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시면서 여러 수필집을 낸 승려. 아마도 이런 정도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다. 그렇다고 그 수필집을 읽어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 만큼이라도 아는 것은 순전히 언론보도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중 문득 책을 뒤적이다 <소설 무소유>가 눈에 들어왔다. 왜 갑자기 그 분의 ‘무소유’가 생각났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저 눈길이 갔다. 그런데 제목이 다소 수상쩍었다. 그저 ‘무소유’가 아니라 ‘소설 무소유’다. 책 내용은 법정스님의 전기 같았다.
법정을 연구하고 쓴 평전은 분명 아닌데 그렇다고 전기도 아니라는 말이다. 작가는 법정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날줄로 그리고 일대기를 씨줄로 엮어 쓴 것이지만 아마도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소설적 재미를 곁들인 모양이다.
법정스님
소설은 제목처럼 법정의 ‘무소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소유’를 글자처럼 고지식하게 풀어보면 그저 아무 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라는 말이 된다. 옛 선현들의 청빈도 그와 같을 것이다.
법정은 출가를 한 후로 효봉스님의 시자 노릇을 했다. 그분이 법명을 내려주시고 ‘무’를 화두로 내려주셨다. 그 분 또한 ‘무소유’를 온 몸으로 실천하고 계신 분이셨다. 그 분의 걸망에는 거품도 잘 날 것 같지 않은 비누를 넣고 다닐 만큼 철저히 무소유를 실천하셨다고 한다.
법정이 새 비누를 한 장 사겠다고 하자 효봉스님이 일갈했다. “중이 하나만 있으면 됐지, 왜 두 개를 가지겠느냐. 두 개는 군더더기이니 무소유라 할 수 없으니라.” 법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두 개를 갖지 않는 청빈, 그것이 무소유였다. 법정이 강원도로 거처를 옮겨 갈 때 효봉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걸망에 챙겨간 것은 단 두 가지였다. 해바라기 씨와 30여년 된 걸레 한 장이 전부였다. 그러고도 그는 아무 불편이 없었다.
스류산방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라는 채근담의 말 그대로다. 각박한 세상에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삶이 부럽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니 저절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산속의 그들은 하나 같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불편한 것이 사방으로 느껴지는데도 그들은 그런 삶이 즐겁고 행복하단다. 아마도 그들 역시 법정스님처럼 나름대로의 ‘무소유’를 실천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길상사
법정의 무소유는 담백하다 그의 무소유란 ’내 소유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잠시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일 뿐이다.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린다.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법정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무소유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을 했다고 그의 수필 ‘무소유’에 썼다.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는 빈손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우리들은 무엇인가에 얽매여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아간다고 자책을 한다.
그런가 하면 정성스레 기르던 난초가 그의 실수로 시들하게 되자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결국 그 난초에 대한 안타까움이 바로 난초를 향한 강한 집념에 다름 아니었는데 생각이 이르렀다. 기르던 난초로 인해 무소유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법정은 소유 관념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다고 했다.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것이며,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게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세상은 보다 많은 자기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인간의 소유욕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물건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사람까지 소유하려고 든다.
그 사람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끔직한 비극도 불사하면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는 것이다. 소유욕은 이에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의 무소유는 마침내 사회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생각해볼 교훈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법정은 격식을 싫어하신 분 같다. 참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를 잘 드러내주는 하나의 예일 것이다. 그에게 좌선은 앉아서 참선하는 것이라면 노동은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행선이었다. 행선을 하다보면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법정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경이로워했고 찬미했다. 삼라만상이 모두가 삶이었다. 인생만이 삶이 아니라 새와 꽃들, 나무와 강물, 별가 바람, 흙과 돌, 이 모두가 삶인 것이다. 마침내 우주 전체의 조화가 곧 삶이요. 생명의 신비였다. 그러니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법정은 맑은 고독을 좋아했다. 맑은 고독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본래 마음, 그것의 보이지 않는 유전자 같은 것이었다. 맑은 고독으로 충만할 때만이 비로소 내면에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었다. 법정은 맑은 고독으로 돌아가게 하는 수행이 바로 자신의 선(禪)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없이 맑은 고독과 하나 되는 것을 자신의 깨달음이라고 보았다. ‘나’가 없어지고 부분이 전체가 되는, 그런 ‘텅 빈 충만’이야말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실체라고 깨달았다.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작용은 있으되 흔적은 없는 묘한 이치의 불이법(不二法)이다.
법정은 말년에 강원도 정선의 화전민이 쓰다 버린 오두막을 찾아들었다. 그곳 거처의 이름을 수류산방이라 지었다. 그는 자신의 삶도 오두막처럼 간소해지기를 바랐다. 날마다 버리고 또 버릴 것을 기도했다. 오두막처럼 맑은 가난 속에 살 것을 발언했다.
그는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그 동안 자신이 실천해 온 ‘무소유’를 대중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맑고 향기롭게’라는 재단을 만들었다. 무소유를 통해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사회 문제로까지 확장시켰던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아무도 없는 방에서도 수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무소유라는 말이 나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강한 짓눌림에 더러 숨을 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버리지 못했다. 그 동안의 내 집착이 고스란히 방을 점령하고 있었다.
법정스님 다비식
‘자연인’을 동경했지만 그건 그저 말뿐이었고, 움켜쥔 손은 펼 줄을 몰랐다. 바깥의 잡동사니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면 움켜쥔 손은 절대 펴지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