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오후 3시 한글회관 강당에서 문화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2003년 제1회 우리 말글 지킴이"뽑기 행사에 민주당 신기남(51, 강서갑)의원과 성바오르 안나의집 정의순 수녀가 뽑혀 위촉장을 받았다.
▲ 지킴이 뽑기 행사에 참석한 분들 기념사진
"우리 말글 지킴이 뽑기" 행사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의 하나로 2000년부터 시행한 일로서 우리 말글을 널리 펴고 지켜 쓰는 일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우리 말글 지킴이"로 위촉하여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바로 쓰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우리 국민들이 스스로 제 나라 말을 바르게 쓰고 사랑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시행하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특별한 행사다. 우리는 5000년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하지만 지난 수천 년 간 우리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어 중국의 글자인 한문을 빌어서 써왔기에 남의 글자나 말을 숭배하는 못된 버릇이 있는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글자인 한글을 가졌지만 바르게 쓰지 않아 지난 100여 년 간 한글 쓰기 운동을 해왔다. 그래서 이제 한글이 나라의 글자로 인정받고 우리 말글이 한문으로부터 독립하려는가 했더니 요즘 들어 미국말 떠받들기 바람이 일어 이런 행사까지 하게 된 것이다.
영국이 16세기 국운이 융성하던 엘리자베스1세 때 우리의 한문과 같은 라틴어로부터 독립해 영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해 셰익스피어 같은 유명한 문장가가 나오고 영어와 함께 영국이 일어난 것을 회상할 때 우리가 이제 한글날을 만들고 한글 맞춤법을 제정해 우리 말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를 만들어 국어생활을 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이런 뜻에서 생각할 때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과 '우리말 지킴이 뽑기' 행사는 국어독립운동으로서 우리 민족사에 중대한 일이다.
▲ 행사에 참석한 신기남의원과 정의순수녀, 참석자들
이날 지킴이로 뽑힌 신기남 의원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으로서 16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40여명의 의원과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을 만들고 대표로서 한글날 국경일 지정에 힘썼다. 신의원은 인사말에서 "한글은 우리 겨레의 자존심이고 긍지이며 우리 문화발전의 도구로서 우리가 갈고 닦고 바르게 써야 할 보물인데 1990년에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뒤 더 천대받고 우리말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우리가 한글날을 국경일로 정하자는 것은 단순히 노는 날을 더 늘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한글날을 문화 국경일로 정함으로서 우리 민족문화와 국가발전에 큰 계기를 마련하자는 큰 뜻이 있다. 그런데 지난 3 년 간 여러 차례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해 힘썼으나 행정자치부 공무원과 경제단체의 비협조와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들이 반대 이유는 한글의 훌륭함과 중요성, 한글날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단순히 하루 노는 날을 늘리는 쪽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늘 지킴이로 뽑은 것은 한글날을 꼭 국경일로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알겠다. 이제 한글세대가 대통령과 장관이 되었으니 여건이 좋아졌다. 한글단체에서도 더욱 힘써서 올해는 꼭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자."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글쓴이는 행사 이틀 전인 29일 국회의원회관으로 가서 신 의원을 만나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을 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 할 계획을 듣고 의논했다. 그 자리에서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에 나선 것이 우연스런 게 아니라 신 의원이 한글과 한글날의 중요성을 잘 알고 투철한 역사의식과 시대사명, 애국심에서 그 운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가슴 뿌듯했다. 일찍이 해군사관학교에서 역사 교관을 한 사람으로서 한글과 한글날이 우리 역사상 매우 중대한 사건임을 인식한 참된 한국인이고, 지금 대학생인 첫 딸의 이름을 '신하늘'이라고 지을 정도로 한글사랑 실천가였다. 그런 신 의원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우리 말글이 몸살을 앓고 민족정기가 식어 감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하늘 양은 31일 지킴이로 뽑힌 아버지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참석자들에게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모습에 참석자들이 매우 반가워했다.
정의순 수녀는 지난 30여 년 간 중등학교 국어 교사와 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우리 말글을 바르게 쓰고 사랑하도록 가르치기에 힘쓰셨고 정년 퇴임한 뒤 대구에 살면서도 한글을 지키기 위한 행사가 서울에서 있을 때마다 꼭 참석하시어 젊은 일꾼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워주셨다. 이날 지킴이로 뽑힌 인사말도 겸손하고 수줍어하시면서 "우리말과 한글을 바르게 쓰고 지키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고 안타까웠다."고 짧게 말씀하시고 어린이처럼 맑고 깨끗하게 웃으셨으나 한글사랑 정신이 투철한 분이다.
정의순 할머니 수녀님은 1997년 한글새소식 300호 기념으로 쓴 글에서 "한글만 쓰기"는 민족 자신을 되찾음이요, 새 시대의 풍성한 문화를 수용할 늘품성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이뤄야 할 과제요 한문이나 영어 기타 외국어는 이 기초 위에 소화할 몫이다."며 "박정희 대통령은 초기 1960년대에 한글에 대한 열의가 컸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 사이에서 중간 입장을 취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아예 나라글자에 무관심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한글날을 국경일에서 빼 버리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현재의 김영삼 대통령은 이 나라의 대표로서 중국에 가셨을 때, 또 일본에 가셨을 때, "한자의 국제 표준화"를 주장했으나 중국 쪽도 일본 쪽도 거기에 대한 응답이 없었다. 이 무반응이 무얼 말하고 있는 지, 또 현재 한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셨더라면 결코 그런 말을 내지 못했을 것이었다."고 역대 대통령들의 우리말글 천대와 무식함을 꼬집으셨다.
그리고 "영어 교육을 아무리 잘 한다 해도 모든 이가 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이미 한국이 아니라 영국 또는 미국이다. 또 절대로 그렇게 돼서도 안 된다. 그건 이 나라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다."고 오늘날 영어 열병도 걱정하셨다. 또한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 생명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우리말을 잘 가꾸는 데 한글 이상의 글자가 있을까? 한글을 지키고 빛내야 우리말이 살고 겨레가 산다. 그러나 한글의 길은 아직도 가시밭길이다. 한글 전용을 반석같이 굳고 해와 같이 밝게 세우는 일은 이 시점의 우리의 과제다. "라고 후배들이 할 일을 알려주셨다.
정수녀님은 글쓴이를 만날 때마다 "애 많이 쓰는데 큰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시며 격려해주셨는데 그 때마다 '국어운동 어머니'같은 따스함을 느끼고 힘이 솟았다. 31일 행사장에서도 축하해 주기 위해 온 당신의 제자와 친지들에게 글쓴이를 '가장 국어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셨는데 더 잘하라는 격려말씀을 그렇게 따뜻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기에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계속 지켜봐 주시기만 하세요."라고 인사드렸다.
우리 나이로 81살인 정의순 할머니와 신기남 의원의 깨끗하고 따뜻한 겨레사랑 정신을 온 국민이 알아주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운동에 협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올해엔 꼭 한글날을 문화국경일로 제정되도록 힘쓸 것을 다짐한 날이었다. 그리고 이틀 전인 29일 신기남 의원을 만나러 국회에 갔을 때 여의도의 저녁 하늘에 뚜렷하게 뜬 쌍무지개가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이란 하늘의 계시로 생각되어 가슴이 벅찬 행사였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신기남 의원과 정의순 수녀의 주요 활동 내역]
■ 신기남(辛基南, 1952년 생) 의원의 주요 활동 내역
신기남 의원(새천년 민주당, 서울 강서 갑)은 문자 창제는 국가 건립일과 같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한글」은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한글날」은 당연히 국경일로 승격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그동안 한글날의 국경일 지정을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신 의원은 지난 2000. 10. 2.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하여 현행 "국경일에관한법률 개정안"을 국회의원 34인의 동의를 얻어 국회에 발의하였으며, 2000. 11. 15. 여야 의원 45인을 중심으로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구성하여 국회 내에서 한글날의 중요성을 확산시키는 계기를 조성하였다. 이 모임은 신기남 의원이 대표를 맡고 여야 4당별로 각각 간사의원을 두고 있다(민주당 허운나 의원,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 자민련 정진석 의원, 민주국민당 강숙자 의원 등). 이날 의원 모임에서 "한글날에는 광복절 못지 않은 의미를 두어야 함을 인식하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민족 문화 중흥의 전기를 마련하자"는 내용의 한글날 국경일 추진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2000. 11. 30. 관련 공청회를 한글학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외솔회와 공동으로 국회도서관에서 개최하였으며, 이후 신 의원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및 행정자치위원회를 상대로 위 법안이 통과 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고, 또한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글날 국경일 지정을 위한 두 차례의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모두 108명으로부터 찬성 서명을 받아 냈다.
그 외에도 신 의원은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 추진위원회(위원장 : 전택부)"와 함께 한글날 국경일 제정을 위하여 사회 각계에 서한 발송, 각 당 대표 면담, 국회의원 간담회 주도, 행자부장관 면담, 성명발표, 서명운동, 대 언론 활동, 국회의원 간담회 추진, 국회의장 면담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비록, 아직도 "국경일에관한법률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한글날의 국경일 지정은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그동안 신 의원이 보여준 뜨거운 한글 사랑 정신은 우리 민족사에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값진 노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공로를 높이 인정하여 국어 및 한글 관련 단체 인사들은 신 의원을 2003년도 "우리 말·글 지킴이"로 선정하고, 앞으로도 한글 사랑 운동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신기남 의원의 주요 약력 ]
ㅇ 학력
1958~1964 서울 수송초등학교 졸업
1964~1970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0~1974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74~1976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
1993~1994 영국 런던대학 수학
ㅇ 주요 경력
1976~1979 해군장교 복무(전투병과)
1979~1982 해군사관학교 교수
1982 사법고시 합격
1988~1993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총무이사
1993~현 비행청소년보호단체「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회장
1999~현 얼굴기형 어린이를 돕는「한국 안면기형환자 후원회」이사장
2001~현재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1996.6~현재 제16대 국회의원 (서울강서갑,재선)
■ 정의순(鄭義順, 80세) 수녀의 주요 활동 내역
정의순 수녀(성바오르 안나의 집)는 30여 년간 중고등학교 교사와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글 사랑 정신으로 올바른 우리 말글 교육을 가르쳤고 포교 활동을 통하여 우리말과 글을 바로 쓰고 지키는 일에 한평생을 바쳤다.
1957~1972년에 마산 성지 여자 중학교, 부산 테레사 여자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과 한글의 우수성을 고취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어 교육의 암기 위주에서 탈피하여 실제 언어 생활에 맞는 교육을 시켰다.
1972~1981년에는 부산 테레사 여자 중고등학교 교장 재직 시, 발음교육은 '국어교육의 기초'라는 신념을 갖고 강사들을 초빙하여 발음 교육을 비롯한 기초 국어 교육을 철저히 시켰으며, 어휘 조사, 토론회, 연구발표를 통한 발표력을 향상시켰다.
1981~2001년에는 수도원 도서관(대구), 경주 근화여자중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도서관 용어와 시설물의 이름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데 노력하였으며, 경주 시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한글사랑 모임인 "샛별 한글 모임"에 참여하여 매주 독서 지도 및 토론회를 개최했고, 고적 답사, 한글날 행사 등 우리말 우리 글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선생은 또 잘못된 국어 정책이나 한글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건의서나 호소문을 보내 우리 말글 바로 잡기에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한평생 우리 말글의 바로 쓰기에 늘 관심을 가지고 전국에서 개최하는 우리말에 관한 모임에는 꼭 참석하여 함께 연구하고 활동하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요즘은 은퇴하여 천주교 안나의 집에서 수도에 정진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말 우리 글에 대한 집념은 여전하다.
[ 정의순 수녀의 주요 약력 ]
ㅇ 학력
1935~1939 경북 공립고등학교 졸업
1939~1940 서울 관립 여자 사범학교 강습과
1953~1957 동국대학교 문리대 국문과
1976~1980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ㅇ 주요 경력
1957~1972 성지 여자 중학교 교사, 테레사 여자 고등학교 교사
1972~1981 테레사 여자 중고등학교 교장
1981~2001 수도원 도서관(대구) 근무, 근화 여자 중고등학교 교장
2002~ 현재 성바오르 안나의 집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