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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ble Study 스크랩 은사의 종류별 특징
지유장 추천 0 조회 47 08.04.04 19:0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은사의 종류별 특징

 



1. 로마서12장의 은사

 



(a) 예언--- 예언의 헬라원어는 `대신 말하는 것` 즉 대언이다. 예언이란 길이 없는 시대에 길을 찾아서 선포하는 것이다. 나라와 백성과 그 시대가 길을 잃어 버렸을 때에 정치에 길이 없고 남북통일에 길이 없고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나갈 길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길을 선포해 주는 것 그것이 예언이다.

 

예언의 은사는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활용되었으며 그들은 현재의 사건들을 통하여 장래를 예언하면서 현재에는 격려하고, 장래에 대하여는 경고하는 방식으로 예언하였다.

 

신약에서의 예언은 성도들을 배우게 하며, 권면 즉 가까이 불러서 기도하며 충고도 하고 위로도 하고 훈련도 하며 부탁도 하며 기도하여 주므로 교회에 유익을 주는, 다분히 목회적인 은사이다. 교회에 건덕상의 유익을 훼손한다면 그 예언은 거짓예언이다.

 

예언의 일반적 특성은 고전 13;9절에 "우리가 모두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라는 말씀처럼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권면하고 교육상 필요한 예언, 위로와 격려를 하는 예언 은 모두 부분적이며 아는 것도 부분적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며 완전하지는 못하다 하겠다. 예언은 사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맞추는(foretelling)것이 아니라 , 미래에 속한 내용을 단지 말하는(forthtelling)것이다.



◎ 죠나단 에드워즈 - 이성이나 연구를 통하여 얻은 사변적인 지식과는 다른 것, 비밀스러운 일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영혼 안에 성령의 구원하는 감화력으로부터 나오는 신적인 지식과 구별되는 지식이다.



◎ 모리스 - 오늘날 설교와 같은 것임을 나타내지만 그것과 동일하지는 않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감동을 받은 말씀들을 말하는(uttering)것이다.



사도행전 2장 10-11절에서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묶일 것을 예언했는데 바울도 이를 인정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갔다. 만일 그때에 바울이 묶일 것이 두려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묶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언이란 예언적인 면과 선포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언 사역의 진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현재의 의향, 요구를 말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언은 전에 알지 못하던 신적 사상이나 의도를 열어 보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 알려진 진리의 적용으로, 오늘날의 설교가 예언 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아 하나님을 경배케하고 신앙의 덕을 세우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자라게 하는 은사이다. 따라서 예언의 은사에 대한 태도는 성도들이 예언을 멸시치 말아야한다.(살전 5;20)


예언의 은사는 예언을 하려는 소원이 있어야 하므로 사랑을 따라 구해야한다(고전 14;1).

 

교회에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가 여러 명 있을 때에는 종속되거나 복종하거나 순종하는 제제를 받아 질서를 유지 해야한다.(고전 14;32-33). 예언 은사자들이 둘, 셋이 말할 때에 교회는 이들이 예언을 분별 즉 철저히 분석하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판단력을 갖추어야한다.

 

 예언은 말씀에 의해 확인되어야한다. 자기의 예언 을 성경과 동등한 것으로 권위주장 하거나 교만하고 망령된 행동을 한때에 결국 망하게 되며 예언은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하여 진다. 개인적인 체험의 은사는 성경 권위에 상위할 수 없으며 예속을 받아야한다. 이단적인 잘못된 예언은 점쟁이가 하듯이 무슨 사업을 해야 성공하겠는지, 어디로 이사를 가야 성공하는지, 내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겠는지를 물어보는 것을 답해주는 것을 예언의 은사라고 속이고, 거기에 기존 오래된 신자들도 따라 다니는데, 이는 예언의 은사를 길흉화복을 미리 알고 말해주는 것으로 잘못 알고있는 것의 실례이다.

 


(b) 봉사 (섬기는 일)---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며 상존하고있는 실재적이면서도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한 어떤 과업이나 책임을 기쁨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디아코니아). 봉사자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봉사하되 자기가 능력있는 것 같이 하지 말 것이다.(벧전 4;11) 봉사자는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한다. (벧전 4;10) 수고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는 것은 봉사의 은사가 아니다.

 


(c) 권위의 은사 (파라클에이시스)--- 권면 (딤전 4;13)으로서, 위로(행15;31)와 도움이 되는 영적 조언을 함으로서 그들이 실제로 도움이나 치유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은사로 현대 적 용어로 상담의 은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는 권사들에게 이 일이 맡겨져야 하고 권사들이 이 은사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 교회에 유익하다. 성도들을 오래 경험하여 잘 알고있으며 연륜도 있기 때문이다. 친절과 기도가 겸비되어야하고 훈계할만한 경험과 체험과 말씀의 실력이 나타나고 교육능력이 있으면 이 은사가 분명하며 세우는 일을 잘하게된다.

 


(d) 가르치는 은사
◎ c.p.와그너 -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그 지체들의 영적 건강 및 직임에 관계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이다.
◎ 위리암 메크레 -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목사라기보다는 교사의 은사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는 있으나 교사의 은사 없이 목사가 될 수 없다.

 



(e) 구제 (주는 일, 헌금)--- 섬기는 일이 교회 내에서의 자선행위를 의미한다면 구제는 교회외적인 자선행위를 말한다(요일3;17-18). 어떤 복잡한 복합적인 동기가 아닌 단순한 마음으로 기꺼이 구제하는 은사를 말한다. 관대하게(generously),성실하게 해야한다.
◎ c.peter.wagner - 물질적인 자원을 관대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은사이다.

 



(f) 지도력 (다스리는 일)--- 헬라어 프로히스타메노스 는 다른 곳에서 감독 혹은 장로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 (살전 5;12, 딤전 3;4,5;17). 교인들을 지도하고 통솔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한 표현이다. 자기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사용한다면 잘못된 은사이다.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되는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 목표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역량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위와 독특한 개성, 말하는 능력 등을 다스리는 은사와 동일시하는 오해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 것이다.

 



(g) 긍휼--- 병든 자나 궁핍한자를 방문하고 보살펴 주는 은사와 관련된 직무이다. 마지못하여 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행하게된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로 직무를 수행하게된다.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 이든 육체적인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순수한 자비를 느끼고 그 순수한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역량을 말한다.

 



2. 고린도전서 12장에 나타난 은사

 



(a) 지혜의 말씀 (헬:소피아)--- 소피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지혜를 말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그 어려움을 해결 할 수 있게 해주는 신적지혜(왕상 3;16-28.솔로몬), 혹은 성령께서 직관적 지혜를 통하여 주시는 초자연적 특별언어로서 사도행전 15장에서 완전한 합일점에 도달했던 경우처럼,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나타나는 "때에 맞는 말" ,결코 의식적으로 배우지 않았던 지혜로운 충고와 권고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b) 지식의 말씀 (그노시스)
Ray. c. stedman -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안 에 감추신 위대한 사실을 인식해내고 체계화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벧후 3;5-12까지의 귀절처럼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 세상 마지막날 일어나게 될 놀라운 경이 즉 지구의 해체(10-12)에 대하여 말한 경우를 들 수 있다.


→ C.Peter Wagner - 지식의 말씀이라 불리우는 은사가 계시적인 은사로서 하나님께서 예언이라는 형태를 통하여 말씀하시듯이 이 은사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치유사역 의 집회에서 사역자에게 특정한 병을 가진 사람을 고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사례를 들고있다.


→ 흔히 투시의 은사라고 불리워지는 마음의 숨겨진 일을 드러내는 일들은 지식의 은사라기보다는 예언의 은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고전 14;23-25).그러나 죄를 지적하거나 숨겨진 일들을 지적하는 일 등은 악령적 배경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오컬트 현상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므로 모두가 예언의 은사라고 볼 수 없다.

 



(c) 지혜와 지식의 구분
→ Robertson & plummer - 지혜는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이고 지식은 복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 Farrar - 지혜는 영에 관한 것이고 지식은 지성에 관한 것이다.
→ Bengel - 지혜는 사물의 영원성과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며 지식은 단순히 사물을 아는 것이다.
→ Hofmann - 지혜는 전체적인 것이며 지식은 부분적이다.
→ Meyer - 지혜는 영원한 것이며 지식은 유한한 것이다.

 


(d) 믿음의 은사
→ 릭욘 - 믿음의 은사는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께 믿고 맡길 때 확신을 보여주는 능력이다.
→ 케네디.킹혼 -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믿음의 부족을 꾸짖어서는 안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이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 믿음 역시 신자가 항상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때와 각오를 따라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성도를 통하여 나타낸다.
→ Peter E. Gillquist - 보통의 신자가 평소에 지니고 있는 믿음을 능가하는 다루기 힘든 상황을 처리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는 은사이다.
→ 쿠르트 코흐 - 담대하고도 능력 있는 믿음을 말한다

 


→ 피터 와그너 -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을 움직여서 신적 개입을 하도록 하는 능력이다. 대체로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고 있는 오순절교회들과 대형교회의 목회자들, 또는 역동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회자들의 능력의 근원이 인간자신에게서 나온 정신력인지 믿음의 은사인지의 여부는 연구과제이며 인간의 믿음에 의하여 움직이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상상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이는 오순절적인 개념으로서 믿음의 은사란 결코 하나님을 위하여 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뜻을 이루려고 하나님께 대하여 억지를 부리는 은사가 아니다. 하지만 믿음의 은사는 보통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능력과 관계가 있다.

 

믿음의 은사는 모든 자연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지는 성취된다는 것을 믿는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미래의 일에 보다 큰 관심을 갖고 목표를 향해 전력을 집중하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이나 고난이나 방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푯대를 향해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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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병 고치는 은사--- 이는 자연적인 인간의 방법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시키시는 중재자로서의 봉사하는 역량이다.


→ 바클레이 - 교회가 병을 고치는 은사를 완전히 잃을 때는 아직 한번도 없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최대의 사건은 교회가 이 은사를 재발견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통해 어떤 병을 고치시기를 결정하지 않으시면 병을 고칠 수 없다, 신유은사의 주권은 성령님께 있으며 직접 또는 성도들의 기도의 응답으로 신유를 행하신다. 이 은사는 예수가 생명의 주되심과 동시에 복음선포의 도움을 위해 나타나는 은사이다.


→ 조 용기 - 병 고치는 은사는 정확히 번역하면 "병 고치는 은사들"로 되어 있다. 다른 모든 은사는 단수이나 병 고치는 은사는 복수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학계에서도 여러 전문분야의 특수병원이 있는 것처럼 병 고치는 은사에도 그 은사 받은 사람에 따라 특별한 병이 다른 병보다 더 능력 있게 낫는 은혜가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내과적인 병이 잘 낫고 다른 사람은 외과적인 병이 잘 낫는 것 등이다. 은사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은사대로 담대하게 기도할 것이다.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사람은 그 치료하는 능력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자기를 단지 도구로 사용하셔서 병자에게 치료로 나타남을 인식해야만 한다.


→ 교회사를 통하여 볼 때 신비체험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본인의 신앙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되고 체험 중심 신앙으로 전략하며, 그러한 중에 사탄이 주는 체험과 성령께서 주시는 체험을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지고만 것이다.

 



(f) 능력 행함의 은사 (기적의 은사)
→ 멜테리 - 능력 행함은 은사라기보다는 은사에게 나오는 결과이다.
→ 피터 길퀴스트 - 병 고치는 은사와는 별개의 은사로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한다든지 죽은 자를 살려낸다든지 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는 은사이다.


→ 조용기 - 능력 행함이란 기적 행하는 능을 말한다 자연법칙을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하심으로 상상 이외의 놀라운 일이 이루어질 때 그 기적을 말한다. 신적 섭리를 나타낸 대표적인 기적이 여호수아의 기도로 태양이 중천에 머무른 것이다. 병 고침을 받는 것에도 기적적인 것과 신유적인 것이 있다. 기적적인 것은 일순간에 질병이 떠나가고 건강을 회복하는 일이고, 신유는 서서히 병의 근원이 제거되고 치료가 시작되어 건강에 이르게되는 경우이다. 능력 행함은 병 고침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기적을 다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적은 초자연적인 권능으로부터 오는 사건이며,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야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게된다. 그것은 철저히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뜻을 인생들에게 계시해주시는 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초자연적인 체험이나 기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편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 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적을 행하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신 것이 아니고 이적을 통하여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셨다.


→ 병을 지배하는 능력, 악마 지배하는 능력, 자연을 지배하는 능력, 물질을 지배하는 능력, 사망을 지배하는 능력, 이러한 이적의 은사는 사도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선교현장에서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방해자들과 사람들의 우둔한 감각을 깨우쳐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확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g) 영 분별의 은사
→ 피터 길퀴스트 - 어느 말씀이나 행동이 하나님께로 온 것인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지 혹은 마귀의 장난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주시는 은사이다. 영 분별의 은사는 분명히 선해 보이는 행동이 실제로는 사탄의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행동이 신앙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냐 육신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냐를 분별하고 동기는 정당해도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해내는 초자연적인 역량이다. 베드로가 악령으로 가득찬 아나니아의 상태를 직접 본 경우이다. 성경에 맞지 않는 모든 영들은 거짓된 것이다(요1서 4;1-6) 세상 사람들과 같이 불순종하는 행위가보이면 시간이 걸리겠으나 거짓영인 것이다(엡2;2) 행위의 열매로 알 수 있는데 교회를 분리시키고 얼겅퀴나 가시나 못된 열매를 맺게될 때 ,사람이 점점 나쁘게 달라져 가면 그것은 거짓의 영의 은사이다. 세상에서 박사, 대학교수 등 인정된 지성인들이 이단의 가르침에 빠져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은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라고 해서 무조건 아멘할 것도 아니다. 합당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h) 방언의 은사--- 방언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외국어를 말하는 방언과 (예루살렘교회의 방언)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사용된 방언 (고린도전서 12-14장)이다. 방언은 마음의 기능 즉 마음의기도 , 마음의 찬미, 마음의 비밀을 하나님께 말하는 언어이다.


→ 헤럴드 브레드슨 - 방언은 우리의 영이 우리의 정신력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할 수 있도록 하며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방언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자유롭게한다.
→ 잭 헤이포드 목사 -교회에서 하는 방언 가운데는 사단의 방언도 있고, 심리적인 방언도 있으며 ,동시에 성령의 방언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교회에서 모든 방언을 성령의 역사로 받아 들이기를 꺼려하고 있다.

 


→ 죤 스토트 - 의식있는 마음의 통제를 받지 않고 나오는 비자발적인 것은 성령께서 주신 방언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것은 힌두교, 몰몬교, 이슬람교에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신비한 경험 중에는 사단에 의한 것도 있다. 사단은 순수한 영적 체험을 모방한다.
→ 방언기도는 영이 하는 기도로 마음은 열매를 맺지 않고 하는 상태의 기도이기 때문에 육신이나 뇌로서 아는 것이 없는 언어가 방언이다. (고전 14;14)
(종류) 대신방언 - 기도하는 사람의 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땅히 구할 바를 구하게 하는 기도은사(고전12;10)
대인 방언 - 전도자의 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는 전도의 방언이다.
만물 방언 - 때로는 짐승을 통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는 경우의 방언 (발람 선지자-나귀)



(i) 방언의 유익---방언은 @ 자신의 신앙성장에 건설적이다(고전14;4)
@기도하는데 장시간 뜨겁게 할 수 있어 유익하다.
@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다(고전 14;8)
@ 큰 은사를 사모하는데 유익하다.
→ 계속함으로서 성장할 수 있고 영이 맑아져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때가 있다. 더 나아가 다른 은사를 겸하여 받는데 방언통역 은사도 나타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영 분별은사, 지혜, 지식 등 은사를 겸하여 받을 수도 있다.

 



(j) 방언 통역--- 방언을 통역하는 일은 믿음이 약한 자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를 돕는 사역으로서 방언 을 할 때에 교회 내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은사이다.

 


→ 조용기 - 방언통역을 하라는 성령의 마음속 지시를 통하여 순전히 믿음으로 통역하는 경우가 있으며 타인이 방언을 말할 때 그 전체적인 뜻이 마음에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타인이 방언을 말할 때 그 방언의 일부분의 뜻이 알려질 경우도 있다. 자신이 방언을 말한 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뒤따라 한국말 통역이 마치 방언 나오듯이 술술 나오는 경우도 있다.
→ 통역이란 번역이란 말과는 틀린다. 성령의 기적인 영감을 통하여 나타나는 은사이므로 항상 통역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k) 사도--- 사도직은 초대교회 내에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던 직분이지만 계승되지는 않았다(엡3;5,4;11) 12제자와 바울,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성령의 영감으로 성령을 기록하기도하였다.

 



(l) 서로 돕는 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주어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m) 다스림(행정)---교회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교회 전체를 통괄하여 지도하는 은사. 교회의 신령적 유익을 위해 노력하며 어떤 과업의 목표를 이해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행하는 은사를 말한다.

 

 



3.  에배소서 4장의 은사

 

 



(a) 복음 전하는 자---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의 뜻을 예언하고 선포했던 선지자들은 초기에는 많은 활동을 했지만 극심한 박해와 직권오용의 잘못 때문에 얼마가지 않아 교회에서 사라졌다. 현대적 의미에서 순회 전도자 혹은 선교사 격인 사람들로서 복음 전도자들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사도나 선지자 같은 권위나 위력은 가지지 못하여 신약성경에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무명으로 기쁜 소식을 전달한자들이 복음전하는 일의 은사로 봉사했었다. 복음전하는 일의 은사는 불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은사이다.

 



(b) 목사와 교사--- 목사, 교사는 이교주의의 악 영향에서 기독교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르침과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로서 교회 지도자들이었다. 이상과 같이 은사는, 여러 가지 원칙에 의하여 분류되고 있지만 그 어느 것이 가장 정확한 기준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겠다. 예를 들면 고전 12;8의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은 해석학적으로 그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고 ,고전 12;9-10의 병 고치는 은사와 능력을 행하는 은사 사이에도 정확한 구분은 짓기가 어렵다. 이러한 것은 분류자의 신학적 입장과 체험의 정도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성경이 명확하게 분류의 원칙과 정의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은사에 대한 전반적인 완전 체험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성령세례문제와는 달리 은사문제는 분명하게 선을 긋거나 다른 이론들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을 상호인정 하면서 체험을 나누고 열린 마음으로 연구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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