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가 이순신 장군 후손인데 오랫동안 세를 안 올려 버틸 수 있었다

[한현일]

다음은 4.18일 전 경기도 관광공사 사장 홍 승표님이 올린 글입니다. 너무나 각박한 이익 추구 사회에서 오아시스같은 이런 따뜻한 배려가 있어 세상은 굴러가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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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작은 일에 감동할 때가 있다. 수원시청 옆 먹자골목 인근에 소박한 쌈밥집이 있다. 손님이 끊이질 않는 걸 보면 주인장의 음식 솜씨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20년이 넘도록 한 곳에서 장사하고 있는 건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는 방증일 게다. 경제가 나빠져 문을 닫는 곳이 많은데 여전한 걸 보면 특별한 비결이 있을 듯했다. 점심을 먹고 조심스레 물음표를 던졌는데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제 음식 솜씨가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닙니다. 건물주가 오랫동안 세를 올리지 않아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 들 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그냥 놔두는 건물주가 있구나! 주인장은 “건물주가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데 오랫동안 세를 올리지 않아 다른 건물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장군은 나라를 구했는데, 후손은 어려운 사람을 구하는 것 같다”라며 건물주 자랑도 했다. 건물주를 존경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제공)
어느 공직 선배도 나름 의미있는 일을 했다. 건물주인 그는 코로나 시절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차인들의 임대료를 낮춰준 것이다.

그는 임차인들에게 ‘요즈음 경제가 어렵고 외환위기 때보다도 힘들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나 버거우십니까. 하지만 난관 속에서도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다음 달부터 임대료를 낮추겠으니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라는 편지와 함께 임대료를 낮춰준 것이다. 임대료를 동결하기도 쉽지 않은데 내려주다니, 새삼 그 선배가 존경스러웠다.

                                           (필자제공)
옛 어른들은 가진 게 적어도 나눌 줄 알았다. 옛날엔 혼사를 앞두고 상대 집안의 가풍을 살피는 풍토가 있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인물이 번듯해도 집안 내력이 시원찮으면 ‘그 나물에 그 밥’ 취급을 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을 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시집올 때 은비녀 이상의 패물을 갖고 오지 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들어올 것에 맞춰 쓰라. 파장 물건은 사지 말고 값을 깎지 마라.’

오늘날에도 경주 최씨 집안 가훈이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의 생각과 발자취는 자식에게 나침판이자 길잡이가 된다. 따라서 솔선수범으로 가치 있는 삶의 철학을 실천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을 백번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百言不如一行)’이 중요하다. 소중한 자산은 재물이 아니다. 재물만 남겨주면 자식은 나태해지기 쉽고 서로 다투는 일을 흔히 보게 된다.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어야 한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르다. 부자로 사는 것보다 잘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웃을 도우며 양보하고 배려하며 사시던 아버지를 통해 돈보다 가치 있는 게 많다는 걸 배웠다. 비록 가진 것이 모자라도 우리 형제들 역시 아버지처럼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삶의 보약 같은 자양분, 그것은 부모의 거름으로 가능했다. 이를 바탕으로 가진 건 없었지만 부끄럽지 않게 늘 당당하고 위엄있게 살 수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고관대작이 된들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요즘 시대에 가훈이나 가풍을 언급하면 구태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없이는 미래도 있을 수 없듯 어제 없는 오늘도 없다고 생각한다. 전통은 과거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있게 한 정신적인 유산이다. 가훈이나 가풍 역시 낡은 교훈이 아니라 미래를 잇는 소중한 가교가 될 것이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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