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벌이들은 떠버리라고 내버려두라.
공중파를 공평하지 않고 균형잡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경우
러쉬 림보우는 일반적이지 않은 순교자가 되었다. 그는 부자이고 백인이며 종종 불쾌하다고 할만한 유명인이다. 그는 꼭 아침에 스테이크를 먹을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큰 시가를 즐긴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몇몇 잘나가는 정치인들이 자기들이 하려는 일을 한다면 정확한 의미의 순교자가 될 것이다.
리차드 더빈은, 상원에서 민주당의 두번째 지위에 있는, 1949-87까지 실행되었던 연방규정이며, “대립된 의견들의 자유롭고 공평한 경쟁(혹은 경기)을 공중파상에서 보장했던”, ‘공평성 원칙’을 다시 실행하자고 주장한다. 존 케리는, 2004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공평성 원칙이 되돌아 와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이 균등-시간 요구(혹은 규정)을 없애버렸다. 그들은 (반대의 시각들을) 짜내어 버릴 수 있었다.”라고 케리는 말한다. 다이앤 페인스타인은, 상원 의사 운영 위원장인, 이 제도의 복구를 말한다. 심지어 트렌트 로트, 잘나가는 공화당원인, 역시 이런 대세에 뛰어들 것이라는 낌새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민법안이 거부될 때마다 “라디오 토크쇼가 미국을 움직이고 있다.”라고 불평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손봐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흐름은 더 빠른 속도가 생기기 전에 멈추어야 한다. 미국의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들은 거친 무리들이다. 림보우는 분명 방송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원시인이다. 그의 동료들이나 혹은 모방자들은 대부분 재능도 없는 원시인들이다. 오후에 션 해니티를 한번 들어보라. 그리고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확실히 이민에 관한 논쟁을 할 때 최악의 외국인 공포증 보여준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다. ‘공평성 원칙’은 선사시대적 기술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잔재물이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익한 보도를 위해 무엇이 되어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진부한 시각을 구체화한다. 더빈이나 페인스타인과 같은 심각한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파낸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공평성의 원칙은 공중파가 단 세 방송망이 장악되어 있어 희소한 공공재였던 시대에 도입되었다. 이 원칙은 언제나 별로 달갑지 않은 교환조건들과 연관된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정치적 담화를 통제하고 정교한 공정성의 기준을 만들어 내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일에 착수했다. 방송사들은 활자메체들을 묶여 있던 언로의 제약을 받아들이도록 강제되었다. 압력단체들과 소송광은 편견을 가진 라디오 방송국들을 고소하는데 신이 나 있었다. 많은 라디오 방송국들이 모두 FCC의 사냥개들의 방문으로부터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주제들을 피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라디오의 다양성에 부족은 없다. 미국은 14000개가 넘는 라디오 방송국으로 와글거리고 있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혹은 공산주의자들, 트로츠키주의자들, 혹은 스파르타시스트<좌파 막스주의 혁명운동>) 자신들의 라디오 방송국을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작년에 좌파 방송의 선두인 에어 아메리카 라디오가 좌초한 이유는 다양성의 부족이 아니고 재능의 부족과 좋은 경영의 부재였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의 다양성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레이건 정부가 공평성 원칙이 진부하다고 공포한 이후로 미디어 혁명이 있었다. 위성 라디오 방송이나 케이블 티비(보통 미국인들이 볼 수 있는 채널 수는 102개이다.) 뿐만 아니라 블로그, 포드캐스트, 유튜브 그리고 또 뭐가 있을지 누가 알겠나. 새로운 매체의 세계가 ‘반대되는 의견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한 경기’를 제공하지 않을까? 그리고 정부가 발효한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공중파를 통제하려는 발상이 터무니 없지는 않은가?
공정성의 새로운 사도들은 과거로의 회기를 옹호하는 두개의 주장을 내어놓았다. 첫번째는 라디오 방송국들의 소유권 구조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몇몇의 강력한 회사들이, 예를 들어 싱클레어 방송 그룹, 자신들의 시장 지배력을 이용하여 우익측의 주장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씽크탱크인 미국 진보 센터(the Center for American Progress)에 의한 보고는 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업 방송사주들은 보수적 성향의 토크쇼 진행자들을 진보적 성향의 경쟁자들 보다 훨씬 좋아하는 것으로 지적한다. (그들이 진행하는 91%의 방송이 보수적이다.)
NPR(National Public Radio: 전국 공익 라디오) 효과
이 주장의 문제는 라디오 토크가 라디오 시장의 3-4%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우익 토크쇼 진행자, 림보우는 일주일에 천삼백오십만의 청취자를 끌어모은다. NPR, 공정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며 약간 왼쪽으로 기운 성향이 있는, 이천만을 끌어모은다. 도심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청취자들에게 막말을 해대는 진행자들 역시 애매하게 자파적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창녀들”이라는 발언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도중하차했으나 돌아갈 것을 계획 중이라고 보도되고 있는 돈 이무스는 루트거 여대의 여자 농구 선수들에 대해 그랬던 것만큼이나 조지 부시에게 비판적이었다. 싱클레어 방송 그룹과 같은 회사들이 라디오 토크에서 잘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주류 라디오 방송에 의해 자신들의 시각이 주변화 되고 있다고 느낀 사람들의 틈새 시장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에어 어메리카가 인재를 찾기도 청취자들을 구하기도 어려운 이유 중 한가지는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이 NPR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주장은 사람들이 논쟁의 양쪽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이 이야기의 양쪽을 모두 듣게 되면 결정을 내리는데 더 좋은 위치에 있게 된다는” 이런 오래된 태도를 가지고 있고 더빈은 말한다. 이것은 매우 고상한 생각이다. 그러나 정말로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이 어떤 정치적 시각에 노출되는지를 조정하는 일에 끼어들어야 하는가? 어떤 사람도 네이션지의 독자들이 네셔날 리뷰도 함께 읽도록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제가 무엇이던 간에 미국은 의견이나 논쟁이 적어서 걱정은 아니다. 서점의 매거진 서가는 정치 잡지들로 신음하고 있다. 라디오 전파들은 좌익의 퍼시피카 라디오로부터 우익의 미치광이들까지 다양한 의견으로 시끄럽다. 정부가 이 폭발하는 우주의 일부를 규제하기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는 발상은 의미가 없다. 의회가 부시 보다 더 낮은 동의율을 보이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첫댓글 그냥 번역에 든 시간 약 2-3시간. 단어하고 잘 모르겠는 이야기들 찾는데 30분쯤. 최대 3시간 반쯤 걸리는거 같네요. 아직 교정은 안봤으니까 그 시간 까지 합치면 한 30분은 더 들거 같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빠르다. 나중에 내용에 대해서 한번 토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