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로 임관한 후 소대장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은 노도부대 전투력의 토대를
마련하는 신병교육대대였다.
내가 해야 할 주된 임무는 소대장으로서의 병력관리와 교관으로서의
훈련병교육이었다.
대대에서는 자체적으로 신임 소대장이 전입오면 2박 3일간 ‘훈련병 체험’을
하도록 해 훈련병의 생활을 이해하고 간부로서 알지 못했던 문제점을 도출,
병력관리와 교육훈련이 내실 있게 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병들이 내 신분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신병처럼 보이기 위해 병사들을 통해 훈련병의 말투와
행동을 배웠다.
이러한 노력으로 훈련병들은 나를 국군 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됐다가 교육일수
부족으로 유급돼 이번 기수에 다시 들어온 훈련병으로 알고 있다.
시설 낙후로 인해 기본적 욕구인 먹고 씻고 자는 것에 제한사항이 많았지만
간부와 훈육분대장이 최대한 그들의 의견을 수렴,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훈련병들도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불편하지만 불평하지 않고 이해하며 잘 따르고 있었다.
수류탄·정신교육·주야간 각개전투 등 각종 교육훈련을 받는 동안 교관의
육성지휘능력과 해당과목 전문성에 따라 교육효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무엇보다 취침 전 훈련병의 가족과 친구·애인에게서 온 음성 사서함을 들려주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내가 앞으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 주었다.
6주간의 짧은 훈련을 받고 나가는 훈련병이지만 그들은 어느 한 집안의 사랑스럽고
귀한 자식이므로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 나라는 점에서
내무생활간에는 때로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고 아끼며 때로는
‘친구’가 돼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어 사고를 예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교육훈련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군인정신이 투철한 정예
신병을 육성하기 위해 엄하게 교육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소 귀찮은 마음으로 시작한 훈련병 체험이었지만 내 군생활 동안 다시 얻기
어려운 많은 것을 얻은 값진 시간이었다.
“아는 것은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명심,
나 자신을 채찍질해 배운 것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고 이러한 초심을 잃지 않는
군 복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