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다!
웃고 삽시다! *남도인 박 아무개
@이런 남자를 용서 못해
*눈이 단추만 해서 쌍꺼풀 수술을 한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노출이 심한 여자만 보면 눈이 당구공처럼 커지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과거 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귀 뚫은 남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귀가 막힌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머리카락 없는 거 용서할 수 있지만 머리든 거 없는 남잔 용서 할 수 없다.
*날 사랑하지 않는 남자 용서할 수 있지만 거짓 사랑 고백을 하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밥 많이 먹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반찬투정만 하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외박을 하고 온 남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속옷을 뒤집어 입고 온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썰렁한 유머를 애써 구사하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지만 욕설일색인 음담패설만을 일삼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1. 여자의 생각; 남자가 담배연기로 도넛츠를 만들 때
사랑할 때 : 어머 정말 동그랐다! 자기는 재주도 많어!!
미워질 때 : 븅신! 되게 할 지랄 없네!!
남자의 친구들이 날보고 아름답다 할 때
사랑할 때 : "어머! 그래요!!"하면서 여전히 그 이를 보며 웃는다.
미워질 때 : "어머! 그래요!!"하면서 여전히 남자의 친구들을 보면서 눈웃음친다.
남자가 근육을 자랑할 때
사랑할 때 : 차승원이나 송승헌 보다 멋있다고 생각한다.
미워질 때 : 근육만 있으면 뭐하냐? 정작 중요할 땐 힘도 못쓰면서!
남자가 보신거리를 찾을 때
사랑할n때 : 요리법을 배워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
미워질 때 : 저 새끼가 어디다 힘을 쓰고 와서 저 난리야!
잠만 자는 남편을 볼 때
사랑할 때 : 안스럽다. 내일은 소꼬리라도 고아야겠다.
미워질 때 : 괜히 화가 난다. 뺨을 몇 대 때려도 분이 안풀려 빨래집게로 코를 찝어 놓는다.
2. 남자의 생각 ;;그녀가 밥값을 같이 내자며 돈을 건넬 때
사랑할 때 : 아! 나는 정말 행복한 놈입니다!!
미워질 때 : 야! 니가 비싼거 먹었으니 더 내야지!!
그녀가 팔장을 낄 때
사랑때 : 닿는 감촉이 너무도 좋다.
미워때 : 날은 더운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그녀에게 쫓아다니는 남자가 있다고 할 때
사랑할 때 : 그 남자가 밉다. 만나면 뼈도 못추리게 혼내주련다!
미워질 때 : 그 남자가 불쌍하다. 만나면 소주 한잔하며 그녀의 정체를 밝혀주련다!
전철에서 그녀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잘 때
사랑할 때 : 행여 그녀가 깰까 꼼작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미워질 때 :어떻게 기습적으로 일어서야 효과적인 데미지를 입힐까 궁리한다.
그녀의 팔뚝에서 작은 흉터를 발견했을 때
사랑할 때 : 나쁜 모기 같으니라구! 감히 어딜 물어!!
미워질 때 : 흠--!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은 목걸이파가 징표로 팔뚝에 담배 불을 지졌다는데...혹시?
나훈아는 남진, 배호와 더불어 트로트 트로이카를 형성하며 60년대 트로트 르네상스를 주도한 슈퍼 스타이자 최초의 라이벌 시대를 개막한 거목이다. 당시의 두 메이저 음반사였던 지구의 남진과 오아시스의 나훈아의 대결은 해방 후 음반산업의 기틀을 형성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70년대 초반까지 두 사람의 접전에서 남진이 근소하게 앞서 나갔지만 그는 잦은 노선의 변동으로 정상의 왕관을 수호하지 못한 반면에 나훈아는 당시로서는 치명적인 스캔들에도 아랑곳없이 트로트의 수호자로 등극하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1966년 <천리길>로 데뷔했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67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스매쉬 히트곡으로 오버나이트 석세스를 붙잡으면서 연타석 히트작 <임그리워>가 함께 담긴 그의 두 번째 음반은 1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다. 남진의 군입대 기간 동안 그는 최고의 정상을 구가하면서 수많은 스캔들을 낳기도 했지만, 남진의 복귀로 본격적인 라이벌의 시대가 열리면서 언론이 부추김과 리사이틀에서의 관객동원경쟁에서 과열된 승부욕은 서로에게 자극이었던 동시에 대중음악의 공연문화에 있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남진의 팬에 의해 피습을 당하기도 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 1972년 최초의 자작곡집 발표 그러나 끊임없는 악재 속에서도 72년 <고향역>으로 다시 인기정상을 회복하고 트로트 보컬로서는 최초로 자작곡집을 발표하면서 이후 <물레방아 도는데>, <녹슬은 기찻길> 같은 정통 트로트를 대표곡으로 남기면서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계속 과열되기만 했던 라이벌과의 경쟁에 대한 승부욕으로 넘치던 혈기방장한 젊은 나훈아는 시상조작시도로 불거진 일련의 곤혹스러운 사태를 겪으며 극비리에 공군에 지원입대했다. # 1제대 이후에도 배우 김지미와의 결혼설 등으로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79년 은퇴를 선언하고 소문이 잠잠해진 81년 10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비록 잡다한 소문들로 시끄러웠던 그였지만, 적어도 음악에 관한 집중력과 집념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는 그저 트로트 보컬만이 아니라 기타와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는 연주자였고, 작곡의 능력까지 갖춘 싱어송라이터였으며, 포크와 팝에 있어서도 누구못지 않은 뛰어난 곡소화력을 보이는 재기 넘치는 뮤지션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토속적인 음색과 다이나믹한 창법은 더욱 깊이를 체득해가며 발전했다. 나훈아는 트로트의 위기가 가중되는 80년대에 이르러 서구의 스태더드 팝 언어를 전폭적으로 수용하여 그 자신만의 새로운 성인음악(Adult Contemporary) 문화를 창조하는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난다. 1983년 그가 득의만만하게 선보인 <사랑>, <영영> 같은 넘버들은 심수봉의 재기작과 더불어 한국 성인 대중음악으로서의 트로트의 변신을 결정짓는 파괴력을 행사하며 성인문화의 제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한다. 그것은 자신을 단순한 밤무대 가수로 전락시키지 않은 투철한 자기 관리와 자신의 아성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나간 음악 정신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나훈아의 분전은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현철과 주현미를 중심으로 하는 2차 트로트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된다.
# 2지금도 연말마다 버라이어티로 가득 한 호화찬란한 리사이틀을 성황리에 수행하는 그는 60년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유일한 인물이다. [테크노버전 18세 순이] 나훈아의매력을 느낄만한 그가 발표한 수많은곡들주에서 우리가요를 뭐라고 합니까?라는 질문에 칸쵸네, 엔카,POP등의 장르속에 트로트라는 어휘를 생각하면서 그가 발표한 "아리랑" - 우리민족의 정서와 혼을 가득히 담은 이하나의 단어가 이제 우리 제3세대의 아리랑가요의 르네상스의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한다.마지막으로 나훈아의 음성으로 발표되면서 우리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던 아리랑이 제3세대에는 어떤 색채로 빛을 발할지 필자는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세상사를 달관하신듯한 그아작사하는 노랫말,,하나도 마치 인생의 교과서에 한페이지를 장식하는듯 하다. 또한 . 저음은 둥글둥글하지만 고음에서는 갑자기 날카로운 창처럼 지른다. 지르면서 꺾는다. 이 창법 또한 논하지 않을수 없다.. 세간에는 꺽는다. 뒤집는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말하지만.. 세상이 변화하는만큼 민족의 정서순환을 위해서 그 세대의 팬들이 좋아하는 멋들어진 또한 새로운 그만의 창법을 그는 고안해내는듯 하다.
4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발표한 앨범"덤"에서도 그러하듯이 또 다른 그만의 멋을 그의 음성을 통해서 그는 영원히 발표하면서 팬들의곁에서 영원히 사랑을 나누어 주리라 생각한다 << 나훈아 19곡 >> 01. 무시로 02. 청춘을 돌려다오 03. 울긴 왜 울어 04. 물레방아 도는데 05. 님 그리워 06. 녹슬은 기찻길 07. 18세 순이 08. 잡초 09. 사랑 10. 머나먼 고향 11. 사랑은 눈물의 씨앗 12. 고향역 13. 잊을수가 있을까 14. 대동강 편지 15. 바보같은 사나이 16. 너와 나의 고향 17. 가지마오 18. 두줄기 눈물 19. 해변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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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래는 정말 잘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