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만
아퀴나스는 교만을 “본래의 자신보다 더 자기를 높은 데 놓는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어거스틴의 생각과 거의 다르지 않다. 어거스틴은 교만은 우뚝 솟고 저명해지고자 하는 욕구(desire for perverse eminence)로 이해했다. 교만은 쉽게 말하면 자기를 다른 사람들 앞에 세우고, 위에 높이는 것이라는 말이다. 단테는 『신곡』(the Divine Comedy)에 등장하는 연옥에 있는 교만한 사람들의 성격을 이와 비슷하게 묘사한다. 그들은 연옥에서 한결같이 무거운 바위를 등에 얹고 생활했는데 이 결과로 등과 허리가 굽어져 영원히 아래만 보며 살게 되었다고 묘사하면서 단테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늘 아래로 내려 보고 산 자들이기에 그런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단테도 교만은 사람들을 자기보다 낮게 보고 자기를 높이는 것의 의미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신원하 교수의 글,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2) 교만(驕慢): 모든 죄악의 뿌리"Thursday, July 5, 2012, https://saltandlight21.blogspot.kr/2012/07/2.html 에서 인용함)
교만은 타인을 향한 시선에서 드러나는 죄이다. 그의 태도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준다. 교만은 자신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내는 죄이다. 그런데 교만이라는 죄의 심리상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만 옳다고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으로 바리새인을 예를 들어 설명하셨다. 바리새인의 <자기의(自己義)>는 결국 ‘자기기만’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교만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혹은 속은 사람의 심리상태를 나타낸다.
2. 죄악칠종과 현대인의 죄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모든 죄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죽음에 이르는 대죄 7가지(罪惡七宗)는 다음과 같다. 교만(驕慢), 시기(猜忌 Envy), 분노(忿怒 Anger), 탐식(貪食 Gluttony), 나태(懶怠 Sloth, Acedia), 탐욕(貪慾Avarice), 정욕(情慾 Lust). 이러한 것들이 가장 큰 죄로 여겨진 것은 중세의 스토아학파적인 금욕주의적 기준에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과연 이러한 죄가 가장 큰 죄에 속할까? 이런 죄의 목록들이 중요한 도덕의 지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현대인들의 죄악은 교만과 연관되어 있음은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교만은 현대의 죄의 목록으로 열거될 수많은 죄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기만을 넘어서는 자기 확장의 죄이다.
현대 인간의 죄가 나타난 가장 큰 사건은 20세기에 발생한 전쟁이며, 21세기가 시작하자마자 발생한 테러(공포, 혐오)일 것이다. 타인을 미워하고 적으로 삼는 이런 태도는 교만과 연관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관을 잘 설명해준 사람은 라인홀드 니버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두가지 가능성, 즉 불완전성으로 인한 타락의 가능성과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자기를 이성을 소유하고 자기결정의 힘(자유의지)과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탁월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두 가능성 사이의 불안으로 인해 교만의 죄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두가지 가능성 때문에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친구로서 협력할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경쟁하고 멸시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혐오와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 심리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만이다. 자기만 옳다고 믿고 남을 멸시하는 죄, 이것이 현대의 전쟁과 테러를 낳게 하는 죄의 근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3. 자기 높임과 하느님 경시
이러한 교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실제의 자기보다 더 높이는 죄를 저지르며 그것은 하느님을 경시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현대의 세속화란 결국 이러한 인간의 죄성이 보편화되고 일상화되어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세속화가 나쁜 것이 아니라 죄의 보편화와 일상화를 방관한 결과가 전쟁이나 테러로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의 죄는 도덕적으로 나쁜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자기 파멸의 재앙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세속화사회의 가장 위험성은 죄의 결과가 어떤 반성의 틀(도덕)도 없이 바로 재앙과 파멸로 귀결된다는 데에 있다. 세속화 사회에서는 이러한 파멸도 하나의 우연적 현상이며 거기에서 새로운 건설이 시작되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의 원리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할 수 있다.
4. 겸손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탁월성을 지닌 존재이다. 이러한 가능태로서의 인간은 겸손이라는 덕을 지녔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교만의 반대에 겸손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 비움과 자기를 낮추는 용기와 함께 나타난다. 이것은 세속적 만물유전의 우연성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영성적인 인간의 가치를 믿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기독교의 신앙은 바로 이러한 가치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자기 희생이 결코 자기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로 귀결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