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2010~2011시즌, 삼성화재는 1라운드에서 창단 첫 3연패를 당했다. 그해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수비의 주축인 석진욱이 무릎을 다쳤다. 팀 전력이 크게 흔들렸다. 2라운드에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삼성화재는 2라운드에서 오히려 3연패를 넘어 4연패에 빠졌다. 앞서 3개 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화재는 2라운드가 끝났을 때 중간순위 꼴찌로 떨어져 있었다. 제아무리 노련한 명장 신치용 감독이라고 해도 별수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주변에서 이어졌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해 우승 역시 삼성화재에게 돌아갔다. 포스트시즌 막차를 올라탄 삼성화재는 거침없이 승리를 이어가며 결국 우승을 따냈다. 프로배구 챔피언 결정전 4연패를 이뤘다. 그 연패 기록이 지난 시즌 7연패까지 이어졌고, 2014~2015시즌 8연패를 노리는 중이다.
꼴찌로 떨어졌던 팀이 어떻게 대반전을 일으키며 우승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신 감독은 “당시 2라운드를 꼴찌로 끝낸 뒤 선수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내내 이야기한 것은 “우리 버티자”는 것이었다. 신 감독은 “이런저런 생각 다 버리자. 무조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텨야 한다고 얘기했다.
신 감독의 말대로 열쇠는 ‘버티기’였다. 벼랑 끝에 매달렸어도 벼랑 끝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든 길이 생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7연패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버티는 능력’ 덕분이다.
모든 승부는 흐름이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나쁜 상황이 왔을 때 버텨내는 힘이 승리를 만드는 길이다. 신 감독은 “흐름이 좋지 않을 때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면 그 승부를 내 준다. 기세가 밀렸을 때라도 ‘여기만 버티고 넘어가면 기회가 온다’는 생각을 가지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2010~2011시즌의 삼성화재가 그랬다. 꼴찌로 떨어졌지만 3라운드부터 차곡차곡 4승씩을 쌓아나갔다.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 LIG손해보험을 2-1로 꺾은 뒤 현대캐피탈과의 플레이오프, 대한항공과의 챔피언결정전을 모조리 전승으로 뚫어냈다. 버텨낸 결과는 달콤했다.
‘버티기의 힘’은 단순히 배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4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기세등등했던 넥센을 4승 2패로 꺾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버티는 힘’에서 나왔다. 삼성은 3차전에서 8회까지 0-1로 뒤지던 경기를 끝내 뒤집었다. 8회 초 상대의 작은 수비 실수를 놓치지 않고 동점에 성공했고, 9회 초에는 박한이의 결승 2점 홈런이 나왔다. 경기 후반 3점이 경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은 경기 후반 나온 타자들의 집중력 때문이 아니라, 그때까지 더 이상 점수를 주지 않고 버틴 덕분이었다. 마운드에서 수비에서 버티고 또 버틴 덕분이었다.
버티기 승리는 5차전에서도 나왔다. 이번에는 9회까지 0-1로 끌려가고 있었고, 마지막 아웃카운트 1개를 남기고 최형우의 끝내기 2타점 2루타가 나왔다. 9회 1사 뒤 넥센 유격수 강정호의 실책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1점짜리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는 동안 삼성의 버티는 힘이 더 강했다. 더 이상 실점하지 않고 끝까지 기회를 이어나갔다. 거꾸로 넥센은 마지막 버티는 힘이 모자랐다.
신치용 감독은 버티는 힘에 대해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버티는 힘은 실수를 줄이는 데서 나오고, 실수를 줄이는 집중력은 ‘이 위기만 넘어가면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물론, 앞선 큰 경기, 큰 승부에서 경험을 통해 얻은 믿음과 자신감이 그 바탕이 된다.
‘버티기의 힘’은 스포츠의 승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꿰뚫는 각종 선택과 승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흐름이 좋지 않고, 현재가 괴롭다고 해서 섣불리 덤벼들거나 포기하면 ‘역전의 기회’가 오지 않는다. 역전승은 참고 견디고 버티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 - 교직원신문 2014.11.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