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국민 브랜드 '로라 애슐리' 본사 가보니
변치않는 여성성·편안함 추구 고유 무늬 8000가지 보유 '오드리 헵번 스카프'로 유명
모든 것은 부엌의 작은 탁자에서 시작됐다. 1953년 4년차 주부 로라 애슐리는 탁자 위의 천 조각을 살펴보고 있었다. 작가 지망생이던 남편 버나드는 "당신이 돈을 좀 벌어보라"고 했다. "천에 무늬를 찍어서 팔면 인기가 있겠어." 실크스크린 기계를 한 대 샀다. 그 기계에서 로라가 고안한 꽃무늬 스카프가 찍혀 나왔다. 어렵게 접촉한 백화점 구매담당을 설득해 120점을 납품했다. 2시간 만에 다 팔렸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같은 스타일의 스카프를 매고 나왔다. 매출이 2배로 불었다. 남편은 펜을 집어던지고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영국 국민 브랜드 로라 애슐리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20일 영국 런던에 있는 로라 애슐리 본사를 찾았다. 한때 버스 차고였던 벽돌 건물은 방마다 낭만적이고 시적인 패턴이 걸려 있었다. 수석 프랜차이즈 매니저인 버나드 스미스는 "로라 애슐리는 영국의 전통과 고집을 상징하는 브랜드"라며 "세상이 변해도 변치 않는 여성성과 편안함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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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 런던 로라애슐리 본사의 디자이너들이 다음 시즌에 내놓을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런던=신정선 기자
로라 애슐리의 패턴은 8000가지가 넘는다. 계절마다 새로 생산하는 제품만 해도 6000가지. 침구, 가구, 벽지, 액세서리, 화장품 등 여성이 원하는 모든 물건을 만들어낸다. 전 세계 24개국에 451개 매장이 있다.
이날 다음 시즌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가 열렸다. 디자이너 15명이 모였다. 곁에는 겐조와 구치의 최신 패션화보 수백장이 놓여 있다. 수석 디자이너 헬렌 발캄은 "유행을 참조하되, 따라가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운영책임자(COO) 닉 칼로이루는 57년 된 고집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연구한다. 하지만 기본은 그대로다. 클래식은 영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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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롭고 낭만적인 로라 애슐리의 꽃문양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와 향수를 대표한다. 왼쪽은 로라 애슐리가 유행시킨 스카프를 목에 묶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 /로라애슐리코리아 제공
그 철학은 자체 기록보관소에서도 확인된다. 기록보관소는 영국 내 두 곳이 있다. 모든 패턴은 컴퓨터에 입력된다. 디자이너들은 57년간 축적된 자료를 언제든 검색해볼 수 있다. 보관소에 들어서니 50년 전 테이블보와 40년 전 면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있었다. 수십년 된 그릇 파편도 간직돼 있다. 손바닥만 한 천조각도 보관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는 편안함을 선사할 소중한 한 조각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담당직원 안젤라 제프리는 "유행은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이 곧 미래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칼로이루 COO는 "과거를 찾는 소비자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라며 "우리는 향수(鄕愁)와 꿈을 판다"고 했다. 로라 애슐리의 패턴은 잔잔하되 복고 본능을 건드리는 강력한 무늬인 셈이다.
보수적인 영국에서도 가장 전통을 고수하는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온 것은 뚝심이었다. 로라애슐리코리아를 설립한 오세구 사장(보라인터내셔널)은 판권은 물론 라이센스권까지 따왔다. 라이센스권이 있으면 판매뿐 아니라 자체 생산도 가능하다. 로라 애슐리의 라이선스권을 가진 것은 미국과 일본뿐이었다.
원래 아시아 판권은 연 매출 65조원의 한 일본 기업이 갖고 있었다. 이 기업은 2003년 한국에 매장을 열었으나 투자를 게을리하다가 2008년에 철수했다. 1992년 일본에서 매장을 보고 한눈에 매료됐던 오 사장은 철수 사실을 알고서 무작정 런던 본사에 면담을 신청했다. 반응은 "듣도 보도 못한 넌 누구냐"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은 "내가 로라에 미쳐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고 오 사장은 말했다. 문서로 해결될 것도 직접 가서 만나며 설득에 나섰다. 갖은 노력 끝에 본사는 손을 들었고, 한국 로라애슐리는 생산까지 하게 됐다.
로라애슐리코리아는 지난달 롯데백화점 부산 광복점에 230평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전국 롯데백화점 매장 중 최대 규모다. 이달에는 소공점 본점 등 8군데에 개점한다. 2014년까지 100군데로 늘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