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적 가치 동행’이 아닌 ‘콘서트 동행’
“감독님, 위에 건반 좀 더 주세요!”
“기타도 좀 줄여주시면 될 거 같애요”
“아코디언 소리는 조금 더 커도 좋을 거 같습니다.”
3월 16일 오후, ‘콘서트 동행: 새로 나서는 길’ 공연을 앞두고 가수와 연주자들, 음향감독의 리허설이 한창이다. 가수 백자 씨가 <담쟁이>를 부르던 중에 모니터가 끊기자 무대 위에 긴장감이 흐른다. 관중석 뒤에서는 음향감독 이수용 씨와 기획자 이광호 씨가 굳은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민중음악 하는 뮤지션도 뮤지션이기 때문에 자기의 음악적인 고민과 성과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죠. 근데 현장에서는 그런 게 잘 안되잖아요. 그때그때 맞는 음악들이 선택되어져야 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를 고집부리면 이상해지잖아요. 이분들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기 음악의 고민을 펼칠 수 있는 무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콘서트 동행’ 리허설 중인 연영석 씨 |
‘콘서트 동행’의 기획자 이광호 씨는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현실 참여 활동을 해온 뮤지션들의 모습 중에 대중들에게 잘 안보였던 부분들이 보이게 하는 것이 ‘콘서트 동행’의 취지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취지에 ‘마음을 담은 동행재단’이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면서 ‘콘서트 동행’의 현실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세 번째 공연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이씨는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음악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운동적 가치로서의 동행’이 아니라 ‘콘서트로서의 동행’이 가치를 갖는 부분이다. ‘콘서트 동행’은 집회 현장에서 주최 측과 집회 참석자들의 요구에 의해 투쟁가요만 부를 수밖에 없었던 뮤지션들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90년대에 민예총 활동으로 문화운동을 시작했던 이광호 씨는 천지인 매니저와 뮤직센터 21세기 활동을 하고 ‘이 판’을 10년 동안 떠나 있다가 ‘콘서트 동행’을 계기로 다시 문화운동에 동행하게 된 장본인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첫 번째 공연에서는 꽃다지와 손병휘·연영석 씨가 함께 무대에 섰고, 올해 1월에는 ‘노래를찾는사람들’에서 활동했던 문진오 씨와 노래패 ‘새벽’에서 활동했던 윤선애 씨가 ‘함께 찾는 길’이라는 주제로 80년대·90년대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무대를 만들었다.
박수 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을 박수 치게 만들기
그대가 나의 바람이 되어준다면 일렁이는 나의 맘을 실어
우리 머무는 끝없는 이 시간 속을 떠도는 재로 남게 하오
- <가로등을 보다>
3시 30분 ‘콘서트 동행’을 소개하는 간단한 영상물 상영이 끝나자 백자 씨의 <가로등을 보다>와 <경포대에서>로 세 번째 ‘콘서트 동행’이 시작된다.
▲ ‘콘서트 동행’ 공연 중인 백자 씨 |
“아주 서정적이죠? 바다에 가고 싶지 않습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노래하고 곡 쓰고 기타 치는 백자라고 합니다. <노란봉투>는 제가 2천 년 대 초반에 만들었는데, ‘비정규직’ 이런 말이 익숙하지 않을 때였어요. 지금은 너무 익숙하죠. 60%에 육박한다는데요. 한 파견노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입니다. 해고통지서를 받은 그날 밤 한 가정의 이야기를 노래로 엮어봤고요. 그 다음 노래는 <담쟁이>라는 곡을 준비해 봤습니다. 어제 평택의 철탑에서 한 분이 병 때문에 내려왔는데, 지금 막막하고 그렇죠.”
늦은 밤 집에 돌아 와보니 야윈 아내 거칠은 손으로 편지가 왔노라고 내미는 노란봉투
온 몸에 전율이 흐르는지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러
조심히 뜯어본 노란봉투 귀하는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
- 백자, <노란봉투>
백자 씨는 관객들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지난해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 농성장 공연을 다녀온 후에 직접 그려 ‘'철탑에 방한용품 보내기 노란봉투 공연'’ 포스터로 사용하기도 했던 울산 철탑 농성장 그림과 <낙타의 발> 그림을 즉석 퀴즈를 내어 맞춘 관객에게 시디와 함께 선물로 전달했다. 2집 앨범에 수록할 예정인 <낙타의 발>과 <서성이네>, 앵콜곡 <누구 없소> 등을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백자 씨에게 관객들은 스마트폰에 “백자 짱”등을 써서 흔드는 등 뜨거운 호응으로 응답했다. 백자 씨는 즐겁게 공연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풀 밴드로 공연할 기회가 없는데, 동행콘서트에서 도와주셔서 즐겁고 재밌게 잘 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보신 분들도 보기 좋았다고 해요. 동행 콘서트의 팬 층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가수 입장에서는 제 음악을 모르는 분에게 제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장이 되어 좋았습니다.”
지난해에 홍대클럽 FB에서 공연을 본 것이 인연이 되어 적극적인 ‘백자 팬클럽’ 활동을 하고 있는 산티지나님은 백자 씨가 세션들과 함께 공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문화운동가들이 갖추어진 무대에서 노래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사람들과 호흡하는 공연장 분위기를 통해 노래하는 사람과 관객 모두 힘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백자 님은 본인이 직접 작곡하고 글도 쓰는데요. 백자님의 노래를 듣다보면 내 일기장 어느 구석에 있는 잊어버리고 있던 한 페이지를 불러주는 듯 한 게 위안이 돼요.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낙서를 하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살잖아요. 그때 그 마음. ‘괜찮다. 힘내라’는 마음을 노래로, 그리고 다른 마음을 통해 알게 되는 거죠. 그분이 갖고 있는 힘이 있고, 그 진정성을 무대에서 느낄 수 있어요. 그걸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콘서트 동행’은 민중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당연히 박수를 받을 자리에서만 공연하는 것을 넘어 이들에게 박수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게 만드는 대중과의 소통 훈련을 하는 장이기도 하다. 기획자 이광호 씨는 ‘콘서트 동행’이 이런 점에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새로운 음악의 성과를 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 공연장에서 팬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한 백자 씨. [출처: www.100ja.com ‘알동동’] |
운동을 방패로 음악적인 발전이 없는 건 슬퍼요
“저보다 한참 형님들 공연하시는데 어린 애가 와가지고 깽판을 치고 가는 것 같애가지고 기분이 좀 그러네요. 제가 보기보다 나이가 어려가지고. 저 아직 20댄데, 얼굴이 빨리 늙어서.”
“20대처럼 보여요.”
“감사합니다. 저는 회기동 단편선이라고 하고요. 포크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영석 씨하고 백자 형님 하는 포크음악하고 조금 달라가지고 약간 생소하실 수 있는데, 요새 젊은 애들은 이런 포크 음악을 하나 보다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게스트 ‘회기동 단편선’은 맨발에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신중현의 <봄>과 자신의 첫 번째 정규앨범 ≪백년≫에 수록된 <이상한 목>, <언덕>을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열창했다.
이상한 목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유자재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었다
그가 항상 가면을 쓰고 다니는 탓에 아무도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의 목소리를 빼앗아 벙어리로 만들었다
- <이상한 목>
▲ 세 번째 ‘콘서트 동행’에 게스트로 참여한 ‘회기동 단편선’ |
이날 다른 일정들이 겹쳐 바쁘게 공연장 안과 밖을 오가며 공연했던 ‘회기동 단편선’은 좋은 공연이었다는 말로 간단하게 소회를 전한다. <이상한 목>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자 “집에 있을 때 만들었어요”라며 웃는다.
“운동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걸 방패로 삼아 음악적인 발전이 없는 건 슬퍼요. 두 분은 공연도 많이 하고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드는 좋은 형님들이죠.”
이광호 씨는 ‘콘서트 동행’이 노래운동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노래운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대부분이 20년 전부터 활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분야의 재생산이 안 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80~90년대 노래패 ‘꽃다지’나 밴드 ‘천지인’ 같은 모습은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거기에 참여하려는 뮤지션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단순히 ‘꽃다지 재생산’이 아니라 그런 진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뮤지션들이 한데 모이게 하는 것이 ‘콘서트 동행’의 취지다.
“과거의 ‘꽃다지’가 좋아서 이 무대를 보러오는 사람들에게 현재 현실참여를 하고 있는 젊은 인디 뮤지션을 소개해주고 같이 어우러질 수 있게끔 하는 거죠. 그리고 그 인디뮤지션들 때문에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과거 민중음악의 음악적 가치라든가 음악적 성과를 보여주고요.”
내가 생각한 완성도는 많이 아쉬워요
“제가 허리도 너무 아프고 우울증이 생겨서 고향 충북 괴산에 내려간 적이 있어요. 부모님은 밭에서 일하고, 저는 마당에서 밥 먹고 빈둥빈둥 쭈그리고 앉아가지고 햇볕을 보고 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햇볕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더라고요. 아 햇빛 하나에도 사람이 이럴 수 있구나. 우리 빨래 널잖아요. 마치 제 축축해진 가슴이 마르는 것 같은, 빨래처럼 젖은 몸이 마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이른 아침 밭에 나가 김을 매고 고추밭에 줄을 묶고
허리를 펴니 맑은 햇살이 반갑구나 빨래나 할까? 아! 배고프다
밭에 나가 탐스러운 상추도 땄네 이모님이 담가주신 된장국 끓여
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며 먹으니 아! 배부르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바람은 자유롭게 흐르고 적당히 배도 부르니 하! 품 난다
- 연영석, <하루>
<라면>, <죽은 시인> 앵콜곡 <구르는 돌>과 <간절히>를 부르는 내내 뜨거운 조명 불빛에 땀방울이 틘다. 연영석 씨는 공연을 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했다. 특히, 사람들 간에 에너지를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스와 일렉기타, 건반, 드럼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소리가 나오는 과정이 의미가 있었단다. 이와 함께 아쉬움도 있다.
▲ ‘콘서트 동행’ 공연 중인 연영석 씨 |
“관객이 즐겁냐 즐겁지 않냐는 별개로 해서 아쉬움이 좀 있죠. 힘을 다 쏟아내긴 했는데, 내가 생각한 완성도는 많이 아쉬워요. 여유가 있으면 편곡도 여러 각도로 해보고, 사운드도 더 고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다보면 시간을 더 잡아야하고, 연주팀들도 고생이 많거든요. 내 밴드가 아니니까.”
그는 자신의 지금 상태가 곡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의욕과 에너지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공연장에 목말라하는 뮤지션들에게 이 콘서트가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제 음악은 내 생각과 경험, 보고 느끼는 그 바운더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에요. 여지껏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거에요. 남들이 보기에는 조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니까.”
노동문제로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것이 큰 충격
일본과 한국의 비정규직을 비교·검토하는 심포지움 참석을 위해 한국에 와있던 일본 나까마유니온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공연 관람을 했다. 연영석 씨는 지난 해에 일본 나까마유니온(일반노조)에서 주최하는 ‘단결 마쯔리(단결 페스티벌)’에서 초청 공연을 한 경험이 있다. 나까마유니온 조합원들은 한국에 와있던 차에 연영석 씨 공연 소식을 접하고 격려를 해주기 위해 왔단다.
“일본에서는 노동운동 하시는 분들이 노동문제를 가지고 이런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거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요. 일본도 1960~70년대 노동운동이 피크였던 시기가 있어요. 그때는 일본에서도 많은 노동가요나 운동가요가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아예 없어요.”
나까마유니온 이데쿠보 케이치 위원장은 이날 공연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는 거에 무척 놀랐다한다. 연영석 씨의 노래 중에 <간절히>를 좋아한다는 이데쿠보 씨는 불러봐 달라는 필자의 요구에 후렴구를 “관절히 관절히~” 하며 부르는 ‘팬심’을 보이기도 했다.
▲ 낮 공연이 끝난 후에 ‘나까마유니온’·‘청년유니온’·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진촬영 중인 연영석 씨 |
“이런 공연 보는 게 처음이에요. 항상 집회 공연만 보다가 공연장에 와서 음악을 듣는데, 음악소리가 내 가슴을 두드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심장이 뛰는 느낌이었어요.”
‘나까마유니온’·‘청년유니온’ 조합원들과 함께 공연을 보았던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황인화 씨는 동료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가끔은 여유롭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 공연을 본다면 투쟁을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콜트·콜텍악기에서 기타를 만들다가 해고되어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 공동행동’에서는 공연한 뮤지션들에게 격려의 마음을 담은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연영석 씨는 콜트콜텍 투쟁에 뮤지션으로서 함께 해오고 있기도 하다. ‘콜밴’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고 있는 김경봉 씨는 공연이 끝난 후에 “밴드 콜밴의 장점을 살려 좀 더 잘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고 한다.
4월 20일 네 번째 ‘콘서트 동행’에서는 ‘희망의 노래 꽃다지’ 음악감독 정윤경 씨와 가수 시와 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라는 주제로 공연을 할 예정이다. 5월에는 5.18 광주민중항쟁을 담은 공연을 할 계획이며, 하반기에는 실내 공연장이 아닌 야외 공연장에서 좀 더 많은 대중들과 ‘콘서트 동행’의 의미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