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死海)두루마리의 개념과 역사적 배경
사해두루마리란?
사해 근방의 동굴에서 발견된 두루마리로 된 성경과 기타 종교적 문헌을 말
한다.
사해두루마리의 발견된 경위와 발견된 내용물
1947년에서 1956년 사이 예루살렘에서는 동쪽, 여리고에서는 남쪽에 있는 사
해 근방 와디쿰란(the wadi Qumran) 그리고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과
와디 무라바이트(wadi Murabb'at) 등에서 구약의 사본을 비릇하여 여러 가
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외경들, 그리고 Qumran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엣세네
인으로 추정)의 기록과 그 사회의 규범 등의 문헌이 발견되었다.
(1) 첫 번째 발견 경위 :
(a) 1947년 봄에 아랍 사막의 유목민인 '타아미레 베두인지파(Ta'amir도 bedouin
tribe)'에 속한 '무하마드 아드딥(Mohammed Edh-Dhib)이란 사람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던 중에 사해의 서북쪽 2km 지점 황무지인 유대광야의 '와디
쿰란' 지역의 가파른 암벽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그는 잃어버린 양이 그 동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 안에 돌
을 던졌을 때 그는 무엇인가가 깨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는 무서워서
그 날 하산했다가 다음날 친구와 함께 용기를 갖고 동굴까지 올라왔다.
그 동굴에 들어갔을 때 몇 개의 항아리 안에서 양피지(양가죽), 그리고 파피
러스(papyrus: 종이 대신 사용했던 갈대로 만든 것) 두루마리들이 기름칠한
헝겁으로 쌓여진 채 들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들이 골동품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 두루마리를 갖고 하산하였다.
(b) 그들은 이곳에서
(1) 구약성서 이사야서의 전부
[(1QISa) 이사야서의 전부 길이가 23피트, 히브리어],
(2) 하박국의 주석[(1QpHab) 길이가 5피트, 넓이 5인치],
(3)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
[과거, 현재의 전쟁과 미래의 예상전쟁(IQM)],
(4) 쿰란 사회의 훈련고본(1QS),
(5) 외경 창세기 [타멕서러고도 함, 아람어(1QC)],
(6) 감사찬송[감사를 표시하는 시편(1QH)],
(7) 이사야서의 단편(IQI뉴), 즉 7개의 두루마리를 첫 번째 동굴(CaveⅠ)에서
발견했다. 이것을 학술용어로 (Q1)이라 한다.
(c) 1947년 이른 여름 수리아의 정통 교회 대 주교인 마르 아라나시우스 예수에
사무엘(Nar Athanaasius Yeshue Samuel)은 그 두 소년으로부터 7개 중 4개의
두루마리를 샀다. [상기 (b)의 (1)(2)(3)(4)]
(d) 남은 3개의 외경 창세게, 감사찬송, 이사야서 단편 1개를 히브리 대학교 팔레
스틴 고고학 전문가의 슈케닉(Eleazer L. Sukenik) 교수가 베들레힘의 중간
상인으로부터 매입 했다.
(e) Samuel 주교는 1048년 2월 18일 수요일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연구소 미국학
교(American school of Oriental Reseearch)에 4개의 두루마리를 보내서 연구
소장 서리 John C. Trever(존 시트레버)와 Willim Brown Lee(윌리마 브라운
리) 박사가 연구해 본 결과 고고학적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당대 유
명한 히브리 고고학자이며 고대 셈어(semitic)의 최고 권위자인 John Hapkins
(존 합킨스)대학교의 윌리암 에프 알브 라이트(Willim F. Albright) 박사에
게 이사야서 두루마리 일부분을 35mm필름에 복사하여 보냈다. 아르라이트 박
사는 조사 결과 BC150년 경으로 추산했다.
(f) 그 후 탄소 14측정법 [c 14- 카본 테스트 14(Carbon-14 test)라고도 함=방사
능 방출 정도에 따라 연대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사해 두루마리는 BC 200
년 -AD100년 사이의 고문서로 판명되었다.
(2) 2번째와 3번째 발견
첫 번째 발견된 두루마리들이 탄소 14측정법[Carbon-14 testing]으로 고고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예루살렘 고고학자들은 발굴대
를 조직하여 유다의 광야의 동굴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답사들은 이스라엘과
아랍의 치열한 전쟁을 지연 되기도 했으나 고고학자들의 집념과 노력으로 본격적
인 탐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성서적 문헌이 발견되었
다.
(a) 1949년 불란서의 뻬르 드 보씨(Fere Roland de vaux)와 팔레스틴 고고학 박물
관 지배인 랑게스터 하딩(Gerold Lanster Harding)그리고 도미니카의 성서 학
교 회원들은 1947년 아랍의 목자 무하마드 아드딥에 의해서 발견된 Cave-Ⅰ
을 다시 확인했다.
그 동굴은 길이가 26피트, 넓이가 6피트 였으며 그곳에서 파피러스와 양피지
의 두루마리 부스러기 600여개와 깨어진 도기, 아마포 조각등을 발견했다.
팔레스틴의 습한 기후는 이와 같은 사본을 보존하는 데 적절하지 못한 지역이
나 이 사본들이 나온 동굴은 비가 거의 안오는 유대 광야에 위치하고 있어서
참으로 건조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다행히 발견된 두루마리들은 보존상태
가 퍽 양호했던 것이다. 뻬르 드 보 교수는 발견된 40개의 큰 항아리 중에서
많은 것을 원상대로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혀 손상이 없었던 AD68년 경
의 원상의 2개 항아리는 현재 히브리 대학에 소장하고 있다.
(b) 그 후 많은 성서 고고학자에게 자극이 되어 1952년부터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
되어 11개의 동굴에서 각 자료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도 4번째 (4Q)에서 382개의 사본 단편이 발견되었는 데 그 중 약
100개의 단편은 구약 성서의 사본이었다.
이 단편에는 구약성서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히브리 성서의 사본이 있었
다. 특히 이사야서는 12개, 시편은 10개, 신명기는 14개의 복사판이 있었다.
또한 11번째 동굴(11Q)에서는 시편과 레위기의 거의 완전한 두루마기가 발견
되었다.
Khirbet Qumran(킬벧쿰란)지역에 사해시[(死海市) the city of Salt Sea]를
발견하고 중요한 건물터, 유물들을 많이 발견했다. 거대한 회의장, 수 백 개
의 그릇, 대장간, 의자, 책상, 잉크병, 보석, 유골, 여자용 귀고리, 동전 750
개(BC 135~AD 68) 등이다.
(c) 2차와 3차 발굴에서 중요한 종교적 단편 문헌은 다음과 같다.
1) 구약 성서 중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서의 단편
2) The Book of Enoch (에녹서)
3) The Book of Noah (노아서)
4) The Testament of Levi (레위의 복음)
5) The Testament of Naphtali (납달리의 복음)
6) The Sayings of Moses (모세의 노래(작은 신명기)
7) The Scroll of the Patriarchs (축복사의 두루마리)
8) The Temple Scroll (신전 두루마리)
9) The Psalms of Joshua (여호와의 시편)
10) A Vision of Amram (아므람의 시현)
11) The Prayer of Nabonidus (나보나이더스 기도)
12) The Book of Mysteries (신비의 책)
13) The assumption of Moses (모세의 승천기)
14) David's Poem (다윗의 시편)
15) Jubilees (작은 창세기)
16) Tobit ( 토비트; 천주교 제2 정경)
17) Ecciesiasticus (집회서; 천주교 제2 정경)
18) Epistle of Jeremy (이레미아서; 천주교 제 2정경)
19) Micah Commentary (미가서 주해서)
20) Psalms Commentary (시편 주해서)
21) Isaiah Commentary (이사야서 주해서)
22) Genesis Commentary (창세기 주해서)
23) Hosea Commentary (호세아서 주해서)
24) Nahum Commentary (나훔 주해서)
(d) 특히 유물 중에서 1952년 봄 동굴 3(Q3)에서 산화된 길이 32인치의 동판(The
Copper Scrolls)을 3개 발견했다. 이 동판은 화확적 처리되어 원문을 회복되었
고 다음과 같은 놀랄만한 사실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Hebron(헤브론)과 Nablus
(나블러스) 사이에 200톤 정도의 금과 은으로 된 보물이 거의 60여 곳에 땅속
16피트에서 -18피트 깊이에 묻혀 있다 한다. 이곳에 묻힌 금과 은으로 된 보물
이 대부분 신전에서 사용되는 도구이다. 아직 탐색대들이 이 보물을 찾지 못했
으나 앞으로 계속 조사해볼 가치는 크다. 중요한 기록을 동판에 기록하고 유사
시에 비밀이 땅속에 묻어 비밀리에 보존시킨 것은 기록을 중요시 여기는 하나
님의 택한 백성의 성역의 하나이다.
(e) 발견된 동전의 종류와 그 연대
Description of Coins Number
--------------------------------------------------------------
Antiochus Ⅶ, 136, 130, 129 ................... 3
John Hyrcanus, 135-104,....................... 14
Alexander Jarnaeus, 103-76 B.C................ 38
Hasmoneans, uncertain......................... 15
Antigonus (Nattathias), 40-37 B.C............. 2
Herod the Great, 37-4 B.C...................... 1
Tyre, 29 B.C................................... 1
Herod Archelaus, 4 B.C - A.D. 6 ............... 6
Procurators under Augustus..................... 3
Procurators under Tiberius..................... 7
Agrippa Ⅰ, A.D. 37-44........................ 23
Procurators under Claudius..................... 5
Procurators under Nero........................ 15
First Revolt, Year 2, A.D. 67-68...............11
Caesarea under Nero, A.D. 67-68................ 8
Dora under Nero, A.D. 67-68.................... 1
Dora, same type, date missing................. 1
Vespasian, A.D. 70............................ 1
Ashkalon, A.D. 72-76.......................... 1
Same type, date effaced, surcharged "X"........ 1
Judaea capta under Titus, after A.D. 79........ 3
Agrippa Ⅱ, about A.D. 86...................... 1
Second Revolt, A.D. 132-135................... 13
Byzantine (two coins on the surface).......... 3
Arab (one coin on the surface)................. 2
사해 두루마리를 그들은 어떻게 보존했으며 현재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를 이
스라엘 정부는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가?
(1) 쿰란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상에 관한 기록과 자기들의 중요한 생
활 기록을 열심히 적는 습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었
다. 그들은 양피지, 파피러스에 기록하여 에집트 장례 의식 때 쓰는 방부제와
비슷한 방부제를 발라서 후손을 위해 잘 보존시켰다. 특히 그 기록들을 방부제
를 칠한 헝겊으로 잘 싸서 항아리에 집어 넣어 보존키도 했다. 또한 가장 중요
한 기록은 놋쇠판에 기록하여 유고시에는 땅속에 묻어 보존시켰다. 양피지나 파
피러스에는 특수한 검정색 잉크나 붉은색 잉크로 기록했고 놋쇠판은 손을 직접
팠다.
(2) 오늘날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및 쿰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 중 일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 있지만 대부분이 이스라엘 정부에서 소유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국회의사장 왼쪽에 사해유물 박물관을 지었다. 그 건물 모양은 쿰
란 동굴에서 발견된 항아리처럼 만들어서 사해 유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
다. 이 박물관의 내부는 특수한 실린더 장치가 되어 있어 전쟁, 화재, 천재지
변 시에는 모든 중요한 유물들이 자동적으로 지하에 들어가 보존되게 되어있다.
사해 두루마리들이 현대 성경에 미친 영향
우리의 구약성서가 하나님 말씀임을 증거
사해 두루마리 발견으로 오늘날 우리의 구약성서는 대체로 잘 번역되고 잘 기록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아니다. 더 연구하여 원문 회복에 노
력해야 하면 필요한 수정을 가해야 한다.
사해 두루마리를 통해 구약성서 중 에스더서를 제외하고 신명기, 시편, 이사야
서 등을 중심으로 대부분이 발견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현대 성경을 만드는 데 근본적 자료로 사용해 온 맛소라사본
(Masoretic text)이나 칠십인역 사본(Septuagint), 벌케이트(Vulgate)사본과 이
번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와 비교해 볼 때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원문을 회복하고 필요한 수정을 가해야 하며 완전한 변역에 노력해야 한
다. 특히 구약성서의 마지막인 말라기서는 BC400전의 기록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약 400년 동안 없었다. 그러나 사해 두루마리를 통해서
그 공백을 상당히 메꿀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요한계시록 22장 18절-
19절의 구절을 잘못 이해하고 현대 우리 성경에서 일획일점도 빼지고 말고 더하
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이 받은 계시 중에서 빼지도 말
고 더하지도 말라는 말이지 성서의 전 부분의 말은 아니다. 즉 고대 원문과 상이
한 부분으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 시는 가감한 수정을 가해야 한다. 그리
고 필요한 경전을 받아 드리는 열린 마음의 문이 필요하다.
외경에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많다.
(1) 많은 오늘날 기독교 성서학자들은 정경[正經: Canon,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구
약 39권과 신약 27권] 그것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정
경이냐 외경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결정은 유한하며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가령 신앙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일지라도 다른 외경이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
되는 경전을 읽는 것을 금하게 하고 탐독하는 자를 이단시 취급한다. 그러나 사
실상 외경[外經: Apocrypha]에도 정경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많으니 성신의
도움으로 분별력 있기 읽어 신앙에 큰 발전을 갖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외경
중 많은 부분이 정경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사해 두루
마리에서 발견된 많은 외경은 오늘날 신학 해석에 큰 발전과 전환기를 부여해
주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창세기를 읽을 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생략
된 부분이 많이 있는 데 여기서 발견된 외경 창세기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한 시편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에는 150편이 있으나 사해 두루마리에서는 무
려 4,050편이나 된다.
여기에 참으로 진귀한 하나님의 무궁한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입을
막을 수 없다. 인간이 갖고 있는 편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
니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외경을 연구해 보려고 하지도 않으면
서 신학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참 이해할 수 없
는 일이다. 성경에 일획 일점도 더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편견과 아집으로 구
구한 자기 이론과 학설로 성경을 해석하여 수만 권의 주석서를 읽히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신앙인가 자기 명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인지 알 수 없다.
이러기보다는 근거 있는 예언자의 기록인 참된 외경을 분별력 있게 읽고 연구하
여 정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하며 진리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2) 사해 두루마리 발견으로 하나님 말씀은 요한이 요한복음 21장 25절과 같이 "예
수께서 하신일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된 책들을 다 두기
에 부족하리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이 세상에 있는 가 우리는 알 수 있다.
가령 신약성서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실 때 택한 12제자의 기록 중 마태,
요한, 베드로, 야고보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밖의 제자들이 기록이 신약성
서 27권 중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나머지 제자들의 기록들은 없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정경의 규정은 인간이 했기 때문에 외경 중에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히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에녹서는 욥기 다음에 있었으나 구약성서를 정경과 외경으로 구분할 때에 에녹
서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에녹서를 정경에 삽입하지 않았다는 신학
적 이론은 사해두루마리 발견으로 더욱 확고히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지혜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 수 있지만 외경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는 무한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한계점에 이르
게 하는 것이다. 물론 외경 중에는 신빙성이 없는 책도 있다. 그러나 성신의 도
움으로 분별력 있게 읽을 때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3) 신약성서의 형성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
는 신약성서 27권이 정경으로 인정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로마의 콘스탄틴(Constantine) 대제가 왕위에 올라 A.D. 313년 종교 자유의 칙
령을 선포하고 A.D. 325년 기독교를 중심된 종교로 삼고 원로원의 반대와 귀족
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회를 비잔틴(Byzantium)으로 옮겨 여기를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즉 새 로마(new Rome)라고 부르고 새 기독교 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콘스탄틴 대제가 즉위하자 즉시 명령한 것이 각 곳에 흩어진 그리스도의 가르
침 즉, 마태복은, 야고보서, 배드로후서, 요한계시록, 여러 사도들의 편지 등
을 모아서 한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이다.
콘스탄틴 대제는 그 당시 가이사랴의 감독이며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
(Eusebius AD 264-340)를 수석 종교 고문으로 택하여 흩어진 성경을 한권으로
집권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명했다.
"나는 그대에게 성문서 50권을 복사하도록 명령한다. 그 준비와 사용은 교회 교
육에 가장 필요하도록 하며, 준비된 양피지에 휴대할 수 있는 형식으로, 기술
좋은 복사기들이 일기기 쉽게 기록하기를 바란다. (중간 생략). 그대는 그것을
운반하기 위하여 마차 두 대를 사용할 수 잇고 그 사본은 잘 되었을 때 나의 검
열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이 일을 그대가 감리하는 교회의 집사에게 위임해도
좋다. 그가 여기에 도착하면 후한 대접을 해주겠다. 하나임의 가호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있기를 바란다."
유세비우스는 흩어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쓴 편지나 복음서를 수집하는 일을
위해 갖은 역경과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기차와 비행기나 라디오도 없
었다. 인쇄술도 알려져 있지 않아 손으로 쓴 파피루스(Papyrus) 사본을 수집하
는 일이었으므로 잘 보관된 사본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사도들
이나 제자들이 쓴 원본은 한권도 찾을 수 없었고 원본을 손으로 베껴쓴 사본을
수집했다.
유세비우스는 널리 조사하여 어떤 책이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지
알아냈다.
1) 보편적으로 인정된 책: 27권 중, 2)를 제외한 것.
2) 논쟁을 일으킨 책: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요한 2,3서
3) 논쟁이 많은 책: 27권 중 삽입시키지 않음. 그 책의 수는 수십권이다.
결국 1)과 2)를 합한 27권을 정경(Canon)으로 택하여 양피지(羊皮紙)에 가록하
여 50권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약 27권이다. 이 책은 그 후 칼타교회(AD
397년)에서 27권을 정식으로 공인하여 세계 교회가 통일하여 사용케 되었다.
결국 성서는 정경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정경과 외경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몰몬경, 교리와 성약, 값진 진주를 정경으
로 규정하고 성경과 전혀 반대됨이 없이 상호 보충적, 그리고 체계적이고 정통
성 있는 신학적 이론을 확립시키고 있다.
또한 천주교회에서는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지혜서, 집회서, 바룩, 다니엘, 마
케베오상, 마케베오하를 정경으로 삼고 있다.
신앙인으로 더 높은 차원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폭 넓게 지혜와 하나님의 오묘
한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망을 갖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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