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매일 11명씩 自殺]
식사 거부하고 약 뱉는 행동, 마음먹고 단행한 '간접 자살'
"예전에도 노인들 외로웠지만 노년자살 급증 추세 짚어봐야"
"부모님이 자살했는데, 그 집 자식들이 주위에 '우리 부모님 자살했다'고 털어놓지는 않죠. 남들처럼 빈소 차리고 상을 치러요. 그래도 저희는 알지요. 워낙 많이 보니까요. 요즘 자살하는 노인 정말 많아요. 엊그제도 그런 시신이 들어왔어요."
장례식장·승화원(화장장)·추모의집을 갖춘 수원시 연화장에서, 20년 경력 장례지도사 A씨가 자판기 커피로 목을 축였다. 막 염습(殮襲)을 마치고 땀범벅이 된 상태였다.
"목을 맨 노인은 목이 까지거나 피멍이 들어있어 금방 눈에 띄어요. 투신한 시신은 소리로 알고요. 시신을 움직일 때 '딸각딸각' 소리가 나거든요. 높은 데서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몸속의 뼈가 조각조각 부스러진 거죠."
유족이 화장장 직원에게 자기 입으로 '자살'이라고 털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너무 넘겨짚었나' 미안해져서 사망진단서를 들춰볼 때도 있어요. 어김없이 '외인사(外因死·자살이나 사고 등으로 숨졌다는 뜻)'라고 되어 있더군요."
◇노인, 하루 11명씩 목숨 끊는다
최근 5년간 65세 이상 노인 2만43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통계청·보건복지부). 더구나 계속해서 늘고 있다. 2008년에는 연간 3561명, 하루 평균 9.8명이 숨졌다. 작년엔 4023명, 하루 11명이 숨졌다. 이유는 ①병(39.8%) ②경제적 곤궁(35.1%) ③사랑(4.8%) ④가정불화(4.3%) 순이다(2011년 통계청 조사).
전문가들은 "이 대목을 한번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10년 전, 20년 전이라고 노인들이 안 아프고, 돈 많고, 잘나갔을 리 없다. 그런데 왜 요즘 와서 갈수록 노인 자살이 급증하는 걸까.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전문가들은 "노년은 언제나 쓸쓸한 시기였지만, 지금 노인들은 두 가지 이유로 예전 노인들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첫째,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살고 오래 앓게 됐다. 둘째, 길어진 인생을 떠받칠 가족 관계는 되레 척박해졌다.
이남희 남양주 노인자살예방센터 팀장이 "현장을 돌다 보면 잘나가던 분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절망하는 경우가 뜻밖에 많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너무 길다
이정근(가명·76) 할아버지는 동년배 대다수가 밭 갈 때, 명문 사립대에 다녔다. 이후 공기업 간부로 승승장구했다. 평생 엘리트로 산 그는 은퇴 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됐다'는 느낌을 참지 못했다. 몰래 수면제 200알을 모으고, 언제라도 입안에 털어 넣을 준비를 했다. 다니던 병원 사회복지사가 눈치채고 간신히 제때 막았다.
때론 다른 데서 오는 자괴감이 더 큰 경우도 있다. 10년 전 아내와 사별한 김영식(가명·82) 할아버지는 올 초 이웃 소개로 고운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보다 마음씨는 더 고와 몇 주 만에 혼인신고도 했다. 재산도 모두 알려줬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통장을 확인해보니 잔액이 '0원'이었다. "다 늙어 주책"이란 소리 들을까 봐 자식에게 말도 못 했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목숨을 끊었다.
◇가족이 너무 멀다
두 할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례지만 ▲남은 인생이 의외로 긴데 그걸 감당하지 못했고 ▲가족에게 기댈 수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과 자살한 노인 사이의 '벽'은 노인이 죽은 뒤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은 '부모가 자살한 건 내가 불효자였기 때문'이라고 압박감을 느낀다. 심지어 사망진단서까지 거짓으로 쓰기도 한다. 당연히 불법이지만 "적발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게 현장 얘기다.
"화장하려면 사망진단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간혹 자살한 노인의 유족들이 그런 서류 없이 와서 '자살했다면 남들이 흉볼 텐데…. 자연사라고 써주면 안 되느냐'고 울 때가 있어요. 그러면 화장장 주변에서 영업하는 '보따리 의사'(사망진단서 없는 화장장 고객들에게 급하게 해당 서류를 끊어주는 의사를 뜻하는 은어)들이 유족 뜻을 들어주곤 하지요."(B지자체 화장장 운영팀장)
◇곡기와 함께 세상을 끊다
고인이 자살에 이른 과정을 본인이 남긴 기록과 주변 사람들 증언을 통해 자세히 밝히는 걸 '심리적 부검'이라고 한다. 법의학자가 시신을 보고 범인을 잡듯, 절망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파헤쳐 들어가는 작업이다.
육성필 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심리적 부검을 하지 않으니, 자살 원인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대책도 안 나온다"고 했다. 그는 노인 자살이 통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봤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노인들이 요양원에 누운 채 식사를 거부하거나, 약을 뱉는 경우를 그는 수없이 봤다.
많은 사람이 그런 죽음을 '곡기를 끊었다'고 표현한다. '깨끗한 죽음'이라고 은근히 추켜세우는 경우도 있다. 육 교수는 "내가 보기엔 목을 맬 힘도 없는 노인이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마음먹고 단행하는 '간접 자살'"이라고 했다. "그런 죽음을 좋게 봐도 될까요? 우리는 안 늙을까요? 누구든 오래 살고 오래 앓습니다."
"며느리는 잘못 없다. 오래 산 내가 잘못이지. 빨리 죽고 싶다."
서울 영등포구 아파트에서 100세를 바라보는 시어머니가 뱉은 말이다. 이 집 세 식구는 96세 시어머니, 78세 외아들, 77세 며느리다. 시어머니는 3년 전까지 수도권 단칸방에 혼자 살았다. 병치레가 잦아지자 보다 못한 아들이 모시고 왔다. 며느리는 표나게 싫은 기색을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무서워 속옷도 세탁기에 못 넣고, 화장실에서 목욕할 때 조물조물 주물러 빤다.
친척들은 며느리를 욕했지만 며느리 입에서도 "죽고 싶다" 소리가 나오긴 마찬가지다. 한 달 전 며느리는 교회 봉사팀과 상담하다 펑펑 울었다. "나도 손자며느리까지 보고 온몸이 아픈 늙은이인데 왜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되나요? 자식들이 근근이 살아 공공 근로를 뛰어요."
오래 살고 오래 앓는 패턴이 굳어지면서 한국인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취재팀이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의뢰해 최근 30년간 자살 통계를 분석해보니 다른 나라에 좀처럼 없는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①IMF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살률이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40대(10만명당 34명 자살·2011년 기준)→50대(41.3명)→60대(50.5명)→70대(86.3명)→80대 이상(116.9명)으로 갈수록 스스로 목숨 끊는 사람이 늘었다.
②60대 이하의 자살률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60대 이상 노인들의 자살률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1983년부터 한 세대 동안 40대 자살률은 2.6배, 50대 자살률은 2.7배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60대 자살률은 3.6배, 70대는 5.8배, 80대 이상은 9.5배 늘었다. 최근 10년 동안에도 60대 자살률은 1.7배(2001년 10만명당 30.7명→2011년 50.7명), 70대 자살률은 1.9배(45.3명→86.3명), 80대 이상 자살률은 1.9배가 됐다(62.2명→116.9명).
③이런 현상이 경기가 나쁠 때 한두 해 나타나고 사라진 게 아니라 경기가 풀린 뒤에도 계속해서 심해졌다.
원인이 뭘까? 경제 전문가들은 “대다수 한국인이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등에 지나치게 투자하느라 저축할 시기를 계속 놓쳤다”고 했다. 개인적인 준비도 부족하고, 복지제도도 미처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저성장·고령화·가족 해체’라는 삼각파도를 맞고 말았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한국 사회가 워낙 빨리 변하다 보니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노미(혼란)적 자살’이 많다”고 했다. 중년은 노력할 여지가 남아 있지만 노년이 되면 ‘뭘 더 기대하겠나’ 하고 더욱 절망해버린다. 노인은 섣불리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 대신, 일단 실행하면 치명적 결과에 이를 확률이 높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과 교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사회가 노인을 자살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2부에선 '더 나은 마지막 10년'
‘한국인의 마지막 10년’ 1부를 마무리합니다. 전국 각지 독자들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호응해주셨습니다. 2부로 그 마음에 보답하겠습니다. ‘한국인의 더 나은 마지막 10년’을 위한 대안을 준비해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