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는 잃었어도 외양간은 고쳐야한다.
2008년 2월 10일 20시 50분 경, 무자년 설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조선왕조 오백년과 근현대의 역사를 지켜온 숭례문이 불에 타다. 22시 경 잡힌 듯싶던 불길이 다시 번져 일이층 누각을 전소시키고 다음 날 새벽 2시에 지붕이 무너져 내리며 진화되었다. 남은 것은 급히 뜯어낸 ‘崇禮門’ 현판과 홍예문을 이룬 기초 석축 뿐...
오십여 대가 집결한 소방차는 기세 좋게 물을 뿜었으나, 이층 지붕 아래의 적심층엔 이르지 못했고 기와를 뜯어내고 진화하는 것은 문화재청과 협의로 귀중한 시간 57분을 소비한 후 커진 불길로 시도조차 못했다.
한 명의 경비원이 돌아간 후 50여분 뒤 화재발생이 시민에 의해 시청 앞 광장에 근무하는 의경에게 알려졌고 그의 상황보고로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했으며, 조명용 전기는 이층 누각엔 설치되지 않았다하며, 방화에 의한 재앙으로 추정한다.
문화관광부는 일 년 전 어느 네티즌이 방화의 위험성을 알린 게시판의 글에 민원이 아니라고 답변도 하지 않았고 문화재청에 내용을 알리지도 않았다한다. 문화재청은 예산부족을 탓하며 관리는 서울특별시 중구청이라고 하는데, 중구청은 공원녹지과 시설관리팀의 적은 인원과 예산으로 허술한 관리를 해왔으며, 특히 월 삼십만 원이던 경비용역을 2월 1일부터 5년간 무상으로 무인경비업체에 맡겼다한다. 화재감지설비나 소화설비 하나 없는 목조건축물을 무인경비업체에 무상으로 맡기다니, ‘싼 것이 비지떡이다’는 속담도 모르나 보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더니 그자들에게 선물이나 할까보다.
2005년 주변을 잔디공원으로 조성하고 2006년 홍예문까지 시민에게 개방한 서울시의 취지는 좋았으나 관리와 안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대표적인 선심성 인기행정으로 지탄 받아 마땅하다. 하긴 청계천 복원을 수 년 만에 졸속으로 해치운 서울시이니 이미 있는 숭례문에 잔디공원 조성하고 홍예문까지 개방하는 것쯤이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서울시의 안일한 공무원은 물론 전임 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당선자께서는 문화를 많이 내세우시는데 시민에게 보고픈 권리를 돌려 줄줄은 아셨으나 귀중한 문화유산의 안전에는 무지하셨다. 경제와 효율성도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면 더 큰 재앙을 부른다.
이번 논의에서 벗어나 있는 예산부처의 책임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힘없는 문화재청이나 소방방재청에 예산을 지원하여 문화재의 화재감지설비, 소화설비, 침입방지설비를 설치하고 경비를 강화해야한다.
관리기관인 지자체, 소방서, 소방방재청, 문화재청, 예산부처 등은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하여 문화재의 관리, 방재, 경비, 보존 등에 대하여 대책을 세우고 실천하여야한다.
관할 소방서에 숭례문의 도면조차 없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3년에 200억 원이면 다시 지을 수 있다는 문화재청의 성급한 발표는 무슨 망언인가. 직접적인 원인은 경찰이 수사로 밝힐 일이고, 근본 원인과 대책은 각 해당 기관이 맡을 일이다. 다시 짓는 것 보다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되어야한다. 또 다른 문화재를 지키는 이것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일지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다.
아! 육백년을 지켜온 숭례문을 화재로 잃고 만 하루가 지나는 새벽, 어제의 불길과 그에 휩싸인 곱게 단청 올린 포작과 서까래, 나는 기와편 무너져 내리는 지붕이 눈에 아른거리고, 현장을 지켜본 시민들의 탄식소리가 가슴에 맺혀 잠 못 이룬다.
2008. 2. 12 새벽에
첫댓글 망하고 시작하기,또는 시작하고 망하기
반도남쪽에 팽배한 물신주의에 기가 산 악귀들의 대재앙이 하나둘 나타나는 거지요...문민정부때처럼 줄지어 뭔 사고가 터질지 ..지킬게 많은 이 들이 더 잠못들고 뒤척여야되는데 생각많은 황보님이 잠못들고 뒤채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