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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호저면 문바위봉(597m)을 가다.
글 쓴 이 牧 鉦 高 達 五
8월26일, 처서(處暑,8/23)를 전후(前後)로 하여 일주일여 동안 내린 장마비로 더위가 한풀 꺾였는가 했더니 아직은 꿈쩍도 않는다.
이것 저것 챙겨서 차에 오르니 빈자리가 절반이다.(27명) 매스컴에서 연일 강력한 태풍 “볼라벤”이 올라 온다고 떠들어 대니, 지레 겁을 먹었는가?
군위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줄곧 내달아 영주 부근을 지나니, 소백산의 영봉(靈峰)들이 운무(雲霧)에 휩싸여 한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빠르게 움직이는 서운(瑞雲)은 왈츠를 추시는가! 탱고를 추시는가! 녹색(綠色)의 청산(靑山)을 얼싸안고 움직이는 모습이 과시(果是) 신출귀몰(神出鬼沒)하도다!
처음오신 홍기사님은 기분이 좋으신지 싱글 벙글 신나게 달린다. 출발때는 느리다 싶드니, 기름이 들어가니 속도가 달라진다. 분위기도 서~비스도 여차(如此) 여차 하시다! ‘돈심이 쌔기는 쌘기라!’
차내는 박총무님의 노래교실로 흥겨웁고, 멀리 다가오는 산천(山川)의 풍광(風光)들은 녹색으로 절정이다!
차는 어느덧 북원주 IC를 벗어나 출발기점인 호저면(好楮面) 칠봉교(七峰橋)에 이르니, 시계는 10시 20분을 가르킨다. 오늘은 준비운동도 기념촬영도 없이 곧 바로 山 오름니다.
산현리 마을은 깊은 산촌(山村)이라 고즈넉하고 정겨운 마을이다. 들판도 좁아서 주민들의 수(數)도 많지 않아 보이며, 전형적인 산골 마을인데... 마을을 감싸고 있는 칠봉산이나 소군산의 경치는 예사롭지 않도다!
마을길을 지나 “해주최씨 세장지(海州崔氏 世葬地)” 부근에서 뒤돌아 보면 칠봉산(七峰山)의 암봉(岩峰)들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며, 그 아래로 일리천(一里川)이 넘~실 넘~실 휘돌아 흐른다.
이름은 칠봉(七峰)이나 아무리 보아도 다섯 봉우리 밖에 보이지 않으니... 두봉은 뒷면으로 숨어 있나보다. 하기사, 오봉(五峰) 보다는 칠봉(七峰)이 더 좋지 않을까!
몇걸음을 더 올라 ‘최씨묘역’ 제일 위쪽에서 내려다 보면 칠봉의 산세는 더욱 수려(秀麗)하고, ‘문바위봉’을 주산(主山)으로 좌청룡(左靑龍)이 잘 감싸주어 맞은편 칠봉에서 그 맥을 일리천에 떨구고 있으며, 백호(白虎)도 잘 발달하여 소군산(475m)의 작은 지맥들이 칠봉과 인접하게 감싸주고 있으니... 산중의 대명당(大明堂)이로다!
게다가 청룡쪽의 ‘일리천’의 물과 백호쪽의 ‘고들골’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바로 칠봉교(七峰橋) 부근에서 합수(合水)하여 흐르고, 그 우측으로 수구(水口)의 방향이 허(虛)하여 비보숲(裨補林)을 조성하였으니... 옛 선현들의 지혜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오늘따라 선발대로 20여 분을 오르니, 날씨는 더워서 숨이 턱 턱 막히고 땀은 비오듯 한다! “태풍 전야(前夜)라!”드니... 내일 모래면 그 어느때 보다도 강력한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한다고 예보 하드니, 솔바람까지 기가 죽었나 보다!
선두와 후미가 너무 떨어져서 잠시 쉬었다 가자며 몇 몇 회원님들과 휴식을 취합니다. 가져온 수박 조각을 나눠드시니... 한결 시원하도다! 어떤 분들은 흐르는 땀을 연신(連信) 닦으면서 물을 들이키고, 홍부회장님은 가져온 거봉포도를 권하신다. 산(山) 인심은 흐르는 땀 만큼이나 묻어나서 언제나 푸근합니다 그려!
절기(節氣)는 처서(處暑)를 지났건만, 삼복(三伏)중의 7월 산행때 보다 더 힘들게 느껴진다. 함께 오르시는 노장 서부장님(76)은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잘도 오르시고, 고장석님, 이태만님은 후미에서 무척이나 힘겹게 오르신다.
한봉우리 한고개를 오를 때 마다 쉬고 또 쉬면서 8부능선 쯤 오르니, 경사가 가파른 곳에는 굵은 동아줄을 매어놓아 한결 수월하다. 그래도 어떤님들은 흐르는 땀을 감당치 못해 윗도리를 벗어 꾹 꾹 짜니... 물이 줄 줄 흐른다!
이럴땐 ‘산행은 고행(苦行)이라!’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겠제! 선발대로 박번 산대장님을 비롯해서 6~7명은 먼저 나아가시고, 중간 후미는 합쳐서 16명이 함께 진행합니다.
그럭 저럭 이정표가 있는 마지막 봉우리(590m)까지 오르니, 문바위봉 0.3Km라 적혀있어 정상은 포기하고 소군산 방향으로 진행키로 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능선으로 나아가니 한결 수월합니다.
능선길은 거대한 노송(老松)들로 즐비(櫛比)하고 기이(奇異)한 모양의 나무들도 보인다. 뿌리쯤에서 ‘ㄱ’자 모양으로 꺾여져 있는 나무와 연리지(連理枝)의 소나무도 보이고, 뿌리는 하난데 줄기는 6~7개로 벌어져 자라있는 나무도 보인다.
선두는 어디메쯤 가셨는지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워키토키(무전기)도 없으니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어, 휴대폰으로 연락해도 통신이 쉽지 않도다!
30여 분을 더 진행하다 13시 쯤에서 시장끼도 더하여, 500여 고지 부근의 적당한 곳에서 모두들 모여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맛있게 드심니다. 필자를 비롯하여 서부장님, 김해진님, 홍부회장님, 최영수님, 고장석님, 이태만 부회장님, 이원종님 등이 빙 둘러앉아 맛좋은 반찬들을 나눠드시니... 밥맛이 꿀맛이라!
또 후식(後食)으로 과일이며 커피, 쌍화차 까지 취향대로 드시니... 더운날에 특별한 맛이로다! 점심후 여유를 부리며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는 500고지 부근의 갈림길에서 잠시 주위를 조망(眺望) 합니다.
이곳 문바위봉(597m)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부근에서 서쪽 방향으로 계방산, 오음산, 금물산, 갈기봉, 도일봉, 용문산 등으로 한줄기가 계속 이어져서 유명산에서 그맥을 북한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한강기맥이라 하며, 연(連)하여 금물산 부근에서 서남쪽으로 성지봉, 덕갈고개, 도덕고개를 거쳐 다시 응봉, 덕고개, 큰고개를 지나 이곳 문바위봉에 이르고 연이어 소군산(479m)에서 그 맥을 섬강(蟾江)에 떨구고 있다.
게다가 동으로는 일리천(一里川)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이리천(二里川)이 흘러 문바위봉 일대를 감싸고 돌아 섬강에 합류하여, 다시 문막(文幕) 부근에서 남한강(南漢江)에 유입(流入)되어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으니... 원주시민들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슴니다.
또 섬강(蟾江)의 본래 이름은 ‘달강’, ‘달래강’이라 하였는데, ‘섬(蟾)’자가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울러 지정면 판대리 일대의 ‘간현협곡’에는 경치가 뛰어난 기암절벽(奇巖絶壁)중에 ‘병암(屛巖)’이라는 거대한 글씨가 새겨진 병풍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올라앉은 바위 모양이 두꺼비 형상이어서 섬강(蟾江)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해오며, “병암”이라는 글씨는 조선 명종 때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1517~1578)이 썼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정면(地正面) 일대에는 폐사(廢寺)됀 흥법사지(興法寺址)가 있어 진공대사(眞空大師:869~940)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으며, 또 빈터에는 삼층석탑(보물제464호) 한기와 스님의 부도비(浮屠碑)는 파손되고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남아 보물 제463호로 지정되어 있슴니다.
또 바로 이웃하여 이 고장 출신인 의민공 김제남(懿愍公 金悌男,1562~1613)의 신도비(神道碑: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1호)가 있으며, 그는 1602년 둘째딸이 선조의 비로 뽑혀 인목대비가 되면서 ‘연흥부원군’으로 봉해졌다.
그 후 인목대비가 영창군을 낳았으나 이미 공빈 김씨 소생인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는데, 적통론(嫡統論)을 들어 정비 소생인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던 유영경(柳永慶) 및 김제남과 그의 아들 3형제는 1613년 사약을 받고 처형되었다.
이어서 인목대비는 폐비가 되어 서궁에 유폐되고, 8살된 영창대군은 1614년에 방에 가둔채 불을 마구 때서 쪄 죽이는 증살(蒸殺)을 당했으며, 이 후 인조2년(1624)에 복권되어 신도비(神道碑)가 세워 졌다고 한다.
한(限) 많았던 그의 생애와 광해군의 패륜(悖倫) 행위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으니... 광해군의 탁월한 외교정치도 인륜의 도덕 앞에는 우선(優先)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섬돌 밑에 뀌또리는 가을을 재촉하지만
여름날의 매미는 가을을 모름니다
삶은 유한 하지만 그 자취는 영원 하구나
아~아~ 영겁의 윤회속에 삶은 무엇인가
다시 20여 분을 걸어나려 365고지 부근에 이르니, 묘비(墓碑)도 상석(床石)도 없는 무덤 한기가 모셔져있다. 자세히 보니 국세(局勢)가 웅장하고 안산(案山), 조산(朝山)이 조금 멀기는 하여도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길지(吉地)에 모셔져 있음을 알겠슴니다.
다만 너무 높은 곳에 모셔져 있어 후손(後孫)들의 보살핌이 쉽지 않아서 인지, 거의 폐묘(廢墓)나 진배없다.
옛 선조님들은 우직하고도 효성(孝誠)스러워서 어떤 경우에도 조상묘를 잘 돌보곤 하셨지만, 오늘날 산업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그런 점을 본 받아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효(孝)를 실천(實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자손(子孫)된 도리(道理)요! 또 만복(萬福)을 받는 근원이기도 합니다!
허허(虛虛)로운 마음으로 하산길로 접어드니, 어찌나 경사가 심한지 여간 조심스럽지 않으며, 모두들 슬~ 슬~ 기다시피 조심! 조~심! 30여 분을 내려오니, ‘고들골’의 물과 ‘의일골’의 물이 합수(合水)되는 지점에서 첨벙! 첨벙! 옷을 입은채로 몸을 담그신다!
어떤 분들은 완전 알탕(알몸탕)으로 씻는분도 계신다. 얼마나 덥고 힘들었을까! 필자도 긴~ 여정속에서 더위에 지친 몸을 씻으며... 협곡 사이로 푸른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대지는 녹색으로 충만한데 하늘은 공활(空豁) 하구나
덥다! 덥다! 하지만 가는 여름이 그래도 아쉽구나
천상(天上)이 따로 없다 물속이 바로 선계(仙界)로다!
단기 4345년(서기2012년) 8월 26일
원주시 호저면 문바위봉(597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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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산님들! 그간 안녕하신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산행후기가 많이 늦었슴다. 이점 널리 이해 바라오며, 또 김해진님의 사진자료도 활용했슴을 감사드림니다. 아울러 "의민공 사우" "흥법사지의 석탑" "간현유원지"의 사진자료는 다른 답사때 자료를 활용하여 올렸슴을 밝힘니다. 회원님들! 9월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가내 만복을 빌겠슴니다.
태풍 전야에는 온 대지가 고요 하다는데...무덥고 힘든 산행에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 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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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행 후기를 접하고 보니 생생한 동영상을 보는듯 함니다.
황회장님이 다녀 가셨군요. 남산 산악회 발전에 많은 노력을 경주하심에 감사드리며, 좋은 산수답산을
함께할 수 없어 아쉬웠슴니다. 어서 건강하셔서 아름다운 산수를 여행하시길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