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명관 1958년 부산 출생.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가 있고, 편서로 고미숙과 공동 작업한 《근대계몽기 시가자료집》이 있다.
차례
1.수만 백성 살린 이름 없는 명의들 / 민중의
*조선시대 내의원 의관의 두 가지 길:
ⓐ 대대로 의원을 하는 집안에서 의과를 통과해 내의원 어의가 되는 경우(본원인 ���
ⓑ의약동참(|價�=)이라 하여 사대부부터 미천한 사람까지 의술만 좋으면 모두 보임 될 수 있었다. - 예)마의에서 어의로, 종기치료의 신기원을 연 백광현, 정조 때의 떠돌이 약장수 피재길의 종기처방 정조의 치질을 낫게 한 이동
*백성을 위한 조선시대의 의료기관: 혜민서와 활인서 두 곳이 있었다.
2.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 군도와 땡추
조선 시대의 저항조직으로 지주의 토지침탈, 과도한 세금 등으로 인한 농민의 토지 이탈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난 현상
*군도: 토지를 이탈한 농민들이 결성한 도적 떼(강원도 군도-목단설/ 삼남 즉 경상, 전라, 충청도:추설) 예)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땡추(당취): 는 조선체제를 부정하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가진 자를 섬기는 귀족불교, 호국불교가 아닌 재야불교를 추구하는 반체제적 승려집단. 민중교화 민중구제(금강산 땡추와 지리산 땡추가 양대산맥을 이룸)
3.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 / 도박
*도박판의 주체: 왈자, 협객 등이었다. 왈자는 도박에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부류였으며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취향도 겸비한 중간계급이었다. 투전을 수입해온 역관 장현이 투전을 퍼뜨렸다는 사실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투전은 수입된지 백년이 채 못되어 양반층까지 전면적으로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도박 성행의 원인: 경제성장(화폐의 통용, 상업의 발달)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기는 도박의 세계관을 조선후기 사회의 불확실성에서 유래하였다.
바둑, 장기, 쌍륙, 투패(투전), 강패(골패), 척사(윷놀이)등이 있었는데 특히 쌍륙, 투전, 강패가 인기가 있었다.
4.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 / 금주령과 술집
*조선 500년 동안 금주령을 법으로 정해놓았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양반들이 더 마셨고(청주) 백성들은 탁주를 마셨다. 언제나 걸린 건 백성들이었다. 특히 영조 때가 가장 가혹했다.
*술집의 종류: 바침술집(병술집)- 주세가 없고 술만 만들어 파는 집이고 문간에 병을 그려 붙이고 중간에 바침술집이라고 쓴다.
목로술집(서서 마시는 선술집), 내외술집, 사발막걸리집, 모주집(술 찌꺼기를 걸러서 만든 술), 이채를 띠고 여자가 조흥하는 색주가집 등이 있었는데 문헌적 증거로 남아 있는 것은 목로주점과 색주가 뿐이다.
5.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잔치 / 과거
*과거의 종류- 문과: 대과(국가의 정식관료 33명),소과(생원 진사 선발) / 무과 / 잡과(역관, 의원)
과거시험 때 온갖 부정이 다 동원되었다. 응시자 혼자 책을 베끼거나 출제자 채점자와 공모하거나 서리를 매수하거나 특정 정파가 자파 세력에게 의도적으로 후한 점수를 주거나 친인척을 뽑거나 하는 일로 인해 시비가 일어났으며 부정이 없는 시대는 없었다.
*선접군(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몸싸움을 전담), 거벽 (전문적으로 과거답안지를 대신 지어주는 사람), 사수(곧 서수는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
6.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감동과 어우동
*유감동: 세종 때의 실존인물이다. 40여명과 간통하였다는 죄목으로 중형을 받지만 그와 간통한 남자들은 가벼운 처벌만 받고 만다.
*어우동: 감동의 사건(1427)이 일어난 지 53년 뒤 성종11년에 어우동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중에 교형에 처해졌다.
축첩제와 기생제도의 본질은 무엇인가? 결국 조선시대 남자들의 성욕을 채워주기 위한 제도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누군들 정욕이 없겠는가, 다만 내 딸은 그것이 좀 지나쳐서 그럴 뿐”
7.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 반촌
쇠고기는 정책적으로 식용을 제한한 특별한 음식이었다. 소의 도살과 소고기의 판매가 반촌에서 이루어졌다. 또 옆에 붙은 성균관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구역을 이루었다. 조선후기의 모든 금란에도(단속대상이었던 소나무 벌채금지, 임의적 도살금지, 양조금지 등. 이것을 두고 삼금이라 하였다) 반촌만은 들어가 조사할 수 없었다.
8.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 / 검계와 왈자
*검계: 향도계(장례계)의 도가는(어떤 조직에서 중추를 이루는 관리센터) 망명하는 자, 곧 법망을 피하려는 자들을 숨겨주는 소굴이었다. 이 도가 내부의 비밀 조직이 바로 검계였다. 이들의 소업은 약탈, 강간, 살인이다. 숙종 때 소탕하였으나 소멸되지 않았다. 영조 때에 이르러 포도대장 장봉익이 그들을 다스렸다. 그러다 다시 순조 3년에 검계가 다시 등장한다
*왈자: 각사 서리, 북경역관, 이행군관, 대전별감, 무예별감 등이 왈자패였다.
9.. 조선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 / 별감
별감: 왕명의 전달과 알현 및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고리, 궁궐 내정의 설비 등의 임무를 맡는다. 붉은 색 웃옷과 초립은 별감의 복색이다. 사치와 유행을 주도하고 시정의 유흥의 공간을 장악한 부류였다. 1848년에 지어진 작자미상 <한양가> 가사에 보면 별감의 ‘승전놀음’에 서술이 전체 서술 량의 17% 정도를 차지할 만큼 구체적으로 길게 묘사되어 있다. 기생과 가객, 금객을 불러 기악과 노래 춤을 벌이는 거창한 놀이판인 승전놀음은 서울에서 가장 으뜸이었다.
10.은요강에 소변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하니 / 탕자
노동과 휴식과 놀이 문화에 대하여
무숙이와 이춘풍이 그 대표적 인물
조선의 뒷골목을 정리하면서…
*뒷골목에 대한 정의, 굳이 제목을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라고 했는지?
*우리가 이 책에서 얻게 되는 교훈은? (역사든 개인이든 현재와 반추해볼 점 찾아보기)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의 뒷골목을 누비던 많은 이들의 삶에서 우리는 조선의 풍속사와 문화사를 읽을 수 있다. 진정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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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아파..하고 문자 온 현진씨, 아이 졸업식 땜에 불참한 지은씨, 미희씨, 조선의 뒷골목으로 초대합니다...(검계와 협객, 왈자패들을 조심하슈...특히 못된 양반들은 더 조심하고...)
이 책은 지배 중심의 역사에 의해 잊혀져온 서민들의 삶과 문화를 되살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은 책인 동시에 또 다른 이면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코드가 숨겨진 책이기도 합니다. 독자들의 궁금증과 지적 욕구를 다 해소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학은 변화하는 인간을 해명하는 학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반관료체제 그늘에 가려진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대응하였는지를 알 수 있었고 또한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어지럽던 조선 후기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의 민심은 그야말로 얽힌 실타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실타래는 오늘날 까지도 이어져 있습니다. 과거 인간의 경험을 기록한 역사를, 교훈적이든, 기념비적이든, 이면의 역사든, 거울로 삼아 그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작업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 갖는 미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