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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의형제들 원문보기 글쓴이: 파라다이스
‘한 이레’기간 중 '전 삼년 반'과, '후 삼년 반'에 일어날 사건들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후 3년 반’에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과 적그리스도의 심판이, ‘후 삼년 반’ 기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후 3년 반’이야말로 ‘대 환난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 3년 반’에 관한 성경적인 증거는,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후 3년 반’에 관한 계시만 다루고 있는 사실에 대해, 그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게 유대인들이 짓밟힘을 당할 기간이 ‘후 삼년 반’동안이 그 이유이겠지만, ‘전 3년 반’ 기간은 유대인들이 적그리스도로부터 피해를 받는 기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한 이레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 공로자가 다름 아닌 열 뿔의 지배자가 되는 영광의 구세주인 사실로 알게 되고, 또한 그 자의 혈통이 유대인임으로 그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그의 예루살렘 입성을 대 환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바로, ‘전 삼년 반’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하여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
43).
‘전 3년 반’은 하나님의 교회에만 해당되는 기간이므로, 유대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유대사회에서는 적그리스도에 대한 놀라운 지지와 환영을 보내며, 그를 신적인 존재로 경배하게 될 것이므로 이 기간이 환난기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을 모습이 성경에 이렇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이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시록 13:4)”
요한 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를 짐승이라고 표현한 것은, 다니엘 7장에서 네 번째 짐승이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한 이레’와 ‘전 3년 반’에 관하여
‘7년 환난’ 중 ‘전 3년 반’ 기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요한 계시록 한 곳에만 있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계시록 11:3)
세대주의자들은 종말론을 연구하는 일에, 다니엘서를 중심으로 합니다. 다니엘서에는 분명히 한 이레의 경우, ‘전 3년 반’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전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문제만 제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할 때는, 세대주의자들의 다니엘서 해석에 큰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니엘서에서 전개되는 종말적인 사건들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유대인들에게만 적용시킵니다.
다니엘서를 연구하려면 한 이레의 나머지 한 부분인 ‘전 삼년 반’에 관한 성경적 그거를 찾아 해석을 내려야 하는데, 이 같은 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므로 요한 계시록에 계시된 종말적인 사건까지 다니엘서에서와 같이 전적으로 유대인들에게만 연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이레의 언약’은 유대인들을 위해 적그리스도가 체결하는, ‘7년간의 평화조약’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이레의 후반부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기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받을 유대인들의 종교적 핍박 역시, 유대인들이 한 이레 기간 중에 받을 대 환난을 가리키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같은 일은 예수님이 누가복음 21장 20절 이하에서 언급하시고 있는데, 예수님의 이 예언은 장차 유대인들이 받아야 할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 환난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일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사건이 아님을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며, 요한 계시록에는 ‘한 이레’ 동안에 걸쳐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환난에 대해서도 수없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다니엘서의 경우는 유대적인 면에서 장차에 일어날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한 것이요,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교회적인 면에서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대주의자들은 이 같은 사실의 구분을 혼돈하여 다니엘서를 중시한 나머지, 요한 계시록을 유대인을 위한 ‘속 다니엘서’로 취급하는 모순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한 이레의 기간에 활동할,적그리스도의 할 일
한 이레의 절반 기간 동안에 적그리스도의 할 일에 대하여, 몇 가지 명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먼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라고 한 사건입니다. 한 이레란 7년이며 여기서 말하는 언약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맺는다는 말에서, ‘세계평화에 관한 조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견해입니다. 이 자는 전쟁의 위협과 세계적 기근과 경제적인 혼란 등, 세계가 뒤숭숭할 때 세상에 머리를 들고 나타납니다.
이 자의 등장 모습부터가 이색적이기 때문에, 그는 이 같은 혼란한 세상에서 모든 인류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신적인 존재로 인정을 받게 되므로, 그의 인기나 신망은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의 엄위하고 두려운 모습과, 그리고 이 자가 세상으로부터 경이로움의 대상으로 모든 사람의 경배를 받게 되는 경위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가지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계시록 13:1~5)
위의 말씀을 보면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는,바다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바다는 다니엘 7장 2절에 나오는, 큰 바다를 의미합니다. 이 바다에서 열 뿔을 동반한 작은 뿔이 넷째 짐승으로 등장하는데, 이 짐승이 곧 적그리스도입니다. 그에게 달린 뿔이 열이란 대상은 작은 뿔에게 맹종하므로, 그를 왕으로 받들어 충성할 열 뿔들로써 이들을 열 왕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다니엘 7:7) 란 말씀에서 열 뿔이 작은 뿔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네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으리라”는 말씀에서 열 뿔이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휘하에서,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여 줄 ‘열 왕’이란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계시록 17:12)
이 자의 머리가 일곱이라고 했습니다. 이 머리에 대해서는 요한 계시록 17장 9,10절에서 해석해 주기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 하리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달린 일곱 머리는,역대의 적그리스도에 해당하는 일곱 왕 중,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자란 뜻입니다. 그 일곱 왕에 대하여 또 설명하기를, 다섯은 망하였다고 했으니,곧 애굽,앗수르,바벨론,메대 바사,헬라를 가리키고, 지금 있는 왕은 로마를, 아직 이르지 아니한 ‘다른 이’는 장차 종말에 이르러 등장하게 되는 적그리스도로서, 이 자에 대해서도 그의 권세가 반드시 잠깐 동안만 계속 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잠깐 동안의 기간은 계시록 13장 5절에서 적그리스도가 세계를 지배할 기간으로 명시된, ‘마흔 두 달’을 가리킵니다.
계시록 13장 2절에 이 자의 생김새가, 표범과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다니엘 7장에서 큰 바다에서 나온 세 짐승과 같은 모양을 의미하는데, 이 자의 이 같은 모습은 그의 잔인성,잔포성,독재성을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이 자의 권세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자기의 능력으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다’ 라고 한 말씀에서, 이 자는 사단의 대리권자임을 암시해 줍니다. 일찍이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라는 말로 유혹한 일이 있습니다.(마태복음 4:8~11)
예수님은 사단을 심판하실 분으로써, 이 같은 사단의 간교한 시험에 대해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대적할 사단의 대리자로, 오직 사단의 영광과 그의 권세를 위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그리스도가 세상으로부터 이상히 여김을 받고 신으로 경배를 받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이 바로 그의 사망과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재생사건입니다.
계시록 13장 3절에서 언급해 주는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12절에서는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란 말에서 적그리스도가 입은 머리의 상처는, 어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일어난 일단의 암살음모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은 오히려 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기에 족합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이 자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이 달라지는데,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으며, 짐승과 용에게 경배하면서 짐승을 세상의 메시야로 환영하며 복종하기로 맹세하는 찬가를 부르게 됩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며, 이 자에 대하여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라고 했습니다.(계시록 13:5)
참람 된 말이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말이요,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는 한 이레 중 후반부에 속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바로 이 자가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는 것입니다. 이 자에 의하여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고, 이 세상에 잠정적인 평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때부터 이 자의 우상이 세상 곳곳에 세워지게 되며, 사람들은 그곳에 신적인 경배를 드리기를 강요당할 것입니다.
이 자가 온 세상 인류에게 666표를 찍어줌으로써, 이른 바 지옥으로 이끌어 갈 이 ‘짐승의 표’도 이때부터 세상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오른손과 그 이마에 찍히게 될 것입니다. 물건의 매매는 엄격히 통제를 받게 될 것이며, 만약 짐승의 표를 받기를 거부하면 ‘물건의 매매’를 못하게 됩니다.(계시록 13:14~18)
적그리스도에 의해 한 이레의 절반기간에 이루어질 가장 놀랍고 큰 일은,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며 ‘잔포하여 미운 물건’을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제사와 예물을 금지한다는 말에서, 장차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물론 이 성전은 교회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릴 구약적 예배행위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 곳에서 구약적인 ‘제사와 예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등장한 후, 유대인들의 종교적 행사에 간섭하게 되며, 끝내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행위를 금지 시키고 맙니다.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행동은 원래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이며, 그의 등장 자체가 사단의 대역자(代役者)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단을 경배케 하기 위한 목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 간에 마찰이 일어나며, 이 마찰에서 적그리스도는 강압적인 방법을 총동원하여 유대인들에게 종교적인 핍박을 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저항하는 무리들에게 억압정책을 사용하므로, 예루살렘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대환난의 바람이 불어닥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다니엘서 8장에서 볼 때, 예루살렘에 등장하여 2,300 주야간 짓밟은 바로 그 구약적 작은 뿔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처럼 잔인하게 행동 할 것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우상을 성전에 세워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곳에 경배케 하며, 자존하여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며 숭배함을 받고자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2:4)
그러면 이 같은 예언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일까?
먼저 이스라엘의 영토적인 회복을 생각하게 합니다. 영토적인 회복이 없이는 적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도, 유대인을 위한 한 이레간의 평화조약도,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핍박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영토적 회복은 이미 지난 1948년 5월 15일에 성취되어, 이 같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제사와 예물을 금지하려면, 먼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져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려면,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독립은 되었지만 예루살렘은 여전히, 아랍인의 수중에 넘겨진 채 얼마간의 기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967년 6월 5일에 일어난 6일 전쟁 시에, 이스라엘 군대는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민첩성과 뛰어난 군사력으로, 그 다음날인 6일에 단번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회복된 이스라엘 영토에 유대인의 거룩한 땅인 예루살렘까지 되찾았으니, 예루살렘 성안에 성전을 세울 수 있는 여건이 또 하나 갖추어진 셈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성전 터전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이라도 성전을 세울 만반의 준비를 모두 갖추어 놓고 있는 형편인데, 과연 그 성전을 어디에 세우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원래는 지금 ‘오마르 사원’ 터전이 예루살렘 성전의 터전이라고 믿고 있으나, 어떤 유대인 역사가는 지금의 ‘통곡의 벽’자리가 성전 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성전 터전만 확보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세우는 일은 시간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결코 형통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시나리오는 이미 그렇게 섭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27절 마지막에 가서 이 자의 최종적인 운명을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예루살렘이 황폐케 될 일이란, 사실 26절 마지막에서 ‘또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 되었느니라’라고 언급 되었는데, 이처럼 예루살렘을 황폐케 한 자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심판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아니한, ‘아마겟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요한 계시록 19:19~21)
그리고 하나님의 최종적인 진노는, 일곱 번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실 때 온전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들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 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요한 계시록 16:17~21)
‘한 이레'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
‘한 이레’와 교회와는 절대적인 연관성이 있으며, 이 같은 연관은 세상과도 무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서 9장의 계시를 통해서 인류의 종말에 이르게 될 ‘7년의 종말적 기간’의 도래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주도되는 ‘한 이레의 언약’에 의해 예견(豫見)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큰 바다로 언급된 지중해 지역의 군사력과, 또한 이 지역을 중심한 열강들의 포진(布陣)에 대해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그 가운데서 혹 ‘열 뿔’로 상징되는 10개국 연맹체가, 언제 등장하는가의 여부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줄로 압니다.
열 뿔의 얼굴로 등장하는 10개국의 연맹체는 그것이 작은 뿔이라고 하는 한 왕의 출현과 함께, 그 왕을 ‘열 왕(10王) 중의 왕’으로 모시고서 그 얼굴을 내밀 것입니다. 바로 이 왕(장차 나타날 왕)의 주도 아래 세계 열강과 함께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한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었을 때, 그 때가 7년 환난에 들어간 종말의 징조적 신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이 있기 이전에 있어야 할, 또 하나의 필수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 사건이란 요한 계시록 13장에 나와 있는, 적그리스도의 거짓 부활입니다. 7년간의 평화협정은 격변하는 정변 속에서 대적자의 저격을 받아 죽은 적그리스도가 사단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는, 경이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이 자에 의해 성사되는 평화조약이기 때문에, 이 같은 종말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요한 계시록 13:3~5, 14)
그러나 이 같은 사건의 징조는 유대인들을 위한 ‘한 이레’의 종말적 징조로 주신 계시이기에, 이 때 깨어 있는 성도들은 다니엘서의 한 이레의 예언을 통하여 이 세상이 이미 종말에 이른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는 유대인들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 되었기에 인봉된 책이지만, 하나님의 교회에는 요한 계시록과 함께 인봉해서는 안 될 책으로 그 비밀이 요한 계시록과 함께 열려져 있는 책입니다.
두 증인과 ‘한 이레’의 언약
두 증인의 등장과 한 이레와는 서로 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니엘서 9장을 연구하는 일에 있어 이 일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 11장 1~3절까지의 말씀에서, ‘마흔 두 달’과 ‘1260일’이라는 두 기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날수는 동일한 기간을 의미해 주면서도, 서로 간 다른 시기임을 보여 줍니다.
즉 마흔 두 달과 1260일은 같은 3년 반의 기간이면서도,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11장에는 두 증인의 1260일간의 활동 모습과 또한 그들이 1260일간의 예언 기간이 끝날 때, 그들이 당할 순교적인 사건의 내용이 자세하게 계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절 끝에 가서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언급된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 성 뿐 아니라 음녀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한 이레의 절반 기간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중에 있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구약적 배경은, 다니엘서 7장 25절입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기간은 두말할 것 없이, 후 3년 반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3절을 보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기간은 2절에서 이미 언급된 기간인 마흔 두 달과는 다른 기간이며, 이 기간에 일어나는 사건도 2절의 사건과는 다른 사건입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의 활동하는 모습은, 요한 계시록 10장 11절에서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라는 명령을 받고 장차 전 세계적으로 영원한 복음을 전파할 모습들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받을 자들은 특히 이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거부하고, 적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오인하며 환영하는 유대인들과 ‘여자의 남은 자손’(요한 계시록 12:17)들입니다.
그런데 ‘두 증인’이 다시 예언하는 영원한 복음은, 그 전파의 기간이 1260일간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 예언을 전파하는 시발점은 1260일에 들어서는 그 첫날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1260일의 그 첫날이, 7년 환난 기간의 출발점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또 다른 종말의 시대적 징조를 보여 주셨는데, 그 징조가 바로 ‘두 증인’의 역사적 등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