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나는 이렇게 들었다
마음이 앞서간다. 알고 경험하는 것마다, 마음이 먼저 알고 접촉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땅 위에서나 땅 너머에서 가장 놀라운 쇼’ 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은 이 사띠빳타나 수행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그러니 지켜보지 않겠는가?
따라오려면 “알고 있음(Awareness)” 한 가지만 가지고 오면 된다. 다른 것을 다 제쳐 두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사띠빳타나 수행을 가르쳐 주신 분들께 나 자신은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붓다, 담마,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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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념처 수행을 할 때, 대상과 아는 것(knowing)이 ‘한 쌍’으로 경험되는데 그것들이 따로따로 경험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는 아주 쉽게 그것을 ‘나’라고 생각해 버린다.
우리가 듣고 배운 대로 아는 것은 ‘나’가 아니며 고정된 것도 아니지만 그것은 지성으로 이해한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직접 경험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행할 때,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원하고, 계획하고, 화의 느낌 같은 것을 ‘나’가 아니라고 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상을 아는 마음을 모르며, 나아가 이 아는 마음을 대상으로 보는 포인트까지 도달하는 사람이 아주 드물다.
이런 종류의 이해 너머까지 가는 유일한 길은 아는 마음을 경험하거나 대상을 지켜보는 것이다.
심념처 수행을 제대로 해야만 아는 마음으로 대상을 더 명확하게 볼 것이며 지켜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앞에서 생기고 있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 아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지켜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지켜보는 마음이 대상을 보는 것이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아는 것(마음)’이 ‘나’라는 관념은 더 이상 말이 안 된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지성적 이해가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수행을 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즉 배의 ‘부풂과 꺼짐’을 주 대상으로 해 왔던 사람들은 다소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수행에 있어서 지켜보는 마음으로 능숙하게 볼 수 있다면, 대상이 배의 ‘부풂과 꺼짐’의 움직임보다 처음에는 잘 안 보일지라도, 익숙해지면 그것과 같거나 더 잘 보이게 될 것이고,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수행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수행에 있어서 지켜보는 마음이 관찰하고, 다른 모든 일어난 마음은 대상이 된다.
하지만 호흡 관찰(아나빠나)이든지 배의 ‘부풂과 꺼짐’을 보는 수행도 여기 심념처에서 이용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하시 방법과 이 방법의 차이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방법은 같지만 마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테크닉이 약간 다르다.
첫댓글 사두사두사두
감사합니다.
사두사두사두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