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죽음, 부모의 가슴
- 현충일의 의미를 생각합
연중 제10주일; 2016.6.5.
1열왕 17,17-24; 갈라 1,11-19; 7,11-17
중앙 보훈 성당; 이기우 신부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며 또한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은 글자 그대로 나라를 위한 충성으로 희생한 국가 유공자들을 높이는 날입니다.
1950년에 일어난 6 25 전란은 민족 최대의 전쟁이었습니다. 미군은 유엔군의 맏형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 때 쓰다 남은 무기를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인민군 역시 소련에서 지원받은 무기를 모조리 탕진했습니다. 그 결과 산천은 남과 북 모두 폐허로 변해 버렸고 남북한 모두에서 전사자만 3백 만명이 넘었습니다. 금수강산을 피로 물들인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한명희는 강원도 화천 백암산 부근에서 십자 나무만 세워져 있는 무명 용사의 돌무덤의 비목을 보고 조국을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을 기리는 시를 지었고, 이를 장일남에게 보여주자 즉석에서 곡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곡이 그 유명한 가곡 ‘비목’입니다.
이 사연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이러했습니다. 한명희는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청년 장교였습니다. 후일 서울 시립대 교수가 된 그는 무명 용사의 돌무덤을 회상하며 시를 지었던 것이고, 무명 용사의 무덤 옆에는 녹슨 철모가 뒹굴고 있었습니다. 무덤 머리의 십자가 비목은 썩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습니다. 녹슨 철모, 이끼 덮인 돌무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새하얀 신목련, 화약 냄새가 쓸고 간 깊은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 그는 돌무덤의 주인이 6 25 당시 자신이 철책선에서 근무할 당시와 같은 젊은이였을 거라는 깊은 애상에 잠겼습니다.
4년 뒤 당시 동양 방송에서 일하던 한명희 PD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일남 작곡가는 가곡에 쓸 가사 하나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돌 무덤과 비목의 진상이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명희는 즉시 펜을 들고 가사를 써 내려 갔습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넋을 기리는 ‘비목’의 가사는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개인적으로는 제 셋째 외삼촌도 6 25 전란 말기에 강원도 이름 모를 전선에서 전사하여 지금 국립 현충원에 묻혀 계십니다. 이진형. 계급은 육군 소위였습니다. 이렇게 전쟁으로 죽어가야 했던 아들들의 죽음에 접한 부모들은 자신들의 가슴에 그들을 묻었습니다.
하지만 현충일이 되면 부모들은 아들들의 무덤에 갑니다. 꽃을 꼽아 놓고 추억을 더듬습니다.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이 애달파서 서러움이 알알이 돌이 되어 쌓이지만, 그래도 현충일만 되면 묘소 앞에 가서 술 한 잔을 부어 줍니다. 저도 새 신부 시절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외삼촌 묘소에 가서 몇 번 미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총알받이로 산화한 외삼촌,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외삼촌의 영혼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제 외삼촌이 전사한 고지는 백마고지인 듯합니다. 철원, 김화, 평강의 삼각점으로 철의 요충지였던 그곳이 하필이면 국방군과 인민군이 휴전을 앞두고 일진일퇴를 거듭할 만큼 화력이 집중되고 총병력이 대치하던 전선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국방군의 엄청난 희생으로 그곳은 지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삼팔선보다 북상하여 인민군을 밀어내고 휴전선을 올려 그은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전투에서 다행히 살아돌아온 예비역들은 그 전투만 생각하면 아찔한 추억에 잠깁니다. 삼팔선에 봄이 찾아오면 그곳에 가 보지만 그 옛날 흔적은 간 데 없고 녹슨 철모만 뒹굴고 비목만이 반길 뿐입니다.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이 피누나 철조망은 녹슬고 총칼은 빛나
세월을 한탄하랴 삼팔선의 봄 싸워서 공을 세워
대장도 싫소 이등병 목숨 바쳐 고향 찾으리
눈 녹인 산골짝에 꽃은 피는데 설한에 젖은 마음 풀릴 길 없고
꽃피면 더욱 슬퍼 삼팔선의 봄 죽음에 시달리는 북녘 내 고향
그 동포 웃는 얼굴 보고 싶구나
세월을 한탄해 본 들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북녘 동포를 언제나 만날까 싶어 푸른 모자, 푸른 옷에 청춘을 바쳤지만 아직 통일은 멀었습니다. 손주들 손을 잡고 금강산, 백두산 갈 날만을 기다렸건만 늙은 군인에게는 조국의 간성이라는 긍지만 남았을 뿐입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하세
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엘리야가 만난 집주인 여자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주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이 아이 안으로 목숨이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현충일을 기리는 모든 국민이 엘리야의 영을 받은 기운으로 전쟁에서 죽은 아들들은 적어도 우리의 기억 안에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일어나라!”
아들의 죽음 앞에서 가슴에 묻은 자식을 예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나인이라는 고을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나실 때 마침 죽은 아들을 묻으러 가던 여인을 만났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하나뿐인 아들을 기둥삼아 살아가던 그 과부는 몹시 슬펐습니다. 그 아픔을 아는 마을 사람들도 큰 무리를 지어 그 부인과 함께 상여를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행렬이었지만 예수님께서도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 부인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시어 관에 손을 대시자 상여를 매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관 속에 누워있던 젊은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부활이 아니라 소생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너 죽은 아들을 되돌려 받은 어머니는 날아갈 것 같은 기쁨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소생 사건은 또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였던 라자로가 되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생 사건은 부활의 징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실 수 있음을 드러내시는 매우 중요한 징표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이 소식이야말로 기쁜 소식 즉 복음(福音)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일러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부활의 복음을 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본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서 알려 드립니다.
하느님, 하느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께서 이끄시어 저희가 바르게 생각하고, 옳은 일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온갖 죄악에서 자비로이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