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지의 추천 위원이던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고풍의상(古風衣裳)>(1939. 4.)과 <승무(僧舞)>(1939. 4.), <봉황수(鳳凰愁)>(1940. 2.)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시기 시인은 동인지 [백지(白紙)](1940. 통권 3집)를 발간하며 고전적 소재에 전아(典雅)하고 세련된 시풍으로 주목과 찬사를 받음.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靑鹿派)로 불리는 계기가 된 [청록집(靑鹿集)](1946)에서 한국 전통의식과 민족의식을 서정적 대상을 삼는 초기의 시적 성과를 이루어 냄. 해방 직후 순수한 시정신을 지키는 사람만이 시인으로 설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개성의 자유를 옹호하고 인간성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시의 본질이라 주장한 시인은 시집 [역사 앞에서]에서 문학의 순수성과 민족적 열정을 토로하며 당대 정치의 부패상과 사회적 부조리, 민족 분열과 동족 상잔이라는 타락한 현실을 투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지사적인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민족적 정서나 전통에 대한 향수를 읊고 불교적 선을 주요 주제로 선택했던 그의 시는 당시(唐詩)의 영향이 짙게 배여 있다. 이러한 초기의 민족정서, 전통향수, 불교선미(禪味)를 주조로 하던 시풍과 문학정신은 6.25를 거치며 조국의 역사현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으며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1950년대 말 현실 정치와 연결되는 시인의 사회활동 뿐 아니라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시집[다부원에서]는 전쟁의 참상을 체험한 바탕 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적 국면을 절실하게 묘사한 전쟁시의 백미로 꼽힌다.
자유당 정권 말기 현실에 적극 관심을 갖고 민권수호국민총연맹, 공명선거추진위원회 등에 적극 참여하며 시집 [역사(歷史) 앞에서]와 [지조론(志操論)]을 집필한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 연구소장(1962)에 취임, 고전문학의 연구와 한국문화 일반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를 기획하여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의 논저를 남겼으나 결국 기획의 방대함으로 이를 완성치 못하고 사망함. 간행하였다.
3. 주요작품
청록파가 함께 참여한 시집 [청록집](1946), 첫 개인시집 [풀잎 단장(斷章)](1952.11. 1), [조지훈 시선(趙芝薰詩選)](1956.12.15), [역사(歷史) 앞에서](1959), [여운](1964)과 수필집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지조론(志操論)](1962), [돌의 미학](1964), 논저 [한국문화사서설(韓國文化史序說)], [신라가요연구논고(新羅歌謠硏究論考)], [한국민족운동사(韓國民族運動史)] 등을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