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지로 부터 105일째 되는날이며 보통 조상묘소를 돌보고 성묘하는날로
기억 하기가 일쑤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 발단되어 2,500년이 지난 오늘
에 이어지고 있슴을 아는가?
* 진 (晉) 나라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면산에서 노모와 함께 불타죽어
만고충신 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날이다.
* 진나라 문공(晉文公) 중이가 왕자 시절에 그의 부왕의 애첩이 자신의
소생인 어린왕자를 왕으로 세우고자 뭍 간신들과 짜고 태자 "신생" 을
죽이고 중이 마저 죽이고저 할때 수많은 충신,선비들이 "중이" 왕자를
모시고 외국으로 망명하는데 무려 19년을 중국천하를 거지꼴로 유랑
하게 된다.
그중에 위주(결초보은의 고사가 이에서 비롯) 호언,호사고,개자추 같은
당대의 명장,석학들이 그를 따랐다.
어느날 왕자"중이"가 허기저 배고품에 시달리며 실신직전에 이르렀는데
개자추가 어디서 구했는지 다리를 절며 고기국을 가져다 주군께 바쳤다
중이는 생전 처음 맛보는 고기국에 정신없이 단숨에 모두 먹어치우며
그대덕에 내 오늘 맛있게 식사를 하였노라!
도대체 무슨고기관대 이처럼 맛이 좋은가?
엎드린 개자추는 울면서 아뢰었다.
신이 불민하여 오늘 처럼 주군을 허기지게 하였사와 궁리끝에 신의
넗적다리 살을 베어 국을 끌여 드렸나이다.
신을 벌하여 줍시요!
중이 왕자와 모든 사람들이 목놓아 울었다.
피로 얼룩진 개자추의 몸을 감싸 안은채................
천신만고 끝에 국내의 뜻잇는 선비와 호응하여 역신을 처단하고 진(秦)
나라의 힘을 빌려 (기강지복의 유래) 귀국하여 임금이 되니 이가 곧
진문공(晉文公) 이다.
공신의 작위를 주고 논공행상을 함에 "개자추" 가 빠져 있었다.
개자추는 천하에 다시없는 의로운 선비요 정직하며 사심없는 사람으로
귀국길에 뭍 신하들이 중이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장래를 보장 받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고 홀연히 떠날 생각을 하게된다.
우습구나! 벼슬이 다 무었이기에 저리들 추하게 살려 하는가?
나는 이미 늙었기로 주군께 충성을 다했으니 떠나리라!
개자추는 70 노모를 엎고 면산으로 들어가 은거 했다.
개자추를 탈락시킨 인사를 보고 어떤이가 은혜를 저버린 진문공을 탓
하는 대자보를 붙이니 이것이 궁에 알려져 왕이 비로서 "개자추" 가
없어젔슴을 알게 된다.
아..! 그랬다. 사람이 은혜를 입을땐 별의 별 말로 고마움을 표하면서
지나고 나면 잊기 십상이지..! 내가 왜 그를 잊엊는고!
그는 살을 베어 나를 살렸건만 ..... 나는 그를 거두지 안았다니....!
이리저리 찿은 끝에 그가 노모를 업고 면산에 들었다는 말을 듣고
몇일을 부르고 찿았으나 나오지 않았다.
어느 신하가 "그는 효심이 지극하니 산에 불을 놓으면 필경 나오리다"
했다 진문공은 군사를 풀어 산에 불을 질르니 삼일낯밤을 옥석을 가리
지 않고 태워서는 폐허가 된뒤에 산을 수색하니 아...!
만고충신 "개자추" 는 어머니를 감싸 안은채 버드나무 아래 숯이 되어
죽어 있었다.
진문공은 땅을 치며 통곡 하였고 후회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왕명으로 면산을 "개산" 으로 고치고 사당을 지어 사계절 제사를 드리
게 하였으며 개자추가 죽은날을 " 한식" (寒: 찰한,食: 밥식) 절로 정
하여 찬밥을 먹게 하였고 감히 불을 지피지 못하게 하였다.
이것이 한식이 생겨 나게된 유래이다.
세상의 사람들이여 !
한식이 어찌 그냥 생겼겠는가/
유래를 알고 나면 자연 의미를 알게 됨이니
알고 나면 충과 의가 무언지를 알게 될것이다.
이나라는 충과 의와 효를 바탕으로 지탱해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동문에 개자추 같은 이가 많이 출현 하기를 빈다.
계미 새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