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의 ‘님을 위한 행진곡’, 70년대의 ‘아름다운 강산’은, 언더그라운드 애국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노래다 구슬프고 애잔한 구석도 있다.
사람들마다 다들 좋아하는 노래가 있고, 신중현은 한국 록의 대부로 널리 알려져서, 새삼스럽게 아마추어 감상자가 그에 대한 음악평을 하고자 함은 아니다. 요새 갑자기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을 여러 번 듣게 되고, 과거의 기억들이 몇가지 떠오른다. 떠돌이 생활이 지속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노래는 여러가지 판본이 있다. 이선희의 고음처리 <빰빠빠바…>식 <아름다운 강산>도 있고, 신중현도 여러 번 고쳐 부른 게 있고, 롤러스케이트장이나 디스코장 본 <아름다운 강산>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손학래가 오보에와 키보드인가 색소폰를 연주했고, 신중현의 기타 연주가 오래 계속되는 1972년 첫 판본이다. 야드버즈의 기타의 달인 에릭 클랩튼, 제프 벡, 혹은 잉뮈 맘스틴과 비교할 능력은 안되지만, 신중현 역시 질감이 다른 한국록의 기타연주와 작곡을 보여줬다고 본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듣다보면 가락이나 신중현 노래 방식, 연주가 구슬픈 데가 있다. “새희망”을 노래하고 “손잡고 가자고”하는데, 이상스레 애잔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강산>은 어릴 때 야구연습을 하면서, 혹은 체육대회 때 동네 밴드 형 J곤형이 부르고 해서 자주 들었다. J곤이 형은 당시 J고등학교 다녔는데, 우리 학교 야구시합이 공설운동장에서 있던 날이면, 수업 까먹고 와서, 자기 초등학교 후배들이라고 응원대장이 되어서, 학교 모자를 벗어가면서 우리를 응원하고 그랬다. 그 후 10년 지나서 J곤형을 추석 체육대회때 만났는데, 인천 어느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J곤형 같은 연배가 중-고등학교 시절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그들이 자신들의 반항기를 대신 표출해주었다. “손잡고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말해보자 새희망을 !” J곤형과 같은 십대후반 그리고 그런 시절을 살아야했던 이들에게, 희망은 실제로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여섯살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에 형제가 많은 관계로다, 차남이라는 이유로, 방학때면, 할아버지 집 어디 면 촌구석대기에 보내졌다. 할머니집 근처 야산 꼭대기에 6-25 한국전쟁시 미군이 썼다는 헬리콥터 정거장이 있었다. 거기 친구들 형들과 그 헬기장에서 야구를 하곤 했는데, 그 산밑에 있는 선정 바닷가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그래서 거기서 들었던 <아름다운 강산>에 나오는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그 가사대로, 그 헬기장이 그랬다.
할머니집 동네 형들과 소나무 깎아서 야구방망이로 쓰고, 진짜 글러브 3개, 나머지는 다 비료푸대로 글러브를 만들어서 헬기장에서 야구를 하곤 했다. 그렇게 여름방학을 보냈다. 가끔씩 그 동네 형들 집에 놀러가서 편지지 같은 곳에 적혀 있던 대중가요 가사들을 읽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지로 돈 벌러 간 형, 누나뻘 되는 분들이 그 금그어진 편지지에, 30도 정도로 엇나가게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이런 구절 등이 있었다.
그 어린시절에는 그 할아버지집 동네 형들이나 누나들이, 대학노트나 편지지에 대중가요 가사들을 빼곡히 적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뭇잎 푸르게” 그런 청춘, 10대 후반, 20대 초반, 그렇게 “손잡고 저 광야로 달려보고” 싶은 나이에, 자신들의 생계와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들, 혹은 동생들을 위해서 그렇게 대도시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했던 것이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들으면, 옛날 그렇게 다들 다정하게 대해주었던 사람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 노래는 그 때 어린시절 들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애잔한 구석이 있다. 신중현이 무슨 대마초 피우고 서구 히피들 흉내내고 그것도 아니다. 혹은 무슨 대역죄 지은 것처럼, 박정희 말대로, ‘록이 시끄럽고, 퇴폐적’었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다. 신중현은 밥딜런처럼 반전운동 가사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시대를 살지 못했고, 후 The Who 처럼 노골적으로 기성세대을 엿먹이고 부정하는 그런 가사를 쓰지도 않았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자신이 어린시절 공장생활하고, 미 8군에서 기타를 치면서 생존해야 했던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어떠한 공동체를 희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할아버지 동네 형들이나 누나들이 대학노트에, 도시생활의 힘겨움을 달래며,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빼곡히 적어놓은 것을 본 것처럼, 또 그 노래를 들으면서 담배를 꼬나물고 청춘의 반항을 표출하기도 했던 것처럼. 이런 맥락에서,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언더그라운드 애국가였던 것이다. 80년대 “님을 위한 행진곡”이 태어나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