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7월 12일 화요일 아침이 되었다.
7명의 용감한 예술봉사자들이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 도착하는 날이다.
나는 이틀 전부터 릴롱궤에 도착해서 사랑하는 제자들과의 만남을 가슴 설레며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7시 40분 쯤 핸드폰이 울렸다. "누가 이렇게 일찍 전화를 할까"
생각하며 헬로를 하니 한국말로 “김청자 교수님이세요?” 라는 젊은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저희들은 한예종 학생들인데,
지금 케냐 나이로비에서 말라위 릴롱궤로 떠나는 비행기를 못 타게 되었어요,
비행기가 만원이 되어 남은 승객들은 내일 릴롱궤로 떠날 수 있답니다.“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듯한 무력감을 느끼면서 현기증이 났다.
실망스럽지만 이곳은 아프리카니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그런 경우에는 항공사에서 모든 숙박비를 부담하니까 당황하지 말고 항공사에서 지시하는 대로
호텔에 가서 잘 쉬고 나이로비 관광도 하면서 편한 마음으로 내일 만나자“고 했다.
아프리카가 초행길인 학생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오늘 묵기로한 호텔에 전화해서 오늘 도착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예약을 하루 연기했다.
학생들이 가져오는 악기와 구호물품들이 많아서 말라위 명예영사님께 함께 공항에 나가줄 것을 부탁했었기에,
그분께 미안하지만 학생들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 도착한다고 말했더니,
자신은 내일 아침비행기로 우간다를 가야한다고 했다. 아, 이를 어쩌나 !
정말 이 부분은 너무 안타까웠다. 말라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예영사님이 부탁하면 학생들의 입국이
세관을 통과하지 않고 너무도 수월해 질 텐데, 하루가 늦어짐으로 학생들과 길이 어긋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엇인가 다른 방법으로 나를 이 어려움에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놓지 않았다.
지혜로운 한예종 학생들은 케냐에서 핸드폰을 사서 계속 나와 통화를 하며 그곳 상황을 알려주었다.
좋은 호텔에 도착했고 4시간짜리 사파리를 관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이 먼 곳 까지 봉사 나오는 학생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이 주시는 보너스이니 가서 구경하라고 일러줬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저녁 내 내 나의 모든 생각이 케냐 나이로비에 가있었음은 당연한일이었다.
잠을 설치다가 새벽 5시 쯤 학생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지금 비행장으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낮 12시10분에 도착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무런 일없이 잘 도착되기만을 기도했다.
오전 10시 35분 비행기로 우간다로 떠나시는 명예영사님께 학생들이 12시15분에 도착하니 떠나시기 전에
세관에 잘 말씀드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헌데 그분의 생각에는 학생들이 9시 35분에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분이 타고 가는 비행기가 케냐에서 오는데, 하루에 2대가 도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내게 잘못 알려줬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카롱가에서 올라온 2대의 차를 이끌고 비행장을 향해
달렸다. 늦는것 보다는 우리가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명예영사님은 외교관 대우를 받기
때문에 귀빈실(VIP)로 들어가 자신의 출국수속을 하시면서 VIP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한국에서 이곳의 청소년들을
위해 예술봉사 나오는 7명의 학생들이 도착하니까 잘 도와주라고 일러놓고는 직접 사무실까지 다녀오시면서 7명의
학생들이 VIP대우를 받도록 준비해 주셨다. 하느님의 일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협력자들을 꼭 보내주신다.
이제는 학생들이 9시 35분 비행기로만 와준다면 모든 일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11시가 되어서야 비행기는 도착했고 내가 기다리던 학생들은 VIP 대접을 받으면서 벤츠 승용차가 활주로까지
나가서 학생들을 귀빈실로 실어날았다. 내가 마음조리며 기다리던 학생들과 기쁨으로 상봉하고 명예영사님도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시기 전에 학생들을 만나 말라위로 봉사 온 것에 대한 환영의 말씀을 나누시고는 학생들이 타고 왔던
벤츠 승용차를 타시고 활주로에 서있는 비행기 안으로 사라지셨다. 이 모든것이 주님의 은총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쁨은 잠시뿐, 학생들의 짐 18개중 1개만 도착하고 17개는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아직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비행기에 짐 실을 자리가 없어서 내일이나 되어야 짐이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명예영사님이 떠나셨으니 내일 짐이 도착한다고 해도 세관에서 통관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의문이었다. VIP는 짐 조사를 않 받기 때문에
오늘은 가능했지만, 내일도 그 VIP가 유효하다는 보장이 없다. 나는 또 한 번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하는 위기를 느끼면서 지혜를 구했다. 카롱가 루수빌로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환영파티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또 워크샵은 금요일부터는 시작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루 더 릴롱궤에서 묵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가 두 대니까, 학생들을
태운 차는 먼저 떠나고 또 한차는 짐을 찾아서 싣고 늦게 떠났다가 무주주라는 도시에서 하룻밤을 더 자고 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짐 을 확인해야 하니까, 남자학생 두 명이 루수빌로 직원들과 남아서 짐을 찾기로 했다.
학생 두 명을 남겨놓고 오는 나의 마음은 편질 않았다. 아, 이렇게 일이 꼬여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만남의 기쁨이 항공사의 실수로 그림자를 만들어가고 있다. 내가 이런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우기를 바라고 계신가?
두 시간 정도 카롱가를 향해 달려가는데 갑자기 타이어가 터지는 소리가 나서 차를 멈췄다.
일본에서 수입한 차의 타이어가 무엇에 찔렸는지 터지고 말았다. 카센터도 없는 아프리카 땅 한가운데서 차가 펑크가 난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스페어타이어가 있으니 갈아 끼우고는 무주주까지 와서 스페어타이어를
사고 나니 벌써 3시가 가까웠다. 카롱가 까지는 아직도 3시간을 더 가야한다. 이미 해가 떨어진 시간이다.
환영파티를 하루 더 연기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 미리 준비해 놓은 미역국과 잡채, 생선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밤 10시 쯤 되어 차 소리가 나서 밖으로 나가니 내일 도착하기로 한 짐을 실은 차가 밤늦게까지 달려와 주었다.
학생들과 짐17개 모두 무사히 집에 도착이 되었다. 아,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어제와 오늘 받았던 스트레스는 나의 마음과 몸을 많이 지치게 했지만, 이제 다시 힘을 느끼며 기쁨을 만끽
할 수 있었다. 감사와 기쁨, 안도의 눈물이 섞여 흘러내렸다.
한국을 떠난지 3박4일만에 카롱가에 도착한 나의 학생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그렇게 험한 경험을 아프리카 땅에서 겪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선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선택해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 학생들에게 일생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어주면서
나의 감사와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첫댓글 학생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것입니다. 멀리 말라위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였으니 말입니다. 교수님께도 더 좋은 추억이 되시길 바랍니다. 있는동안 건강히 잘 마치기를 기원합니다.
아기사슴님 감사해요. 메일발송해주신거도 잘 받았습니다. 지금은 완전 행복이에요. 모두들 기쁨으로 가득하고
사랑으로 넘쳐흐른답니다. 정말 멋진 일을 저희들이 하고 있네요. 감사해요.
놀랍고 크신 주님의 권능과 그 사랑안에서... 그분과 일치됨을 느끼네요~^^
주님! 찬미와 흠숭과 영광받으소서~~
와우..!!^^ 하느님의 명품..!! 아녜스님,VIP대접도 명품이시기에..^^ 제자들 모두 하느님 명품임에 틀림이 없네요.!!!
!기쁨과 행복한 모습여기에도 느낍니다. " 주님은 찬미 찬송 받으소서 영원히.~~~ 아멘...!!! " ^*^
무엇하나 절대 쉽지만은 않으나 그만큼 값진 경험과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메~ㄴ, 알렐루야~!! 아~멘~ 알렐루야~~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