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통의학인 중의학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정교한 이론체계를 확립하고 첨단 의료기기도 갖췄다. ‘신비스런 동양의술’에서 벗어나 ‘과학화’를 지향하는 중의학. 이른바 명의(名醫)와 비방(秘方)의 내막은 무엇이며, 각종 약재의 효능은 어떤 것인가. 의료시스템의 개혁과 대외개방 실태, 그리고 중의약대에 유학중인 한국학생들의 국내진입에 얽힌 문제점.
한국과 중국은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의료분야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중의학이라면 한국의 전통의학은 한의학이다. 역사적인 뿌리는 거의 같지만 오늘날 중의학과 한의학은 매우 다른 면모를 보인다.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전통의학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의술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이번 달 중국탐험은 중의학을 중심으로 중국 의료문화의 전반적 실태를 주제로 삼았다.
김인근(金仁根·41) 박사는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의사면허시험(中醫職業醫師資格考査)에도 합격해 중의사 자격을 딴 중국유학 1세대. 중국현지에서 중의학을 전공한 한국인 유학생 출신 가운데 선두주자인 셈이다. 본격적인 중의학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중국의 전반적인 의료현황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의료체계가 크게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중국 의료체계의 변화는 민간 의료기관의 활성화와 외국 의료자본의 유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 의료기관이 중심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성의 주요 현(縣)을 중심으로 2~3개의 민간병원이 속속 설립되고 있고, 심지어 티베트나 우루무치(烏魯木齊) 같은 변방의 산간지역에도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정도입니다. 위생부가 합자병원 설립을 위한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선진 의료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의료계의 변화
-중국에 진출한 외국 병원들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베이징에 13개의 외국병원이 설립돼 있고 상하이에는 무려 28개나 됩니다. 물론 다른 지방에도 해외의 의료자본이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요. 상하이의 민항병원은 유럽자본과 합자형식으로 설립됐고, 베이징의 화목가(和睦家)병원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중심으로 진료하는데, 미국자본의 투자로 세워졌습니다. 또 상하이의 동세병원은 미국과의 합자로, 상하이의 싱가포르임상국제의료센터는 미국 일본 한국의 합작 투자로 설립된 경우입니다. 이외에도 베이징의 국제의료중심, 싱가포르병원 및 SOS병원 등 외국계 병원이 적지 않고 의료수준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의료산업도 중국에 진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실상은 어떤가요.
“SK와 중국위생부 합자병원인 애강(愛康)병원이 작년에 정식으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은 특히 최근 들어 성형미인대회가 열리는 등 중국사회에서 성형 붐이 일어나자 이 분야에 뛰어난 한국의 선진 기술력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애강병원을 비롯해 여러 병원에서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고, 치과와 안과 분야에서도 한국인 의사가 활약하고 있어요. 의사뿐 아니라 한국의 의료기기와 미용재료 등도 중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분만비용이 한화 1000만원대에 달하는 고급 산부인과 병실이 등장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의료기관의 고급화 추세는 어떻습니까.
“앞에서 언급한 외국계 병원이나 합자병원이 고급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간단한 감기 치료에도 300달러를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달 입원비가 2만위안(한화 300만원)에 달하는 중국계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베이징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알려진 협화(協和)병원의 경우 분만비가 8만위안이 넘는 입원실이 있을 정도로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의료기관이 성업중입니다.”
-중국의 의료수준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습니까.
“제가 처음 병원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병원 건물은 낡아 허름하고 수술실도 우중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기술과 설비를 갖춰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국제수준에 못 미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만, 중의학 분야는 서양의학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놀랄 만한 치료효과를 거둔 경우도 있어 주목됩니다. 의료장비 면에서도 첨단 라식수술장비를 갖춘 베이징의 동인안과병원처럼 고급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인은 병이 나면 대개 어디부터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나요.
“일반적으로 서의(西醫) 즉, 양의(洋醫)를 먼저 찾아가는데 개인병원보다는 종합병원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그러나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약국에도 의사가 있어서 병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약을 준다는 것이지요. 서의 대신 중의(中醫)를 찾는 환자도 있지만, 대개는 처음에 서의에게 갔다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의를 찾아가 완치되면 그 다음부터는 중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중의학의 발전과정
이제 중의학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차례다. 먼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중의학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또 우리 한의학과의 상관관계도 궁금하다.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분야여서 그 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의학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왔는지 간단히 짚어봤으면 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전국(戰國)시대와 한(漢)나라 때 중의학이 처음 등장합니다. 중의학의 이론체계가 성립된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잦은 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죠.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때 의학이 발달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명의 편작(扁鵲)이 바로 전국시대 사람인데, 망진(望診)이니 맥진(脈診)이니 하는 사진(四診)진단법을 만들었지요. 또 이때 중국 최고의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이 나오게 됩니다.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 장중경(張仲景)의 대표적 저작인 난경(難經)이라든가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 나오고, 그 다음에 신농본초(神農本草)와 같은 중의학의 경전에 해당할 만한 책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후 진(晋)나라 때는 왕숙화(王淑和)가 지은 의서 맥경(脈經)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가지 맥의 시스템을 체계화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이외에 당(唐)나라 때는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천금방(千金方) 2편이 나오고, 금원(金元)시대에는 유완소(劉完素) 장종정(張從正) 주진형(朱震亨) 같은 유명한 의사들이 배출됐는데요, 이들을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라고 이릅니다. 명청(明淸)시대에 이르러 중의학은 이론과 경험을 정리하는 전성기를 이룹니다. 아편전쟁 이후 근대에 들어서는 중의학이 서양문명을 흡수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치료제로 서양의 아스피린과 석고탕(石膏湯)이라는 전통 처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한 ‘아스피린 석고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합친 최초의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중의학과 한의학
-그렇다면 중의학의 골격은 어느 시기에 확립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의학은 황제내경이라든가 상한잡병론 금궤요약(金풤要略) 같은 고서가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골격이 확립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용되는 중의학은 기존의 이론체계에 문화혁명 이후의 유물론적 사관이 결합되면서 독특하게 발전한 것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제패하면서 도량형을 통일시킨 것처럼,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의학에 일정한 계통을 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각자가 비장하고 있던 경험방(經驗方)이라든가 비방(秘方)을 모두 문서화하도록 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중의학 고유의 신비스러운 부분이 거의 사라지고 유물사관에 입각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 많이 가미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한나라 때 골격이 잡혔던 중의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의학과 우리나라의 한의학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또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한(韓)의학을 동의학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의보감이나 사상체질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 예컨대 황제내경이나 상한론 등등의 전통의학서들은 모두 중국 것이죠. 이 점으로 미루어 한의학은 중국 전통의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내몽골 쪽의 전통의학은 몽의(蒙醫)라고 부르고 티베트 쪽의 전통의학은 장의(藏醫)라고 부릅니다. 또 남쪽의 소수민족들도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서 무슨무슨 의학이라고 하는데 역시 한족의 중의학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변용한 것입니다. 우리 경우도 중의학을 아주 독특하게 발전시켰는데,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발전시킨 영역이 있을 정도입니다.
거꾸로 한의학이 중의학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동의보감의 경우는 중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제가 1992년에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어로 된 동의보감을 샀을 정도니까요.”
-오늘날의 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해보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납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화혁명 이후 중의학은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의학교과서에도 유물사관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의학은 원래 고대부터 유심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완전히 빼지는 못하고 일부 소개하고 있는 정도예요. 아무튼 이렇게 전통의학을 유물사관으로 새롭게 정립하다 보니까 중의학에서 신비로운 부분은 대부분 삭제돼버린 겁니다.
안면신경이 마비된 환자를 화침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의학을 답습하지 않고 독창적인 이론과 의술을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명칭도 중의학이 아닌 한의학(韓醫學) 아닙니까. 그런데 한의학은 체계적인 이론이나 과학적인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성격이 가미돼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볼 때 이 부분에서 양국의 전통의학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고 봐야겠지만요. 중의학은 형이상학적으로 흐르지 않는 반면에 기초가 상당히 탄탄합니다. 황제내경을 이론적으로 밝힌 논문과 책만 해도 무지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만큼 중국사람들은 이론에 충실하다는 얘기죠. 한국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측면과 중국의 실증적 이론을 접맥시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허준(許浚)의 동상이 상하이중의약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만, 허준이나 동의보감에 대해 중의학계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중국 전체로 볼 때 한의학은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한의학이 뜨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죠. 중의학 기초이론서를 보면 대부분이 중국 책이고 일본책이 두어 권쯤 되죠. 그리고 동의보감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오장육부 가운데 담낭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에는 동의보감의 관련부분을 인용하고 있어요. 그들이 보기에는 변방이라 할 한국의 이론을 중국의 정통 교과서에 인용해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봅니다.”
서양의학 선호의 배경
-현재 중국인의 질병치료나 건강유지에 있어 중의학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중국사람들은 흔히 ‘중의는 크게 치료하는 것도 없고, 탈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만성병이나 고질은 중의학으로 고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밖의 질병 치료에는 대부분 서양의학을 선호합니다. 치료효과가 빠르고 눈에 드러나는 서양의학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의식이 바뀐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의보다 서의(西醫), 즉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를 더 찾는다는 것이지요. 의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는 중의약대학을 졸업한 중의(中醫)가 서의도 겸할 수 있는데, 약을 처방할 때도 서약(西藥) 위주로 하고 있어요. 이처럼 환자나 의사가 서양의학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중국인이 아직은 양약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만 해도 그동안 항생제를 많이 복용한 까닭에 효과를 보려면 상당히 많은 양을 써야 하는 데 비해 중국인은 아직 그런 내약성이 약하기 때문에 항생제 효과가 빠르고 정확하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전통의학보다는 서양의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한국과 비슷한 것 같군요.
“그렇죠.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중국도 머지않아 다시 전통의학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중의학에 의한 질병치료가 어떤 부분에서 상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고열이 날 때 서양의술보다는 동양의술이 열을 더 빨리 떨어뜨립니다. 원인을 제거하기 때문이지요. 오늘 날씨가 고온다습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 습열(濕熱)이라는 증상이 나타나기 쉬운데, 이 경우 습을 빼지 않으면 열이 떨어지질 않아요. 그런데 서양의학에서는 습을 빼는 약이 없어 해열제를 쓰지요. 그러면 열이 떨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오릅니다. 반면 중의학에서는 습과 열을 빼기 위해 약으로 소변이나 대변을 쫙 빼버리는데, 곧바로 괜찮아집니다. 물론 약을 달여서 복용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면 중약(한약)이 훨씬 효과가 빠를 수 있어요. 반면에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는 중의로 효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뼈에 금간 것이 아닌 복합골절상이나 외상으로 인한 장부파열 등 빨리 처치해야 하는 경우 중의의 치료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봅니다.”
-중의학에서 사용하는 의술로는 대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진맥을 한 뒤 그에 따라 처방을 내려 약을 달여 먹는 게 중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대로부터 내려온 침술이 대표적인 의술이죠. 침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알코올램프에 달궈서 뻘건 빛이 없어지기 전에 침을 놓고 바로 빼는 불침 혹은 화침(火針)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실험해봤습니다만, 양기가 극도로 쇠할 때 또는 한사(寒邪)가 심하게 들었을 때 효과가 좋습니다. 다음에 침을 꽂고 나서, 침 꽂은 부위에 부항을 뜨는 방법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항 안에다 불을 집어넣고 어혈(瘀血)을 뽑아내기도 했지요. 또 요즘에는 침 맞을 때 통증이 적은 이침(耳針)을 쓰기도 합니다. 이침은 왕불유행(王不留行)이라는 조그맣고 딱딱한 씨앗을 반창고에 붙여서 귀의 혈자리에 부착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피내침(皮內針)이나 조그만 침으로 혈자리를 자극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이침을 쓰고 있어요.
외국에 눌러앉는 침술 대가들
추나요법이나 안마도 중의학의 중요한 분야입니다. 안마도 족안마부터 경락마사지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이밖에도 다른 의술에선 찾아볼 수 없는 중의학만의 특색으로 기공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공치료도 중의학의 한 부분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효과도 상당히 좋습니다만, 파룬궁 사태 이후 거의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 좌욕법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땀을 내게 하는 법, 토하게 하는 법, 설사로 쏟게 하는 법, 심신을 조화롭게 해주는 화법(和法) 등 여러 가지 치료술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넣고 약재를 풀어 좌욕을 하면 관절염에 효과를 볼 수 있어요. 티베트나 서북쪽 추운 지역 주민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중의학에서 침술의 중요성이랄까 비중은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합니까.
“과거 약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은 벽지에서는 웬만한 질병은 다 침으로 치료했습니다. 그 정도로 비중 있는 치료법이었지요. 특히 관절이나 경락에 관련된 질병 가운데 침 한 방으로 나을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침을 맞으려 하기보다는 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갈수록 침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 서양에서는 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지요. 제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땐 이름 있는 침의 대가가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대부분 외국에 나가서는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중국보다 오히려 선진외국에서 침을 알아주니까 그대로 눌러앉은 게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아쉬움이 많습니다. 정작 동양의학의 본고장에서 침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사상의학(四象醫學)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인데, 중국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게 원래 중국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사상이론은 중국에서 나온 것으로 압니다만, 그 이론을 사람의 체질에 접맥시킨 것은 동무 이제마 선생입니다. 상당히 획기적인 논리지요. 중국인들도 체질을 그렇게 분류한 것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중국에는 사상의학이라는 건 없습니다. 단지 사상의 개념만 있을 뿐이죠. 지금 옌볜지역에 사상의학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있기는 합니다. 의사가 조선족 동포로 이제마의 수제자였다는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중국 교과서를 보니까 놀랍게도 체질의학이 들어 있더군요. 그전에도 중국에 나름대로 체질의학이란 게 있었습니다만, 비중이 크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한의학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中·西醫 결합 체계의 장점
-암을 비롯해 불치병으로 알려진 질병에 대해서는 중의의 치료술이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습니까.
“저도 임상에서 암환자를 많이 대합니다만, 간암이나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아요. 최근 제가 치료하고 있는 한 암환자는 병원에서 두 주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통고를 받고 나서 저를 찾아왔는데, 지금 4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이 분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지만, 항암제 치료는 전혀 못한 채 순전히 중약(中藥)으로만 지금까지 생존해오고 있습니다. 완전치료는 어렵다 해도 생명연장에 중약이 상당한 효과를 보이는 것 같아요. 중국에는 순전히 중약만을 가지고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환자가 꽤 여럿 찾아옵니다. 아무래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완치된 사람으로부터 소개받고 왔다는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물론 그 의사가 암환자를 100% 다 치료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병원에 비해서 치료율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죠. 과연 어떤 원리로 암을 치료하는가를 밝혀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효과가 상당히 좋은 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암 이외에 완치가 어려운 피부병이라던가 자궁병, 위장병도 중약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난치병에 대해 중의 쪽에서는 서양의학과 전혀 다르게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원인제거를 해서 치료하는 경우도 있죠. 중국에서 전통의학으로 암이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여럿 만나봤는데, 시안(西安)이나 산시성(山西省) 쪽에 특히 그런 의사가 많아요. 어떤 분은 서양의학과 중의학을 결합해서 치료하고, 또 어떤 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처방을 가지고 치료하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안 되니까 이런 분들을 찾아가는 암환자도 많지요.”
-성인병에 대한 중의학의 연구나 치료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요.
“성인병이라면 기본적으로 고혈압과 당뇨, 심장병을 말하는데, 대부분 발병의 주원인은 혈액에 있다고 봅니다. 즉 혈액이 탁해질 때,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게 고혈압이죠. 혈압이 높으면 신진대사의 균형이 깨지면서 신장이나 간 등에 병변이 나타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면 혈액이 탁하다고 합니다만, 중의에서는 혈액이 흐르는 속도가 늦어도 탁해지는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혈액이 탁해져 성인병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혈액을 맑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서의에서도 혈액을 맑게 하는 약이 더러 있습니다만, 중약(한약)에서는 화담제(火痰劑)라고 해서 담을 삭히는 약, 어혈을 풀어주는 약들이 모두 성인병 치료에 쓰입니다. 이런 약들이 기본적으로 피를 맑게 해주는 것이지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상황버섯이나 차가버섯 같은 일종의 보조약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도 피를 맑게 하는 약효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버섯들이 항암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바로 피를 맑게 해주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항암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입니다. 버섯 종류는 대부분 피를 맑게 해줍니다. 중국에는 버섯 종류 말고도 화담을 삭혀주는 약이 매우 많아 성인병 치료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중의약에 의한 성인병 치료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중의에서도 과학적인 의료장비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중국에서는 중서의(中西醫) 결합 체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중의에서도 서양의학에서 개발된 의료장비들이 자주 이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할 때는 피검사나 초음파검사 결과를 보고 합니다. 치료는 탕약으로 하더라도 진단과정에서는 의료장비를 활용한다는 것이지요. 기공의 치료효과에 대해서도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고 과학적인 장비를 동원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서의 결합의 정도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한국에서도 요즘 한의원에 가면 병원에서 쓰는 의료장비들을 볼 수 있지만, 아직 중국처럼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한의원과 큰 병원이 협진을 한다면 이런 문제는 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서의 결합을 말씀하셨는데요. 의료장비를 사용하는 것 외에 중의와 서의가 결합된 진료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얼마 전 한국에서 환자 한 사람을 두고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고, 약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방식은 서로 시각이 다른 두 의사가 함께 치료하는 형식이죠. 반면, 중국에서는 의사 한 사람의 사고에서 다양한 치료법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에 대해 약을 쓸 건가 침을 쓸 건가, 아니면 안마를 할 건가를 한 사람이 판단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중서의 결합 시스템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중의 서의 양쪽을 겸한 사람으로부터 상당히 깊이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식의 진료가 가능한 것은 중의약대 커리큘럼에 서양의학 과목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의약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들어가 중의외과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치질 같은 외과수술도 합니다. 소독이나 살균도 서의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고, 수술한 뒤에 주사 놓고 항생제를 주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후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탕약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일반 의과대학생들은 중의학을 배우지 않지만 중의약대생들은 서양의학도 함께 배우기 때문에 중서의 결합 진료가 가능한 것이지요.”
김 박사는 요즘 ‘베이징의 허준’이라고 불린다.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씨가 베스트셀러 ‘중국견문록’에서 김 박사를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박사는 유학생 시절부터 베이징의 한국인들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있어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비야씨도 베이징 유학중에 김 박사에게 신세를 졌고 그 인술에 감동해서 저서에 그런 찬사를 늘어놓게 됐던 것. ‘베이징의 허준’에게 중국의 이른바 명의(名醫)에 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또 신묘하기 짝없는 비방(秘方)의 내막도 캐물었다.
현대의 명의들
-현재 중의약계에서 명의라고 일컬을 만한 뛰어난 의사가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도 4대 명의니 10대 명의니 하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 많아요. 이들은 대개 의대 교수나 일반병원의 의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명의를 소개하면, 소아과에 류비천(劉必陳)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항간에서 아동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이 관련 질병을 정말로 잘 봅니다. 내과분야에서는 임상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체계까지 정리해 내과 교과서를 만든 퉁젠화(董建華)라는 명의가 있었는데, 최근 작고하셨습니다. 또 류두저우(劉度舟)도 명의로 알려져 있는데, 이분은 기초보다는 임상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의학 분야의 임상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이 사람이 썼을 정도로 명성이 높습니다.
중국에서는 중의사도 첨단 의료장비들을 진료에 활용한다.
물론 명의 가운데에는 이런 분들처럼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질병에 관한 치료법을 전수받아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는 분도 있고, 청나라 때 어의(御醫)의 후손이나 제자가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다시 명의로 떠오른 경우도 있어요.”
-중국 최고지도층 인사들의 주치의는 서의, 그러니까 일반 의사가 맡고 있습니까 아니면 중의사가 맡고 있습니까.
“대부분 서의가 맡고 있다고 봐야 할 거예요. 예를 들어서 베이징에 협화병원이라는, 진료비가 상당히 비싼 병원이 있는데요. 이곳의 의사들이 최고지도층 인사들의 진료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의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덩샤오핑의 말년 무렵 수시로 사망설이 나돌았지만 결국은 1997년에 93세로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덩샤오핑의 장수비결과 관련해 중국 최고의 의료진이 온갖 의술을 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말들이 떠돌았습니다만, 실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당시 12명의 기공사가 덩샤오핑에게 계속 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아무튼 현대의술뿐 아니라 중국의 독특한 의술이 총동원돼 생명이 연장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봅니다. 덩샤오핑이 장수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동충하초를 많이 복용한 데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때 동충하초 가격이 폭등했지요. 지금은 일본사람들이 싹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충하초를 대량으로 사간다고 하더군요.”
비방(秘方)은 실재하는가
-중의학 하면 이른바 비방이 떠오르는데요. 실제로 특정 질병에 특별한 효험을 보이는 그런 비밀스런 처방이 있습니까.
“제가 중의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비방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보통 병증을 분별하는 변증(辨證)을 통해서 처방하기 때문에 의사 개개인의 처방이 각기 다르고 치료법도 다릅니다. 이에 반해 이른바 비방을 보면 처방, 그러니까 약은 고정돼 있고 거기에다가 병을 대입시키는 식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저는 비방이란 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나가는 동안 다른 병은 하나도 볼 줄 모르지만 어느 한 가지 병에 대해서는 진맥도 안 하고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약만 써서 병을 완치시키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됐어요. 그게 바로 비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무슨 약을 썼는지는 당사자 외엔 아무도 모릅니다만,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제가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보았는데, 비방을 쓰는 의사가 구석구석에 상당히 많더군요. 이들은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의사 면허도 없이 그냥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비방으로 평생 동안 환자를 치료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례들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저는 비방이란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비방은 약재를 임신부의 배꼽 밑에 붙이면 대부분 원하는 성별의 아기를 낳는다고 합니다. 임신하고 한 달 안에 이 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요. 현대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적중률이 높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거든요. 또 화상을 입었을 때 치료효과가 기막힌 비방을 가진 사람도 봤습니다. 어떤 화상환자든 비방으로 만든 약을 바르면 새살이 돋아나 완치율이 아주 높다는 겁니다.”
-그 비방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래서 그 실체를 파악해보려고 비방으로 소문난 분들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대개가 누구한테도 비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절대로 안 된다, 오로지 장남한테만 전해준다는 식입니다.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주로 구전으로 알려주어 남이 알 수 없게 한다는 것이지요.”
-중의약대학의 교수들은 그런 비방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교수들은 모두 그런 건 없다고 하지요. 정통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비방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대학교수들은 콧방귀 뀌듯 단정적으로 없다고 말하죠. 그러나 제가 실제로 중국을 돌아다녀본 바에 따르면 그런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비방의 구체적인 사례들
-실제로 목격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화상치료를 잘한다고 소문난 분을 베이징 근교로 찾아간 적이 있어요. 쇠창살 문 앞을 송아지만한 개가 지키고 있더군요. 의사를 만나 중의약대학에 다니고 이러이러한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좀 물어보고 싶다 했더니 한마디로 그냥 돌아가라는 거예요. 돌아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찾아갔더니 자네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오는데 절대 만나지 않는다며 치료장면도 보여주지 않더라구요.
마침 치료받고 나오는 환자가 있어 환부를 볼 수 있었는데, 무슨 약을 바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 환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약만 발라준다고 하더군요. 새살이 거의 다 돋아난 상태였어요. 웬만한 화상은 세 번만 바르면 다 낫는다는 거예요. 3도 화상 같은 경우는 근육까지 익어서 살이 짓무르면 치료가 불가능한데, 정말 새살이 돋아나고 흉터도 별로 없을 정도로 치료효과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중국 중의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서원병원이 백혈병 치료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만, 이 병원의 혈액과 주임의사가 이른바 비방을 전수받은 사람이에요. 어떻게 비방을 전수받았는가 하면, 옛날에 베이징 근처에 백혈병 치료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중의연구원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치료법을 전수받도록 했다는 겁니다. 처음엔 이 할아버지가 전수를 거부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전수받을 수 있었고, 비방을 전수받은 이 의사는 자기 약국을 따로 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비방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한두 가지만 더 소개해주시지요.
“산둥성 리뎬(李店)이라는 동네에 가니까 비방으로 만든 고약을 가지고 300여년간 대대로 의업을 꾸려온 집안이 있더군요. 마침 그 집의 아들이 중의약대학을 졸업해 얘기가 잘 통했습니다. 이 집의 비방은 골절시 뼈가 잘 붙고 후유증이 전혀 없는 고약이었어요. 보통 골절이 되면 치료를 해서 뼈가 다 봉합됐어도 날 궂으면 쑤시고 아프거든요. 조직에 어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라고 하기도 뭐한 아주 허름한 집에 엑스레이 기계가 한 대 놓여 있는데, 환자가 오면 먼저 골절부위를 찍어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골절부위를 딱 맞추고 고약을 그 위에 붙인 뒤 석고가 아닌 딱딱한 나무를 대고 붕대를 감아주는 겁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약을 갈아주는데 세 번만 갈아주면 완전히 낫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어혈 같은 후유증도 없이 말입니다.
또 간염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비방도 있습니다. 산둥성 시골의 할아버지 의사였는데, 이분은 1년에 간염환자 300여명을 본다고 합니다. 지금 서의에서건 중의에서건 B형 간염이 불치병의 하나입니다. 간경화나 간암의 90%가 B형 간염에서 비롯되죠.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보균상태의 간염환자를 치료하시더군요. 이 할아버지 역시 처방전 대신 약을 주는데, 제가 이 약을 입수해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약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지만 가루로 된 두 가지 약재는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무궁무진한 약재의 세계
중국에서는 중의학이란 말과 함께 중의약이란 표현도 자주 쓰인다. 그래서 대학도 중의학대학이 아니라 중의약대학이다. 그만큼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의원을 찾아가면 결국은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지어 먹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탕약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나오는 약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중국은 땅이 넓어 그만큼 물산도 풍부한데요. 중의학에서 쓰는 약재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합니까.
“중의학 교과서엔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재 484가지가 나옵니다. 이외에도 각 지역에서 쓰이는 이런저런 약재들을 합하면 무수히 많다고 봐야죠.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식물성 약재만 해도 꽃과 열매, 잎, 껍질, 뿌리 등이 필요에 따라 각기 요긴한 약재가 됩니다. 광물성으로는 주사 우황 자석 석영 등 나름대로 독특한 효능을 가진 약재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태계의 모든 것을 약재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중에서도 약효가 뛰어난 귀한 약재나 비싼 약재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중풍에 가장 좋은 게 사향(麝香)입니다. 특히 네팔에서 나오는 사향이 효험이 크다고 알려졌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고 대신 러시아산이 흔합니다. 당연히 값이 비싸고 가짜가 많습니다. 중국 의사들도 사향 같은 귀한 약재는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실제로 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또 간경화나 간암 타박상 등에는 웅담(熊膽)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만, 이것도 구하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원담, 그러니까 웅담 그 자체를 구하기 힘드니까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사육하는 곰에서 추출한 웅담을 많이 씁니다. 산삼은 중국에서도 최고의 영약으로 알아줍니다. 특히 지리산이나 설악산 것을 최고로 칩니다. 산삼은 기를 보하는 데 대단한 효과가 있어서 예를 들어 암으로 인해 기가 아주 쇠해졌을 때 복용하면 상당히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서각(犀角)이라는 게 있는데, 코뿔소의 뿔을 말합니다. 코뿔소 이마에 커다란 뿔이 하나 있고 그 뒤에 움팍하게 생긴 작은 뿔이 돋아 있어요. 그게 바로 서각입니다. 서각은 모든 열증에 좋습니다. 중풍도 간에 열이 치받아서 생긴 것이므로 서각을 쓰면 좋고, 세균에 감염돼서 고열이 나는 경우에도 서각의 가루를 내서 복용하면 바로 열이 떨어집니다. 서각도 상당히 비쌉니다. 명청시기 중국의 황궁에서는 서각으로 술잔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에 도수가 높은 백주(배갈)를 따르면 술맛이 순해진다는 겁니다. 서각이 알코올의 열 성분을 다 분해해버리기 때문이지요.”
동충하초의 신비
-말씀을 듣고 보니까 대부분 동물성 약재들이 귀하기도 하고 약효가 뛰어난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동물성 약재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호골(虎骨), 즉 호랑이의 뼈입니다. 호랑이뼈는 관절염에 특효입니다.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각종 류머티스는 현대의학에서 불치병으로 봅니다만, 호골을 쓰면 낫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랑이는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훌륭한 약재입니다. 심지어 호랑이의 변도 술 끊는 데 명약이라고 합니다. 호랑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해볼까요. 제가 동북지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식사를 함께한 중국친구가 수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이를 쑤시는 겁니다. 바로 호랑이 수염으로 만든 이쑤시개로 할아버지 때부터 대물림한 것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자기 집안에는 대대로 충치가 없다며 자랑을 하더군요. 호랑이는 정말 뼈부터 시작해서 털 기름 등등 몸 전체가 좋은 약재입니다.”
-앞에서 덩샤오핑이 동충하초를 복용했다고 해서 한때 동충하초 붐이 일었다고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동충하초 산지로 유명한 티베트 지역을 일부러 가봤습니다. 동충하초는 해발 4500m 이상 고산지대에서만 살거든요.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동충하초를 잡는다고 모두 초원에 누워 있어요. 모로 누워서 풀숲을 주시하다가 움직이는 동충하초를 잡는 것이지요. 이 벌레는 얼른 보면 풀과 매우 흡사해서 찾아내기가 힘듭니다.
동충하초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동충하초는 겨울철에 애벌레 상태로 있다가 여름에 나방이 되려고 할 때 이 벌레의 머리에서 포자가 발아합니다. 이 포자는 애벌레의 진액을 먹고 자라나는데 일종의 버섯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애벌레는 서서히 말라죽지요. 버섯이 애벌레의 양분을 적당히 빨아먹었을 때 잡아서 말린 것이 바로 동충하초입니다.
동충하초는 보(補)해주는 약재로 특히 폐와 신장에 좋은데, 이 성분이 암세포는 피하고 정상세포에만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환자가 기력이 떨어졌을 때 동충하초를 씁니다. 암환자에게 보약을 쓰면 오히려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상세포뿐 아니라 암세포도 함께 보해주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한약을 잘못 먹으면 간경화가 된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요. 아무튼 동충하초는 암환자에게 특효가 있는 보약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동충하초는 티베트에서만 나옵니까.
“티베트와 칭하이성(靑海省), 쓰촨성(四川省) 북부의 고산지대에서만 나오고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또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귀할 수밖에 없지요.”
환경오염과 약재의 효능
-중의에서 쓰는 약재로는 역시 식물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식물성 약재로서 약효가 뛰어난 것 가운데 홍경천(紅景天)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도 고산지대에서만 자랍니다. 제가 티베트에 가서 보니까 홍경천이 널려 있더라고요. 홍경천은 관절에 좋고, 간장과 신장 기능을 강화시키는 데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서는 마라톤 선수들에게 홍경천을 복용시켰다고 해서 유명해졌지요. 설련화(雪連花)라는 약재도 티베트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데, 관절염과 부인병에 특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영지도 특별한 약재에 해당되는데, 비슷한 것으로 고산지대에서 나는 설령지(雪靈芝)라는 게 있습니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강이나 바다 쪽에서 나오는 약재는 없나요.
“한국에서는 거의 안 씁니다만 해마나 해룡 같은 것이 있어요. 해마의 경우 정력제로 비아그라보다 효과가 더 좋다고 해서 요즘 포획이 성행하고 있다더군요. 간에 좋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광물질로는 용골이 유명합니다. 옛날에 후난성(湖南省)인가에 한 의사가 있었는데 치료를 잘해 항상 문전성시였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양반이 며칠에 한번씩 밤에 슬며시 어딘가를 갖다 오는 걸 알고 누군가가 어느 날 몰래 따라가 보니까 무언가를 캐오더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용골이라는 것인데, 공룡화석으로 보면 됩니다. 이 용골은 신경안정제의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삼의 경우 한국산을 최고로 치지 않습니까. 농산물도 중국에서 수입한 것보다는 국산을 더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고요. 한약재의 경우 어느 나라의 것을 품질이 우수하다고 보고 있나요.
“드라마 ‘허준’을 보면 청나라에서 약재를 밀수하다가 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옛날부터 우리가 중국의 약재를 많이 수입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 것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계피는 발한제로 좋은 약이지만 중국 남방에서만 나옵니다. 감초는 중국 남방에서는 나지 않고 간쑤성(甘肅省), 내몽골 등지의 고온건조한 지역에서 나는 것이 당도도 높고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어릴 때 제가 살던 동네에서도 감초를 재배했는데, 전부 망하더라고요. 당도가 떨어지고 비린 맛이 나서 인정받지 못한 때문이지요. 인삼이나 산삼은 역시 한국산이 가장 효과가 좋으니까 그걸 쓰려고 하는 겁니다. 결국 어느 나라 한약재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토양이나 기후가 각기 다르므로 각 지역마다 독특한 약효를 지닌 약재들이 나온다고 봐야죠.”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약재의 효능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약재는 원래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순수한 성분을 충분히 함축한 것이 약효가 좋습니다. 재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약효가 떨어집니다. 산삼을 집에서 재배하면 본래의 약효가 안 나오거든요. 그러나 자연산을 많이 취할 수 없어 재배를 하는 것이지요. 지금 중국에서 대형 약재시장의 주변지역이 모두 약재 재배단지로 바뀌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농약도 쓰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재배한 약재에 과연 약효가 있겠냐는 점인데, 저는 이렇게 봅니다. 식물은 환경조건이 맞지 않으면 거기에 맞춰 적응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산성비가 내린다 해도 식물은 나름의 변화과정을 거쳐 살아남습니다. 특히 다년생 풀은 스스로 환경조건에 맞춰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영역을 형성하기 때문에 극도로 오염된 상황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재배할 때 특별하게 농약을 많이 사용하거나 수입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환경에서라면 그동안 다소 환경오염이 됐다고 해도 약재의 효과에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중국의 약재시장 주변지역에서 약재들을 재배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느 정도로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중국에서 나오는 약재들은 대부분 대량 재배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워낙 수요량이 많아 모두 충당하려면 야생에서 채취하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거든요. 베이징에서 가까운 곳에 허베이성(河北省) 안궈(安國)라는 도시가 있어요. 그곳에 아주 큰 약재도매시장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는 웬만한 약재는 모두 거래하고 있는데, 그곳 일대가 온통 약재 재배단지예요. 안궈시 자체가 약재를 재배하고 도매해 먹고 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약재시장이 중국에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약재도 그런 곳에서 수출하는 것인가요.
“중국 전역에 이런 약재시장이 대략 30여개가 넘습니다. 서울의 경동시장 한약업사들도 모두 여기서 수입해가고 있지요. 저도 약재 조사를 하러 자주 찾아갑니다만, 한국 상인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중국 약재시장에 큰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종의 비리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약을 만들 때 보통 증기로 쪄서 약성분을 추출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추출한 약재를 다시 가공해서 판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 겉으로 보면 약재가 깨끗하고 좋은데, 가격이 의외로 쌉니다. 이렇게 한번 우려낸 것을 재포장한 약재가 꽤 많습니다.”
중국의 의학교육 체제
현재 중국에서 중의학을 공부하는 한국유학생은 줄잡아 수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의학 전공유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의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중국의 의학교육 실태와 한국유학생 문제의 내막에 대해 물어보았다.
상하이중의약대 교정에 세워진 허준 선생의 동상.
-중국의 의학교육 체제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우선 정규대학이 있고, 다(大專)이라고 하는 전문대와 독학과정인 쯔쉐(自學)가 있습니다. 정규대학은 일반 의과대학과 중의약대가 있는데, 이중 중의약대는 각 성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모두 30여개 가량 될 겁니다. 정규 중의약대는 원래 5년제였다가 최근 6년제로 바뀌었어요. 예과과정 2년과 본과 4년 해서 6년이니까 한국과 똑같죠. 아까 중의약대에서는 서양의학 과목도 배운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먼저 학부에서 중의학에 관한 기초과목을 배운 뒤 서양의학의 기초과목인 생리학 병리학 해부학 등을 공부하고 임상과목도 이수하게 됩니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올라가면 연구생이라고 합니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먼저 1년간 기초이론 수업을 마친 뒤 2년간 병원에 나가 임상근무를 하는데, 이때 자기 환자를 관리하면서 논문을 씁니다. 박사과정도 임상의 경우는 비슷합니다. 기간도 석사 때처럼 3년이지요. 박사과정이 끝나면 박사후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중의약대학에 들어가서 박사가 되기까지는 12년이 걸리는 셈입니다.”
-중의사가 되려면 면허시험에 합격해야겠지요.
“정규대학 졸업자의 경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면 중의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전문대의 경우는 졸업 후 소정의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바로 의사가 될 수 없고 의사보조 생활을 거쳐야 합니다. 독학을 한 사람도 중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하면 의사가 될 수는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의사인 아버지로부터 배워 의술은 아주 뛰어난데 정규대학 공부를 안해 아직 정식 의사 노릇을 못한 채 보조역할만 하고 있어요. 의사면허 시험을 보라고 권해도 선뜻 응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무튼 중국에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베이징중의약대의 경우 교수나 학생들의 학습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마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오전수업 4시간, 오후수업 4시간으로 한마디로 강행군입니다. 완전히 고등학생이에요. 명색이 대학이라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흔한 축제도 없습니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데, 첫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거예요. 어떤 교수는 자기 이름 소개도 안 하고 진도부터 나갑니다. 그래서 한번은 첫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 성함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냥 칠판에 이름만 쓰고 나가더라고요. 물론 수업시간에 농담도 거의 없어요.
왜 이렇게 분위기가 타이트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평가제도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거든요. 한번은 어떤 교수가 모친상을 당해 이틀간 결강을 했는데, 중국 학생이 학교측에 투서를 했어요. 결국 이 교수는 일요일에 보충수업을 해야 했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못했는데, 정말 너무한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한 시간이라도 빠지게 되면 꼭 보충수업을 해요. 게다가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학교 안에서 수업하고 먹고 자고 다시 수업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중의학 전공 유학생 실태
-한국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하는데 중국에서는 어떤가요.
“중국에서 중의약대의 수준은 한국처럼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의사 월급이 그리 많지 않고 돈을 벌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의는 수술을 한다든가 양약을 처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센티브가 있는 데 비해 중의 쪽은 별로 없거든요. 그 까닭인지 젊은 중의사들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한국유학생은 어느 대학에 얼마나 있습니까.
“중국 전체에 걸쳐 많습니다만, 역시 베이징중의약대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하이나 난징 톈진 등 웬만한 지역의 중의약대에는 한국유학생이 다 있어요. 창춘, 하얼빈 등지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할 때는 중의과 50명, 침구과 50명 해서 100명을 모집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숫자가 꽤 늘어났습니다. 중의과와 침구과 외에 안마과, 간호학과, 기본과 등이 있는데 한국학생들은 주로 중의과나 침구과를 택합니다.”
-중의학을 공부하러 오는 한국 유학생들은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옵니까, 아니면 대학을 졸업하고 옵니까.
“제가 처음 유학 왔을 때 28세였는데 유학생들 중에서 중간이었어요. 유학생의 나이와 학업 정도는 천차만별이에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친구부터 군대 제대하고 온 친구,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온 사람, 미국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고 대기업 이사까지 지낸 분도 있었으니까요.”
-한국유학생이 중의학을 전공하려면 중국어뿐 아니라 어려운 한문도 능숙해야 하지 않습니까. 언어와 문자의 장벽이 다른 분야보다도 훨씬 높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중의약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단 중국어의 토익이라 할 한어수평고시(HSK)에서 6급 이상을 따야 됩니다. 기본적인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지적하신 것처럼 고문실력입니다. 특히 의학에 관한 고전인 의고문(醫古文)은 정말 두손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중국인들도 어렵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니 한국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중의학의 4대 경전이라고 일컫는 내경이나 상한론뿐 아니라 여기서 더 깊이 공부하려면 고서들을 많이 찾아서 읽고 연구해야 하니까 고문실력이 중요합니다.”
-한국학생의 경우 중의약대학에서 탈락하지 않고 제대로 공부를 마치는 비율이 대개 어느 정도입니까.
“그나마 한국학생은 성적이 좋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할 때 100명 정도 들어왔는데 무사히 졸업한 사람이 49명일 겁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릅니다만 유학생 1기 졸업생은 그런 정도였습니다.”
-유학생들이 중의사 자격을 얻으려면 어떤 시험을 봐야 합니까.
“중의약대 5년과정을 졸업하고 1년의 인턴과정을 거친 후에, 중의사면허시험을 봐야 합니다. 이 면허시험이 중국인도 우수수 떨어질 정도로 어렵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의사시험 볼 자격을 준 게 올해까지 쳐서 세 번째입니다. 실기와 필기시험이 있는데, 실기시험도 대충 보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로 나눠서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증상을 하나 주고 이에 대한 기록부터 시작해서 진단은 무엇이고, 변증은 어떻게 하며,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한 시간 내에 써내야 됩니다. 그 다음에 구술시험을 보는데, 심장병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하면 줄줄이 다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서양의술과도 관련되는 예컨대 심장압박술이라든가 수술시 무균조작법 같은 것을 구술하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다 통과한 사람만이 필기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필기시험은 실기시험보다 더 어려워서 1, 2차 시험에서 각각 60점을 넘어야 합니다. 제 경우는 필기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의사 면허시험 불허 배경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면 한국처럼 개인적으로 개업할 수도 있습니까.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병원 취업은 할 수 있지만 개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병원 개업은 중의학 분야에 크게 공헌한 퇴직 원로들에게나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학생으로 면허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베이징대의 경우 지난해 9명이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중의약대를 졸업한 한국유학생에 대해 한국내에서 한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고 있어 그동안 문제가 되어오지 않았습니까. 현재 이들 유학생은 귀국 후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막막하죠. 최근 들어 한의사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시험인 예비고사제도가 생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귀국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방법이 없는 실정입니다. 저희 동기생들이나 후배들 가운데 이곳서 석·박사까지 하는 경우는 얼마 안 되고 대개 제약회사에 취업한다든가 경동시장에서 일을 합니다. 아예 전업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 중국어학원 강사나 무역업에 종사하는 등 정말 다양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 중국내 병원에 취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보수가 너무 적어요.”
-중의약대 유학생 출신에 대해 국내 한의사면허시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실력 면에서 볼 때 유학생 출신이 국내 한의과대학 나온 사람과 겨루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한의대 입학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중국유학은 쉽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똑같은 자격을 주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겠지요.
물론 공식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수업연한이 5년인 데 비해 한국은 6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면허자격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도 이제는 근거가 희박해졌어요. 중의약대도 1년의 인턴과정을 추가해서 6년제로 바뀌었고, 또 중국의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어쨌든 수많은 유학생이 중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도 국내에서 발붙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낭비라고 볼 수 있어요. 중의약대에 인턴과정이 추가된 것도 중국측이 이런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어쨌거나 이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상대 진료활동
미국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침술을 합법적인 의료술로 받아들였고 중약을 보건품으로 인정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이나 남미의 의사들이 중의학을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몰려든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자신들의 의술의 한계를 깨닫고, 동양의술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읽혀진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중의약대 유학생의 국내 진출이 막혀 있는 우리 현실이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너무 폐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의 개인적 포부를 들어보았다.
-이제 중의학에 입문한 지 12년이 됐는데, 그 사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자격도 얻었으니 하나의 매듭을 지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위해 무료 진료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아직은 한국에서 활동할 여건이 안돼 있으니까 당분간 중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무료진료활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베이징중의약대 학생시절부터 한국인을 상대로 진료를 해온 지 어언 10년이 넘습니다. 무료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은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도 얻었으니까 말이죠. 설령 한국에서 끝내 개업을 못하게 될지라도 저는 죽을 때까지 진맥을 할 생각입니다. 환자 진맥을 볼 때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한편으론 문화혁명 때 정리된 문헌들을 찾아내 연구하는 작업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물론 중국 구석구석에서 비방으로 치료를 하는 특별한 의사들(?)을 찾아가 노하우를 전수받는 작업도 계속해야겠지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동안에는 대륙의 어느 오지라도 찾아다니며 비방을 배우는 일이 저의 숙원사업이 될 것입니다.
중국의 전통의학인 중의학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정교한 이론체계를 확립하고 첨단 의료기기도 갖췄다. ‘신비스런 동양의술’에서 벗어나 ‘과학화’를 지향하는 중의학. 이른바 명의(名醫)와 비방(秘方)의 내막은 무엇이며, 각종 약재의 효능은 어떤 것인가. 의료시스템의 개혁과 대외개방 실태, 그리고 중의약대에 유학중인 한국학생들의 국내진입에 얽힌 문제점.
한국과 중국은 서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경우가 많다. 그중 하나가 의료분야다. 중국의 전통의학이 중의학이라면 한국의 전통의학은 한의학이다. 역사적인 뿌리는 거의 같지만 오늘날 중의학과 한의학은 매우 다른 면모를 보인다.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 중국의 전통의학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았으며, 그 의술의 실체는 어떤 것일까. 이번 달 중국탐험은 중의학을 중심으로 중국 의료문화의 전반적 실태를 주제로 삼았다.
김인근(金仁根·41) 박사는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의사면허시험(中醫職業醫師資格考査)에도 합격해 중의사 자격을 딴 중국유학 1세대. 중국현지에서 중의학을 전공한 한국인 유학생 출신 가운데 선두주자인 셈이다. 본격적인 중의학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중국의 전반적인 의료현황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의료체계가 크게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중국 의료체계의 변화는 민간 의료기관의 활성화와 외국 의료자본의 유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 의료기관이 중심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성의 주요 현(縣)을 중심으로 2~3개의 민간병원이 속속 설립되고 있고, 심지어 티베트나 우루무치(烏魯木齊) 같은 변방의 산간지역에도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정도입니다. 위생부가 합자병원 설립을 위한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선진 의료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의료계의 변화
-중국에 진출한 외국 병원들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베이징에 13개의 외국병원이 설립돼 있고 상하이에는 무려 28개나 됩니다. 물론 다른 지방에도 해외의 의료자본이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요. 상하이의 민항병원은 유럽자본과 합자형식으로 설립됐고, 베이징의 화목가(和睦家)병원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중심으로 진료하는데, 미국자본의 투자로 세워졌습니다. 또 상하이의 동세병원은 미국과의 합자로, 상하이의 싱가포르임상국제의료센터는 미국 일본 한국의 합작 투자로 설립된 경우입니다. 이외에도 베이징의 국제의료중심, 싱가포르병원 및 SOS병원 등 외국계 병원이 적지 않고 의료수준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의료산업도 중국에 진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실상은 어떤가요.
“SK와 중국위생부 합자병원인 애강(愛康)병원이 작년에 정식으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은 특히 최근 들어 성형미인대회가 열리는 등 중국사회에서 성형 붐이 일어나자 이 분야에 뛰어난 한국의 선진 기술력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애강병원을 비롯해 여러 병원에서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고, 치과와 안과 분야에서도 한국인 의사가 활약하고 있어요. 의사뿐 아니라 한국의 의료기기와 미용재료 등도 중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분만비용이 한화 1000만원대에 달하는 고급 산부인과 병실이 등장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의료기관의 고급화 추세는 어떻습니까.
“앞에서 언급한 외국계 병원이나 합자병원이 고급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간단한 감기 치료에도 300달러를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달 입원비가 2만위안(한화 300만원)에 달하는 중국계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베이징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알려진 협화(協和)병원의 경우 분만비가 8만위안이 넘는 입원실이 있을 정도로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의료기관이 성업중입니다.”
-중국의 의료수준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습니까.
“제가 처음 병원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병원 건물은 낡아 허름하고 수술실도 우중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기술과 설비를 갖춰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국제수준에 못 미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만, 중의학 분야는 서양의학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놀랄 만한 치료효과를 거둔 경우도 있어 주목됩니다. 의료장비 면에서도 첨단 라식수술장비를 갖춘 베이징의 동인안과병원처럼 고급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인은 병이 나면 대개 어디부터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나요.
“일반적으로 서의(西醫) 즉, 양의(洋醫)를 먼저 찾아가는데 개인병원보다는 종합병원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그러나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약국에도 의사가 있어서 병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약을 준다는 것이지요. 서의 대신 중의(中醫)를 찾는 환자도 있지만, 대개는 처음에 서의에게 갔다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의를 찾아가 완치되면 그 다음부터는 중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중의학의 발전과정
이제 중의학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차례다. 먼저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중의학이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또 우리 한의학과의 상관관계도 궁금하다.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분야여서 그 연원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먼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의학이 어떤 발전과정을 거쳐왔는지 간단히 짚어봤으면 합니다.
“문헌상으로는 전국(戰國)시대와 한(漢)나라 때 중의학이 처음 등장합니다. 중의학의 이론체계가 성립된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잦은 전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서 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게 된 것이죠.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때 의학이 발달한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명의 편작(扁鵲)이 바로 전국시대 사람인데, 망진(望診)이니 맥진(脈診)이니 하는 사진(四診)진단법을 만들었지요. 또 이때 중국 최고의 의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이 나오게 됩니다. 한나라 말기에 이르러 장중경(張仲景)의 대표적 저작인 난경(難經)이라든가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이 나오고, 그 다음에 신농본초(神農本草)와 같은 중의학의 경전에 해당할 만한 책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후 진(晋)나라 때는 왕숙화(王淑和)가 지은 의서 맥경(脈經)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그때까지 전해 내려온 여러 가지 맥의 시스템을 체계화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이외에 당(唐)나라 때는 손사막(孫思邈)이 지은 천금방(千金方) 2편이 나오고, 금원(金元)시대에는 유완소(劉完素) 장종정(張從正) 주진형(朱震亨) 같은 유명한 의사들이 배출됐는데요, 이들을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라고 이릅니다. 명청(明淸)시대에 이르러 중의학은 이론과 경험을 정리하는 전성기를 이룹니다. 아편전쟁 이후 근대에 들어서는 중의학이 서양문명을 흡수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대표적인 치료제로 서양의 아스피린과 석고탕(石膏湯)이라는 전통 처방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한 ‘아스피린 석고탕’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합친 최초의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중의학과 한의학
-그렇다면 중의학의 골격은 어느 시기에 확립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중의학은 황제내경이라든가 상한잡병론 금궤요약(金풤要略) 같은 고서가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골격이 확립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통용되는 중의학은 기존의 이론체계에 문화혁명 이후의 유물론적 사관이 결합되면서 독특하게 발전한 것입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제패하면서 도량형을 통일시킨 것처럼, 마오쩌둥은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중의학에 일정한 계통을 세우도록 지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각자가 비장하고 있던 경험방(經驗方)이라든가 비방(秘方)을 모두 문서화하도록 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중의학 고유의 신비스러운 부분이 거의 사라지고 유물사관에 입각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성격이 많이 가미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한나라 때 골격이 잡혔던 중의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의학과 우리나라의 한의학과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요. 또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한(韓)의학을 동의학이라고 불렀습니다. 동의보감이나 사상체질에 관한 몇 가지 책을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 예컨대 황제내경이나 상한론 등등의 전통의학서들은 모두 중국 것이죠. 이 점으로 미루어 한의학은 중국 전통의학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중국에서도 내몽골 쪽의 전통의학은 몽의(蒙醫)라고 부르고 티베트 쪽의 전통의학은 장의(藏醫)라고 부릅니다. 또 남쪽의 소수민족들도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서 무슨무슨 의학이라고 하는데 역시 한족의 중의학을 받아들여 나름대로 변용한 것입니다. 우리 경우도 중의학을 아주 독특하게 발전시켰는데,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발전시킨 영역이 있을 정도입니다.
거꾸로 한의학이 중의학에 끼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동의보감의 경우는 중국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제가 1992년에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중국어로 된 동의보감을 샀을 정도니까요.”
-오늘날의 중의학과 한의학을 비교해보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납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문화혁명 이후 중의학은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의학교과서에도 유물사관이 나옵니다. 그런데 중의학은 원래 고대부터 유심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완전히 빼지는 못하고 일부 소개하고 있는 정도예요. 아무튼 이렇게 전통의학을 유물사관으로 새롭게 정립하다 보니까 중의학에서 신비로운 부분은 대부분 삭제돼버린 겁니다.
안면신경이 마비된 환자를 화침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중의학을 답습하지 않고 독창적인 이론과 의술을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명칭도 중의학이 아닌 한의학(韓醫學) 아닙니까. 그런데 한의학은 체계적인 이론이나 과학적인 방법에 의존하기보다는 다소 형이상학적인 성격이 가미돼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가 볼 때 이 부분에서 양국의 전통의학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원리는 같다고 봐야겠지만요. 중의학은 형이상학적으로 흐르지 않는 반면에 기초가 상당히 탄탄합니다. 황제내경을 이론적으로 밝힌 논문과 책만 해도 무지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만큼 중국사람들은 이론에 충실하다는 얘기죠. 한국의 다소 형이상학적인 측면과 중국의 실증적 이론을 접맥시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허준(許浚)의 동상이 상하이중의약대에 세워졌다고 합니다만, 허준이나 동의보감에 대해 중의학계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중국 전체로 볼 때 한의학은 그다지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한의학이 뜨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났죠. 중의학 기초이론서를 보면 대부분이 중국 책이고 일본책이 두어 권쯤 되죠. 그리고 동의보감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오장육부 가운데 담낭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에는 동의보감의 관련부분을 인용하고 있어요. 그들이 보기에는 변방이라 할 한국의 이론을 중국의 정통 교과서에 인용해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봅니다.”
서양의학 선호의 배경
-현재 중국인의 질병치료나 건강유지에 있어 중의학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중국사람들은 흔히 ‘중의는 크게 치료하는 것도 없고, 탈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만성병이나 고질은 중의학으로 고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밖의 질병 치료에는 대부분 서양의학을 선호합니다. 치료효과가 빠르고 눈에 드러나는 서양의학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의식이 바뀐 것입니다. 한마디로 중의보다 서의(西醫), 즉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를 더 찾는다는 것이지요. 의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는 중의약대학을 졸업한 중의(中醫)가 서의도 겸할 수 있는데, 약을 처방할 때도 서약(西藥) 위주로 하고 있어요. 이처럼 환자나 의사가 서양의학을 선호하는 배경에는 중국인이 아직은 양약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하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만 해도 그동안 항생제를 많이 복용한 까닭에 효과를 보려면 상당히 많은 양을 써야 하는 데 비해 중국인은 아직 그런 내약성이 약하기 때문에 항생제 효과가 빠르고 정확하게 나타나는 편입니다.”
-전통의학보다는 서양의학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한국과 비슷한 것 같군요.
“그렇죠.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최근 전통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중국도 머지않아 다시 전통의학을 중시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중의학에 의한 질병치료가 어떤 부분에서 상대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고열이 날 때 서양의술보다는 동양의술이 열을 더 빨리 떨어뜨립니다. 원인을 제거하기 때문이지요. 오늘 날씨가 고온다습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 습열(濕熱)이라는 증상이 나타나기 쉬운데, 이 경우 습을 빼지 않으면 열이 떨어지질 않아요. 그런데 서양의학에서는 습을 빼는 약이 없어 해열제를 쓰지요. 그러면 열이 떨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오릅니다. 반면 중의학에서는 습과 열을 빼기 위해 약으로 소변이나 대변을 쫙 빼버리는데, 곧바로 괜찮아집니다. 물론 약을 달여서 복용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면 중약(한약)이 훨씬 효과가 빠를 수 있어요. 반면에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는 중의로 효과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뼈에 금간 것이 아닌 복합골절상이나 외상으로 인한 장부파열 등 빨리 처치해야 하는 경우 중의의 치료효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봅니다.”
-중의학에서 사용하는 의술로는 대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진맥을 한 뒤 그에 따라 처방을 내려 약을 달여 먹는 게 중의학의 가장 기본적인 치료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대로부터 내려온 침술이 대표적인 의술이죠. 침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알코올램프에 달궈서 뻘건 빛이 없어지기 전에 침을 놓고 바로 빼는 불침 혹은 화침(火針)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실험해봤습니다만, 양기가 극도로 쇠할 때 또는 한사(寒邪)가 심하게 들었을 때 효과가 좋습니다. 다음에 침을 꽂고 나서, 침 꽂은 부위에 부항을 뜨는 방법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항 안에다 불을 집어넣고 어혈(瘀血)을 뽑아내기도 했지요. 또 요즘에는 침 맞을 때 통증이 적은 이침(耳針)을 쓰기도 합니다. 이침은 왕불유행(王不留行)이라는 조그맣고 딱딱한 씨앗을 반창고에 붙여서 귀의 혈자리에 부착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피내침(皮內針)이나 조그만 침으로 혈자리를 자극합니다만 중국에서는 이침을 쓰고 있어요.
외국에 눌러앉는 침술 대가들
추나요법이나 안마도 중의학의 중요한 분야입니다. 안마도 족안마부터 경락마사지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많습니다. 이밖에도 다른 의술에선 찾아볼 수 없는 중의학만의 특색으로 기공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기공치료도 중의학의 한 부분으로서 큰 비중을 차지했고 효과도 상당히 좋습니다만, 파룬궁 사태 이후 거의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 좌욕법도 있습니다. 여기에도 땀을 내게 하는 법, 토하게 하는 법, 설사로 쏟게 하는 법, 심신을 조화롭게 해주는 화법(和法) 등 여러 가지 치료술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소개하면 욕조에 뜨거운 물을 넣고 약재를 풀어 좌욕을 하면 관절염에 효과를 볼 수 있어요. 티베트나 서북쪽 추운 지역 주민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중의학에서 침술의 중요성이랄까 비중은 어느 정도로 보아야 합니까.
“과거 약이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은 벽지에서는 웬만한 질병은 다 침으로 치료했습니다. 그 정도로 비중 있는 치료법이었지요. 특히 관절이나 경락에 관련된 질병 가운데 침 한 방으로 나을 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침을 맞으려 하기보다는 약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갈수록 침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 서양에서는 침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가고 있지요. 제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땐 이름 있는 침의 대가가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대부분 외국에 나가서는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중국보다 오히려 선진외국에서 침을 알아주니까 그대로 눌러앉은 게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아쉬움이 많습니다. 정작 동양의학의 본고장에서 침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사상의학(四象醫學)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인데, 중국 의료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게 원래 중국에서 나온 것 아닌가요.
“사상이론은 중국에서 나온 것으로 압니다만, 그 이론을 사람의 체질에 접맥시킨 것은 동무 이제마 선생입니다. 상당히 획기적인 논리지요. 중국인들도 체질을 그렇게 분류한 것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중국에는 사상의학이라는 건 없습니다. 단지 사상의 개념만 있을 뿐이죠. 지금 옌볜지역에 사상의학으로 치료하는 병원이 있기는 합니다. 의사가 조선족 동포로 이제마의 수제자였다는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온 중국 교과서를 보니까 놀랍게도 체질의학이 들어 있더군요. 그전에도 중국에 나름대로 체질의학이란 게 있었습니다만, 비중이 크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한의학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中·西醫 결합 체계의 장점
-암을 비롯해 불치병으로 알려진 질병에 대해서는 중의의 치료술이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습니까.
“저도 임상에서 암환자를 많이 대합니다만, 간암이나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아요. 최근 제가 치료하고 있는 한 암환자는 병원에서 두 주일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통고를 받고 나서 저를 찾아왔는데, 지금 4개월째 살고 있습니다. 이 분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지만, 항암제 치료는 전혀 못한 채 순전히 중약(中藥)으로만 지금까지 생존해오고 있습니다. 완전치료는 어렵다 해도 생명연장에 중약이 상당한 효과를 보이는 것 같아요. 중국에는 순전히 중약만을 가지고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환자가 꽤 여럿 찾아옵니다. 아무래도 효과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완치된 사람으로부터 소개받고 왔다는 사람이 꽤 많더라고요. 물론 그 의사가 암환자를 100% 다 치료하는 건 아니지만, 일반 병원에 비해서 치료율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죠. 과연 어떤 원리로 암을 치료하는가를 밝혀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결과적으로 효과가 상당히 좋은 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암 이외에 완치가 어려운 피부병이라던가 자궁병, 위장병도 중약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난치병에 대해 중의 쪽에서는 서양의학과 전혀 다르게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간단하게 원인제거를 해서 치료하는 경우도 있죠. 중국에서 전통의학으로 암이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의사를 여럿 만나봤는데, 시안(西安)이나 산시성(山西省) 쪽에 특히 그런 의사가 많아요. 어떤 분은 서양의학과 중의학을 결합해서 치료하고, 또 어떤 분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처방을 가지고 치료하는데, 아무래도 후자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안 되니까 이런 분들을 찾아가는 암환자도 많지요.”
-성인병에 대한 중의학의 연구나 치료 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요.
“성인병이라면 기본적으로 고혈압과 당뇨, 심장병을 말하는데, 대부분 발병의 주원인은 혈액에 있다고 봅니다. 즉 혈액이 탁해질 때,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고 그러다 보면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게 고혈압이죠. 혈압이 높으면 신진대사의 균형이 깨지면서 신장이나 간 등에 병변이 나타납니다. 서양의학에서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면 혈액이 탁하다고 합니다만, 중의에서는 혈액이 흐르는 속도가 늦어도 탁해지는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혈액이 탁해져 성인병이 발생하는 것이라면 혈액을 맑게 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지요.
서의에서도 혈액을 맑게 하는 약이 더러 있습니다만, 중약(한약)에서는 화담제(火痰劑)라고 해서 담을 삭히는 약, 어혈을 풀어주는 약들이 모두 성인병 치료에 쓰입니다. 이런 약들이 기본적으로 피를 맑게 해주는 것이지요. 최근 들어 한국에서 상황버섯이나 차가버섯 같은 일종의 보조약들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도 피를 맑게 하는 약효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버섯들이 항암작용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바로 피를 맑게 해주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항암력을 발휘한다는 의미입니다. 버섯 종류는 대부분 피를 맑게 해줍니다. 중국에는 버섯 종류 말고도 화담을 삭혀주는 약이 매우 많아 성인병 치료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중의약에 의한 성인병 치료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즘은 중의에서도 과학적인 의료장비가 많이 활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중국에서는 중서의(中西醫) 결합 체계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중의에서도 서양의학에서 개발된 의료장비들이 자주 이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의사가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할 때는 피검사나 초음파검사 결과를 보고 합니다. 치료는 탕약으로 하더라도 진단과정에서는 의료장비를 활용한다는 것이지요. 기공의 치료효과에 대해서도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고 과학적인 장비를 동원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서의 결합의 정도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한국에서도 요즘 한의원에 가면 병원에서 쓰는 의료장비들을 볼 수 있지만, 아직 중국처럼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한의원과 큰 병원이 협진을 한다면 이런 문제는 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서의 결합을 말씀하셨는데요. 의료장비를 사용하는 것 외에 중의와 서의가 결합된 진료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얼마 전 한국에서 환자 한 사람을 두고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고, 약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방식은 서로 시각이 다른 두 의사가 함께 치료하는 형식이죠. 반면, 중국에서는 의사 한 사람의 사고에서 다양한 치료법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에 대해 약을 쓸 건가 침을 쓸 건가, 아니면 안마를 할 건가를 한 사람이 판단한다는 겁니다.
중국의 중서의 결합 시스템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중의 서의 양쪽을 겸한 사람으로부터 상당히 깊이 있는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식의 진료가 가능한 것은 중의약대 커리큘럼에 서양의학 과목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의약대를 졸업하고 병원에 들어가 중의외과에서 근무하게 된다면 치질 같은 외과수술도 합니다. 소독이나 살균도 서의에서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하고, 수술한 뒤에 주사 놓고 항생제를 주는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수술후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탕약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일반 의과대학생들은 중의학을 배우지 않지만 중의약대생들은 서양의학도 함께 배우기 때문에 중서의 결합 진료가 가능한 것이지요.”
김 박사는 요즘 ‘베이징의 허준’이라고 불린다.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씨가 베스트셀러 ‘중국견문록’에서 김 박사를 그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박사는 유학생 시절부터 베이징의 한국인들을 무료로 진료해주고 있어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한비야씨도 베이징 유학중에 김 박사에게 신세를 졌고 그 인술에 감동해서 저서에 그런 찬사를 늘어놓게 됐던 것. ‘베이징의 허준’에게 중국의 이른바 명의(名醫)에 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또 신묘하기 짝없는 비방(秘方)의 내막도 캐물었다.
현대의 명의들
-현재 중의약계에서 명의라고 일컬을 만한 뛰어난 의사가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도 4대 명의니 10대 명의니 하는데, 정말 대단한 분이 많아요. 이들은 대개 의대 교수나 일반병원의 의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명의를 소개하면, 소아과에 류비천(劉必陳)이라는 의사가 있습니다. 이분은 항간에서 아동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이 관련 질병을 정말로 잘 봅니다. 내과분야에서는 임상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체계까지 정리해 내과 교과서를 만든 퉁젠화(董建華)라는 명의가 있었는데, 최근 작고하셨습니다. 또 류두저우(劉度舟)도 명의로 알려져 있는데, 이분은 기초보다는 임상체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중의학 분야의 임상에 관한 책은 거의 다 이 사람이 썼을 정도로 명성이 높습니다.
중국에서는 중의사도 첨단 의료장비들을 진료에 활용한다.
물론 명의 가운데에는 이런 분들처럼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질병에 관한 치료법을 전수받아 뛰어난 치료효과를 보이는 분도 있고, 청나라 때 어의(御醫)의 후손이나 제자가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다시 명의로 떠오른 경우도 있어요.”
-중국 최고지도층 인사들의 주치의는 서의, 그러니까 일반 의사가 맡고 있습니까 아니면 중의사가 맡고 있습니까.
“대부분 서의가 맡고 있다고 봐야 할 거예요. 예를 들어서 베이징에 협화병원이라는, 진료비가 상당히 비싼 병원이 있는데요. 이곳의 의사들이 최고지도층 인사들의 진료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의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덩샤오핑의 말년 무렵 수시로 사망설이 나돌았지만 결국은 1997년에 93세로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덩샤오핑의 장수비결과 관련해 중국 최고의 의료진이 온갖 의술을 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말들이 떠돌았습니다만, 실상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당시 12명의 기공사가 덩샤오핑에게 계속 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연장시켰다는 소문이 있었지요. 아무튼 현대의술뿐 아니라 중국의 독특한 의술이 총동원돼 생명이 연장될 수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봅니다. 덩샤오핑이 장수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동충하초를 많이 복용한 데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때 동충하초 가격이 폭등했지요. 지금은 일본사람들이 싹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동충하초를 대량으로 사간다고 하더군요.”
비방(秘方)은 실재하는가
-중의학 하면 이른바 비방이 떠오르는데요. 실제로 특정 질병에 특별한 효험을 보이는 그런 비밀스런 처방이 있습니까.
“제가 중의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비방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보통 병증을 분별하는 변증(辨證)을 통해서 처방하기 때문에 의사 개개인의 처방이 각기 다르고 치료법도 다릅니다. 이에 반해 이른바 비방을 보면 처방, 그러니까 약은 고정돼 있고 거기에다가 병을 대입시키는 식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저는 비방이란 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나가는 동안 다른 병은 하나도 볼 줄 모르지만 어느 한 가지 병에 대해서는 진맥도 안 하고 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약만 써서 병을 완치시키는 사람들을 목격하게 됐어요. 그게 바로 비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무슨 약을 썼는지는 당사자 외엔 아무도 모릅니다만,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제가 중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보았는데, 비방을 쓰는 의사가 구석구석에 상당히 많더군요. 이들은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않았고 의사 면허도 없이 그냥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비방으로 평생 동안 환자를 치료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례들을 수없이 목격하면서 저는 비방이란 게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비방은 약재를 임신부의 배꼽 밑에 붙이면 대부분 원하는 성별의 아기를 낳는다고 합니다. 임신하고 한 달 안에 이 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요. 현대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적중률이 높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거든요. 또 화상을 입었을 때 치료효과가 기막힌 비방을 가진 사람도 봤습니다. 어떤 화상환자든 비방으로 만든 약을 바르면 새살이 돋아나 완치율이 아주 높다는 겁니다.”
-그 비방들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래서 그 실체를 파악해보려고 비방으로 소문난 분들을 찾아가 물어봤습니다만, 그렇게 쉽게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대개가 누구한테도 비방을 알려주지 않는다, 절대로 안 된다, 오로지 장남한테만 전해준다는 식입니다. 그것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아니라 주로 구전으로 알려주어 남이 알 수 없게 한다는 것이지요.”
-중의약대학의 교수들은 그런 비방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교수들은 모두 그런 건 없다고 하지요. 정통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비방은 없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대학교수들은 콧방귀 뀌듯 단정적으로 없다고 말하죠. 그러나 제가 실제로 중국을 돌아다녀본 바에 따르면 그런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비방의 구체적인 사례들
-실제로 목격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화상치료를 잘한다고 소문난 분을 베이징 근교로 찾아간 적이 있어요. 쇠창살 문 앞을 송아지만한 개가 지키고 있더군요. 의사를 만나 중의약대학에 다니고 이러이러한 공부를 하는 사람인데 좀 물어보고 싶다 했더니 한마디로 그냥 돌아가라는 거예요. 돌아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찾아갔더니 자네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오는데 절대 만나지 않는다며 치료장면도 보여주지 않더라구요.
마침 치료받고 나오는 환자가 있어 환부를 볼 수 있었는데, 무슨 약을 바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 환자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씩 약만 발라준다고 하더군요. 새살이 거의 다 돋아난 상태였어요. 웬만한 화상은 세 번만 바르면 다 낫는다는 거예요. 3도 화상 같은 경우는 근육까지 익어서 살이 짓무르면 치료가 불가능한데, 정말 새살이 돋아나고 흉터도 별로 없을 정도로 치료효과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중국 중의연구원에서 운영하는 서원병원이 백혈병 치료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만, 이 병원의 혈액과 주임의사가 이른바 비방을 전수받은 사람이에요. 어떻게 비방을 전수받았는가 하면, 옛날에 베이징 근처에 백혈병 치료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중의연구원에서 사람을 파견해서 치료법을 전수받도록 했다는 겁니다. 처음엔 이 할아버지가 전수를 거부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전수받을 수 있었고, 비방을 전수받은 이 의사는 자기 약국을 따로 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비방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한두 가지만 더 소개해주시지요.
“산둥성 리뎬(李店)이라는 동네에 가니까 비방으로 만든 고약을 가지고 300여년간 대대로 의업을 꾸려온 집안이 있더군요. 마침 그 집의 아들이 중의약대학을 졸업해 얘기가 잘 통했습니다. 이 집의 비방은 골절시 뼈가 잘 붙고 후유증이 전혀 없는 고약이었어요. 보통 골절이 되면 치료를 해서 뼈가 다 봉합됐어도 날 궂으면 쑤시고 아프거든요. 조직에 어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병원이라고 하기도 뭐한 아주 허름한 집에 엑스레이 기계가 한 대 놓여 있는데, 환자가 오면 먼저 골절부위를 찍어 봅니다. 그리고 나서는 골절부위를 딱 맞추고 고약을 그 위에 붙인 뒤 석고가 아닌 딱딱한 나무를 대고 붕대를 감아주는 겁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약을 갈아주는데 세 번만 갈아주면 완전히 낫는다고 하더군요. 물론 어혈 같은 후유증도 없이 말입니다.
또 간염만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비방도 있습니다. 산둥성 시골의 할아버지 의사였는데, 이분은 1년에 간염환자 300여명을 본다고 합니다. 지금 서의에서건 중의에서건 B형 간염이 불치병의 하나입니다. 간경화나 간암의 90%가 B형 간염에서 비롯되죠.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보균상태의 간염환자를 치료하시더군요. 이 할아버지 역시 처방전 대신 약을 주는데, 제가 이 약을 입수해 분석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어떤 약재인지를 알아낼 수 있었지만 가루로 된 두 가지 약재는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무궁무진한 약재의 세계
중국에서는 중의학이란 말과 함께 중의약이란 표현도 자주 쓰인다. 그래서 대학도 중의학대학이 아니라 중의약대학이다. 그만큼 중국의 전통의학에서 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의원을 찾아가면 결국은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 한약을 지어 먹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중국에서도 탕약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나오는 약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중국은 땅이 넓어 그만큼 물산도 풍부한데요. 중의학에서 쓰는 약재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합니까.
“중의학 교과서엔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재 484가지가 나옵니다. 이외에도 각 지역에서 쓰이는 이런저런 약재들을 합하면 무수히 많다고 봐야죠.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식물성 약재만 해도 꽃과 열매, 잎, 껍질, 뿌리 등이 필요에 따라 각기 요긴한 약재가 됩니다. 광물성으로는 주사 우황 자석 석영 등 나름대로 독특한 효능을 가진 약재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생태계의 모든 것을 약재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중에서도 약효가 뛰어난 귀한 약재나 비싼 약재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중풍에 가장 좋은 게 사향(麝香)입니다. 특히 네팔에서 나오는 사향이 효험이 크다고 알려졌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고 대신 러시아산이 흔합니다. 당연히 값이 비싸고 가짜가 많습니다. 중국 의사들도 사향 같은 귀한 약재는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실제로 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또 간경화나 간암 타박상 등에는 웅담(熊膽)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만, 이것도 구하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원담, 그러니까 웅담 그 자체를 구하기 힘드니까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사육하는 곰에서 추출한 웅담을 많이 씁니다. 산삼은 중국에서도 최고의 영약으로 알아줍니다. 특히 지리산이나 설악산 것을 최고로 칩니다. 산삼은 기를 보하는 데 대단한 효과가 있어서 예를 들어 암으로 인해 기가 아주 쇠해졌을 때 복용하면 상당히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서각(犀角)이라는 게 있는데, 코뿔소의 뿔을 말합니다. 코뿔소 이마에 커다란 뿔이 하나 있고 그 뒤에 움팍하게 생긴 작은 뿔이 돋아 있어요. 그게 바로 서각입니다. 서각은 모든 열증에 좋습니다. 중풍도 간에 열이 치받아서 생긴 것이므로 서각을 쓰면 좋고, 세균에 감염돼서 고열이 나는 경우에도 서각의 가루를 내서 복용하면 바로 열이 떨어집니다. 서각도 상당히 비쌉니다. 명청시기 중국의 황궁에서는 서각으로 술잔을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에 도수가 높은 백주(배갈)를 따르면 술맛이 순해진다는 겁니다. 서각이 알코올의 열 성분을 다 분해해버리기 때문이지요.”
동충하초의 신비
-말씀을 듣고 보니까 대부분 동물성 약재들이 귀하기도 하고 약효가 뛰어난 것 같군요.
“그렇습니다. 동물성 약재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호골(虎骨), 즉 호랑이의 뼈입니다. 호랑이뼈는 관절염에 특효입니다. 바이러스로 감염되는 각종 류머티스는 현대의학에서 불치병으로 봅니다만, 호골을 쓰면 낫습니다. 뿐만 아니라 호랑이는 어느 부위를 막론하고 모두가 훌륭한 약재입니다. 심지어 호랑이의 변도 술 끊는 데 명약이라고 합니다. 호랑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한 가지를 소개해볼까요. 제가 동북지역에 갔을 때 일입니다. 식사를 함께한 중국친구가 수첩을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이를 쑤시는 겁니다. 바로 호랑이 수염으로 만든 이쑤시개로 할아버지 때부터 대물림한 것이라고 해요. 그러면서 자기 집안에는 대대로 충치가 없다며 자랑을 하더군요. 호랑이는 정말 뼈부터 시작해서 털 기름 등등 몸 전체가 좋은 약재입니다.”
-앞에서 덩샤오핑이 동충하초를 복용했다고 해서 한때 동충하초 붐이 일었다고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동충하초 산지로 유명한 티베트 지역을 일부러 가봤습니다. 동충하초는 해발 4500m 이상 고산지대에서만 살거든요. 가서 보니까 사람들이 동충하초를 잡는다고 모두 초원에 누워 있어요. 모로 누워서 풀숲을 주시하다가 움직이는 동충하초를 잡는 것이지요. 이 벌레는 얼른 보면 풀과 매우 흡사해서 찾아내기가 힘듭니다.
동충하초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런 겁니다. 동충하초는 겨울철에 애벌레 상태로 있다가 여름에 나방이 되려고 할 때 이 벌레의 머리에서 포자가 발아합니다. 이 포자는 애벌레의 진액을 먹고 자라나는데 일종의 버섯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애벌레는 서서히 말라죽지요. 버섯이 애벌레의 양분을 적당히 빨아먹었을 때 잡아서 말린 것이 바로 동충하초입니다.
동충하초는 보(補)해주는 약재로 특히 폐와 신장에 좋은데, 이 성분이 암세포는 피하고 정상세포에만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환자가 기력이 떨어졌을 때 동충하초를 씁니다. 암환자에게 보약을 쓰면 오히려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상세포뿐 아니라 암세포도 함께 보해주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이 한약을 잘못 먹으면 간경화가 된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요. 아무튼 동충하초는 암환자에게 특효가 있는 보약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동충하초는 티베트에서만 나옵니까.
“티베트와 칭하이성(靑海省), 쓰촨성(四川省) 북부의 고산지대에서만 나오고 저지대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또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귀할 수밖에 없지요.”
환경오염과 약재의 효능
-중의에서 쓰는 약재로는 역시 식물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식물성 약재로서 약효가 뛰어난 것 가운데 홍경천(紅景天)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도 고산지대에서만 자랍니다. 제가 티베트에 가서 보니까 홍경천이 널려 있더라고요. 홍경천은 관절에 좋고, 간장과 신장 기능을 강화시키는 데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에서는 마라톤 선수들에게 홍경천을 복용시켰다고 해서 유명해졌지요. 설련화(雪連花)라는 약재도 티베트의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데, 관절염과 부인병에 특효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영지도 특별한 약재에 해당되는데, 비슷한 것으로 고산지대에서 나는 설령지(雪靈芝)라는 게 있습니다. 류머티스 관절염에 아주 좋다고 합니다.”
-강이나 바다 쪽에서 나오는 약재는 없나요.
“한국에서는 거의 안 씁니다만 해마나 해룡 같은 것이 있어요. 해마의 경우 정력제로 비아그라보다 효과가 더 좋다고 해서 요즘 포획이 성행하고 있다더군요. 간에 좋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광물질로는 용골이 유명합니다. 옛날에 후난성(湖南省)인가에 한 의사가 있었는데 치료를 잘해 항상 문전성시였다고 해요. 그런데 아무에게도 그 비결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양반이 며칠에 한번씩 밤에 슬며시 어딘가를 갖다 오는 걸 알고 누군가가 어느 날 몰래 따라가 보니까 무언가를 캐오더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용골이라는 것인데, 공룡화석으로 보면 됩니다. 이 용골은 신경안정제의 효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삼의 경우 한국산을 최고로 치지 않습니까. 농산물도 중국에서 수입한 것보다는 국산을 더 상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고요. 한약재의 경우 어느 나라의 것을 품질이 우수하다고 보고 있나요.
“드라마 ‘허준’을 보면 청나라에서 약재를 밀수하다가 걸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옛날부터 우리가 중국의 약재를 많이 수입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 것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가져다 쓰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계피는 발한제로 좋은 약이지만 중국 남방에서만 나옵니다. 감초는 중국 남방에서는 나지 않고 간쑤성(甘肅省), 내몽골 등지의 고온건조한 지역에서 나는 것이 당도도 높고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어릴 때 제가 살던 동네에서도 감초를 재배했는데, 전부 망하더라고요. 당도가 떨어지고 비린 맛이 나서 인정받지 못한 때문이지요. 인삼이나 산삼은 역시 한국산이 가장 효과가 좋으니까 그걸 쓰려고 하는 겁니다. 결국 어느 나라 한약재가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토양이나 기후가 각기 다르므로 각 지역마다 독특한 약효를 지닌 약재들이 나온다고 봐야죠.”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약재의 효능이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약재는 원래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순수한 성분을 충분히 함축한 것이 약효가 좋습니다. 재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약효가 떨어집니다. 산삼을 집에서 재배하면 본래의 약효가 안 나오거든요. 그러나 자연산을 많이 취할 수 없어 재배를 하는 것이지요. 지금 중국에서 대형 약재시장의 주변지역이 모두 약재 재배단지로 바뀌었어요. 경우에 따라서는 농약도 쓰겠지요.
문제는 이렇게 재배한 약재에 과연 약효가 있겠냐는 점인데, 저는 이렇게 봅니다. 식물은 환경조건이 맞지 않으면 거기에 맞춰 적응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산성비가 내린다 해도 식물은 나름의 변화과정을 거쳐 살아남습니다. 특히 다년생 풀은 스스로 환경조건에 맞춰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영역을 형성하기 때문에 극도로 오염된 상황이 아니라면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재배할 때 특별하게 농약을 많이 사용하거나 수입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환경에서라면 그동안 다소 환경오염이 됐다고 해도 약재의 효과에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금 중국의 약재시장 주변지역에서 약재들을 재배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느 정도로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중국에서 나오는 약재들은 대부분 대량 재배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워낙 수요량이 많아 모두 충당하려면 야생에서 채취하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거든요. 베이징에서 가까운 곳에 허베이성(河北省) 안궈(安國)라는 도시가 있어요. 그곳에 아주 큰 약재도매시장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나는 웬만한 약재는 모두 거래하고 있는데, 그곳 일대가 온통 약재 재배단지예요. 안궈시 자체가 약재를 재배하고 도매해 먹고 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약재시장이 중국에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중국약재도 그런 곳에서 수출하는 것인가요.
“중국 전역에 이런 약재시장이 대략 30여개가 넘습니다. 서울의 경동시장 한약업사들도 모두 여기서 수입해가고 있지요. 저도 약재 조사를 하러 자주 찾아갑니다만, 한국 상인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중국 약재시장에 큰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일종의 비리라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제약회사에서 약을 만들 때 보통 증기로 쪄서 약성분을 추출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한번 추출한 약재를 다시 가공해서 판다는 겁니다. 이런 경우 겉으로 보면 약재가 깨끗하고 좋은데, 가격이 의외로 쌉니다. 이렇게 한번 우려낸 것을 재포장한 약재가 꽤 많습니다.”
중국의 의학교육 체제
현재 중국에서 중의학을 공부하는 한국유학생은 줄잡아 수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들 중의학 전공유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의사시험에 응시할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중국의 의학교육 실태와 한국유학생 문제의 내막에 대해 물어보았다.
상하이중의약대 교정에 세워진 허준 선생의 동상.
-중국의 의학교육 체제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우선 정규대학이 있고, 다(大專)이라고 하는 전문대와 독학과정인 쯔쉐(自學)가 있습니다. 정규대학은 일반 의과대학과 중의약대가 있는데, 이중 중의약대는 각 성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모두 30여개 가량 될 겁니다. 정규 중의약대는 원래 5년제였다가 최근 6년제로 바뀌었어요. 예과과정 2년과 본과 4년 해서 6년이니까 한국과 똑같죠. 아까 중의약대에서는 서양의학 과목도 배운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먼저 학부에서 중의학에 관한 기초과목을 배운 뒤 서양의학의 기초과목인 생리학 병리학 해부학 등을 공부하고 임상과목도 이수하게 됩니다.
학부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올라가면 연구생이라고 합니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먼저 1년간 기초이론 수업을 마친 뒤 2년간 병원에 나가 임상근무를 하는데, 이때 자기 환자를 관리하면서 논문을 씁니다. 박사과정도 임상의 경우는 비슷합니다. 기간도 석사 때처럼 3년이지요. 박사과정이 끝나면 박사후과정을 밟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중의약대학에 들어가서 박사가 되기까지는 12년이 걸리는 셈입니다.”
-중의사가 되려면 면허시험에 합격해야겠지요.
“정규대학 졸업자의 경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면 중의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전문대의 경우는 졸업 후 소정의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바로 의사가 될 수 없고 의사보조 생활을 거쳐야 합니다. 독학을 한 사람도 중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하면 의사가 될 수는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의사인 아버지로부터 배워 의술은 아주 뛰어난데 정규대학 공부를 안해 아직 정식 의사 노릇을 못한 채 보조역할만 하고 있어요. 의사면허 시험을 보라고 권해도 선뜻 응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아무튼 중국에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베이징중의약대의 경우 교수나 학생들의 학습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마치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어요. 오전수업 4시간, 오후수업 4시간으로 한마디로 강행군입니다. 완전히 고등학생이에요. 명색이 대학이라지만 한국의 대학에서 흔한 축제도 없습니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데, 첫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거예요. 어떤 교수는 자기 이름 소개도 안 하고 진도부터 나갑니다. 그래서 한번은 첫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 성함이 뭡니까’ 하고 물으니까 그냥 칠판에 이름만 쓰고 나가더라고요. 물론 수업시간에 농담도 거의 없어요.
왜 이렇게 분위기가 타이트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바로 평가제도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는 학생이 교수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거든요. 한번은 어떤 교수가 모친상을 당해 이틀간 결강을 했는데, 중국 학생이 학교측에 투서를 했어요. 결국 이 교수는 일요일에 보충수업을 해야 했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수업을 못했는데, 정말 너무한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한 시간이라도 빠지게 되면 꼭 보충수업을 해요. 게다가 학생들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니까 학교 안에서 수업하고 먹고 자고 다시 수업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겁니다.”
중의학 전공 유학생 실태
-한국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하는데 중국에서는 어떤가요.
“중국에서 중의약대의 수준은 한국처럼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의사 월급이 그리 많지 않고 돈을 벌기도 힘들기 때문이죠.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의는 수술을 한다든가 양약을 처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인센티브가 있는 데 비해 중의 쪽은 별로 없거든요. 그 까닭인지 젊은 중의사들의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한국유학생은 어느 대학에 얼마나 있습니까.
“중국 전체에 걸쳐 많습니다만, 역시 베이징중의약대에 가장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하이나 난징 톈진 등 웬만한 지역의 중의약대에는 한국유학생이 다 있어요. 창춘, 하얼빈 등지에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할 때는 중의과 50명, 침구과 50명 해서 100명을 모집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숫자가 꽤 늘어났습니다. 중의과와 침구과 외에 안마과, 간호학과, 기본과 등이 있는데 한국학생들은 주로 중의과나 침구과를 택합니다.”
-중의학을 공부하러 오는 한국 유학생들은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옵니까, 아니면 대학을 졸업하고 옵니까.
“제가 처음 유학 왔을 때 28세였는데 유학생들 중에서 중간이었어요. 유학생의 나이와 학업 정도는 천차만별이에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친구부터 군대 제대하고 온 친구, 교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온 사람, 미국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고 대기업 이사까지 지낸 분도 있었으니까요.”
-한국유학생이 중의학을 전공하려면 중국어뿐 아니라 어려운 한문도 능숙해야 하지 않습니까. 언어와 문자의 장벽이 다른 분야보다도 훨씬 높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중의약대학에 입학하려면 일단 중국어의 토익이라 할 한어수평고시(HSK)에서 6급 이상을 따야 됩니다. 기본적인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지적하신 것처럼 고문실력입니다. 특히 의학에 관한 고전인 의고문(醫古文)은 정말 두손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중국인들도 어렵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니 한국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죠. 중의학의 4대 경전이라고 일컫는 내경이나 상한론뿐 아니라 여기서 더 깊이 공부하려면 고서들을 많이 찾아서 읽고 연구해야 하니까 고문실력이 중요합니다.”
-한국학생의 경우 중의약대학에서 탈락하지 않고 제대로 공부를 마치는 비율이 대개 어느 정도입니까.
“그나마 한국학생은 성적이 좋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할 때 100명 정도 들어왔는데 무사히 졸업한 사람이 49명일 겁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릅니다만 유학생 1기 졸업생은 그런 정도였습니다.”
-유학생들이 중의사 자격을 얻으려면 어떤 시험을 봐야 합니까.
“중의약대 5년과정을 졸업하고 1년의 인턴과정을 거친 후에, 중의사면허시험을 봐야 합니다. 이 면허시험이 중국인도 우수수 떨어질 정도로 어렵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의사시험 볼 자격을 준 게 올해까지 쳐서 세 번째입니다. 실기와 필기시험이 있는데, 실기시험도 대충 보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로 나눠서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증상을 하나 주고 이에 대한 기록부터 시작해서 진단은 무엇이고, 변증은 어떻게 하며,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한 시간 내에 써내야 됩니다. 그 다음에 구술시험을 보는데, 심장병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하면 줄줄이 다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서양의술과도 관련되는 예컨대 심장압박술이라든가 수술시 무균조작법 같은 것을 구술하라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다 통과한 사람만이 필기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필기시험은 실기시험보다 더 어려워서 1, 2차 시험에서 각각 60점을 넘어야 합니다. 제 경우는 필기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한 해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한의사 면허시험 불허 배경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하면 한국처럼 개인적으로 개업할 수도 있습니까.
“면허시험에 합격하면 병원 취업은 할 수 있지만 개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병원 개업은 중의학 분야에 크게 공헌한 퇴직 원로들에게나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학생으로 면허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베이징대의 경우 지난해 9명이 합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중의약대를 졸업한 한국유학생에 대해 한국내에서 한의사면허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주지 않고 있어 그동안 문제가 되어오지 않았습니까. 현재 이들 유학생은 귀국 후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막막하죠. 최근 들어 한의사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시험인 예비고사제도가 생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귀국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방법이 없는 실정입니다. 저희 동기생들이나 후배들 가운데 이곳서 석·박사까지 하는 경우는 얼마 안 되고 대개 제약회사에 취업한다든가 경동시장에서 일을 합니다. 아예 전업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 중국어학원 강사나 무역업에 종사하는 등 정말 다양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여기 중국내 병원에 취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보수가 너무 적어요.”
-중의약대 유학생 출신에 대해 국내 한의사면허시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실력 면에서 볼 때 유학생 출신이 국내 한의과대학 나온 사람과 겨루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한의대 입학하기가 무척 어렵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중국유학은 쉽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똑같은 자격을 주기에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겠지요.
물론 공식적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의 수업연한이 5년인 데 비해 한국은 6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면허자격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도 이제는 근거가 희박해졌어요. 중의약대도 1년의 인턴과정을 추가해서 6년제로 바뀌었고, 또 중국의 중의사면허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어쨌든 수많은 유학생이 중국에 와서 공부를 하고도 국내에서 발붙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낭비라고 볼 수 있어요. 중의약대에 인턴과정이 추가된 것도 중국측이 이런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만, 어쨌거나 이 문제는 빠른 시일 내에 합리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상대 진료활동
미국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침술을 합법적인 의료술로 받아들였고 중약을 보건품으로 인정했다. 그런가 하면 유럽이나 남미의 의사들이 중의학을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몰려든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자신들의 의술의 한계를 깨닫고, 동양의술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읽혀진다. 이러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중의약대 유학생의 국내 진출이 막혀 있는 우리 현실이 세계적 추세와는 달리 너무 폐쇄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의 개인적 포부를 들어보았다.
-이제 중의학에 입문한 지 12년이 됐는데, 그 사이에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자격도 얻었으니 하나의 매듭을 지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위해 무료 진료활동을 벌여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아직은 한국에서 활동할 여건이 안돼 있으니까 당분간 중국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무료진료활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베이징중의약대 학생시절부터 한국인을 상대로 진료를 해온 지 어언 10년이 넘습니다. 무료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은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습니다.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도 얻었으니까 말이죠. 설령 한국에서 끝내 개업을 못하게 될지라도 저는 죽을 때까지 진맥을 할 생각입니다. 환자 진맥을 볼 때면 잡념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한편으론 문화혁명 때 정리된 문헌들을 찾아내 연구하는 작업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물론 중국 구석구석에서 비방으로 치료를 하는 특별한 의사들(?)을 찾아가 노하우를 전수받는 작업도 계속해야겠지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동안에는 대륙의 어느 오지라도 찾아다니며 비방을 배우는 일이 저의 숙원사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