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후배 수녀님
‘00 후배 수녀님’이 안부를 물어왔다. 이십여 년 전 지방 성당에서 함께 활동한 후 헤어진 지 오랜데, 항상 먼저 소식과 안부를 물어오는 고마운 후배이다. 늘 주고받는 인사를 나누다 뜬금없이 과거 내 행적 한 토막을 꺼내놓았다. 나는 기억에도 없는 그러나 분명 둘 사이에 있었던 사연을.
월요일은 본당 수녀들의 휴무일이다. 새벽 미사만 마치면 전적인 개인 시간이다. 동거 초 생활 공간도 서로의 관계도 좀 답답한 그녀는 쉬는 월요일, “서울을 가고 싶다”라고 청했다. (그니는 서울 태생이고 서울을 좋아 했다) 그런데 내가 일언지하 “안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머나 세상에~ 무슨 자격과 권리로 그런 야만스럽고 무지한 말을…?’ 그런데 그 시절은, 수도회 내규상 분원장에게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착각했고, 수녀님도 덩달아 착각했던 시절이다. 시절 죄가 아닌 사람 나의 본죄로. 궁색한 한마디 변호를 붙인다면, 공적 용무 외 지출 비용 절제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도 그렇게 절제된 청빈을 적용했었을까? 솔직한 대답? 아니었다.
그 당시 성당 건물은 짓다가 골조만 세워 둔 채로 숙소는 우리는 아파트에 살아야 했다. 그니의 방은 원장, 내 큰 방에 비해 작고 좁았다. 내 기억에 월요일 쉬는 날이면 그 좁은 방으로 들어가 주로 잤다. 어느 날은 죽었는지 걱정이 되어 들여다 보았을 정도로. 나는 그니가 자는 것을 좋아할뿐더러 잠이 필요한 사람인 줄 알았었다. 이십년 후에 해석이 “무기력한 마음에 도피했었다.”라고 ‘세상에나~. 어떡하면 좋아’
당시 나는 처음으로 분원장 소임을 받았다. 전임 수녀님이 급히 이동되는 바람에, 정식 인사철이 아닌데 발령이 났다. 첫 분원장 증후군이 여실히 드러났다. 준비되지 않은 나는 마치 내 세상을 만난 것 같았다. 다 내 것 같았다. “형제님은 내가 다 맡을 테니 자매님들은 수녀님이 역량껏 해보다가 힘들고 안 되는 일만 이야기하라”라는 신부님 덕분에 물고기 물 만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훨훨 유영하면서, 동생 수녀님이 미국도 일본도 아닌 서울 좀 다녀온다는 데 안 된다고 한 것이다.
한심하고 딱한 것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이 바로 코 앞 일로, 나도 후배와 평 수녀로 나이 어린 분원장 수녀님 밑에서 나름 매운 시집살이를 했다. 그때 비상식적이고 무경우한 일로 분이 나는 일을 꽤 겪었다. 그런데 그 새 올챙이 시절을 까맣게 잊고, 심지어 흉보고 욕하던 시행착오를 답습했던 것이다.
참으로 당황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통화 중 용서를 청하고 이어 문자를 보냈다. “아우님 오래전 이 언니의 미성숙한 잘못을 확인해주니 미안합니다. 내가 부족했어요 잘못했어요.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 감사하고요. 나는 까맣게 몰랐네요. 회개할게요” 그런데 이 짧고 간단한 무성의한 몇 마디로 그니의 열정과 성장에 걸림돌이 된 내 잘못과 부덕이 면죄가 될까? 멀리 있는 그니를 한 번 찾아가 얼굴 맞대고 진심과 정성 담아 용서 청할 일이다. 그리고 직무를 본질을 왜곡하고 유기했으니 하느님과 공동체에 보속할 일이다. 원장이란 리더란 자기 앞에 뒤에 옆에 있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리더가 아닌 리더는 다 가짜이다.
성체 조배 시간, 외출 나오신 주님 앞에서 묵상하며 수도회에 들어와 살았던 그간의 행적, 특히 자매 수녀들과의 관계를 돌아보았다. 내가 잘못한 경우도 많고, 나도 상처받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도 한 공동체 회원으로 수도하며 사는 일과 관계를 이어가니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복음이다.
다행히 수녀님은 벌떡 일어나 신앙과 수도정신 인격함양에 나름 열심하였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못난 선배를 일찍 면죄하고 늘 넉넉한 우정과 우애로 대하였으니 훌륭하고 고마운 후배다.
첫댓글 수녀님 그리고 후배 수녀님
두분이 변함 없이 서로 함께 하며
수도의 길을 잘 걸어 가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