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초롱서시
지금 40대 부모들이 어렸을 때인 50년대와 60년대에는 우리 동화책이 귀했다. 그때 본 동화책 중 아직까지 대다수 부모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동화책이 강소천 동화집이다. 이 강소천은 바로 백석이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1941년 2월 강소천이 동화시집 《호박꽃 초롱》을 낼 때 당시 만주에 있던 백석은 아름다운 서시(序詩)를 보내 간행을 축하했다. ‘닭’, ‘보슬비의 속삭임’, ‘호박꽃초롱’ , ‘겨울밤’등 구슬같은 동화시가 들어있는 이 시집은 장정(裝幀)을 당대 최고의 화가인 정현웅이 맡아 더욱 유명해졌다.
해방 이후 고향인 북한에 남아있다가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바람에 그 탁월한 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문단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던 백석은 북한에서도 시는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러시아 문학 번역과 동화시의 창작에 몰두했다.
문학을 공산혁명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북한정권하에서 번역문학과 아동문학, 그것도 학령 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 정도가 그나마 문학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는 영역이었으리라. 백석의 동화론(童話論)은 다음과 같고 자신의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유년(학령 전 아동)들의 세계는 고양이와 집토끼를, 헝겊곰과 나무송아지를 동무로 생각하는 세계이다. 유년들의 세계는 셈세기를 배우는 세계이며 주위 사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어보는 세계이다. 유년들의 세계는 유희에서 시작하여 유희에서 끝나는 세계이며 꿈에서 시작하여 꿈에서 끝나는 세계이다. 이러한 유년층 아동들을 문학의 대상으로 하는데는 특하한 고려가 필요하다. 고리키는 일찍이 이 연령층을 위한 문학을 말하면서 장난과 셈세기를 문학작품의 주요한 제재로 할 것과 시를 이 문학의 장르로 삼을 것을 주장하였다. 고리키의 이 간단한 말에서 우리는 유년층 문학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큰문제 , 작은고찰 ㆍ<조선문학>제118호ㆍ1957년6월)
序詩ㆍ1941년2월ㆍ《호박꽃 초롱》(서울박문서관)
☞ 계집아이 / 원작 백석 / 해설 이상일 / 도서출판 정상
>'호박꽃 초롱' 서시
한울은
울파주 가에 우는 병아리를 사랑한다
우물돌 아래 우는 돌우레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버드나무 밑 당나귀 소리를 임내내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속에 문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공중에 떠도는 흰 구름을 사랑한다
골짜구니로 숨어 흐르는 개울물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아늑하고 고요한 시골거리에서 쟁글쟁글 햇볕만 바래는 시인을 사랑한다
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러나
그 이름이 강소천(姜小泉) 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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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파주 : 대, 수수깡, 갈대, 싸리 등을 엮어 세워 놓은 울타리.
돌우래 : 말똥 벌레나 땅강아지와 비슷하나 크기는 조금 더 크다. 땅을 파고 다니며 '오르오르' 소리를 낸다. 곡식을 못 살게 굴며 특히 콩밭에 들어가서 땅을 판다.
임내내는 : 흉내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