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찬양)곡을 선정함에 관한 소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엡 1:7)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속함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엡 1:3~6)함으로 모이는 예배에는 마땅히 주를 높이는 찬양, 행하신 일들에 대한 은혜의 감사가 담긴 찬송이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입은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주께 노래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릅니다.(엡 5:19)
”예배는 도덕적 존재들, 천사와 인간이 창조주이시고, 구세주이시며, 완성자이신 하나님께 그 분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계신 영원한 하나님이심과 그분이 창조와 구속에서 하셨던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완성에서 하실 것에 대해 합당하고 적절하게 그리고 기쁘게 응답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예배예전, 조나단 깁슨/마크 언지, p.13, CLC)
이러한 노래를 부를 때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부르는 내용과 가사의 중요성입니다. 오늘날 찬양으로 섬기는 단체 혹은 개인 등 고백되는 찬양이나 찬송의 가사를 살펴보면 지나칠만큼 감성적이거나 자신의 상황, 너의 모습 등을 묵상하게 하는 곡들 또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곡의 가사들은 사람을 향하게 하고 지금 나의 상황, 나의 모습을 연민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감을 힘입는 은혜가 사라지고 그저 신세를 한탄하거나 푸념하는 정도의 고백이 담겨있는 경우들도 보게 되는 바 이러한 가사들은 주를 높이고 은혜를 고백하는 찬송으로 합당하다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행하신(혹은 베푸신) 일들을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이지 사람을 높이며 묵상하는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생각해보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노래할 때 그 노래의 1) 가사가 말씀에 근거하는 가? 2) 말씀의 올바른 해석 아래 고백 되는 것인가? 3) 주를 높이며 그 행하신 일들이 온전히 담겨져 있는 가? 가 반드시 우선되어야한다 사려됩니다.
만약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예배(찬양, 찬송)곡을 정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자칫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신앙의 고백을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되며,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혹은 해석)에 벗어난 내용을 신앙으로 받아 노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가사의 고백을 통해 잘못된 신앙을 배우고 노래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앞서 언급하였던 바 예배곡 선정에 있어 첫 번째로 고려하는 것은 찬양가사가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는 가?입니다. 보편적으로 찬양, 찬송의 곡에는 대표적 혹은 중심적 고백이 담긴 근거되는 구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고 상고하며 은혜를 입은 구절을 중심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가사를 써내려가기에 그러합니다.
일예로 “비 준비하시니”는 시편 147편의 4~5, 7~9, 12절을 중심으로 하여 인용하고 있으며,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는 시편 23편 1절을, “만왕의 왕 내 주께서”는 이사야 53장 5절을, “이 땅위에 오신”은 빌립보서 2장 6~11절을 중심으로 고백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찬양, 찬송의 고백이 기록된 말씀에 온전히 근거하고 있는 가?를 살펴 상고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살펴 상고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내용, 무엇을 노래하는 지 알지 못한 채 알지 못하는 신에게 노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말씀의 올바른 해석아래 고백되고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찬양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주로 시편의 말씀에 곡조를 붙여 노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크신 주께”는 시편 48편 1~2절, “왕이신 나의 하나님”은 시편 145편 1절, “여호와 우리 주여”는 시편 8편 1~9절, “하나님이시여”는 시편 27편 1절과 63편 1~4절의 말씀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시편 118편 6~7, 14, 28~29절에 곡조를 붙인 곡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의 본문을 가져와 곡조를 붙일 때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해당구절의 문맥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노래 부르기에 편하도록 구절들을 가져와서 본래 문맥이 말하고 있는 말씀의 내용, 의미들을 곡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 본문에는 원수를 대적하며 사망의 구렁에서 건지신 내용이 있는 데, 이러한 내용은 제외하고 모호하게 나의 능력이시오 도움이 되셨다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부분에서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본문을 가져와 곡조를 붙일 때에는 본문의 문맥과 상황을 고려, 어떠한 상황에서 고백되고 있는 가도 함께 살펴 찬양 가사를 충실하게 상고,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그 찬양의 곡에 주를 높이고, 주께서 인생에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 고백이 담겨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높이는 대상, 찬양하는 대상과 함께 왜 찬양, 찬송을 하고 있는 가? 에 대한 은혜의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저 “기뻐해, 감사해“라고 표현이 되면 어느 분에 무엇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찬양에는 누구를 향하여 높이는 지 그 대상과 찬송에는 누가 우리게 어떠한 일을 베푸셨는 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누구를 높이고 무엇을 노래하는 지 알 수 없는 모호하고 두리뭉실한 노래가 됩니다.
일예로 시편 147편에서 기자는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시편 147:7)고백합니다. 여기에는 누구를 향하는 가? 대상이 분명한 데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시편기자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을까요? 그 내용을 이어 기록합니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펴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시편 147:8~9)
시편 기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고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셔서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므로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에 먹을 것을 주신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이것을 우리게 대입하여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땅에서 수고하여 나는 땅의 소산물로 우리에게 먹을 것 주시는, 일용할 양식 공급하심을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찬양에는 높이는 대상, 높이는 이유, 감사함으로 찬송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기록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작으나마 예배(찬양)곡을 선정하고 선곡함에 있어 생각하는 바를 나누어봅니다.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찬양과 찬송으로 섬기는 자리에 있는 믿음의 가족들을 인하여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고 상고하므로 그 기록된 말씀에 근거한 은혜의 고백을 따라 고백 된 노래들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널리 불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죄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사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신 그 은혜를 믿음의 가족들이 감사함으로 고백하며 주를 높이며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노래하는 기쁨이 오직 성경(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에 기록된 그 은혜의 말씀에 충실하기를 바람입니다.
”회중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예배의 한 행위입니다. 이 찬양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하고 그 결과 회중이 자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노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을 세우는 것으로서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하고 가르침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은혜의 수단, 폴 워셔, p.39, 생명의 말씀사)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시편 145:7)
글. 배병두 집사(대구 서문교회 사랑부 교사) 202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