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 - 서산 물막이 공사 성공
정주영식 물막이 공법(정주영 공법, 유조선 공법)
서산간척지 공사 당시 현대건설은 A지구와 B지구로 나눠 공사를 했다. B지구 공사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A지구의 경우 최종 물막이 공사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A지구 방조제 길이는 총 6400m였는데, 양쪽에서 방조제를 쌓아오던 중 가운데 270m를 남겨놓고 공사가 중단됐다. 초속 8m의 무시무시한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승용차만한 바윗덩어리를 던져넣어도 금세 물살에 쓸려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B지구 방조제 최종 물막이 공사 때는 4.5t짜리 바위에 구멍을 뚫어 철사로 두세 개씩 묶은 후 바지선으로 운반해 떨어뜨렸다. 그러나 A지구에서는 워낙 유속이 빨라 이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철사로 돌망태를 엮어 15t 트럭과 30t 트럭으로 매일 돌을 실어다 쏟아붓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습니다.”
현장감독의 보고는 절망적이었다. 아무리 많은 돌망태를 쏟아부어도 코끼리에게 비스킷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현대가 가진 장비를 총동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간척공사의 최종 물막이 공법으로는 흔히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를 동원해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가는 점고식(漸高式), 덤프트럭 등 육상장비를 이용해 공간을 점차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漸縮式), 그리고 이 두 공법을 적절히 병행하는 병행식 등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A지구 최종 물막이 공사에는 세 가지 방법이 다 무용지물이었다.
정주영은 고심했다. 시간을 끌수록 돈과 인력이 낭비되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살이 거세 해상장비로도 안 되고, 육상장비로도 안 된다? 그러면 그 거센 물살을 죽이는 방법을 쓰면 되지 않겠어?”
정주영은 그답게 단순하고 명쾌한 논리를 폈다. 어떤 일이든 난관에 부딪히면 난관의 원인이 되는 것을 찾아 제거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글쎄요. 물살을 어떤 방법으로 죽이느냐, 그게 문제겠죠.”
공사 현장 책임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머리를 쓰라구. 머리는 그냥 붙어 있는 게 아니야. 이럴 때 쓰라구 붙어 있는 거야. 거 왜 고철로 팔아먹으려고 사온 유조선 있지? 그걸 당장 서산 앞바다로 끌고 와.”
정주영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때 현대는 해체해서 고철로 팔기 위해 30억 원을 주고 스웨덴에서 사온 폐(廢)유조선을 울산 앞바다에 묶어두고 있었다. 정주영의 지시에 따라 332m 길이의 고철선이 울산에서 서산으로 옮겨졌다. 이른바 ‘정주영 공법’ 또는 ‘유조선 공법’이라 불리게 된 세계 최초의 최종 물막이 공법이 시작된 것이다.
D데이인 84년 2월25일 새벽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정주영이 개발한 새로운 공법으로 물막이 공사 시범을 보인다는 소문이 나자 각 언론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현장취재에 부산했다.
하지만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세 차례에 걸쳐 폐유조선을 물막이 현장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물살이 너무 거세 실패하고 말았다. 6시가 됐는데도 유조선은 저 멀리 바다 위에 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정주영은 작은 배를 타고 유조선으로 건너가 진두지휘를 했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을 무렵인 저녁 7시경, 필사적인 노력 끝에 썰물을 이용해 유조선을 접안시켰다. 그러나 배 양쪽 끝에 20m 정도의 틈이 생겨 그 사이로 거친 급류가 급속하게 내해 쪽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작업은 철야로 진행됐고, 밤 11시 경에 겨우 유조선의 꽁무니 쪽 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썰물 때의 노역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조선은 저만큼 먼 바다로 떠밀려가 있었다. 그때까지 유조선 탱크에 물이 차 있지 않아 완전히 침하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고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지. 예인선을 다시 불러!”
정주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정주영식 유조선 물막이 공법’은 성공을 거뒀다. 이 공사가 성공하면서 정주영은 290억 원의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사상 초유의 이 공법은 미국의 ‘뉴스위크’지와 ‘타임’지에 소개됐으며, 그 후 영국 런던 템스강 상류 방조제 공사를 맡은 세계적인 철구조물 회사에서 이 공법에 대해 문의해 오기도 했다. ‘정주영 공법’이라고 이름붙은 이 유조선 공법이 세계적인 물막이 공사의 신공법으로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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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5/04/15/200504150500066/200504150500066_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