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돕던 제자의 엄마, 그리고 헬퍼스 하이(Helper's High)
글, 청량 이윤정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는 남을 돕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긍정적인 변화를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고 한다. 어떤 이유로 오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미소를 짓는 일을 만들어 내든지, 누구에게 작은 선물을 하거나, 남의 짐을 들어주거나, 남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거나, 타인의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거나 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일 한 가지를 하라고 한다. 이민규의 ‘생각하는 각도’에 그런 이와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초점이 자기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게 되고, 통제감을 경험하기 때문에 무력감이 줄고,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므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어언 20년도 지난 이야기다. 돌아보면 젊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나는 내가 세상을 다 휘어잡을 듯, 세상을 다 가진 듯 정말 패기있고, 의기양양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서울시 은평구 불광중학교 1,2,3학년 대상 주 1회 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문교부에서 외래 강사비가 100% 지원되어 내려왔다. 강사비는 년 700만 원이다. 주 1회 1시간 강의(월 4회이니 4시간)하는데 강의비가 센 편이었다. 나는 해마다 강사비를 학교 발전을 위하여 기부하고 한 푼도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사실 이곳은 내 모교도 아니고, 일상의 무력감을 떨쳐내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작은 친절을 실천하고려고 기부한 것도 아니었다. 종로구 평창동에 사는 나의 주소를 보고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쉽게 기부를 결정한 셈이다.
이 학교에서 문학 수업을 하는데 가장 열심히 듣는 중 2학년생인 정은진이란 여학생이 있었다. 말이 없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얼굴도 밉게 생긴 구석이 없었고, 오동통하고 건강한 얼굴이었다.
어느 날 이 은진이란 여학생이 너무 가난하여 도시락을 못 싸 와서 점심시간에는 교문 밖으로 나간다고 하는 기막힌 이야기가 내 귀에 날아들었다.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분명 얼굴은 통통하고 못 먹은 얼굴이 아닌데, 밥을 굶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학생이 어머니와 언니와 여자 셋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세 사람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매달 지원을 하였다. 어느 날부터 은진이가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어 밖에 나간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도시락보다 더 좋은 것을 골고루 사 먹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언니와 같이 일반 가정의 학생들이 잘하지 못하는 사치스런 생활을 한다고 하는 말도 들려왔다. 영화도 매일 보고, 비디오도 매일 한 아름씩 빌려서 보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나는 자세히 한 번 알아보아야지 하던 차에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은진이의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 안녕하세요? 저 정은진이 엄마예요. 제가 지금 그리 선생님 댁으로 갈려고 합니다. 은진이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진이한테 들으니 선생님은 강의비도 학교에 전액 기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제가 이사를 하는데, 돈이 필요해요. 5천만 원만 주십시오. ”
이 어머니는 내가 돈이 남아돌고, 돈이 필요 없는 사람으로 잘못 알고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정중하게 답변을 드렸다.
“ 어머니, 죄송한데요. 제가 집안 경제 살림을 살지 않고, 남편이 다 가지고 살아요. 그리고 은진이를 매월 지원하는 것은 아껴서 할 수 있지만 목돈은 불가능합니다. ”
나는 만남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막무가내인지라 나가보기로 했다.
“ 제가 지하에 사는데, 저도 이제 1층으로 올라가서 햇빛 좀 보고 삽시다. 제가 은진이 데리고 그리 갈 겁니다. 주소를 알려주십시오.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갈려고 수박을 하나 샀어요.”
“ 제가 장을 보려고 마을을 벗어나서 내려와 있으니 이리 양과점으로 오시지요?”
우리 집을 알려주지 않으려고 얼른 평창동 언덕을 미끄러지듯 운전하여 빠져나와 동네 양과점에서 만났다. 수박을 하나 받았으니,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짚어보라고 하고, 가족이 셋이라니 빵을 5만 원 상당 가득 담아 주고는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은진 어머니는 마치 나에게 돈을 맡겨 놓을 것을 찾아가는 것 같은 말을 꺼냈다.
“ 우리도 이제 땅 위에서 햇빛을 보고 살고 싶습니다. 5,000만 원이 안 된다면 3,000만 원도 좋습니다.
“ 남편이 돈을 가지고 살아서 나는 그런 돈이 없어요.”
“ 그럼 정 안되면 500만 원이라도 주면 되지, 무슨 말이 많어, 말이?”
나는 그 말을 듣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원하는 만큼 돈을 주지 않을 것이면 말을 말라는 것이다. 그들을 돌려보내고 장을 보던 가족들과 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올라와서도 한동안 기가 막히었다.
그 후 학교엘 가니 은진이 언니 담임의 조사로 은진이 자매가 나가서 밥을 굶지 않고 비싼 요리를 사 먹고 다닌 것이 드러났고, 은진이 어머니는 얼굴만 알아도 돈을 뜯으러 다니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나는 시화전을 할 때도 은진이만은 해마다 내 돈으로 시화 제작을 해 주곤 하였는데, 은진이 어머니를 보면서 모든 지원을 철수하였다. 나는 은진이를 통하여 한동안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느끼며 살았다. 은진이가 저 어머니한테서 무엇을 배우고 익혔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돈은 사람을 키우기도 하고, 돈으로 사람을 망치기도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였다.
힘든 사람에게 돈으로 조금 뒤를 바쳐 주어서 사람을 크게 키울 수 있다면, 그 돈의 가치는 몇 배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람에게 돈으로 도움을 줄 때, 고마워한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게 되고, 그 사람을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돈은 주는 사람이 주는 만큼 받아야지, 더 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돈을 남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은진이가 깨쳤을지?
돈으로 사는 세상에서 돈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으면 멋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돈이 인격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서는 돈의 유혹과 돈의 휘둘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이다.
나는 돈의 유혹을 지극히 잘 벗어나는 사람 중의 하나라고 감히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공돈의 유혹과 남의 돈을 경계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위험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지킬 수 있개 된다.
그리고 남을 도와주던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올 수 있고, 도움만 받던 사람도 남을 돕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만큼 인생은 길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우리는 모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녀들에게 돈을 철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하자는 차원에서 몇 줄 적어보았다.
첫댓글 와~우! 멋진 선생님이셨네요. 박수를.. 짝짝짝!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