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지난 2월 6일 아침...월요일 출근하여 출장을 앞두고 현안들을 챙기고 있을 때
신기촌 고모님께서 저에게 모처럼 전화를 하셔서 고모의 별세 소식을 전하셨지요.
순간 지난 몇 년간 투병중에도 찾아 뵙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이 밀려 왔습니다.
참으로 죄송하고, 송구하여 이 글을 올리기도 마음이 아프고 괴롭습니다.
고모는 백의의 천사처럼 아름다운 외모에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도 잘 부르셨지요.
특히, 가곡과 성가를 부르실 때면 모두가 넋을 읽고 고모의 노래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제는 천상에서 하느님을 찬송하며 이 세상의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겠지요.
빈소에 모여든 친척들이 고모의 노래를 기억하며 부유한 집안에 태어 나셨으면
고모의 활달한 성격과 빼어난 미모와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한가닥 하셨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마 고모가 다니시던 교회의 모든 교우들도 고모의 성가를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고모가 어렸을 때 작은할아버지께서 바다에서 돌아 가셔서 무척 고생하셨다지요.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아래로 여동생 둘, 남동생 둘...그 때 고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친척들은 작은아버지(남동생들) 둘은 고모가 다 키우셨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고모, 이제 천국에서 아버지, 엄마, 동생...모두 만나셨나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도...
첫 날 고모의 빈소에서 돌아 오는 길에 동생 희숙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 백석묘지에서 하관식을 하고 있는데 누가 자신의 뒷 편에서
계속하여 슬프게 울기에 잠깐 돌아다 보니 고모가 그렇게 울고 계셨다고요...
고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 그런지 웬만해서는 장례식 때에도 잘 울지 않으셨는데...
아마도 저희 아버지와 덕적에서 인천으로 유학(?) 와서 한 집에서 공부하며 깊어진 정과
저희 아버지의 따뜻한 인간애, 48세의 나이에 일찍 떠나신 것이 안타까우셨겠지요.
그런데 고모, 저는 고모의 큰 은혜를 잊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기억을 해 냈습니다.
예전에 고모가 기독병원 매점에서 일하실 때 아버지와 저의 건강을 챙겨 주시기 위하여
결코 쉽지 않은 어려운 일을 자청하여 도움을 주셨다는 것을...이제야 생각해 냈습니다.
삶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고모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살아 온 제 자신이 밉습니다.
고모,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그래도 저를 늘 먼저 이해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주시겠지요.
저도 언제나 고모의 진실한 신앙생활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기억하며 기도할께요.
고모, 참으로 감사하고(여기에 글쓰지 못하는 것 잘 아시지요?) 사랑합니다.
천주강생 2012년 2월 9일
고모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조카 수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편지를 드립니다.
▼ 목사님께서 고모의 소천과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십니다.
▼ 부평 가족공원 승화원...우리의 육신은 한 줄기 연기가 되어 분향같이 하늘로 피어 오릅니다.
▼ 새벽같이 곳곳에서 모여 든 장의차가 주차장을 채우고 있어요.
추운 날씨에 밖에서 쓸쓸히 담배를 태우는 한 아저씨의 모습에서 인생을 생각해 봅니다.
▼ 고모가 잠시 머물러야 할 납골당...추모객들은 모두 떠나가고 고모부와 막내가 사진을 찍네요.
▼ 사진을 확인하며, 납골당의 번호와 위치를 확인하며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소서!!!
첫댓글 아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예전에는 밤샘을 해야 마땅했을텐데, 내 몸의 약함을 핑계로 편안한 집으로 들어 왔으나
돌이키기에는 때늦게 되살아난 고모님 생전의 사랑이 기억되어 새벽같이 빈소로 달려 갔습니다.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잃고 잊고 살다가 그것을 잃고서야 잊었던 것을 알게 되나 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는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의 위한 기도가 살아 있어서 행복합니다. ^^*
노헬레나 자매님의 댓글에 감사드리며,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움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