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
“魂불”의 작가 최명희는 1947년 10월10일, 전북 전주시 풍남동에서 아버지 成武씨와 어머니 妙順(陽川 許氏)의 2남 4녀 중 장녀로 출생하였다. 최명희는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 사범병설중학교를 거쳐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72년부터 74년까지는 모교인 전주 기전여자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74년 봄부터 81년 2월까지는 서울 보성여자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 많은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가장 잊지 못할 스승’으로 존경받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 말고는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아본 적이 없다.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면서 탁월한 감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80년, 단편소설 ‘쓰러지는 빛’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다음 해인 81년에는 동아일보가 창간 60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장편소설 모집에 ‘혼불’(제1부)이 당선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1980년 봄 4월에 첫 문장 “그다지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다.”를 쓰기 시작해서 마지막 문장 “그 온몸에 눈물이 차 오른다.”를 쓰기까지 꼬박 17년이 걸린 이 대하소설 “혼불”은 맨 처음 동아일보에 1부를 연재하고, 이후 월간 시사 종합지 “신동아”에 88년 8월부터 95년 10월까지 7년 2개월에 걸쳐 2부에서 5부까지를 연재한 뒤 모두 열 권으로 묶었다. 1996년 12월 전5부 10권으로 대하소설 혼불이 출간되자 단숨에 밀리언셀러(million seller)에 오를 만큼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으며, 전문가100인에 의뢰한 20세기말 90년대 최고의책으로 선정되었으며 한국문학이 이룬 가장큰 성과로 평가되었다. 독서계는 대하소설 혼불 신드롬(syndrome)에 빠저들었다. 오로지 한 작품에 17년이라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긴 세월을 바쳐 탄생한 이 작품은 이제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최명희가 소설 “혼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정서, 원형질에 대한 완벽한 복원이었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 班常의 주인공들을 통해 불과 60여 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살고 입고, 먹었던 풍경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불과 60여 년 전의 이야기를 할 뿐인데도 그것이 아득히 먼 시절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공백을 할퀴고 간 우리 사회의 현대화 과정 때문이라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엄청난 빠르기로, 걷잡을 수 없는 가속도까지 붙으면서 따라오지 못하는 자는 도태시키는 비정할만큼 야멸차고 단순한 시대 논리. 그러나, 그렇게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는 결국 모국어를 해체시키고, 모국어가 해체된다는 것은 곧 민족 정서가 변질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믿고 있었다.
“어둠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도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한다. 어둠이야말로 삼라만상의 지신(地神)이며, 생명의 모태다. 빛이 밝게 빛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신의 불인 혼불은 사실은 혼돈의 시대에 더 환하게 타오를지도 모른다.”
그의 노력은 권위 있는 여러 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었다. 1997년 7월, 제11회 단재상 문학부문상 수상을 시작으로 같은 해 8월에는 전북대학교에서 주는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10월에는 문화체육부가 주관하는 제16회 세종문화상을 수상했다. 다음 해인 1998년 1월에는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제15회 여성동아 대상을 수상했으며, 6월에는 호암재단이 주관하는 제5회 호암상 예술부문상을 수상했고 정부는 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작가 최명희는 17년 동안 투혼했던 “혼불” 외에도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놓았는데, 판소리꾼의 이야기를 담은 중편 소설 ‘제망매가’와 ‘몌별(袂別)’, ‘정옥이’,‘만종’,‘주소’ 같은 단편 소설들은 이미 그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94년에서 96년에 걸쳐 미국의 여러 유수 대학에서 초청 받아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뉴욕 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한국학과에서는 그의 강연 내용인 ‘나의 魂 나의 문학’을 고급 한국어 교재로 채택하기도 했다.
이제는 전설이된,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아름다운 문체와 모국어에 대한 숭고한 신념으로 몰두했던, 작가 최명희는 1998년12월11일,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과 함께 꽃심을 지닌 이땅, 그가 사랑했던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쉰 하나. 그 안타까움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그는 이제 고향 전주의 ‘최명희 문학 공원’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가 꿈꾸던 밝고 환하게 빛나는 혼불이 살아있는 세상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