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교양, 오락 등의 모든 프로를 경험한 10년차 아나운서 황수경
브레이크뉴스에서 인기 아나운서 KBS 강수정씨 인터뷰 섭외를 했을 때, 편집국에서는 금기어를 정했다. 절대 “이상형이 뭐에요?”, “언제 결혼할 거에요?” 바로 이 두 가지 질문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인기 여성 아나운서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인터뷰 기사를 찾을 수 있다. 그 수많은 인터뷰 기사의 주된 초점이 바로 ‘이상형’과 ‘결혼’에 맞춰져있다. 물론 팬들의 입장에서야 그런 사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내용의 인터뷰가 되풀이되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 그리고 그 직업의 역할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해를 해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인터뷰 할 때마다 ‘이상형’, ‘결혼’, ‘외모’만 물어보니, 직업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지 않고, ‘아나운서는 생각없이 읽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관만 주입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KBS의 10년차 간판 아나운서 황수경에 대한 인터뷰 기사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뉴스검색부터 웹문서 검색까지 포함해서 오직 열린음악회 500회 특집 연합뉴스 인터뷰만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브레이크뉴스의 인터뷰 섭외도 그다지 달가와하지 않았다. 철저히 공적인 ‘역할’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몇 차례 강조한 뒤, 간신히 아나운서실에서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굳이 황수경 아나운서를 인터뷰 대상으로 택한 이유도 그의 '역할’ 때문이었다. 그는 1993년에 KBS에 입사하여 1997년에 여성아나운서라면 누구나 꿈꾸는 9시뉴스 앵커우먼 역을 맡는다. 2년 뒤에는 열린음악회와 VJ특공대 등을 맡았고, 이는 아직까지 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지난 해부터는 오락프로그램 ‘스폰지’의 MC를 맡기도 했다. 한 마디로 뉴스와 교양, 오락 모두를 아우르는 경험을 갖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아나운서인 것이다.
최근 재충전을 위해 미국행을 준비하는 그라면, 10년 간의 방송활동을 인터뷰로 정리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갖고 그를 찾았고, 그는 예상보다 훨씬 더 진지한 태도로 인터뷰를 응해주었다. 10분만 하자는 그의 말과 달리 인터뷰는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한국말을 바르게 쓰면 재미없는 사람
변희재: 최근 브레이크뉴스에서 강수정, 성세정 아나운서 등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제 후배들 중에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도, 도대체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하고, 어떠한 직업의식을 가져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황수경: 그래도, 요즘 학생들은 꽤나 많이 아는 편일 걸요. 해마다 KBS에서는 대학방송 아나운서를 대상으로 교육을 합니다. 이 교육과정에 참여하는 경쟁 또한 치열하지요. 원서를 꼼꼼히 제출해서 선발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도 ‘아나운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자기 나름대로 이미 방송관을 구축해 놓은 학생들의 경우지요.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는데,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하는 교육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나운서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한국말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구사할 수 있으려면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밀려 정작 필요한 교육은 외면받는 경우가 많아요.
변희재: 한국어 교육에 관한 것 말인가요?
황수경: 사실은 요즘에 인터넷 때문에 우리말이 오염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학생들이 재미로 쓰고, 시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오히려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한국어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아나운서라면 그런 부분에 대한 책임이 크고, 매순간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방송출연자들과는 차별화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러나 규정에 맞는 어법을 쓰는 노력을 하다보면 또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나운서들은 틀에 갇혀있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요.
변희재: 늘 비판이 나오지만 예능프로 MC들의 한국어 파괴, 더 정확히 말하면 비속어 남용 등이 문제가 되잖아요?
황수경: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일단 그 나라의 언어는 그 사람들의 정신인데 이 점에 대해서 별로 인식을 안 해요. 아나운서들이 그런 것 하나하나 다 짊어져야할 책임이 무겁긴 하지만, 또 방송프로라는 것이 시청률도 높아야되니까 여러 가지 요소를 조합해서 아나운서만의 역할을 다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변희재: 아나운서의 역할인 올바른 한국말을 구사하는 것과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순발력을 동시에 발휘하는 것이 혼란스럽나요?
황수경: 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스폰지’라는 지식검색 프로그램이니 끼를 발휘해야하는 그런 부담은 확실히 덜 한 편인데, 말을 할 때 이게 정확한 표현인가, 요즘의 유행어가 아닌가 이런 것을 자꾸 인식하게 되면 재미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지요.
오락프로그램 특성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 안 하고, 연예인이나 개그맨과 대화를 할 때 편하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사투리인가, 표준어가 아닌가, 축약어가 아닌가, 다 생각해서 보니 아나운서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러나 아나운서가 맡은 책무를 버릴 수는 없지요.
변희재: 황수경씨가 맡은 <스폰지>는 그래도 지식검색이라는 성격이 다른 오락프로그램이잖아요. 어찌보면 열린음악회나 VJ특공대와 더 가까워 보이는데.
황수경: 열린음악회와 VJ 특공대는 파격을 해야하는 위험부담은 없지요. ‘스폰지’도 비슷하구요. 반면 보다 더 오락성이 강한 예능프로는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맡은 다른 후배 아나운서들 역시 그래도 아나운서의 기본은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요. 출연진과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어도 순간순간의 표현이 적합하지 않았다면 반성을 하게 되지요.
변희재: 어쨌든 <스폰지>는 방송위원회의 분류상 오락프로그램이니까, 언젠가는 보다 더 오락성이 강한 프로를 맡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황수경: 더 큰 욕심은 안 내려고 해요. 그리고 저는 제가 아닌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나 해요. 저의 이미지라는 것은 일정 정도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의 기대치도 있다보니, 이를 반드시 깨야겠다고 의욕을 부릴 일은 아니지요.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이 신선한 재미를 위해서라 해도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회의가 들기도 하구요. 이미지 변신은 저의 능력 하에서 좋은 쪽으로 가는 건 괜찮지만, 파격내지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강박관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송을 너무 몰라서 입사할 수 있었다
변희재: 입사 초기에는 주로 뉴스 진행을 많이 하지 않았나요? 황수경씨에 대한 이미지도 아마 거기서부터 비롯되었을 텐데.
황수경: 정확히 말하면 뉴스하고 싶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했어요.
변희재: 대학 때 방송활동을 했나요?
황수경: 아니요. 대학 때 방송활동은 안 했었고, 대학 3학년 때부터 아나운서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변희재: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때만 해도 방송현장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지 못했을 때 아닌가요?
황수경: 지금하고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요. 지금은 방송환경이 공개적으로 다 드러나는 상황이고, 방송에 대한 정보들을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입사준비를 할 때에는 인터넷도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고, 컴퓨터도 대중화 초기 단계였어요. 방송에 입문하려는 지망생을 위한 방송관련 아카데미 기관도 전무했었고. 저희 여성 아나운서 동기가 6명이었는데, 황현정, 황정민씨와 더불어 3황이라 불리던 우리들은 방송경험이 전혀 없었지요. 그때 저희가 뽑힌 것은 너무 몰라서 가능성 보고 뽑은 게 아닐까 해요.
지금은 지망생들에게 우리와 같은 요구조건을 내걸기는 어렵지요. 지망생들의 뉴스리딩이나 시험보는 장면들을 폐쇄회로를 통해 보면 전달력과 나레이션 기술이 너무나 뛰어나요. 다들 기본기는 갖춘 상태에서 입사지원을 하니까요. 하지만 아마튜어 방송을 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학생들이 문제이긴 하지요.
변희재: 방송사에서는 주로 지망생들의 무엇을 보고 당락을 결정하지요?
황수경: 아나운서는 서류전형이 끝나고 1차 카메라 테스트에 많은 분들이 몰리게 돼요. 그러다보니 아나운서 지망생들 본인에게 테스트로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지요. 그 짧은 시간의 카메라 테스트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테스트 받아야 해요. 오디오나 비디오 모두요.
그 짧은 시간 안에 보여줄 최상의 준비를 해야해요. 그렇기 때문에 아나운서가 정말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것은 평소의 말습관이지요.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데, 이는 노력과 평소습관입니다.
변희재: 황수경씨는 이러한 사전 정보없이 입사하게 되었다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겠군요.
황수경: 2-3개월 간 집중적으로 아나운서 교육을 받아요. 뉴스 리딩부터 나레이션까지, 아나운서들의 뉴스 전달력을 높이는 과정이지요. 고생도 많이 해요. 특히 기존의 말습관을 버리는 게 너무나 어려워요. 선배들도 방송에서 긴장하면 예전의 말습관이 튀어나오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면 유치한 아이 같은 말투, 습관적으로 발음이 안 되는 부분에서 버벅된다거나, 엉긴다거나, 자신감이 없는 말투 등등. 몸에 완전히 익히지 않으면 당황할 때 평소습관이 튀어나와요.
1단어 1글자를 이야기해도 정확하게 말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고, 입모양이라던가, 장단음, 고저, 포즈, 호흡, 이런 것들 방송에 들어가면 신경을 써야지요.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아나운서마다 청취자들이 받아들이는 뉴스의 전달력이 달라지는 건 바로 이러한 개개인의 노력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변희재: 평소에 주로 어떠한 노력을 했지요?
황수경: 처음에는 친구들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전화를 할 때도 배에다 힘을 주고 이야기하고, 음가를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했어요. 저는 특히 입이 크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해 웅얼웅얼거린 적도 있어요. 입이 큰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감추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입매무새보다도 얼마만큼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초기에는 그것을 떨쳐내려는 노력을 해야했어요.. 한 음가를 내더라도 입을 ‘아’, ‘오’, ‘어’ 입을 크게 벌리는 연습을 했지요.
열린음악회는 살아있는 방송
변희재: 기초훈련이 끝나고 뉴스를 맡게 되었나요?
황수경; 1993년 1월에 입사해서 5월부터 TV뉴스를 시작했어요. 세계톱뉴스라는 국제뉴스를 하다가 7월부터 뉴스광장을 2년 6개월 진행했지요. 아침 6시 방송인데,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분장하고, 뉴스 검토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너무나 방송을 하고 싶은 자부심과 사기가 충전해서 잘 버텼다 생각해요.
주말 9시뉴스, 뉴스네트워크를 거쳐 평일 9시 뉴스를 97년부터 98년까지 2년 동안 맡았어요.
변희재: 97년이면 입사 5년차인데 부담은 없었나요?
황수경: 그 전에 4년 동안 뉴스를 진행했었고, 또 부담은 있었지만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때는 지금하고 달라서 아나운서 대부분이 다 뉴스를 하고 싶어했었으니까요.
지금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분야들이 많이 세분화되어, 꼭 뉴스만 고집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어요. 저희 때는 오락프로의 아나운서의 투입하는 비율이라는 것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약간 오락성을 띄는 스포츠뉴스와 가요톱10에서 김병찬, 손범수 아나운서가 맡았던 것 정도.
변희재: 그러다 열린음악회를 맡게 되었는데, 본인이 선택한 것이었나요?
황수경: 당시는 프로그램을 옮겨가는 데 본인의 의사보다는 위에서 결정되는 일이 많았어요. 저는 뉴스에 대한 욕심이 있었지만 갑자기 바뀌면서 저 스스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남성앵커가 교체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되었고,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요. 뉴스를 하기 위해서 들어왔고 열심히 했는데, ‘뉴스 너무 못하니까 내려와라’, ‘새로운 감을 주기 위해서 교체하자’, ‘노력해서 나중에 다시 해라’, ‘조금 더 신선하게 가보자’ 이런 평가를 받았다면 차라리 물러나는 마음이 편했을 텐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참 가슴이 아팠지만 조만간 그게 정말 얼마나 어리석고 편협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더군요.
변희재: 열린음악회를 통해 다른 영역을 찾게 되었나요?
황수경: 지금도 제가 끼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단지 제가 뉴스 체질이고 뉴스에 맞다는 고정관념도 어리석었다 생각해요. 방송인으로서 살아있는 방송을 하는구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개방송을 하면서, 같이 웃고 박수치고 노래부르면서 너무나 즐거운 모습을 보면서, 다른 것들을 배우게 된 거지요.
변희재: 오락프로그램 <스폰지> 진행을 맡게 될 때도 그런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고 보면 될까요?
황수경: <스폰지>는 오락프로에 대한 공영성 강화의 측면에서 기획된 것이었어요. 스폰지라는 지식검색 오락프로그램이다 보니 저를 기용하게 된 듯해요.
변희재: 그럼 그것도 위에서 결정한 것인가요?
황수경: 제안이 와서 기꺼이 받아들였지요. 이미 열린음악회를 6년 동안 진행하면서 오락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오락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던 상황이었이니 제안을 감사히 받게 된 것이지요. 기회가 온다는 게 흔치 않고 그때는 자신도 있었어요. 저도 신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가진 한도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어요.
변희재: 막상 해보니까 본인의 기대만큼 만족하나요?
황수경: 솔직히 많이 부족해요. 제가 즐기면서 하지만 저의 역할에 대해서 제가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을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돼요. 끝나고 나면 지금 맡고 있는 열린음악회, VJ특공대 중에서 자기 반성이 제일 많은 프로그램이 ‘스폰지’에요. 제가 많은 걸 느낀 것이 아나운서라는 역할을 10년 동안 하다보니까 아나운서만의 기본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 자꾸 프로그램 도중에 정리를 하려는 측면이 있어요?
변희재: 스튜디오가 조금 혼란스러우면 판을 정리해버리나 보지요?
황수경: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에요. 그게 꼭 필요없는 프로그램도 있고, 그냥 즐기면 되는데, 어수선해지면 딱 정리하고 싶어져요.
변희재: 열린음악회도 단독으로 진행하고, VJ특공대도 단독으로 진행하다보니,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스폰지’가 적응이 안 되었을 수도 있겠네요?
황수경: 특집을 하면서 더블MC 체제를 경험하기는 했지만, 세 명의 MC와 10명 이상의 패널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지요. 끝나고 나면 가서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계속 괴로워하면서 여기서 이렇게 해야하는데, 표현도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왜 중복되는 말을 똑같이 했을까 반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자꾸 비어만 가는 내 머리와 가슴
변희재: 아무리 스폰지가 교양형 오락프로그램이지만 그래도 예능MC라면 유머감각이 필요하진 않나요?
황수경: 저 유머감각이나 이런 것은 없어요. 그냥 가끔 사람들에게 엉뚱하다는 말을 듣는 정도이지요. 이혁재, 이휘재씨가 유머감각이 있으니 저에게 요구하지도 않지요. 스폰지 팀에서도 저에게 가벼움을 막아주는 역할을 원하기도 하고. 좋은 쪽으로 보면 프로그램의 중심이 되고 축이 되라는 것인데, 자꾸 정리하려고 하는 안 좋은 습관 때문에.(웃음)
변희재: ‘스폰지’를 맡으면서 본인의 아나운서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을 것 같은데.
황수경: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지금까지 방송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고 자부해요. 어느 한 방송도 소홀히 하지도 않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모자라는 부분을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회 하다가 시사프로에 들어간다면, 질문을 할 때 예비 질문도 많이 만들어놓고,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노력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러면서도 늘 빠지는 것이 나의 머리에 나의 가슴에 무엇이 남아있는가, 이런 회의에요. 급하게 준비하고 방송만을 준비하면 저에게 있어서 그런 것들이 오래 남지 않아요. 계속 머리가 비고 마음이 비고 공허함을 느끼게 되지요. 최근 몇 년 사이에 극한에 달할 정도로 공허함을 느꼈어요. 시청자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서있는게 결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2001년부터 시작, 2002, 2003년까지 고민을 할 생각조차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바빴잖아요. 월드컵, 대선, 유니버시아드 등,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사치였어요. 그래도 바쁜 일정이 계속 이어질 때도 잠깐씩이라도 그런 고민들을 끝없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2004년에 여유가 주어지면서 머리와 가슴을 채우던지 다시 태어나던지, 어쨌든 실행에 옮기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지요.
변희재: 고민 끝에 본인이 가고 싶은 큰 방향성은 보였나요?
황수경: 열린음악회 하면서도 똑같은 가수가 나와도 정말 같은 표현 안 쓰려는, 어찌보면 작아보이는 노력도 많이 했고, 매번 특별한 방송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연구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다른 차원의 고민과 공부를 하고 싶어요. 정말 이번에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어떤 것도 상관없고, 제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앞으로 가야할 방향이 어떤 건지, 미국에 가서 고민해볼래요. 방송에 대한 욕심보다는 제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면서 일단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잘할 수 있는 걸 찾아내고 싶어요.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 안 맞는 자리도 있잖아요. 이런 고민 속에서 정말로 지금 떠나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오만이겠지요.
변희재: 10년 간의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했겠지요. 뉴스를 하기 위해서 방송사에 입사했다면 차라리 지금 정도의 경험을 갖춘 상태에서 뉴스를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황수경: 우리 아나운서실에 있는 여자 아나운서 부장이나 선배 아나운서들의 뉴스는 격이 달라요. 뉴스를 완전히 소화하지요. 제가 지금 뉴스를 하고 싶다라는 말을 하는 것도, 아직 시기상조에요. 무엇을 할지는 보다 더 많인 고민을 한 뒤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전에 98년도에 뉴스하는 것 보면 부끄러울 정도에요. 솔직히 지금하면 훨씬 더 잘할 것 같은데. 뉴스다운 뉴스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장금>의 양미경과 같은 앵커우먼은 없는가
변희재: 비단 아나운서 뿐 아니라 기자까지 포함해서, 방송이라는 직종이 연륜을 더해가면서 보다 원숙해지는 것일 텐데, 이상하게 여성의 경우 연차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설 자리가 좁아지는 측면이 있잖아요. 사회적으로 보면 참으로 낭비인데.
황수경: 많이 달라질 거에요. 사회가 변혁이 되고 바뀌고 해도, 우리가 경륜이라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인정하고 얻게 될 것이 분명히 있어요. 안타깝게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나이만 많고, 권위만 갖고 있는 일부 때문에 그런 비판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요?
변희재: 예를 들면, 현재 뉴스를 진행하는 여성앵커우먼들의 연령이 너무 낮다는 비판이 있잖아요. 10년 이상 방송을 한 여성 아나운서들 있잖아요. 이런 경험 많은 여성이 진행을 했으면 좋겠는데.
황수경: 그건 참으로 미묘한 구조적인 문제에요. 미혼의 젊은 여성이 하는 것을 시청자가 원한다고 하잖아요.
변희재: 시청자 입장에서 말한다면, 지적으로도 성숙하고, 안정감있는 중년여성을 바라는 사람도 많아요.
황수경: 인터넷 같은 데 보면 몇몇 과격한 네티즌들이 ‘못생긴 여성앵커 바꿔라.’ 이런 글을 쓸 때가 있어요. 몇몇이 그런 말을 하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요. 모든 의견을 수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변희재: TV 드라마의 여성스타를 생각해보세요. <대장금>의 양미경이 나이 40의 유부녀에요. 김희애, 채시라, 신애라, 황신혜 등등 왕년의 스타들이 원숙함을 내세워 다시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어요. 대중들이 젊고 미숙한 여성보다는 카리스마있는 지적인 여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건 큰흐름이에요. 이러한 현상이 방송뉴스에 적용되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지요.
황수경: 그런 건 구조적인 문제라, 제가 답하기에는.
변희재: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본인도 너무 젊었을 때 뉴스앵커자리를 맡았잖아요. 백지연씨라던지, 황현정씨 정혜정씨 등등 모두 다 어렸을 때 뉴스앵커를 맡았는데, 나중에라도 그런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단 말이지요. “나 스스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런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을 해주면 참 좋겠는데.
황수경: 저는 후배에게 길을 터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정말 같이 동참하고, 우리가 앞장서가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방송인으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모범적이고 깊이있고 전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요. 그런데 자칫하면 자기 하나 자리에 연연하기 위해 후배들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잖아요.
변희재: 좀 더 크게 보면, 나이 40이 넘은 여성 아나운서가 뉴스앵커 자리를 차지하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누구나 그 나이가 될 테고, 그 나이쯤 되면 방송에 대해서 이제 무언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방송을 할 수 없다면 안타깝잖아요.
황수경 : 방송 욕심 많다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고 싶어요.
반드시 그 사람이야 하는 특별한 이유
변희재: 연수는 방송관련인가요?
황수경: 제가 갖고 있는 경력은 빡빡한 방송경력밖에 없으니, 매스미디어에 대해서 영향력이라던가 연관성과 관련된 에세이를 보냈지만, 실은 공연문화 문화예술 수업을 듣고 싶어요. 뉴욕에서 다양한 공연도 보고 싶고.
변희재: 문화예술 관련 프로에 대한 관심도 있나요?
황수경: 열린음악회는 좋은 음악회이지만 대중적이이지요. 그래도 좀 다른 문화예술에 관한 전문적인 진행자가 되고 싶기도 해요. 우리가 안타까운 것이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공연을 보러 가는 시간이 너무나 적다는 거에요. 핑계일수도 있지만 7시 9시 회사에 묶여 있으니까요. 주말 같은 경우에는 아이를 안 볼 수가 없고. 모든 것을 다 뒤로 제쳐두고, 좋은 공연, 문화예술 접하기가 어려워요.
변희재: 책을 낸 적이 있나요?
황수경: 없어요. 방송활동에 관한 엣세이를 내자는 제안은 많이 왔지만 그런 쪽은 별로.
변희재: 혹시 다른 분야의 책을 내보실 생각은 없어요? 공연기행 엣세이 같은 것.
황수경: 아직 섣불리 이야기하는 건 우습지요. 많은 걸 갖춘 후에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절대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내지는 그야말로 아주 얕은 정보와 짧은 지식으로 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요.
변희재: 성세정 아나운서는 역사책 내고 역사프로를 진행하던데, 공연책 내고 공연프로 진행하면 좋겠네요.
황수경: 저 스스로도 얼마나 즐겁겠어요.
변희재: 최근 방송직종 각 분야마다 전문화의 요구를 받고 있는데. 아나운서들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황수경: 자기 방향에 대해서 방송을 하는데서 최선을 다하지만,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고민을 많이 하지요. 그 프로에는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 그런 것들이잖아요. 일단은 그런 욕심으로 떠나는데, 가서 공부하다보면 바뀔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후기: 황수경 아나운서는 인터뷰 시작 전에 "원래 저는 인터뷰 안 해요. 아나운서 실장님이 부탁해서 하는 거에요"라는 말을 했었다.
인터뷰를 기획할 때는 반드시 일정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그 방향에 걸맞는 사람을 섭외한다. 그리고 대화과정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며 어렴풋한 큰 그림의 부분들을 함께 채워나간다.
인터뷰 기획자와 인터뷰 대상자가 큰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좋은 인터뷰가 나오는 것이고, 이것이 부족하면 인터뷰는 망치기 일쑤이다.
인터뷰 기획자가 듣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하면, 인터뷰 대상자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법이다. 이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인터뷰 도중 바로 이러한 거리를 끊임없이 좁히고 채워나가야 한다. 사실 이러한 역할을 가장 전문적으로 체득한 사람들이 바로 아나운서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시점에서 뚜렷하게 떠오른 컨셉은 바로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였다. 이것이야말로 전문화된 방송시대에서 오락, 교양, 보도를 두루 경험한 10년차 아나운서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명쾌한 말이 아닐까?
브레이크뉴스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황수경이어야만 하는 이유 때문에 그를 섭외했다. 거기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조만간 미국행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기 전에 한번 속에 담고 있던 말들을 내질러달라는 뜻도 있었다. 그것도 반드시 황수경이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였다.
안타깝게도 인터뷰가 끝난 후 '떠나기 전에 내지른다'는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으니 부드럽게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럴 필요도 없이 황수경 아나운서가 했던 말을 그대로 속기사처럼 기록했을 뿐이다.
이를 '나'의 방식으로 요약하자면, 브라운관에서, 특히 뉴스 영역에서 세상 모르는 젊은 처녀 아나운서들보다는 최소 10년, 가급적 20년 이상의 다양한 방송 경험있는 중년 유부녀 아나운서들을 자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안정감, 편안함, 원숙함 등등이 시청자들이 원하는 대중매체의 가치지향적 코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청자들도 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특별한 이유'로 황수경을 섭외한 이유이고,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로 표현되는 전문가로서의 여성 아나운서의 새로운 길일 것이다.
<브레이크뉴스(www.breaknews.com) 제공>
첫댓글 황수경 아나운서 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