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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1일
10월이 가고 11월이 왔다. 아들과 딸은 학교로 나는 콩나물 국으로 식사를 하고 점심을 준비하여 안산에 올랐다. 날마다 오는 것 같았는데 북한산 산행과 마라톤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일주일 만에 오는가 싶다. 화살처럼 시간이 빠름을 실감하며 산의 정상을 넘었는데 날씨가 쌀쌀하여 땀도 별로 나지 않는다. 바위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밥과 멸치조림 그리고 고추장으로 점심을 먹는 중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낙옆이 가히 장관이다. 오후에 원자력병원으로 가서 어머니 PET 결과에 대하여 상황이 어느 정도이고 치유는 가능한 것인지 우리의 질문에 젊은 여의사는 대꾸도 없이 방사선 치료만 요구한다.
2일 어제 저녁에 거실과 안방에 커튼을 설치해서 그런지 잠을 잘 자고 일어난 나와 달리 허리와 어깨가 아프다는 아내는 잠을 못 잤다고 하소연한다.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아들과 딸의 교육 그리고 몸이 불편하신 청주 장인 어르신까지 걱정이 적지 않지만 하루하루를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위로했다. 식사 후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1학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공부 열심히 하고 그리고 밖에서 턱을 당겨 입을 다물고 당당하게 다니라고 당부했다. 노량진에서 오전수업을 마치고 국회의사당 아래로 내려가 가양대교 근처까지 15킬로 달리고 다시 종로 5가로 이동하여 동영상 강의를 NG도 없이 한 번에 처리했다.
3일 토요일 어제 촬영한 동영상이 메일로 와서 아내와 아들까지 보면서 아침에 점검을 하는데 대체로 만족스러운 강의다. 과거에 MBC생방송 학력고사 해설도 막힘없이 진행한 경험이 있긴한데 앞으로 교재만 잘 준비하면 수준있는 강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오전에 구기동 방향에서 북한산을 9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정각 12시에 정상 대남문에 도달했다.
5분을 다시 걸어 근처에 있는 문수봉 꼭대기에 올라 누워 있다가 문수사에 들어서니 지난주까지 고왔던 단풍이 모두 사라져 황량한 산사로 변해 있고 오후 2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해가 산 봉우리 뒤로 치우쳐 을씨년스럽고 스산하기만 했다. 서둘러 왔던 길로 내려오면서 산 입구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파전과 막걸리를 마시고 돌아왔는데 저녁에 장안동에 사는 대학 친구 정식이가 전세 계약서를 들고 무악재까지 찾아와 보일러 기름값과 아들 일로 50만원을 융통해 달라기에 입금해 주었다.
4일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서 바라보니 안산의 가을 정경이 아름답고 새벽 공기를 마시는 정상에 선 사람들이 보인다. 11시경 홍제천에 나가 월드컵공원 아래까지 마라톤 연습을 하고 음료수 1개를 마시니 상쾌함이 말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홍제천을 걷는 사람들이 많더니 남쪽으로 단풍과 함께 내려갔는지 오늘은 나 혼자 천변의 주인이 된 듯하였다.
집으로 들어가니 아들은 다음 주에 풋살 대회 출전한다고 안산초 운동장에서 점심도 거르고 시간을 보낸다더니 오후에는 엄마와 코엑스까지 가서 자신의 핸드폰을 구입하여 들어온다.
5일 아침식사를 하면서 엊그제 말한 그대로 1개월 정도만 더 다니면 학년이 끝나니 기말고사 준비까지 잘 하라고 당부하니 듣기 싫은 아들의 표정이 나타난다. 노량진 교무실에는 보름 전부터 진행해 온 장기대회 준결승부터 결승까지 오늘 종료가 되어 일찍 결선에 진출한 내가 곽윤근 선생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여 상금을 받았다. 강의를 잘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인데 학원도 떠나는 마지막에 엉뚱하게 장기대회에서 돈을 받다니 우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오늘부터 어머니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어 형이 날마다 요양원에서 원자력병원까지 왕래하는 수고를 하며 일주일마다 치료비용 35만원까지 지불한다
6일 새벽에 일어나 아들에게 줄 차용증을 만들었다. 지난 번 펀드 이야기를 들은 후 아들이 75만원을 월2부 조건으로 나에게 입금을 한 것이다. 정확하게 차용증을 만들어 도장까지 찍어 주면서 누구를 막론하고 금전거래는 이렇게 서류로 남겨야 된다고 일러 주었다. 장모님께서 서울대병원으로 진찰하러 오신다기에 노량진으로 가면서 아내를 시청역에 내려주었다. 나는 오늘이 노량진 마지막 수업이고 예일학원 특강도 종강하니 20여년의 긴 수업이 막을 내리는 홀가분하면서도 아쉬운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인천에서는 203호 상가를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당장 등록세 취득세 2천만원 정도가 필요하고 이래 저래 머리가 복잡하여 양화대교 근처 절두산 성지 아래로 갔다. 차에 싣고 다니는 마라톤 옷을 입고 성산대교와 마포대교 사이를 오고가며 12킬로를 달렸다. 집으로 돌아오니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오신 장모님께서 처제(용구엄마)가 조만간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다며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집만 나서도 걱정인 것이 자식인데 아무리 국제화 시대라지만 여행도 아니고 이민이라니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생이별이나 다름 없는 심정일 것이다. 저녁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이 나의 등도 두드리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시원하고 편안한 밤이었다.
7일 수요일 아침 아들 딸과 식사를 함께 했다. 카레밥을 먹는 아들에게 생선 갈치를 먹여주고 더 힘들다고 눈만 감고 있는 딸한테는 밥까지 직접 먹여 주었다. 오후에 안산으로 올라가 정신없이 걷고 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서니 늦가을 바람으로 떨어진 나뭇잎이 우수수 날린다.
8일 어제 아들이 학교에서 가방과 넥타이 등으로 지적받아 벌을 받았다고 아내가 이야기 한다. 넥타이는 부주의에서 생긴 것이고 가방은 학교 규칙에 위배되는 색깔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좀 독특해 보이려고 하는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그러다보면 교칙에 어긋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처제가 필리핀에 이민을 가서 홈스테이를 구상하는데 오늘 우리집에서 1차 설명회를 갖는다 하고 나는 변함없이 체육관에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동영상 촬영하고 어머니 병원으로 갔다가 방배동에서 영식이와 식사하고 그의 아파트에 차를 두고 택시로 늦게 왔다. 우리 집 화장실에 처음으로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건지 나는 관심도 없지만 적응도 안 될 것같다.
9일 늦게 일어나 누워 있는데 아내가 다가오더니 비데가 물은 잘 나오는데 바람이 안 나온다고 답답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비데를 지금까지 사용해 본적이 없고 작동법도 모르는 나는 물만 잘 나오면 되는 것이지 바람까지 기대하다니 욕심이 많다고 아내를 지적하면서 어차피 나는 사용을 안 할테니 알아서 사용하라고 일렀다. 아침에 홍제천부터 달려 마포대교와 한강대교를 거쳐 노량진방향 다리를 건너고 다시 남쪽 한강변으로 내려가 동작역까지 달려갔다. 내일 하프마라톤 출전이라 연습을 겸하여 차를 가지러 집에서부터 방배동까지 2시간30분을 달려간 것인데 살면서 이런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방배동을 떠나 중앙대 근처에서 화분을 구입하여 오늘 노량진에 학원을 개원하는 김정호 선생을 축하하고 돌아와 저녁에 딸이랑 짬뽕시켜서 먹고 내일 마라톤 출전으로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10일 토요일 메트로마라톤 하프코스 출전날, 10킬로는 여러 번 했지만 하프는 처음이고 물론 아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제도 연습을 했다지만 아들은 잘 달릴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서강대교 아래 출발지에 9시경 도착하니 강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가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잔뜩 음츠린 채 출발하여 50분을 달리자 먼저 반환점을 돌고 나오는 아들이 보이고
함께 손을 마주치며 파이팅을 외쳤다.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지구력과 인내심을 기르고 추억도 만들기 위해 출전시켰는데 오늘의 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종반에 내가 아들을 추월하여 1시간 56분에 들어왔고 아들은 2분 뒤에 골인을 했다. 서대문 풋살대회장으로 바로 이동하여 예선을 통과한 아들 경기를 보는데 마라톤의 영향인지 힘이 빠져 보이고 볼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는 엉성한 모습이다. 4강을 못 넘고 탈락한 동학이를 비롯한 아들팀 5명을 데리고 가서 모두 자장면을 사 주었다.
11일 날마다 열심히 살아가는데 눈을 뜨면 처리할 사항이 많다. 나는 할 일을 메모했다가 가급적 미루지 않고 바로 마무리를 하는 성격이다. 오늘 아내가 모처럼 수업이 없다기에 가을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려고 이야기를 하니 아들이 공부한다며 거절한다. 할 수 없이 아침식사를 하고 보내는데 아들은 텔레비전만 보고 아내는 낮잠만 쿨쿨 잔다. 시간도 아깝고 답답하여 나 혼자 집을 나서 북한산 보국문을 거쳐 칼바위 정상에 서니 오후 2시가 되었다. 칼바위는 진달래가 피던 3월에 또 신록이 우거진 7월에 왔다가 오늘 겨울의 초입 11월에 다시 왔지만 올 때마다 앉을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이 있어 편하고 전망까지 좋은 자리다. 김밥과 계란 그리고 집에서 가져 온 담근 술 한 잔을 하고 다시 정릉에 내려오니 4시가 되었다. 병원으로 가서 어머님 뵙고 돌아오는 종로, 낙엽만 뒹구는 스산한 저녁 거리가 인생의 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12일 선생들과 마라톤을 완주하고 송별식하기로 약속을 한 터라 6명이 동작구청 근처로 가서 대구탕에 소주를 마시며 노량진 생활을 마무리 했다. 신설동 청산학원, 서울역 대일학원, 그리고 노량진 한샘학원(비타에듀학원)까지 공교롭게도 1호선 라인을 따라 20년 긴 시간 강의를 했다. 텅빈 마음으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어머니에게로 가니 간병인이 방사선 치료 후 상처 부위가 작아졌다고 자기 일처럼 좋아한다.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13일 오전에 아내는 건강검진 받으로 가고 나는 안산에 올라 마음을 정리하며 걷는데 가을 낙엽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 있다. 여러 사람과 통화하며 정상을 오르고 집으로 오니 1시가 되어 라면으로 점심을 혼자 먹었다. 건강 검진 받으러 간 아내에게 전화로 결과를 물으니 스트레스로 죽을 병이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농담을 섞어서 말한다. 아들 때문에 그럴 것이니 앞으로는 너무 신경쓰지 말고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위로했다. 오후에 이틀 후 치러지는 수능에 응시하는 조카 진우와 우리 집에서 개인지도 받는 규형이 그리고 영식이 아들 것까지 모두 3개를 사고 약수동으로 가서 김성우 사장을 만났는데 거의 죽을 표정으로 보증을 서 달라고 요청한다. 보증은 친한 사이라도 극히 위험하여 절대 부탁을 해도 안 되지만 들어주어도 안 되는 일이다. 우는 아이 뺨 때리는 격으로 나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거절하며 미안하다고 했는데 명문 경복고와 서강대까지 졸업한 사람이 막다른 어려움에 처하다 보니 뻔뻔해지고 사리판단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갔는데 용구 아빠가 병문안 왔고 청주 집에서 차에 싣고 왔다며 김치를 전달한다. 필리핀 이민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지 수척해 보이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었다. 집에오니 아들은 새우튀김 사다가 고양이처럼 혼자 먹고 있다.
14일 2008년 수능 예비 소집일이다. 아내는 늦게까지 자고 아들을 깨워 밥을 주어 학교에 보내는데 오늘 3교시만 하면 마친다고 설렁설렁 나간다. 장모님께서 서울대병원 진료 때문에 아침에 오셨고 나는 약수동으로 외출했다가 점심때 들어와 라면을 먹었다. 오후에는 안산에 올라 운동을 하고 다시 내려와 영풍문고에 가서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종로 3가에서 차용곤 선배와 옥신각신 했는데 그의 딸이 내일 수능이라고 해서 화를 참고 들어왔다.
15일 대학 수능일이다. 오전에 언어영역이 어렵다는 보도가 나온다. 해마다 수능일은 결투를 하고 판정을 기다리는 초조와 긴장의 심정으로 하루를 보낸다. 평소 가르친 부분이나 내용이 얼마나 근접해서 출제가 되는가 하는 것이 입시를 준비한 우리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아침에 아들은 도서관에 갔는데 집중하여 공부를 잘 할까 염려하고 나는 안산에 올라 땀을 흘리며 정상을 넘었다. 어제 늦게 들어와서 정신이 혼미했는데 11월 중순의 산바람을 쐬니 기분이 상쾌해지고 좋다. 동네 주민이 제주도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귤을 걸으면서 먹어보는데 역시 신선하고 맛이 있다. 3시경 내려와 노량진 고시학원 들렀다가 상가 처리건으로 개봉동에서 시행사 임원들과 해결책을 이야기했다.
16일 수능이 끝나니 정신이 무질서하다. 아무리 개인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강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들이 일찍 학교에 가고 1시간 늦게 등교하는 딸과 식사를 했다. 11시경 어제처럼 안산에 올라 정상을 거쳐 1시에 내려와 고구마로 점심 먹고 동영상 강의를 하러 나섰다. 촬영 후 보니 물이 흐르듯 강의가 잘 되었고 병원으로 가니 어머니께서 박수도 치고 활기가 있어 이중으로 내 마음이 흡족했다. 저녁에 살면서 처음으로 아내가 귀를 청소해 주는데 오늘은 연거푸 기분이 좋은 날이다.
17일 토요일 아들은 밥도 안 먹고 학교에 가고 딸도 이어서 나간다. 오늘은 산악회에서 도봉산에 가는 날인데 나는 산악회도 처음 참석하고 이 곳 등산도 처음이다. 학원에서 함께 근무한 김용 선배가 주축이 되어 있는 단체인데 산행인원이 50여명으로 주로 부산 동아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범산회라는 조직이다. 오늘이 창립일이라고 도봉산 정상 아래 망월암 뒤에서 음식을 준비하여 산신제까지 지낸다. 오후 2시가 지나니 날씨가 추워 음식 먹기도 힘들었지만 더구나 사람들도 생면부지라 어색하고 비까지 와서 정신이 없었다.
18일 올 들어 첫 영하를 기록한 일요일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나는 아침에 늦게까지 자거나 누워 있으면 시간이 아까워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아들이 서대문 도서관에 간다고 해서 태워다 주고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니 밤 10시까지 하겠다며 큰 소리를 친다. 그러더니 금방 전화가 와서 점심이며 저녁까지 밥을 먹어야 하니 돈을 가져 오라고 한다. 12시에 다시 가서 용돈을 주고 병원으로 가서 용구 아빠와 엄마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필리핀에 홈스테이 준비했는데 경험과 자금 부족으로 포기하여 새로운 용기를 줄까하고 내가 부른 것이다. 집으로 오면서 도서관에 가서 아들을 태우고 왔다. 내일은 날씨가 춥다고 아들이 잠바타령을 하기에 내가 입으려고 엊그제 산 것을 보여주니 안 입겠다며 사양한다.
19일 새벽 6시에 일어나 직무적성 교재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들도 일찍 일어나 거실에 나온다. 오늘은 영하 5도로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 하니 아들이 내복을 입고 등교를 한다. 오전에 친구 영식이는 노량진 대성학원을 그만두었다고 전화가 오고 나도 예일학원에 가서 남아 있는 교재와 소지품을 가지고 철수했다. 3시가 지나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기에 주의를 주고 방으로 들어가 기말고사 준비하라고 하니 불만이 가득하다. 나도 답답하여 홍제천으로 나가 7킬로 달리기를 마치니 5시30분인데 초겨울이라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병원에 가서 횡설수설 하시는 어머님 뵙고 8시경 집으로 와서 저녁을 먹는데 비와 함께 첫눈이 펑펑 내린다. 식탁에 있던 딸은 사진을 찍는다고 밥 먹는 것도 잊고 거실을 서성대며 좋아라 한다.
20일 어젯 밤 첫눈으로 아파트 지붕과 안산이 온통 하얗다. 변함없이 찿아오는 계절이 오묘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위세를 자랑하던 나무들도 겨울 앞에서는 모두 숨을 죽인다. 학교 가는 아들이 밥 준비가 늦었다고 큰 소리를 내고 짜증으로 투덜거리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곧바로 아파트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어보니 간신히 차에 탑승하고 학교에 간다. 오전에 노량진으로 가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일전에 오픈한 김정호 학원을 방문하여
먼저 와 있는 나름 입시학원에서 유명한 후배 정지웅 선생도 우연히 만났다. 집으로 와서 눈 덮인 안산을 올라보니 미끄럽고 서북쪽 방향 나무에는 엊그제까지 많던 잎이 하나도 없어 놀라웠다. 산을 돌고 집으로 내려오니 아내는 학생들이 탈락하여 6학년 수업이 없어졌다며 의기소침하여 있다. 가르치다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들어오는 수강생이 있으면 탈락되는 수강생도 있는 법이라고 위로하고 내년에는 광고도 해 줄 것이니 힘내라고 격려했다. 밤 9시에 아들이 들어오는데 키와 목소리가 크고 듬직하여 이제부터 우리 집은 아들 중심이라고 내가 말하니 아내는 벌써라며 놀란다.
21일 일어나니 또 눈이 내려 쌓여 있다. 아침에 떡국으로 식사를 했는데 눈이 와서 그런지 맛이 좋고 아들도 잘 먹고 학교에 간다. 청량리에서 만난 임사장은 나에게 갚을 채무를 자신이 공사대금으로 잡은 인천 상가 대물을 넘기는 동의서를 작성하여 넘겨준다. 오후에 독립문 근처에 사무실을 구할까 다녔는데 마땅한 것이 없고 집에 오니 아들은 아침에 먹던 떡국을 먹고 과학학원으로 가고 아내는 김치 맛을 나의 입맛에 맞춘다며 김장하는 청주에 가는데 잘 될지 의문이다. 병원에서 실력없는 간호사가 주사를 엉터리로 놓아 어머니 손 전체가 멍이 들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22일 아들과 딸에게 식사를 준비하여 먹게 하고 학교에 보냈다. 걱정되는지 아내한테서 새벽부터 전화가 왔지만 어제 미역국도 준비해 둔 터라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늘 대일학원 송년회 예비 모임이라는데 참석 못가고 영식이에게 1억이자 150만원 보냈다. 가까운 사람이나 친구 간에는 금전 거래를 안하는 것이 백번 좋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깨끗하게 처리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된다더니 병원에 가서 어머님를 안고 노래를 불러주니 자존심 강하고 깐깐하신 어머님도 웃으며 좋아하신다. 저녁에 집에 오니 딸만 있고 잠시 후 청주에서 온 아내가 새벽 2시에 일어나 김장을 했다면서 씩씩하게 이야기한다.
23일 새벽에 일어나 직무적성 강의 자료를 만들고 밖을 보니 아직도 어둑하고 비가 올는지 날이 흐리다. 6시40분에 아들이 거실에 나오더니 다시 소파에 눕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1달 후면 방학이고 내일은 토요일 휴일이니 힘내고 일어나 밥 먹고 학교에 가라고 격려했다. 김치콩나물 국으로 식사하고 아들은 학교에 나는 동영상 촬영으로 을지로에 갔다가 강의하고 1시에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후에 아들은 영어과외를 시작하고 딸은 학원에 가고 나는 몸살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누워만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대선이 25일 남았는데 이명박의 BBK사건으로 난리법석이다. 오후에 천둥과 번개까지 치며 저녁까지 비가 많이 내린다
24일 토요일 아침 날이 맑게 개었고 아들과 딸은 도서관에 아내는 논술교실에 나는 집에서 교재 작업으로 이른 아침을 보내다가 10시가 지나 영식이와 도봉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출발했다. 목적지를 오봉으로 잡았는데 방향을 알지 못 해
최정상 자운봉에 나 혼자 도착하게 되었다. 도봉산은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이고 자운봉은 처음 발을 디딘 곳으로 자색 구름이 머문다는 정상이 740미터 입구에서부터 1시간 40분 걸어 올라온 높이다. 마당바위를 거쳐 천축사 방향으로 하산하여 입구 음식점에서 약속한 영식이와 만나 술을 마시고 집에 11시에 들어와 옷을 입은 채 잠을 잤다.
25일 아침에 머리가 멍하고 피곤하다. 산에 가는 것은 좋은데 어제처럼 뒷풀이가 심하면 다음 날 문제다. 앞으로는 혼자 산행을 하면서 여유도 갖고 사색도 하는 편이 좋을 듯하고 가급적 집 근처 산으로 가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석이조의 효과가 될 것같다. 오늘도 11시 지나 또 안산에 올랐다가 1시에 내려와 병원에 가서 어머니 뵙고 시간을 보내는데 간병인이 나보고 효자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손을 저으며 자식의 도리를 못해서 이제라도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불효자라고 응수했다. 저녁에 청주에서 가져온 김치가 싱거워 고등어를 넣고 조림을 하니 맛이 살아난다.
26일 아침식사를 마친 아들이 인사는커녕 말 한마디 없이 나가기에 화가나 있는데 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 아들이 유럽에서 가져온 유리컵을 깼다고 말한다. 튼튼한 유리컵이 깨진 것과 불만이 가득한 아들과 어제부터 무슨 연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오후에 을지로 촬영을 마치고 병원에 가서 어머님을 뵈니 상했던 기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27일 새벽 2시에 잠이 들었다가 4시에 일어나 교재를 작성했다. 직무적성 교재는 주로 대학을 졸업한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또한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와 중복이 없어야 해서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머리가 복잡하여 아침식사 하고 북한산에 오르려다가 차를 돌려 면목동과 상봉동에 위치한 용마산으로 갔다. 계단을 올라 1시간을 걸으니 구의동 아차산 경계지점, 온달장군의 유적을 돌고 내려오니 3시가 지났다. 병원에 가서 어머님께 신발까지 신기고 걷기를 시도하니 어제보다 더 가볍게 발을 디딘다. 작은 형수는 아들의 효성이 어머니를 살렸다고 칭찬하는데 정말이지 기적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학원도 그만두고 투자업도 신통치 않아 고민이 많은 요즈음인데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근심과 걱정이 전혀 없으니 母子간 마음의 정도와 거리는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28일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동영상 강의 준비하고 문제를 일일이 만들면서 교재를 엮는 시간이 오래 걸려 아침시간까지 이용했다. 오전에 영어로 유명한 김세현 선생이 전화가 와서 1억원의 차용을 부탁한다. 기숙학원 설립을 위해서 70억이 필요한데 그 중 1억이 부족하다니 성실한 선생이라 그럴 리는 없지만 이해가 안 된다. 사기를 쳐도 분수에 맞게 그럴 듯하게 해야지 무슨 상황인지 영식이와 통화하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한다. 점심을 먹은 아내가 논술학원에 가면서 어제의 아들처럼 말 한마디 없이 나간다. 본인도 힘들고 짜증나는 부분이 있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애교가 있고 살가운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오후에 영식이와 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뵙고 광화문으로 나와서 갈치조림을 먹었는데 비싼 만큼 맛이 좋다.
29일 목요일 아침 안산에 올라 정상을 거쳐 내려오니 11시가 지나고 바로 성산대교를 건너 개봉동으로 가서 시행사 임원들과 미팅을 하는데 건설을 하는 사람들이라 학원선생들과는 완전 분위기가 다르다. 식사 후 가산동으로 이동하여 아파트 담당 총무와 통화하고 저녁에 고향 친구 동선이가 사는 안양에서 죽마고우 3명이 정종을 마시고 보냈다.
30일 금요일 어제 늦게 들어와 자고 아침에 눈을 뜨니 9시다. 컨디션 회복을 위하여 안산으로 올라가 또 걷고 중턱에서 기구운동까지 하고 내려 왔다. 오후에 성북동에 위치한 경기학원 유하영 선생이 사탐 선생을 소개해 달라기에 얼굴도 볼까하고 갔는데 오히려 장일민 원장이 환대하고 학원까지 안내하며 좋아한다. 장일민 원장과는 대일학원 근무할 때 만났던 수학선생인데 현재는 경기학원이 어려움에 직면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다고 하소연 한다. 그럼에도 학원 규모도 크고 최신식 시설로 손색이 없으니 겨울방학 중에 명성이 있는 김종곤 이름으로 강의를 부탁하면서 노량진과는 달리 주 2회나 4회만 나오면 된다며 간곡히 설득한다. 노량진 한샘학원이나 동네에 특강으로 나갔던 예일학원까지 정리하고 새로운 길에 서 있는 지금 운명처럼 다시 갈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5시간 이상 잠도 안 자고 새벽 강의부터 20년을 지내왔다. 이 힘든 시간을 이기고 한 번의 휴식이나 단절도 없이 명강사의 대열로 달려온 국어의 승부사! 강의에 대한 미련 속에 11월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