사로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칼빈은 당초에는 제네바에서 단 하룻밤을 머물고자 하였었으나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독일에서 지낸 3년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생애를 이 도시에서 지냈습니다.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사역은 1536년 9월 1일부터 공식화 되었는데 성베드로 교회(st. Peter's Cathedral)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칼빈의 설교를 들은 제네바 시민은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이후 계속해서 설교를 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칼빈의 설교는 성경의 바른 해석에 의해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에 관한 모든 것에 있어서 성경적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제네바를 지배할 당시에는 교회만이 권위의 기준이었으나 이제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로 인식되어 갔습니다. 칼빈은 설교자로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자로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제네바 사람들의 종교와 도덕의 개혁을 위하여 신앙 교리 문답과 이 신앙 교리 문답에 도의하지 못할 때는 추방 조치를 취할 것과 성찬식을 매월 거행할 것 등을 담은 교회 규정[교회 법규]인 '제네바 교회의 조직과 예배에 관한 조항'을 만들어 시의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네바 시민의 동의에 의해서 이러한 신앙 규준에 따라서 살도록 하였습니다. 칼빈이 제네바 시민들을 신앙 규준 아래 두고자 했던 것은 교회의 규율에 의해서 다스려가고자 해서입니다. 지금까지는 시의회가 교회의 회원 자격 여부를 결정했었으나 이제 칼빈은 이를 교회의 권한에 속하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서 시민들이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민들이 모두 기쁨으로 신앙 규준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반대파의 저항은 매우 강력하였는데 칼빈과 파렐을 제네바에서 추방하도록 시의회를 움직였습니다. 이에 따라서 칼빈과 파렐은 1538년 4월 21일에 시의회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고 제네바를 떠났는데 파렐은 누차텔(Neuchatel)로 가서 두 번 다시 제네바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칼빈은 전에 파렐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부쳐(Martin Bucer)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도시인 스트라스버그로 갔습니다. 이는 그의 시편 주석 서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기왕 공무(公務)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니 나는 아무 공직도 갖지 않고 평온한 가운데 살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미틴 부쳐는 나를 또 다른 임지(任地)로 소환하였는데 그의 강력한 권유는 일찍이 파렐과 같은 것이었다. 그가 사용한 요나(Jonah)의 예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으며 나는 또 다시 목회자가 되었다." 사실 칼빈이 스트라스버그(Strassburg)로 갈 때는 파렐과 같은 마음으로 제네바로 돌아올 생각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프랑스에서 망명한 개혁교회의 신앙을 가진 자들을 하나의 교회로 조직해서 그 교회의 목사가 되어 제네바에서 할 수 없었던 그의 사상을 소신껏 해 나갔습니다. 그가 제네바에서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을 이곳에서는 실행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교회 규정을 실천함으로써 설교와 성찬을 예배의 중심에 두고 순전히 지켜나가고자 하였던 그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칼빈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회중용 찬송으로 시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악기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예배에서의 기도문이 수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3년간(1538. 9-1541.9)을 보냈는데 목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여 나갈 뿐만 아니라 신학 교수로서도 활동하였습니다.
반면에 칼빈과 파렐이 없는 제네바는 이전보다 더 한층 좋지 않았습니다. 부도덕한 사람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 있었으며 이에 따른 제네바 시민의 도덕 생활은 극도로 타라간 모습을 띠어갔는데 교회의 규율을 관장하고 있는 시의회 조차도 불법의 횡포를 저지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더욱이 1539년 3월 26일에 제네바 시는 추기경 제이콥 사도레토(Jacob Sadoleto)로부터 제네바 시가 로마 카톨릭 교회로 복귀할 것을 권면하는 공개 서한을 받았으나 당시 제네바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사들 중에는 여기에 대응하여 대잡할만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며 이는 베른 시의 목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베른에서는 칼빈에게 그가 사도레토의 서한에 회답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며 칼빈은 이에 응락하여 회신을 보냈는데 이 회신은 가장 뛰어난 종교개혁 변증문으로 남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1539년 2월 이후에 제네바 시는 정치적 상황의 변환기를 맞이한 상태에 있었는데 1540년에 네 명의 목사들 중에서 두 사람이 분쟁과 혼란을 피하여 제네바를 떠나자 제네바는 다시 칼빈을 찾아 불러들이고자 하여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를 정중히 거절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파렐과 부쳐의 강력한 권유를 받고 제네바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칼빈은 제네바를 떠난 지 3년 4개월만에 제네바로 돌아왔습니다.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다시 시의회에 출석해서 시와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정치와 훈련에 관한 교회 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얼마 후에 시의회에 '교회 규정'(From of Government and Discipline)을 제출하여 승인을 얻었습니다. 칼빈은 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교회 규정을 실천함으로써 제네바에서도 스트라스버그에서 하였던 것처럼 설교와 성찬을 예배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예배의 순전함을 지키고자 하였던 그의 희망을 비로소 실현시킬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회에 관한 모든 것, 곧 교회 정치, 교리, 예배, 훈련, 그리스도인의 생활 등의 모든 것을 성경에 기초해서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장로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대의제(代議制)와 함께 목사, 교사, 집사를 교회의 직원으로 다루었습니다. 이렇게 제네바로 돌아온 칼빈은 교회 개혁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해 나갈 수 있었는데, 이 교회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로 불려졌습니다. 이 개혁교회의 특징은 장로교회의 정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신앙고백, 교회 규정, 장로회를 통해서 제네바를 개혁하여 나갈 수 있었는데 이러한 개혁교회는 각처의 전기독교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교회가 개혁교회를 따르고자 하는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태리, 폴란드, 스페인, 스코틀랜드, 화란, 영국 등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칼빈이 제네바 시에서 이룬 교회의 개혁을 장황하게 다룬 것은 오늘날 홀리 클럽이 주도하는 세력이 각 도시에 성시화 대회를 열면서 성시화 운동을 펼쳐나가는데, 님이 언급한 바와 같이 이를 칼빈의 제네바 교회 개혁에서 규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성'의 개념에서 연계하는 것 같기에 과연 그런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제네바 시의 교회 개혁에서 이룬 '개혁교회'를 통하여 이것이 오늘날에 우리네 교회들이 벌이고 있는 운동인 '성시화'와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또한 연계점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칼빈이 제네바의 시의회에 '교회 규정'의 승인을 이끌어 내고 여기에 따라서 제네바 시를 다스리고자 하였던 것은 제네바 시민이 교회 규정을 신앙 준규로 삼고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다움 속에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칼빈이 가진 사상에 있어서 정부와 교회는 상호 분리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교회는 교회의 제반 문제를 관장하고 국가[시]는 성경의 원리들에 의해서 기반을 이루고서 법과 질서의 문제를 관장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이 제네바에 돌아와 먼저 행한 일은 시의회에 나아가 법에 의거하여 교회를 다스릴 것과 교회 규정을 교회의 회원들이 준수해 나가게 함에 따라서 정부가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에 일치된 방향으로 정책을 펴 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교회의 회원은 법과 질서를 지켜 나갈 것이 책임으로서 요구되었습니다. 교회의 회원인 시장 상인들이 불량 식품을 파는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게 하지 않게 하고 신자들이 술집에 드나들면서 불경건한 행동과 음란으로 순결을 잃지 않게 하며 난잡한 언행으로 도덕성에 치명적이 되지 않도록 한 것은 국가의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것이 곧 성경의 원리들을 따르는 것으로써 교회 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분명 교회 개혁의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교회개혁을 펼쳐 나간 목회 사역을 시몬 키스트메이커(Simon Kistemaker)는 '칼빈주의 역사, 원리, 조명'에서 "제네바 시에 하나님 도성을 건축하고자 하였다"고 의미를 두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지금 우리네 교회들이 펼쳐 나가고 있는 성시화 운동은 과연 칼빈이 스트라스버그에서, 그리고 제네바에서 펼쳐 나갔던 '하나님의 도성'을 건축하고자 한 것과 연계해서 볼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지금 우리네 교회들이 펼쳐 나가고 있는 성시화 운동은 칼빈이 제네바에서 교회개혁을 펼쳐 나간 것과는 사실 아무런 연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언급하였습니다만 홀리클럽의 한 목사가 말했듯이 성시화 운동은 1729년에 영국에서 J.웨슬리(요한 웨슬레)가 그의 동생 C.웨슬리, 그리고 G.휘필드와 함께 옥스퍼드대학을 중심으로 신성 클럽(Holy Club)을 조직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데 규칙적이면서도 조직적으로 행동함으로써 메소디스트(Methodist:격식주의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데서 그 기원을 찾고 있으며, 이 운동은 성경 신학 연구 등에 힘쓰고, 빈민과 병자, 그리고 감옥의 죄수들을 찾아 전도하기에 힘쓴 것에서 그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홀리클럽 회원 여러분~ 우리도 서서히 운동의 전략을 달라고 기도합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시화 운동은 하나님의 도성을 건축하고자 하였던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교회개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따라서 제네바에서 칼빈이 해 나갔던 교회개혁과 연계해서 이를 성시화 운동의 유래로 볼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성시화 운동은 두 가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도시의 복음화 운동입니다. 또 하나는 도시의 거룩화 운동입니다. 그런데 칼빈이 제네바에서 목회 사역을 하던 당시의 상황에서 제네바 시민은 오랜 세월을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배하에 있다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앙으로 교회의 개혁을 받아들이고 시의회와 시민들이 함께 칼빈이 제시한 '교회 규정'을 채택하여서 개혁교회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네 교회가 벌리고 있는 소위 구령(救靈)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도시의 복음화'의 성격과는 전혀 다릅니다.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교회개혁과 상관없이 '도시의 복음화'만 놓고 볼 때도 이는 참으로 비복음적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도시의 복음화란 구호는 참으로 인위적이요 그래서 인본주의적 사고 방식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흔히 볼 수 있는 현수막입니다만, 교회에서 전도 표어를 내걸 때 '금년은 100명 전도 달성, 1000명 출석의 해'라고 쓴 것을 보게 됩니다. 대개는 이러한 목표가 정해지는 것은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에 의한 것인데 다분히 세상 경영 방식적입니다. 어느 보험회사에서 본 것입니다만 가령 '100억 목표 달성의 해'라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사장이나 지부장은 각 팀장들을 얼마나 독려하며 또한 그 독려를 받은 팀장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얼마나 동분서주합니까? 그래서 초과달성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로 인해서 성과급을 두둑히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전도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몇 명을 전도 달성의 목표로 정하고 몇 명을 출석 달성의 목표로 정하였던지 간에 전도에 의한 구령(救靈)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다가 전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여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도를 미련한 방식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어리석게 여기고 미련하게 들리는 십자가의 도를 가지고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그분의 죽음 외에는 일절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말한 전도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일러주시는 지혜입니다. 전도를 듣는 자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귀로 들으며 눈으로 보며 마음에 깨닫기에 둔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희 마음을 악한 상태에 내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를 듣는 자 중에서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보화를 발견하고 이를 얻고자 합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설사 아무리 전도 목표를 정한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전도 목표를 정한 교회마다 스스로 부끄러움에 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매년 전도 목표를 정하고서도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에서 알게 하십니다. 사실 정한 전도 목표에 상당한 부분에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사람을 끌어 모은 전도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전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을 끌어 모으는 식의 전도를 하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을 전하게 하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전도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부르시는 일을 하시는데 이를 사람이 정한 전도의 목표를 하나님께서 채워 달성시켜 주시는 방법에 의해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도시의 복음화'라니요!. 가령 서울 시민이 1,200만명인데 이중에서 현재 25%가 기독교인이고 이를 끌어올려서 40%를 달성하고 몇 년 후에는 50%를 달성하고 또 몇 년 후에는 그 이상을 달성하여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복음화하겠다니요!. 이렇게 각 도시를 복음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복음적[비성경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도시를 복음화 시키겠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고 이를 교회의 사명으로 주신 적도 없습니다. 단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까지 전파되어 가게 하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아버지께서 약속으로 주실 성령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해 나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세상 끝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명이 전도를 들을 것인지, 그래서 어느 도시의 몇 사람이 구원을 얻고 그래서 도시의 몇 %가 복음화 될 것인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해 나가실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우리가 우리의 사고 방식과 어떤 일의 방법으로 해 나가고자 한다면 단 몇 %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시킬 수가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우리가 가질 관심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권능으로 우리를 증인 삼아 가실 일에 순종하는 믿음에 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칼빈은 결코 제네바란 도시의 복음화를 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교회개혁을 성시화 운동에 연결시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성시화 운동에서는 도시의 복음화와 함께 도시의 거룩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J.웨슬레가 펼쳐 나간 신성 클럽(Holy Club)이 해 나간 일과 또 지금 우리네 교회에서 홀리 클럽을 통하여 펼쳐 나가고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J.웨슬레가 홀리 클럽에서 나간 믿는 자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을 비롯하여서 빈민자, 감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것은 물론 도시의 복음화를 이루어서 도시를 '신(神) 도시화'하여 그들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서 마약을 비롯하여서 온갖 범죄가 만연한 이 도시에서 회개와 성결, 이웃 사랑에 힘씀으로써 건강한 도시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성시화 운동에서 말하는 '도시의 거룩화'는 '신 도시화'(神都市化)입니다. 포항 성시화대회에서는 포항시민의 복음화율을 50%를 넘기면 실질적인 '신 도시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이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시를 장악하고 있음으로 해서 부패한 도시를 건강한 도시로 바꿀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수의 힘에 의한 논리에 따른 것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보다 많으면 그만큼 마약을 복용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저런 부패를 행하지 않을 것이고 회개와 성결과 이웃 사랑에 힘씀으로써 그 영향을 받는 비기독교인들의 정신과 삶까지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교회 개혁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면 전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칼빈이 시의회의 승인과 시민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교회 규정[교회 법규]를 실천하여 나간 것은 국가[시]의 법과 질서가 성경의 원리에 의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도시에는 다름 아닌 교회의 회원들에 의해서 여전히 악한 죄가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칼빈이 일시 제네바를 떠났을 때의 제네바는 칼빈이 제네바에 있기 전보다 더 악했습니다. 칼빈이 다시 돌아와서 제네바를 교회 규정 아래 두고서 시(市)를 하나님의 도성화 하여 건축하여 나갔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악한 죄가 사라져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닙니다. 죄는 여전히 존재하며 기회의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저 옛날 가인에게서 그랬듯이 말입니다.
더욱이 우리 나라는 단일 종교 국가가 아닙니다. 국가의 헌법에는 기독교 사상이 없습니다. 당연히 성경의 원리에 의한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상 법칙의 원리에 의한 법과 질서가 존재할 뿐입니다. 정부와 교회간에 상호 분리이니 상호 협력이니 하는 관계가 존재할 리도 만무합니다. 설사 각 도시의 복음화율을 50%를 넘겨서 비기독교인의 수를 앞선다고 합시다. 그럴지라도 악한 죄의 힘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비기독교인의 세상 문화가 교회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얼마 전에 있는 모교회의 입당 예배에서는 축하 기념 공연으로서 소위 합창의 발표와 함께 젊은 세대를 겨냥한 복음송과 춤과 노래의 발표도 함께 있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부르는 춤과 노래 있잖습니까? 이제는 이렇게 자극적이지 않으면 관심을 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년 주일학교 학생들이나 학생부 등에서 그 조짐이 있어왔습니다. 율동과 동화와 성극 등을 비롯하여서 갖가지 시청각에 의해서 눈과 귀와 마음이 현혹되어 있는 이들 세대는 이제 성장하여서 청년과 장년이 되어서 이보다 더한 것으로 소위 교회 문화를 빌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 문화란 것은 세상 문화를 교회가 적용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교회 문화란 것은 교회가 사용하면 교회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세상 문화에서 끌어온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증거를 막으며 훼방하는 것이 된다면 이는 악한 것이며 죄에 이끌린 데 따른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바꾸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으며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올 따름입니다. 이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고 그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아는데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의 거룩화를 꾀할 수 있다니요!. 그래서 성시화를 이룰 수 있다니요!. 그렇게 해서 믿는 자들의 수가 믿지 않는 자들의 수보다 더 많아지면 마약 복용이 줄어들고 온갖 부정과 부패가 힘없이 수그러들 것으로 여겨집니까? 믿는 자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한 것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그 영향을 받아들여서 변화를 꾀할 것 같습니까? 모든 사람에게 착하게 행동한 것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세상 법칙의 원리에 의한 법과 질서를 따르는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믿는 자들이 나타내 알게 한 그리스도이신 예수로 말미암아서 천국의 일원이 된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정부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않은 국가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국가는 온갖 종교가 허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국가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성령님의 사역에 따른 것으로써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데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 복음을 온 세상의 한 부분인 이 나라 이 땅에 지금도 전파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한 도시의 복음화란 개념은 없습니다. 이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특정한 도시에 복음을 힘써 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도시를 비율에 의하여서 복음화를 논할 수 있느냐, 그래서 몇 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까 몇 % 복음화 되었다는 수(數)의 논리로 말할 수 있느냐 하는 의도에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어느 한 지역을 마음에 두고서 그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상당수의 믿는 자를 얻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이는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을 증거하게 하심에 따라서 복음이 그 지역에 전파되어 간 것이며 그에 따라서 그 지역을 비롯하여서 온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얼마든지 부르시는데 따른 것인데 이를 사람이 작위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여서 복음화 시켜 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전도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서입니다.
특정한 도시의 복음화란 없듯이 이로 인하여서 만들어가고자 하는 특정한 도시의 거룩화란 없습니다. 단지 온 세상 곳곳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설사 이 도시가 저 도시보다 복음화 되었고 또한 거룩화 되었다고 해서 조금도 우월하지 않습니다. 각 지역에 얼마의 복음화가 이루어져서 믿는 자들의 수가 얼마가 되었던지 간에 그래서 도시마다 그 차이가 있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이룬 하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복음화와 거룩화의 개념에 놓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도시에서는 다른 도시에 비해서 믿는 자의 수가 월등히 적을 수도 있으며 또한 단 한 사람의 교인을 얻지 못한 도시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는 자가 있는 도시와 그 믿는 자의 수가 많은 도시에 비해서 악한 죄가 더 만연하고 극성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악한 것은 사실 악한 활동을 하는 악한 마귀와 그 마귀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악함에 있습니다. 세상 자체는 악과 선의 개념이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의 어느 도시이든 거룩화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악한 자들이 있는 한에는 세상은 참으로 악합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간에 사람들의 악함이 있고 그들의 힘이 있는 문화를 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음과 같은 문제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시화 운동에서 말하고 있는 '도시의 복음화'와 '도시의 거룩화'는 과연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그래서 신자들이 이를 운동화 하여 펼쳐 나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는, 곧 기독교는 믿는 자들의 인생의 전영역에서 실천하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하는 인식이 믿는 자들의 사고(思考)에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칼빈의 제네바에서의 교회개혁에 의한 '하나님의 도성'의 건축은 기독교가 시민의 종교로 있으면서 정부와 교회가 상호 분리되어 있으나 정부가 성경의 원리에 기인하고 있기에 교회와의 상호 협력적 관계를 가져 나갈 수 있었으므로 그러한 사고가 충분히 지배적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신칼빈주의를 태동시킨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의 신학 사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해 나간 교회개혁에서 보이고 있는 신학 사상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영역의 개념으로 이끌고 나갔습니다. 이는 카이퍼 자신이 "칼빈과 다른 것이 아니고, 칼빈의 사상 속에 이미 씨앗으로 존재하던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카이퍼는 칼빈의 신학 사상을 자신의 신학 사상을 전개해 나가는데서 적용시켜 나갔으며 또한 이를 발전시켜 나갔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어서는 이것이 비단 믿는 자들의 구원 문제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교회와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모든 영역에서 이들의 삶에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카이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부르신 작용에서 그가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의로움을 영향 끼칠 사명에로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교리로 전개해 나갔습니다. 신자는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살아가면서 특별은총을 경험하며 이를 통해서 갖게 되는 기독교적 사고에 의한 세계관은 일반은총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절대 주권을 온 세상에 행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카이퍼는 특별은총의 영역과 일반은총의 이 두 영역에서 각각 고유한 영역을 서로 인정하고 침해하지 않도록 사상을 펼쳐 나갔습니다. 즉 정교분리의 원리를 지켜 나간 것입니다. 가령 교회가 정치의 세력화라든지 도구화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카이퍼는 화란의 목회자요 신학자이며 정치가요 행정가이며 편집장으로서 화란에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영역을 적용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화란이 비록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었긴 하지만 정부의 차원에서 교회 개혁을 이루어 개혁교회에 서 있어 왔으며, 그래서 교회를 떠나서 정부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되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양한 종교 속에서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로 자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기에서도 카이퍼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정부는 성경의 원리에 따르지 않으며 따라서 교회의 법과 질서가 정부에 적용되지도 않습니다. 이런 정부와 교회의 관계에서는 정교 분리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으며 또한 정부와 교회간에 상호 협력적 관계에 있지도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정부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원리에 의한 기구인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따라서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정교(政敎) 상호 분리와 상호 협력을 다루지 않습니다. 단지 정부(政府) 안에서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의 법 테두리에 있으면서 법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며 종교 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교회는 정교 관계를 성경의 원리 하에서 가져 나갑니다. 종교가 정부로부터 분리하여 있으나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하면서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는 것을 '주께 하듯이'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펼쳐 나갈 세계관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도시를 복음화 시키고 거룩화 시킨다고 하는데, 그래서 도시를 기독교 신자로 채워나가고 회개와 성결과 이웃 사랑 운동을 일으켜 나감으로써 건강한 도시를 만들어 간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해서 도시가 건강해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칼빈과 카이퍼의 신학 사상에서 말해지고 있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영역에 의한 기독교적 세계관을 펼쳐 나갈 수 있는 국가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든, 또는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것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니고 있는 영적 가치관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것은 교회란 믿음의 공동체의 세계에 의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생명 있는 일이란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와 한몸된 관계에서만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정부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主)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은 생명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주]로 계시면서 자신 안에 불러모아 한몸된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답게 그 특질을 나타내면서 살도록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적인 삶을 살게 하십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서 살 것을 말하며 여기에서 나오는 여러 열매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언급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육체의 열매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자 해서입니다. 그래서 이와 반대되는 여러 악한 것들인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그와 같은 것들을 거론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현저한 육체로서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온갖 악한 죄가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육체로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나쁜 것에서만은 아닙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와 이와 같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육체의 욕망에서 나와 행해지는 것인 한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강조하는 것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고 있다면 모든 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홀리 클럽에서는 '복음화'에 의한 '거룩화'를 이끌어 내서 하는 '성시화'를 주장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단지 마약을 복용하지 않고 성적 문란을 일으키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해서 도시가 깨끗해지고 의로워져서 거룩화되어져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도시 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여서 이들이 비기독교인에게 사랑을 많이 행하고 기뻐하고 즐거움을 가지며 화평에 힘쓰는 등등을 한다고 해서 이 세상이 과연 사람이 살만한 재미가 있는 곳으로 바뀌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든 아니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든 또는 무종교인이든지 간에 이들에 의해서 밝은 구석을 보면 "세상은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구나!"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뭔가 부패한 일이 터지면 "참으로 더러운 세상이다!"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리 나라에 기독교인이 1,200만명이라는 그 숫자가 아직은 적어서, 아직도 50% 이상의 복음화율을 달성하지 못해서 "세상이 왜 이모양 이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라거나 "그래도 옛날이 더 깨끗했어!"라는 말을 합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온갖 이런 저런 행사를 하고 대회를 열고 하며 복음전도의 방법을 동원하여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게 한다고 해서 도시가 거룩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단지 종교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이런 저런 선행을 하면서 살게 하는 것과 참된 종교인인 '성령의 사람'으로서 성령의 인도를 이분의 생각과 의지를 따라 사는 것으로서 선행이 발휘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홀리 클럽이 성시화에서 추구하며 목표로 하고 있는 회개, 성결, 이웃 사랑이 성령의 사람으로서 발휘되는 것인 열매가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것에 열심이며 모범적일지라도 결코 도시의 거룩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믿는 자에게서 '거룩성'은 교회의 속성과 그 정체성에서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믿는 자가 어디에서 거룩화를 염두에 둘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이 세상을 향하여서가 아닌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체인 교회에서이며 이는 신자와의 관계적인 삶에서 가져나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인줄 아십니까?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 자신의 구원 뿐 아니라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로 완전히 충만한 상태에까지 이르러서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서로 함께 어울려서 각각 서로를 섬겨 가는 것에서입니다. 그러면 온몸이 건강하게 성장하여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화는 사실 교회적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론에 이르겠습니다. 지금 홀리 클럽에서 주도해 나가는 '성시화 대회'를 각 도시에서 열어가며 '성시화 운동'을 펼쳐 나가는 것은 사실 성경적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회개혁'에 속한 운동의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성시화 대회를 성공적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대부분이 기독교인이겠습니다만 저명한 분들이나 또는 그 외에 많은 분들의 도움도 받는 등 다분히 정치적 결탁도 있습니다. 비록 홀리 쿨럽에 의한 것이기에 기독교인이 주도해 나가는 것이긴 합니다만 사실 '사회 정화 운동'의 차원의 성격이란 이미지를 짙게 갖습니다. 모 대학교의 총장은 '일조 운동'(一照運動)이란 것을 펼쳐 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한 구석 밝히기 운동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사회를 좀 밝게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서는 안된다거나 도무지 할 필요가 없는 운동이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이 사회를 좀 잘 만들어보자는 것인데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사실 이 운동은 사회 운동가가 펼쳐나가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사회를 밝게 만들어 가려는 것인데 여기에 종교인과 무종교인의 구별이 있겠고 그 참여에 구별이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종교 단체가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으며 또한 여기에는 생업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종교 단체도 참여하거나 주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그 종교 단체는 마치 자신들이 하는 일이 교회의 본질인양 다루어 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교회의 속성이고 교회의 생명이며 교회의 사명인양 하면서 이를 복음화와 연계하여 다루어 가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란 종교 단체와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의 어느 한 신자나 무리가 마땅한 종교 단체를 구성하여서 그 일을 생업으로 삼고 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 일을 해 나가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교회 본연의 위치와 그에 따른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가야 할 모습과 내용이 있습니다. 생명 없는 일에는 생명 없는 자[또는 단체]가 하면 됩니다. 세상의 일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생명이 없습니다. 비록 기독교 단체나 신자가 그 일에 참여하여서 기독교의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한 부분을 맡아서 힘이 되어줄지라도 그 일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해서 어떤 사람이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고 또한 실제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접촉하고 신앙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받을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한 일에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실상은 하나님에 대하여 생명 없이 죽은 자로 있는 곧 영적으로 죽은 자가 얼마든지 해 나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교회]는 산 자로서 살아 있는, 곧 생명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것인데 더욱이 교회의 섬김의 봉사를 위해서 교회로부터 직분을 맡고 생활의 지원을 받는 목사가 기독교 클럽 활동과 겸하여 사회 운동의 성격이 강한 성시화 운동에 교회의 신자를 동원하여 마치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따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대단한 일을 해 내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요.
신자가 가진 기독교 세계관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직업에서 일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을 가진 자로서 그에 합당한 양심을 가지고 성실함으로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님과 그 나라를 선양하여 나갑니다. 그런 그는 하나님의 생명을 발휘하는 교회의 연합과 그 안에서 생명의 유기체로 살아가는데 전심과 전력을 띠어야 합니다. 사실 세상 끝 날에 나타날 세계의 모습은 이렇게 산 자들로 한 백성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란 것의 중심에서 떠나서 기독교 세계관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첫댓글목사님! 고생하셨고요! 글 잘읽었습니다! 적절함 속에 절제된 글과 핵심을 찌르는 전개에 다시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지막에 성경말씀을 하나 추가하고 싶네요!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첫댓글 목사님! 고생하셨고요! 글 잘읽었습니다! 적절함 속에 절제된 글과 핵심을 찌르는 전개에 다시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지막에 성경말씀을 하나 추가하고 싶네요!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주옥같은 성실한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시 교회에 대한 고민을 새롭게 해보게 됩니다.. ^^
저도 의문을 가졌던 주제입니다. 자세히 정리 해석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