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보람 있게 사는 것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인격이 예수님을 닮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
그것은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결단코 입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원치 않으시고 오히려 저주를 하지 않았습니까 ?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영양분을 공급받고 나무와 한 몸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 꼭 붙어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이 열매를 오늘 본문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성령의 열매를 9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분석이 필요한데
성령의 열매는 단수라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사과라는 한 열 매속에 수분과 비타민과 당분과 여러 영양분들이 들어있는 것처럼 성령의 열매 속에 9가지 열매의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별도의 성령의 열매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 속에 사랑의 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는 9가지의 성분이 고루고루 있을 때 완전한 하나의 열매로서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시간에는 이런 9가지의 성분의 요소에 대해 개괄적인 분석 작업을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9가지의 성령의 열매의 요소들은 크게 3부분으로 그 성분이 나누어집니다.
대신관계와 대인관계와 대아관계의 성분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한 성령의 열매의 요소들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는 그저 값없이 주시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지금도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로 인해 우리는 그 사랑을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에게 기쁨이 되어지고 이 기쁨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원동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대인관계에 속한 성령의 열매의 요소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입니다.
우리 인간관계에서 덕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인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 주신 예수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우리도 자비로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선이라고 하는 것은 관용이라는 말과 서로 통하는 것인데 자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는 한없는 관용을 베풀면서 남에 대해서는 한 치의 용서도 없는 이 시대적인 상황속에서 꼭 필요한 기독교인의 덕목입니다.
3. 대아관계에 속한 성령의 열매의 요소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 성경에서는 진실함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충성한다는 것은 남에게는 당연하거니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짓 증거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실함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초점을 맞춘 온유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절제를 우리 자신에게 엄격하게 함으로 대아관계의 성령의 열매의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령의 열매의 9가지 요소들이 고루고루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이에 저는 이번 주간에 들은 윤항기 목사님의 찬양간증을 통해 받은 은혜를 우리 성도들과 함께 나눔으로 세상의 향락 속에서 아니 세상의 향락 선도해 가던 두 남매가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어 가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윤복희씨 지금은 권사님이지만 윤복희씨에 대한 선입관이 좋지 못해서 두 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저들의 곡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번 간증을 듣고 저의 그런 입장을 바꾸고 저들을 사랑하고 좋아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한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1979년 제가 삼천포 경찰서에서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할 때 한번은 삼천포시의 어느 극장에서 윤복희씨의 쇼가 있었는데 쇼 극장에서의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쇼를 보러갔습니다.
윤복희씨가 나와서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데 웬 젊은이가 무대위로 올라가서 난동을 부렸습니다. 극장 안에 어수선해 지고 우리는 그 청년을 체포해서 경찰서로 연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윤복희가 보여준 태도가 저의 마음을 지금까지 닫게 했습니다.
그런 난동이 일어나자 윤복희씨가 하는 말이 삼천포 시민들은 수준이 낮아서 자기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전후사정 볼 것 없이 제 개인적으로 윤복희씨에 대해 마음을 닫아버리고 텔레비젼에 윤복희씨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다른 채널로 돌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오빠되시는 윤항기 목사님의 찬양간증을 들어보니까 충분히 이해가 되고 앞으로 좋아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윤목사님 남매는 6.25 사변 후에 조실 부모하고 거리의 거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배가 고파서 꿀꿀이 죽 파는데 옆에 앉아서 혹시나 좀 나눠주지 않나 하는 기대감으로 아무리 기다렸지만 주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거지 둘만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거지 아이들이 꿀꿀이 죽 장사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누구는 주고 누구는 줄 수 없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다고 하는데 그때 웬 할머니 한 분이 꿀꿀이죽을 사서 돌아가다가 다리를 헛디뎌서 꿀꿀이 죽을 길바닥에 쏟아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이 두 남매는 약속이나 한드시 입을 땅바닥에 대고 그 쏟아진 꿀꿀이 죽을 핥아서 다 먹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해서 나름대로 가수로서 출세를 했는데 윤복희씨가 일찍 결혼을 해서 이혼을 당하고 또 78년 봄에 재혼을 했다가 79년 1월에 이혼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친정인 오빠집에 와서 보름 가까이 밥도 먹지 않고 울고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오빠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안타깝고 속이 상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아닙니까 ?
그래서 윤항기 목사님은 아내를 붙들고 막 울었답니다.
내 동생 복희가 저러다가 죽는다고 말입니다. 어떻게 실려 볼 도리가 없느냐고 하면서 막 울었다고 합니다.
이때 윤목시님의 사모님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고모의 그 깊은 상처를 누가 위로해 주겠어요 아무도 위로해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위로해 줄 수 있고 그 상처를 싸매줄 수 있으니 우리 기도하자고 했답니다.
그러면 당신이 바람을 피워서 몇 년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자기는 40일간 금식기도를 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윤항기 목사님과 사모님은 동생 복희를 위해 죽기 살기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 윤목사님의 머리속에 이사야서 41장 10절의 말씀이 스쳐가더라는 것입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때 이런 윤목사님에게 엄청난 축복의 역사가 임했는데
1979년 5월 우리나라에서 국제 가요제가 열리는데 가수위원회에서 윤목사님에게 동생 복희씨와 함께 한국대표로 출전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윤항기씨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받은 이사야서 41장 10절을 가지고 작곡작사를 하여 그 노래를 윤복희씨가 불러서 한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무대인 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때 부른 노래를 제가 다시 한번 더 이 시간 불러보겠습니다.
“네가 만약 외로울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주님이 너의 친구가 되리
어둔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주가 너의 덕 되리라
주는 너의 영원한 친구야
주는 너의 형제야
주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이 곡이 바로 우리나라의 ccm 송 제 1호 여러분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곳이 세상 유행가인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윤항기 목사님의 그런 뼈아픈 사연이 들어있는 그것도 참으로 어려운 절망 속에서 기도로 이겨낸 승리의 찬양이라는 간증을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런 중심을 가진 윤항기 목사님은 물론이요 윤복희 권사님도 주안에서 사랑하며 존경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두고 죽기 살기로 기도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이런 큰 은총이 임한 것입니다.
이들 남매는 지금 60이 넘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빠는 목사가 되어 찬양신학교를 운영하는 학장으로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동생은 교회의 권사로서 역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 기전에는 [난 어떡하라구, 다 그런거지 뭐]라는 세상 노래를 만들어서 불렀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작고하면서 부르고 있습니다.
8살에 미군 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동생 복희 권사님은 다음과 같은 신앙의 고백을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신 것을 아는데 어떻게 순종을 안 해요 기도하면 딱 나와요 ...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찾아가다 보니까 하나님이 주려 했던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얹어주시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