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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정사기(松陽精舍記)에 대해
송양정사기(松陽精舍記)는 송양정사(松陽精舍)를 다룬 기(記)이다.
기(記)라는 것은 사물을 묘사하는 글로서, 문장이나 서책의 이름으로 쓰인다.
정사(精舍)는 학문 수양을 목적으로 하여 지은 집을 가리키는데, 송양정사는 현재 대전광역시 유성구 송정동에 있다.
송정동 지역은 한 때 대덕군(大德郡)이라 불리웠으며, 그 전인 조선시대에는 진잠현(鎭岑縣)에 속하였다.
송양정사는 서암(瑞巖) 김희진(金熙鎭:1918-1999) 옹을 위해 마련된 학당인데, 서암 선생은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의 제자인 양재(陽齋) 권순명(權純命) 선생의 제자로서, 우리나라 성리학의 역사에서, 대학 강단으로 포섭되지 않은 마지막 학자 세대에 해당한다. 즉 학당에서 글을 읽는 학통(學統)을 이어받은 최후의 성리학자(性理學者)라 하겠다.
송양정사기는, 역시 마지막 성리학자 세대에 속하는 화재(華齋) 이우섭(李雨燮: 1931-2007) 옹이 썼다.
화재 선생은 율곡과 우암의 기호 학맥에서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과 석농(石農) 오진영(吳震泳) 선생을 계승하는 마지막 줄기로서, 경남 김해에 있는 월봉서원(月峰書院)에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2007년 7월 별세했을 때, 유월장(踰月葬: 선비의 죽음에 대해 달을 넘겨 치르는 장례)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제 유월장은 아마도 다시는 보기 어려울 듯 하다.
아무튼, 이 글은 송양정사가 세워진 연유와 의의, 서암 선생의 학맥과 그 학문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송양정사에 거는 기대를 서술하고 있는데, 이 기문을 지은 지 4년도 안되어 서암 선생께서 서세(逝世)하시니, 수학(修學)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어져서,송양정사에서 글읽는 소리를 듣기가 어렵게 되었는데, 최근(2023년 봄) 에 '송양서당' 이란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다.
이 새로운 송양정사의 훈장은 서암 선생 등 여러 학자에게서 글을 배운 이후영 님으로서, 제대로 된 성독(聲讀: 소리내어 읽기) 등 전통 방식으로써 유학(儒學)을 멋지게 강론할 수 있는 분으로 여겨진다.
1995년 송양정사가 세워지기 전에 서암 선생은, 충남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 고부실에 있는 곡부강당(曲阜講堂)에서 강학하셨는데, 필자도 이 곳에서 1989년경 몇 달 동안 선생을 뵙고 글을 익혔었다.
아, 일일위사종신위사(一日爲師終身爲師)라, 하루라도 배웠으면 평생의 스승인 것이니, 스승을 기리는 글을 대하니, 감회가 없을 수 없어 삼가 번역하여 되새기고자 한다.
(맹강현 글)
<송양정사기(松陽精舍記)> 역문
호서대덕지송정(湖西大德之松亭)
충청도 대덕 땅의 송정이란 곳에
유익연동우이(有翼然棟宇而)
처마 의젓한 집 한 채가 있으니
편이송양정사자(扁以松陽精舍者)
그 편액에 ‘송양정사’라 하였다.
서암선생김옹(瑞巖先生金翁)
서암 김선생께서
병불강학지처이(秉拂講學之處而)
진리를 논하시고 가르치시던 곳인 바
기문하인소구야(其門下人所構也)
그 제자들이 지은 것이다.
을해추(乙亥秋)
1995년 가을에
박정규최국경성동영홍재곤(朴晶奎崔國慶成東英洪載坤)
박정규, 최국경, 성동영, 홍재곤 씨가
이제언지의방여왈(以諸彦之議訪予曰)
여러 선비들의 뜻을 모아서 내게 와서 말하길
오사문지소거곡부강당(吾師門之素居曲阜講堂)
우리 스승께서 여태 거처하신 ‘곡부강당’이
유미협어만세장수지(有未愜於晩歲藏修地)
연로하여 공부하시기엔 흡족한 곳이 아니어서
고금복지자구(故今卜址玆區)
이제 집터를 이 곳으로 골라잡고
갹자영건자이(醵貲營建者而)
자금을 갹출하여 완공하게 됨에
감이청게미지기여(敢以請揭楣之記予)
문 위에 걸 기문을 써달라 외람되이 내게 청한다 했다.
어시앙복옹지덕지능부인이유신도지중야(於是仰服翁之德之能孚人而有信徒之衆也)
그래서, 선생의 덕망과 재능이 사람을 끌어당겨
이렇듯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음에 우러러 탄복하였다.
시경야(是境也)
이 처소를 보자면
산수이동심(山邃而洞深)
뫼는 그윽하고 골은 깊고
림간청절(林澗淸絶)
숲과 물은 더없이 깨끗하여
섬진부도(纖塵不到)
자잘한 티끌조차 앉지 않으니
의둔세지사고반종로야(宜遁世之士考槃終老也)
은둔한 선비가 그 터득하는 즐거움으로 여생을 보내기에 적절한 곳이라 하겠다.
부사지처세(夫士之處世)
대저 선비가 세상에 처함에
불난어적이난어지(不難於跡而難於志)
자취를 보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뜻을 보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요
불난어명이난어실(不難於名而難於實)
이름 남기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적을 남기는 것이 어려운 것인데
산수지청광유정(山水之淸曠幽靜)
뫼와 물은 맑고 밝으며 그윽하고 조용하므로
고위은거지적(故爲隱居之適)
은거하기 적절한 처소라 하겠다.
연구무고상지지이(然苟無高尙之志而)
그런데, 본래 고상한 뜻도 없으면서
도탁어명즉(徒託於名則)
헛되이 이름 날리기에 기댄다면
기적자잠이(其跡者暫而)
그 자취는 잠시 뿐이요
기경자허의(其境者虛矣)
그 처소는 헛된 것이다.
필야무모어명이(必也無慕於名而)
이름나길 꼭 부러워하지 않고
우락어사경(寓樂於斯境)
이 처소에서 즐거움과 함께하며
여심회(與心會)
마음 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연후피청광유정자(然後彼淸曠幽靜者)
그런 다음에야 저러한 맑고 밝고 그윽하고 조용한 것이
개위오유이(皆爲吾有而)
모두 내게 들어와 있음으로써
인여지상우의(人與地相遇矣)
사람과 땅이 서로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유기연심지량(惟其淵深之量)
그저 연못 처럼 깊은 도량(度量)으로써
납청광어방촌정고지조(納淸曠於方寸貞固之操)
옳은 바를 굳게 지키는 절조에서 그 맑고 밝음을 받아들이고
포유정어흉회자(抱幽靜於胸懷者)
가슴 속에서 그 그윽하고 조용한 바를 품어낸다면
시가위득어경지실이(始可謂得於境之實而)
이것이야말로 그 처소가 실해져서
위기미지상부야(爲氣味之相符也)
그 기세와 운치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이라 할 것이다.
차옹지취송자(且翁之取松者)
그리고 서암 선생께서 소나무를 취하신 것은
개이회암세한심사지의(蓋以晦菴歲寒心事之義)
아마도 추운 날씨에도 변함없는 소나무다움을 말한 주자의 뜻을 새김일 것이다.
피청홍군방정미어춘하지교이(彼靑紅群芳呈媚於春夏之交而)
저 푸르거나 붉은 화초들이 봄과 여름에 그 자태를 뽐내지만
급부풍고상락백훼(及夫風高霜落百卉)
바람 불고 서리 내리면 그 많던 꽃들이
수참무복구용이(愁慘無復舊容而)
옛 자태를 계속 지닐 수 없으니 몹시 참담한데
약송지정연(若松之挺然)
소나무는 여전히 꿋꿋해 마지 않으니
만배고표릉소(晩輩高標凌霄)
후학들이 우뚝하게 뛰어남을 기대함이라
기비방불옹발속지상호(豈非彷彿翁拔俗之像乎)
이것이 어찌 일반 속인(俗人) 보다 훨씬 빼어난 선생의 기상이 아니겠는가!
연명지애국(淵明之愛菊)
도잠(陶潛)의 국화 사랑과
렴계지애련(濂溪之愛蓮)
주돈이(周敦頤)의 연꽃 사랑과
락천지애죽(樂天之愛竹)
백거이(白居易)의 대나무 사랑과
서암지애송(瑞巖之愛松)
서암의 소나무 사랑은
개취기의이(皆取其義而)
모두 그 의미를 취하여
탁기지자(託其志者)
그 의지를 담은 것이니
광세일치즉(曠世一致則)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도리일 것인즉
금인기지명자(今因其地名者)
이제 그 땅 이름과
불모이합야(不謀而合也)
의도하지 않게 맞아 떨어졌다.
차개세지모옹자(此蓋世之慕翁者)
이는 선생을 받드는 많은 사람들이
개추허무이사이(皆推許無貳辭而)
모두 두 말 없이 긍정하는 것이거니와
약기사문계개지적즉(若其斯文繼開之嫡則)
유교의 전통 계승과 그 발전의 적통(嫡統)에 있어서도
부숙득이규론재(夫孰得以窺論哉)
도대체 그 누가 있어 옛 말씀들을 살펴볼 수 있으리오
아동지근세(我東之近世)
우리나라 근세에 들어
매전간석제선생지작이(梅全艮石諸先生之作而)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 간재(艮齋) 전우(田愚), 석농(石農) 오진영(吳震泳) 선생의 노작으로
사학지명사도지전의(斯學之明斯道之傳矣)
유학(儒學)은 빛이 나고, 유도(儒道)는 전승됨이 있었는데
강자이왕침침연(降玆以往駸駸然)
그 이후로 세월은 빠르게 흘러
속익투학익진(俗益渝學益榛)
세상이 갈수록 변색되면서 학문도 갈수록 엉크러지고
수지어금일이문호이렬(遂至於今日而門戶以裂)
결국 지금에 이르러 그 문파가 갈라지니
백훼쟁명토저호(百喙爭鳴土苴乎)
여러 사람이 다투어 말함이 비루함일런가
륜상변모호(倫常弁髦乎)
사람된 도리 지킴이 멸시 받게 된 것인가
경전불복(經典不復)
크게 빛나던 규범은 회복되지 않아
가문어사학지강사도지명이(可聞於斯學之講斯道之明而)
유학(儒學) 강론(講論)과 유도(儒道) 천명(闡明)은 들을 수 있으되
혹취육왕지사회(或吹陸王之死灰)
혹은 육상산(陸象山) 왕양명(王陽明)의 그 타버린 잿더미 같은 주장을 강조하면서
구성리어공허지빈(驅性理於空虛之濱)
그 공허한 언저리에서 성리(性理)를 추구하거나
혹연서구지속화(或涎西歐之俗化)
혹은 서구(西歐)의 세속화에 침을 흘리거나
빈례의어분갱지소어사시야(擯禮義於焚坑之巢於斯時也)
불구덩이 소굴에서 예의를 팽개치는 것이 지금 시대의 모습이다.
아서옹수납모준(我瑞翁收納髦俊)
우리 서암 선생께서는 인재들을 거두시어
고창성학(孤唱性學)
홀로 성리학을 외치셨으니
득기종어간석지전이(得其宗於艮石之傳以)
간재와 석농의 계통에서 그 정통을 이음으로써
위정세도식사설(爲靖世道熄邪說)
세상사는 길을 바로잡고 삿된 말들을 멈추게 하였다.
자임이강명부식지책지사백수(自任以講明扶植之責)
이치를 밝히고 도리를 붙드는 책임을 자임하셔서
지로백수불염불권이지견이(至老白首不厭不倦以)
늙어 머리가 하얄 때까지 배우고 가르침을 싫어하거나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척견이담강상지중(隻肩而擔綱常之重)
그 외로운 어깨에 인륜의 엄중함을 담지(擔持)하시며
일실이유래학지정(一室而牖來學之程)
그 방 한 칸에서 후학들의 길을 열어주시면서
숙인심부세교즉(淑人心扶世敎則)
인심을 곱게 하고 삶의 교훈을 붙들었은즉
기공기소야재(其功豈少也哉)
그 공로가 어찌 작으리오!
자시영준지청업자(自是英儁之請業者)
이리하여 선생께 배움을 청하는 영재들이
종상접어시사제제호(踵相接於是舍濟濟乎)
이 정사에 발을 이어 닿아서 모여 있으리라!
금패지성이양양호(衿珮之盛而洋洋乎)
어진 인재를 구하여 이끌어 주는 기풍이 가득하리라!
현송지일즉(絃誦之溢則)
귀로는 듣고 입으로 읽음이 넘쳐나니
인칭금세지금화의(人稱今世之金華矣)
사람들이 우리 시대 학문의 전당이라 칭할 것이다.
억영문락민담화제현지강도육영이전사도어후세자(抑營聞洛閩潭華諸賢之講道育英以傳斯道於後世者)
또한 정자(程子), 주자, 율곡, 우암 등 여러 현인들의 이치 강론과 인재 육성의 도리를 후세에 전하도록 깨우쳐
실유유종전술지성야(實由遊從傳術之盛也)
실로 그 전하는 방법을 서로 익히고 따름이 성대함으로써 말미암을 것이다.
연즉제자지훈자고비자면언구색호(然則諸子之薰炙皐比者俛焉究賾乎)
그런즉 제생을 훈도하는 그 자리에서 힘써 탐구하지 않으리까!
문로지정학술지원조조(門路之正學術之源慥慥)
그 학문의 길은 바르고 학술의 뿌리가 착실하여
치력어강명실천(致力於講明實踐)
이치를 밝히면서 실천에 힘쓰시고
앙답사문(仰答師門)
우러러 스승께 답을 올리며
력혈창학지고심언즉(瀝血倡學之苦心焉則)
힘을 쏟아 학문을 이끌고자 하는 고심이 있었으니
향소위매전간석지유서(向所謂梅全艮石之遺緖)
이른바 매산, 전재, 간재, 석농의 유업이
뢰옹이전이(賴翁以傳而)
선생을 통하여 전승되었고
옹지학뢰제자이(翁之學賴諸子而)
선생의 학문은 제생을 통하여
불진추어지(不盡墜於地)
다 땅에 떨어지진 않았으니
옹지망후인자(翁之望後人者)
선생이 후생들에게 기대는 바가
기유과어사재(豈有過於斯哉)
어찌 여기에서 더 지나침이 있으리오!
연후시사야(然後是舍也)
이렇게 한 뒤에는 이 정사가
여만장계악동기공고(與萬丈鷄嶽同其鞏固)
드높은 계룡산과 더불어 그 기반을 튼튼히 하여
장천추영전시재제자지찬술야이(將千秋永傳是在諸子之纘述也已)
계속되는 제생들의 강술은 천년토록 영원히 전해지게 되리라
제념박지취복회지향(第念剝之就復晦之向)
다만, 그 어두워 숨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박괘(剝卦)를 생각컨대
명기기심미의(明其機甚微而)
그 기미의 아주 미묘한 것을 밝히어서
시적어유잠자(始積於幽潛者)
비로소 그윽하게 잠겨 있음에 머무른다면
종발어명현(終發於明顯)
마침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니
금시사자수재궁산일우이(今是舍者雖在窮山一隅而)
오늘 이 정사가 비록 외진 산자락 한 모퉁이에 있으나
이일문명래복지기(異日文明來復之機)
어느 날 문명이 회복되는 기미에 있어서
안지불유차이위지조야(安知不由此而爲之兆耶)
여기서부터 그 조짐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하리오!
차여지소위기이봉욱자야(此予之所爲記而奉勗者也)
이것이 내가 기문을 지음에 있어서, 받들어 힘쓴 이유이다.
세재을해중추(歲在乙亥中秋)
완산(完山) 이우섭(李雨燮) 기(記)
창산(昌山) 성동영(成東英) 서(書)
을해년(1995년) 가을이 깊어갈 적에
전주이씨 이우섭 짓고
창녕성씨 성동영 쓰다.
(맹강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