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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내코, 어리목, 영실 한라산 자락에 푹 묻힌 2박 3일
1. 일자: 2011. 5. 17-18 (화-수)
2. 장소: 돈내코, 영실, 어리목
3. 행로 및 시간
[돈내코-어리목 : 수산과학고(08:35, 탐방로 3km) -> 충혼묘지 주차장(09:02) -> 탐방로 입구(09:10) -> 탐방 안내소(09:15, 500m) -> 밀림입구(09:36, 남벽 6.2km) -> 썩은물통(09:53) -> 적송지대(10:10, 남벽4.43km) -> 해발 1000m(10:32) -> 살채기도(10:47, 3km) -> 둔비바위(11:09, 남벽 2.32km) -> 평궤대피소(11:23, 1450m, 남벽 1.7km) -> (철쭉평원) -> 넓은드르 조망대(11:38) -> 남벽분기점(12:10, 1600m) -> 방아오름샘(12:22) -> 서북벽 통제소(12:47) -> 윗세오름 대피소(12:55, 1700m) -> (평지계단길/샘) -> 해발 1600m(13:28) -> 해발 1500m(13:41) -> 사제비동산(13:49) -> 사제비약수(13:57, 1424m) -> 기이한 나무(14:14) -> 해발 1000m(14:38) -> 어리목 탐방센터(14:47, 970m) -> 어리목 주차장(15:07) 13.8km]
*영실-어리목: 영실휴게소(09:55, 1280m) -> (오백나한/영실기암) -> 해발1500m(10:40) -> 노루샘(11:42) -> 윗세오름(11:49) -> 샘(12:12) -> 사제비동산(12:45) -> 해발 1200m(13:08) -> 계곡 다리(13:27) -> 어리목(13:33) -> 어리목 주차장(13:56)]
4. 동행: 홀로
< 한라산 산행을 준비하며 >
2007년 겨울 대학 동기들과 처음 올랐던 한라산 등산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멋진 경험이었다. 3년 6개월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 때 일들이 어제처럼 머릿속에 또렷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랐던 제주행 비행기, 콘도에서의 질펀한 술판, 강형과 함께 본 새벽 하늘의 별, 성판악에서의 단체사진, 눈 덮인 진달래 대피소, 맨 얼굴의 백록담, 하산 길 햇살에 비친 조릿대, 길고 긴 관음사로의 하산 길, 서귀포에서 맛 본 제주도 토속 음식, 흥겨웠던 노래방, 대식이의 코골이, 밤새 바둑을 두던 승의와 홍규, 승의 부모님의 정성이 담긴 감귤, 애월 해변에서의 마지막 유희 등 등.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다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다. 당초 20주년 근속 기념으로 신청한 일본 여행이 지진과 스나미 여파로 취소되고, 화 김에 저지른 평일 해비치 호텔 예약이 덜컥 당첨되어 버렸다. 기뻐할 일이지만 평일 그것도 3일이나 회사에 휴가를 내야 하고, 집사람도 장인어른, 아이들, 희동이 걱정에 동행을 쉽게 결정하지 못해, 일들이 꼬인다. ‘여차하면 혼자서 한라산에 원 없이 오르지 뭐 하는 마음으로’ 일단 비행기 표부터 예약한다. 그러고도 마음이 계속 흔들린다. 무슨 청승으로 호텔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라는 6성 호텔에서 홀로 이틀을 잔단 말인가? 모두들 미쳤다 할 것이다.
4월 중순 이후 3주 동안을 제주도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다. 문뜩 출발 전 주 수요일 오전, 달력을 바라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알고는 제주도 지도를 찾아 나서는 것으로 준비에 들어 간다.
머리 속으로 일정의 대강을 정리한다. 5월 16일 근무를 마치고 저녁 비행기 편으로 제주에 도착하면 대략 저녁 8시일 것이고, 저녁을 먹고 호텔 셔틀버스로 표선으로 이동하여 씻고 자면 첫 날은 마무리될 것이다. 둘째 날 오전 수소문해 서귀포행 버스를 타고 물어 물어 돈내코 탐방로에 설 것이다. 평궤대피소, 남벽 분기점을 지나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한라의 장관을 다시금 확인하고 어리목으로 하산. 어제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호텔/시외 버스를 타고 해비치로 향하고 밤을 여러 생각으로 보낼 것이다. 마지막 날은 아침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영실로 이동하고, 영실휴게소에서 등산을 시작할 것이다. 한라산에서 가장 경치가 좋다는 오백나한과 영실기암을 보며 윗세오름에 오를 것이고 하산은 역시 어리목으로 할 것이다. 2박 3일이 온통 등산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누가 알면 진짜 분명 미쳤다 할 것이다. 그러나 혼자 가는 여행, 낯선 행락지에서 이방인이 되기 보다는 한라산의 구석 구석을 탐방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값진 행위이니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기로 한다.
등산 첫날 표선에서 서귀포를 지나 돈내코, 어리목으로, 둘째 날 제주 시내에서 영실입구까지, 머리 속으로 수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동경로를 그려 보지만 좀처럼 시각화 되지 않는다. 실제 경험한 것과 머리 속으로 추정하는 것에는 이렇게 큰 갭이 있다. 무심코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간도 많은데 웬 조바심이 이리도 많나, 이 정도하고 벤처정신으로 현장에서 부딪쳐 보자’.
< 희망사항 >
혼자 떠나는 2박 3일 여행. 25년 전 입대를 앞두고 마음을 정리하러 떠난 계룡산 산행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혼자만의 먼 여행은 머리 속에 많은 갈등을 유발한다. 다만 20대 초반 무작정 떠났던 홀로 여행에서 평생 잊지 못한 경험과 만남이 있었듯이,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낯선 환경에서 처음 보는 이들과 어울리며 나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과감히 노출시켜야겠다. 회사 회의 때 가끔 주장하는 ‘낯선 환경에 우리를 노출하여 실력을 배양하자’를 스스로 실천해 보자.
돈내코 코스는 작년에 15년 만에 다시 개방된 탐방로다. 충혼묘지에서 출발하여 살채기도, 평궤, 방애오름 등 뭍에서는 흔치 않은 이름의 지형을 지나 윗세오름까지 9.1km의 긴 산 길을 홀로 걸으며 제주도의 자연을 편한 마음으로 감상해 보고 싶다.
한라산 등산의 백미는 지금까지는 백록담 분화구의 모습과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은 산죽을 감상하는 것이라 내 지난 경험은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그 정점에는 오르지 못하지만 윗세오름에서 올려다 보는 백록의 모습은 그 바라보는 사진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고, 길가에서 나그네를 호위하는 조릿대는 언제나처럼 든든할 것이다. 둘째 날 영실 코스를 오르며 보게 될 영실기암과 오백나한의 경관은 어제까지도 의심치 않았던 한라산 등산의 백미를 바뀌어 놓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으로 본 두 지형의 모습은 너무도 환상적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전에 경험한 성산 일출봉, 문섬에서 본 서귀포의 모습, 모슬포 포구 등 이 섬에서는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자연유산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 사실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금 확인해야겠다.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항상 무한의 상상과 설렘을 유발한다. 머리 속 상상 만으로도 나는 벌써 한라의 산 기슭을 걸어 가고 있다.
홀로 가는 등산에 최고급 잠자리라, 왠지 예전 국어 교과서에서 읽었던 ‘걸인의 찬, 황제의 밥’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저가 항공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초라한 반찬이라면, 해비치호텔은 햅쌀로 새로 지어 김이 나는 황제의 밥일 것이다. 언발런스 해 보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능케 해준 내 다리와 발에게 최고의 잠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어 기쁘다. 마지막으로 ‘먼 길 떠나는 이는 여정, 즉 길을 가는 과정을 즐기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쉽게 지쳐 참다운 여행의 맛을 즐길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을 즐기자.
< 첫 날 밤과 둘째 날 아침 >
회사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17:05 김포행
버스에 오른다. 두고 온 업무도 장인어른 걱정도 잊고 여행 모드로 전환한다. 차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은 쏟아지는 봄 햇살을 받아 보이는 곳마다 밝게 빛난다.
근래 보기 힘든 맑은 날씨다. 많은 일들이 꼬여만 가는데 날씨만은 내편인 듯하여 위안이
된다. 비행기 창으로 본 하늘에는 보름 달이 떠 있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 보지만 찍히는 것은 작고 흰 점 하나다. 내 똑딱이로 먼 달은 벅찬 상대임에 틀림없다.
07:40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제주는 어둠에 젖어 있었다. 달은 더 커진 모습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다. 공항 셔틀로 해비치로
이동하는 길, 어둠은 이곳이 제주임을 특징 지우지 못했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해비치 호텔의 야경은 근사하다. 은은한 노란색 조명이 여행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카운터에서 몇 분이 오셨느냐고 묻는다. 혼자라 하니“객실을 50평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 했는데…“라며 아쉬워한다. 주는 키를 받아 별 생각 없이 룸에 들어서다, 깜짝 놀란다. 대형 더블 침대, 대형 TV, 화장실 모두가 2개다. 거실도 넓다. 스위트 룸이란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집사람 생각이 났다. 참 아쉽다. 자신을 몇 장 찍어 집으로 보내고 곧 잠자리에 든다.
< 해비치 호텔 / 표선 바닷가 >
밤 새 뒤척이다 아침녁에 선잠을 잠깐 잔 것 같다. 온 몸이 찌뿌드드하다. 미결된 체 두고 온 업무 걱정이 밤 새 날 그냥 두지 않았다. 몸 상태가 작년 설악 공룡을 오를 때의 아침 같다. 그 때도 잘 해 내지 않았던가? 힘을 내자 산꾼이여!
호텔 앞 음식점에서 굴국밥 한 그릇을 먹고 힘을 낸다. 물어 물어 서귀포행 버스 정거장을 찾아 간다. 오가며 만나 두어 마디 말을 주고 받은 제주사람들은 모두가 정겹고 친절했다. 항상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 보다 많은 것을 주려고 했다. 대신 거리와 시간이 육지 사람인 나와는 개념이 차이가 났다. 실제로 20여분의 꽤 먼 거리를 근방 가면 된다 하고, 금방 온다는 버스는 20분이 지나야 왔다. 바쁠 것이 없는 그들에게 시간과 거리는 ‘조금과 금방’으로 느껴지나 보다.
< 수산과학고에서 돈내코 >
표선 발 버스는 제주의 남동쪽 해안을 따라 서귀포로 향해 간다. 몸이 무거운데도 눈을 붙일 수 없다. 혹시 잠들었다가 하차할 곳을 놓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제주 해변마을의 아침 풍경과 등교 길의 학교와 학생들, 잎이 돋는 낯선 나무, 낯선 도시 길가 간판을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다 보니 어느덧 서귀포 시내에 들어선다. 버스기사가 안내 해준 사거리에서 하차하여, 제주 방향 정거장에 선다. 버스 도착시간표를 보니 10분 전 돈내코 충혼묘지행 버스는 지나갔고, 뒤 차는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 일반버스를 타고 수산과학고 앞에서 하차한다. 출발 전 얻는 정보와 현지에서 물어서 들은 정보가 일치한다. 하차한 정거장에서 충혼묘지까지의 거리라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일단 내린다.
8시 30분이 막 지난다. 신호등 앞에서 학생들이 뛴다. 지각을 했나 보다. 학생주임인 듯한 인상 사나운 선생이 길거리에서 학생들을 불러 세워 호되게 야단을 친다. 옆을 지나는 내가 민망하다. 아침, 사거리 신호등에서 학생들을 불러 세워 아름답지 못한 말을 쏟아내는 선생을 보며 30년 전 내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시간이 흘러도 별반 바뀐 것이 없는 현실을 개탄한다.
수산고 앞 도로에 서 있는 이정표는 충혼묘지까지의 거리가 3km라 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햇살이 따갑다. 걷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이국적 나무들이 호위하는 한가한 가로수 길을 홀로 걷는다. 길가에 핀 각시투구꽃 만이 익숙한 것이다. 고도계를 본다. 해발 180m 수준이다. 돈내코 등산로 입구가 해발 500m이니 초반 오르막에 체력을 다 소모하겠다. 완만한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난대림연구소 등의 이정을 지난다. 한 1km 걷다가 안 되겠다 싶어 지나는 차에 손을 흔든다. 몇 대의 차가 본체만체 지나가고 카니발 한 대가 선다. 농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좌석에 놓인 채소를 뒤로 치우며 타라 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선량한 인상의 분이다. 등산 가냐고 물으며 채소 값이 떨어져 걱정이라며 한숨 짓는다. 내 마음도 내려 앉는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거리가 나타난다. 좌회전 하신단다. 직진해야 하는 난 내린다. 멀어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낯선 도시에서 소위 히치하이킹을 해 보면 서는 차는 대부분 트럭이거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의 것이다. 서민들이 마음은 더 넓은 법임을 확인하곤 한다. 오늘 역시 그랬다.
이제 충혼묘지 탐방로 까지는 1.2km다.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시간을 10분 정도 절약했다. 남은 긴 오르막을 지친 걸음으로 오른다. 길은 아무 변화가 없고 여전히 정적이 감돈다. 버스 회차로인 듯한 넓은 공터를 지난다. 충혼묘지 주차장이다. 다 왔구나 싶었는데 등산로는 이곳에서도 각 시도의 공원묘지가 곳곳에 있는 도로를 타고 1km는 더 가야 했고, 그곳에서도 탐방로 입구 이정표를 따라 한참을 가서야 비로소 돈내코 탐방안내소에 닿을 수 있었다. 40여분의 도로 길에 체력이 방전된 느낌이다. 기다렸다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고 왔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오늘의 경험이 훗날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 돈내코 탐방로 입구 / 내려다 본 서귀포 전경 >
< 돈내코에서 윗세오름 >
돈내코 탐방로 입구. 돌담을 따라 묘지들이 가지런히 서 있고 그 사이로 긴 오름 길이 이어진다. 현무암의 검정색과 콘크리트의 흰색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맑은 날의 정적은 여전히 흐른다. 눈 맛이 시원하다. 그간의 도로 길의 지겨움이 새로움으로 변한다. 계단을 지나 돌아보는 서귀포 시가지의 풍경이 아스라하다. 탐방안내소에서 신발 끈을 동여맨다. 본격적인 입산이다. 숲이 우거져 있는 완만한 오르막, 간간이 들려오는 새 소리 말고는 적막하다.
첫 이정표. 밀림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머무른다. 이어지는 길, 숲은 더 짙어진다. 잎이 더 무성한 성하(盛夏)에는 녹음에 하늘 구경도 힘들겠다. 숲 길의 단순함을 덜어 주려는 듯 길가에 안내이정표와 고도표지석 자주 눈에 띤다. 700m, 800m를 지나친다.
< 썩은 물통 / 동백의 자태 >
썩은물통이라는 흔하지 않은 이름의 이정표를 지난다. 곁에 다가 가니 산지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물이 고이는 곳이 흔치 않은 이곳 섬 산에서는 분명 소중한 자연유산일진데 습지는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떠 있는 보기 흉한 모습으로 방치되어 있다. 보호의 손길이 아쉽다.
썩은 물통을 지나자 밀림은 더 짙어진다. 연꽃 모양을 한 나무가 옛 잎을 버리고
왕관모양의 새 잎을 내고, 동백의 마지막 꽃망울이 지고 있는 것 말고는 숲은 매양 같은 모습이다. 적송지대를 지나며 길이 조금 더 가팔라진다. 해발 1000m 고도 표지석을 지난다. 살채기도를 지나며 하늘이 조금 열리는
듯하여 변화를 기대했는데 잠시 계곡이 지나는 곳에서 하늘이 열릴 뿐 잠시 매양 한가지인 길이 이어진다. 둔비바위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고도가 점점 높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1400m를 지난다. 안개인지 연무인지가 시야를 조금씩 흐리게 한다. 지친 마음에 그러거나 말거나 평궤대피소까지 하념 없이 걷기만했다. 몸도
머리도 무겁다. 돈내코로 향하는 초반 도로 오르막의 여파가 갈 길을 더 멀게 만든다.
< 평궤 평원 풍경 / 안개가 걷히는 남벽 >
긴 오르막의 끝에는 평궤가 있었다. ‘궤’라는
말은 깊게 패인 굴이란 뜻이다. 앞에 ‘평’자란 말이 붙어 있으니 평원에 만들어진 굴이란 뜻일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그 말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을 찾지는 못한다. 이곳을 기점으로 지형은 열린 공간으로 변해, 땅에는 철쭉이 만들어내는 천상의 화원이 하늘에는 한라산의 남벽이 목격된다. 남벽은
꿈에서 본 듯한 시원(始原)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걷히고 조릿대와 구상나무 고목 그리고 철쭉이 어우러진 평궤의 풍경은 새로운 샹그리라였다. 이곳까지 오르며 겨우 이 정도의 풍광을 보호하느라 15년 동안 이곳을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어 두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와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돈내코 코스의 백미는
철쭉평원에서 올려 다 보는 남벽의 모습이었다. 인내하고 올라 올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 평궤에서 본 남벽 >
길이다. 멋진 광경을 보고도 자연과 섞인 내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사위가 고요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어리목 쪽에서 내려오는 부부 산꾼을 만난다. 인사보다 먼저 사진을 부탁한다. 남벽을 배경으로 내가 이곳을 왔다 갔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어지는 남벽분기점 통제소에서 까지의 길도 내 걸음에 따라 변화는 남벽의 전경을 감상하며 걷느라 정신이 없다. 평궤에서 남벽까지는 50분이 소요되었다. 남벽대피소에서 다시 사람을 만난다. 사람도 반가웠지만 샘 솟는 물이 더 좋았다. 수량이 풍부해 모터로 퍼 올리는 듯 물이 솟는다. 팔을 걷고 세면을 한다. 세상이 더 맑아졌다.
< 남벽 대피소에서 >
대피소를 지나자 긴 계단 길이 이어진다. 한동안 평지 길에 길들여진 다리에 묵직함이 전해온다. 남벽이 점점 더 가깝게 다가온다. 방애오름이라는 샘을 지난다. 그 이름을 보니 조금 전 지나온 언덕이 방애오름이었나 보다. 제주에는 약 360개의 기생화산인 오름이 있고 오름이 곧 작은 산이니 또 하나의 산을 넘은 것이다. 방애오름에서 두 명이 군인을 만난다. 행색으로 보아서는 현역인 듯 한데 2명만이 단독 산행을 하는 것이 특이하다. 어디로 가시냐 물으니 남벽을 가르치며 “저리로 오릅니다” 라고 말한다. 특수 목적의 훈련 수행 중인가 보다. 예전 백록담에서 관음사 하산 길에서도 행군 중인 공수부대원들과 조우했는데 한라산에서의 군인들과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다.
< 방애오름에서 / 고사목과 남벽 >
< 윗세오름에서 어리목 >
하산 개시 시간은 1시 10분. 제주행 버스 출발 시간이 3시 35분. 2시간 30분의 시간 여유가 있으나 길 사정을 알 수 없으니 마음은 조급해 진다. 뒤돌아 윗세오름을 다시 본다. 대피소 건물이 점점 작아진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천천히 떠 간다. 내일 이 길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 어리목 부근 풍경 >
나무데크를 따라 어리목으로 향하는 길을 내려선다. 고도차가 거의 없는 평지 수준의 조릿대 길이다. 관목들 조차 드문 평원이다. 시야가 확 트여 개방감이 시원하다. 돌아다 보는 남벽은 구름이 지나든 말든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내게 잘 가라 한다. 작은 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사제비동산으로 향한다. 40분여 만에 도착한 사제비동산은 휴식용 나무데크가 있다는 것 말고는 지나온 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 부근에 수량이 풍부한 사제비약수가 있다. 자리를 펴고 잠시 앉는다. 40분만에 이곳까지 왔으니 이제 어리목까지는 길어도 1시간일 것이다. 여유를 가져도 되겠다. 이어지는 길은 나무데크가 없어지고 현무암 본연의 너덜이 이어진다. 발은 불편했지만 작은 변화가 지루함을 덜어준다. 1200, 1100, 1000 고도석을 지나며 목적지 어리목이 점점 가까워짐을 직감한다.
< 하산 길의 구름 >
조용하던 산 길이 어수선해진다. 웅진팅크빅 학습지 교사들 무리가 시끌벅쩍하게 산을 오르고 있다. 초반부터 퍼지는 아줌씨들, 가야 할 길의 사정을 물어보는 이들, 뒤처진 이들을 독촉하는 진행자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사람들 세상의 흔적을 확인한다. 이들의 각양각색의 산을 오르는 모습을 재미나게 감상하며 길을 내려가는 사이 어느덧 어리목 탐방안내소에 도착해 버렸다. 어리목 해발 970m. 시외버스 탑승장소는 이곳에서도 15분 정도 한적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했다.
< 어리목 고사목 앞에서 / 어리목 주차장 풍경 >
< 표선 귀소 길에 >
어리목으로 하산하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3시 5분 제주행 버스 탑승까지는 30분이나 남았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제주 사람들의 여유를 닮아가는지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진다.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중년 여인들의 꺼리낌 없는 유쾌한 대화를 엿듣는다. 버스 출발 시간을 놓고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3시 35분이 맞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자, 기다리기 싫다며 지나는 차를 세우기로 한다. ‘한 미모’하는 분이 앞장 서 손을 흔들자 거짓말처럼 카니발 한 대가 선다. 잠깐 사이에 4명의 여인들이 사라져 버린다. 역시 용감해야 그리고 얼굴이 바쳐 주어야 행운이 따르는 법이다.
1100도로를 따라 제주의 자연을 차창으로 감상하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30분만에 도착한 시외버스 터미널은 육지 소도시 터미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낯설면서도 당연한 풍경이라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표선행 버스는 20분만에 한대씩 있다. 생각보다 운행 간격이 짧아 좋다. 이번 여행에서의 또 하나의 수확은 제주 대중교통의 대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기 전 머릿속으로 그릴 때 보다 실제는 더 이용하기 편했다.
5시 30분 도착한 표선. 배가 고프다. 숙소부근 음식점 두 곳을 거쳐 3번째 집에서 해물뚝배기를 주문한다. 13000원이라는 값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상차림이다. 시장이 화를
누르는 바람에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음식을 먹고 값을 치르고 나왔다. 제주의 음식. 콩나물과 미나리의 밋밋한 밑반찬, 담다만 밥, 질에 비해 터무니 없는 가격. 제주 토박이들도 저 가격에 이 음식들을
사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육지인들의 지갑을 열려면 좀 더 정직하게 베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나마 배고픔이 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것이 다행임과 동시에 아쉬운 현실이다.
숙소에 들어오니 피곤이 몰려온다. 낯선 곳에서의 부족한 잠, 6시간 반의 산행을 마쳤으니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짐만 풀고 사우나로 향한다. 노곤한 몸이 뜨거운
물로 인해 행복한 피로감에 젓는다. 최악의 몸 상태에서 감행한 등산인데도 마치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중독된 이들만 아는 비밀스런 느낌이 온 몸에 퍼진다. 긴 하루를
접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 해비치 호텔 전경 >
< 표선에서 영실-어리목 >
어제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표선에서의 아침을 맞는다. 아침을 먹고 표선 해변가로 나간다.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무언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이 주위를 맴돈다. 잠시 후 어렵게 사진 부탁을 한다.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좋은 풍경을 보고도 그것과 어우러진 사진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고 여러 장의 사진을 부탁한다. 기꺼운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다. 나도 동일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아 동지감을 느낀다. 표선의 아침 바다는 고요하기 그지없다. 해변 한 컨에 돛단배와 해녀상이 있어 주위 바다와 조화를 이룬다. 제주는 어디를 가나 참 멋진 곳이다.
제주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하여 영실행 버스를 탄다. 버스 안은 어리목과 영실 가는 등산객뿐이다. 영실 입구에서 긴 오르막을 지나 널찍한 영실매표소 앞에 섰다. 예전 차로 한 번 와 본 곳이다. 당시 가족들 성화에 산에는 오르지는 못하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그 다음이 오늘이 되었다. 택시를 합승하여 영실휴게소까지 이동했다. 제주에서 처음으로 이용하는 작은 차다. 덕분에 시간을 40분 정도 절약할 수 있었다. 어제 돈내코에서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 표선 바닷가 풍경 >
10시 정각 영실탐방센터를 출발한다. 고도가 이미 1270m이다. 15분 정도 거리의 조릿대가 울창한 길을 지나자 하늘이 열리고 멀리 오백나한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를수록 암회색 암괴의 모습은 선명해지고 좌측으로 영실기암도 하나 둘 위용을 자랑한다. 길은 온양에서 수학여행 온 고교생과 제주에서 졸업사진 찍으러 온 중학생들로 완전 시장 통이다. 한적하게 멋진 풍경을 즐기는 것은 포기다. 계단 길의 가파름이 꽤 심했지만 황홀한 풍광에 다리에 고단함은 잠시 잊는다. 바람이 몹시 거세다. 손으로 잡지 않으면 모자가 날라갈 지경이다. 산기슭 곳곳에 철쭉이 무리 지어 피어 있고 그 뒤로는 나한들이 서로 다른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한의 기세에 영실의 기암들은 멀리서 그 존재만을 알리고 있다.
< 오백나한을 배경으로 >
세찬 바람이 몰려오고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다. 그 기세가 자못 세차다. 사진은 바람을 담지 못한다. 능선이 가까워질수록 고사목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이 세찬 바람에 맞서다 장렬히 생을 다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고사목 옆에서 분홍빛 자태를 자랑하는 철쭉이 산재해 있고, 마치 죽은 고사목의 환생인 듯 고운 자태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길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바위지대를 벗어나지 작은 숲도 나온다. 숲 길에 들어서 호흡을 정리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다시 마음이 바빠진다. 밥벌이의 힘겨움은 먼 곳에 떠나 있어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 영실기암을 배경으로 >
신경이 사나워져서 주위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길을 걸었다. 부지불식 간에 경사가 완만해 지는 능선에 올라섰다. 바람도 잔잔해지고 하늘 끝 저편으로 한라의 최고봉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에 노루샘이라는 커다란 샘이 보인다. 예전 성판악-관음사 등로에서는 샘을 목격하지 못했는데 어제 오늘 산행에서는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 좋은 샘을 여러 개 목격한다. 현무암 재질의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이라 샘은 없을 것이라는 것도 하나의 선입감이었다.
어제에 이어 다시 찾은 어리목, 대피소 주위는 학생들로 더 붐빈다. 못 보던 사이 휴식 데크 뒤편으로 산더미만한 컵라면 박스들이 쌓여있다. 견물생심이라고 다시 라면 생각이 난다. 망설이다 컵라면을 산다. 어제 보다는 못해도 여전히 맛은 감동적이다. 어제 놓쳤던 ‘윗세오름’ 표지목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하산 길에 나선다. 내려서며 뒤를 돌아 본다. 어제 물리도록 보고도 눈은 다시 남벽의 장엄함에 어쩔 줄 모른다.
< 철쭉이 있는 풍경 >
어리목 하산 길, 달라진 것은 어제와 달리 오늘은 구름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돌아 본 남벽. 흡사 엎어 놓은 접시 모양으로 멀리 의젓하게 누운 모습은 그만큼 신비롭고 또 장엄했다.
< 노루샘에서 / 윗세오름을 배경으로 >
어리목 하산 길, 눈 앞에 펼쳐진 조릿대 평원을 보면서 한라산은 겉으로는 밋밋하고 광활한 초원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멀리 오름이 보인다. 사실 한라산의 수 많은 오름은 그 생성기가 각기 다른 조면암 층과 현무암층의 두 가지 지층으로 형성되었는데 해안 쪽은 현무암이 대세이지만, 백록담의 서쪽 영실 쪽의 오백나한이라 일컬어지는 기암절벽은 조면암의 기둥바위들이 풍화된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같지 않음을 또 확인한다.
이어지는 하산 길, 어제 와 본 길이라 거리와 시간에 대한 조바심 없이 느긋한 마음으로 내려선다.
< 어리목 하산 길 풍경 >
< 에필로그 >
이박삼일의 제주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일상의 여러 꼬임을 털어버리려 떠난 여행이건만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밥벌이의 고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풀리지 않는 매듭에 사람의 감정문제까지 개입되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다. 그나마 산에서는 잠시나마 그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비행기에서 본 김포평야 / 출발 시 김포공항에서 >
이번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단상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출발 전 걸인과 황제를
언급했는데 실제로는 황제는 맞았지만 걸인은 틀렸다. 우려했던 제주의 대중교통은 돈내코코스를 제외하고는
이용에 무리가 없었고, 당초 예상처럼 호텔은 황제급의 최상급이었다.
50평 스위트 룸으로 업그레이드 된 객실을 보고 같이 못 온 가족 생각을 절로 나게 했다.
첫날 돈내코 어리목 산행의 키워드는 지겨움, 밀림, 천상의 화원, 남벽의
황홀경, 구름 평원 등이다. 수산고에서 돈내코 충혼묘지 길은
몹시 길고 단순해서 고역이었고 이어지는 돈내코 탐방로는 밀림으로 대변 대듯 단조롭고 울창한 숲길로 완만한 오르막이 지루하게 계속되었다. 수산고 기점 평궤까지 고도 1400m를 3시간 동안 내처 걷기만했다. 평궤를 지나며 부터는 산의 환경은 완전히
변한다. 울창한 숲은 관목과 조릿대로 변했고 하늘은 완전히 열려 있다.
땅은 철쭉으로 꾸며진 천상의 화원이었고, 하늘 밑에는 거대한 암괴가 도도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구름에 대한 조바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구름이 걷히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남벽의 등장은 구름 때문에 더욱 극적으로 연출되었다. 내가 이제껏
상상한 샹그리라와는 다른 모습의 낙원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둘째 날 산행의 키워드는 오백나한, 영실기암, 바람이었다. 시시각각으로 모양을 달리하는 오백나한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세찬 바람을 안고 내려다 본 제주 시가지의 모습은 또 하나의 평원이었다. 사진이 바람을 담지 못함을 알게 되었고, 내 생각이 사진에서 정지된 체 표현 되는 것을 보고 사진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결국 이번 제주도 여행을 짧게 정리하면 ‘돈내코 어리목 영실의 한라산을 섭렵하다.’이다. 한동안 한라산의 꿈을 자주 꿀 것 같다.
이박삼일의 여행을 마치며 마음이 담담해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맞을 준비가 되었다. 대자연의 장엄한 파노라마를 목격하고 일부가 되어 보고 나니 산 밑 인생사를 보다 초연하게 대할 자신이 생긴다. 20대 때와는 또 다른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세상을 관망하는 좀 더 넓은 마음과 여유를 가지라고 내게 말한다. 이는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적합한 솔루션을 찾으라는 것이다. 편협 되지 않은 사고와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에 있다. 시련을 이겨낼 힘을 제주와 한라에서 얻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