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칙 설봉속미립(雪峰粟米粒) - 설봉스님의 벼 알갱이 같은 우주
“보물찾기 한다면서 엉뚱한 쓰레기통만 뒤질 것인가…”
➲ 본칙 원문
擧 雪峰是衆云 盡大地撮來 如粟米粒大 抛向面前
漆桶不會 打鼓普請看
➲ 본칙
이런 얘기가 있다. 설봉스님이 대중들에게 법문을 하시면서 말씀하셨다.
온 누리를 집으면 벼 알갱이 크기와 같다.
바로 앞에다 제시해 줘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북을 쳐서 모두 찾아보도록 하라.
➲ 강설
설봉스님은 참으로 깨닫기까지 고단한 수행을 했던 분이다.
그런 만큼 대중들이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다.
설봉스님은 늘 공양 짓는 일을 자청했다.
동산선사 밑에서도 역시 공양주를 맡았었다.
하루는 쌀을 이는데 동산선사가 와서 물었다.
“뭣 하는가?”
“쌀을 일고 있습니다.”
“모래를 일고 쌀을 버리는가, 쌀을 일고 모래를 버리는가?”
“모래와 쌀을 모두 버립니다.”
“그러면 대중들은 무엇을 먹는가?”
설봉은 갑자기 쌀을 일던 그릇을 엎어 버렸다.
그러자 동산선사는
설봉스님이 덕산선사와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며 덕산선사에게 보냈다.
설봉스님은 사형인 암두(巖頭)스님과 여행 도중에 사형의 도움으로 깨닫게 되는데,
내용을 요약해 옮긴다.
설봉스님이 사형인 암두스님과 함께 풍주(灃州) 오산진(鼇山鎭)에 갔다가
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자 사형인 암두스님은 계속 잠만 잤고,
설봉스님은 계속 좌선을 했다. 어느 날 설봉스님이 암두스님을 흔들어 깨웠다.
암두, “무슨 일이오?”
설봉, “너무 편하게 지내는 것 아닙니까? 어찌 잠만 자시오.”
암두, “쯧쯧! 잠이나 자시오. 날마다 평상위에 앉았으니,
칠촌(七村)의 토지신(土地神) 같구먼. 나중에 멀쩡한 사람들을 홀리기 십상이겠구려.”
설봉, “나는 지금 매우 편치 못합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잠을 잘 수는 없습니다.”
암두, “나는 그대가 드높은 봉우리에 도량을 일궈 큰 가르침을 펴리라 여겼더니,
아직도 그런 얘기나 하는 게요?”
설봉, “저는 정말로 마음이 편치 않다니까요?”
암두, “정말 그렇다면 어디 얘기해 보구려. 옳으면 인정해 줄 것이고,
그릇된 것이라면 내가 지적해 주리다.”
설봉, “처음 염관(塩官)선사의 회상에서 법문을 듣는데,
색(色)과 공(空)의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을 접하고는 들어갈 곳을 깨달았습니다.”
암두, “삼십년 뒤에 행여 잘못 얘기하지 마시구려!”
설봉, “동산선사의 게송에 이르기를,
혹시라도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지니,
멀고 또 멀어서 나와는 성글도다.
나 이제 홀로 자유로우니, 곳곳에서 그를 만나도다.
그는 이제 내가 아니요, 내가 바로 그로다.
이렇게 알기만 하면, 바야흐로 여여(如如)에 맞으리라.
라고 한 것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암두, “그렇게 알아서는 자신도 제대로 구하지 못할 걸!”
설봉, “덕산선사께 묻기를
‘옛날부터 전해오는 가르침의 핵심을 저도 배울 자격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선사께서 한 방 치시며 ‘뭐라는 게야!’ 하는 말씀에 통 밑이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암두, “에잇! 문으로 쫓아 들어오는 자는 집안의 보배가 아니다‘는 말도 듣지 못했소?”
설봉, “이후로 어찌해야 옳습니까?”
암두, “제대로 묻는구먼. 다음에 큰 가르침을 펴고자 한다면
낱낱이 자기의 가슴에서 우러나와야 ‘나’와 더불어 하늘과 땅을 덮을 것이오.”
설봉, “아! 오늘 오산에서 비로소 도를 이뤘도다.”
팔만대장경에서 제일 요긴한 것을 콕 집어낸다면 무슨 글자가 되겠는가?
아하! 머리에서 지금 막 끄집어낸 그건 아니올시다.
설봉스님은 자신이 깨달은 그 경지로 대중을 인도하고 싶었다.
그것이 첫 번째 허물이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드넓은 누리라는 것이 별거 아니라네.
콕 집어내면 벼 알갱이 같단 말일세.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캄캄한 채로 헤매고 있단 말인가?
북을 울려 어둠을 물리치고 그것을 찾아내란 말일세.” 바로 이것이 두 번째 허물이다.
세 번째 허물은 송강의 몫이다.
이토록 거듭 허물을 자청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선지식이 없었다면,
어찌 ‘바로 여기’가 있겠는가.
눈이 온 대지를 덮어도 길을 아는 사람은 서슴없이 간다.
➲ 송 원문
牛頭沒馬頭回 曹溪鏡裏絶塵埃 打鼓看來君不見 百花春至爲誰開
➲ 송
소머리 옥졸 사라지고 말머리 나찰도 물러가니,
➲ 강설
지옥에 가야 만난다는 소머리 옥졸과 말머리 나찰을 왜 불쑥 끌어 왔을까?
살피고 또 살필지라.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창과 칼에 꿰여 무간지옥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미 경험들 하셨나? 그렇다면 그들을 물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들이 사라지고 물러가는 도리를 알았다면 편히 자도 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무간지옥은 결코 잠잘 시간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아~, 그것도 경험하셨다고?
➲ 송
조계의 거울에는 티끌 먼지 사라졌네.
➲ 강설
본래 모양도 없는 깨달음의 거울에 어찌 번뇌 망상의 티끌 먼지가 낄 수 있겠는가.
깨달음의 거울이 그렇다는 것이니 착각하지 말 것!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그 소식은 다 들었다면서
어찌 곁가지만 무성한 잡목을 애써 키우시나?
게다가 갖가지로 치장한 뒤틀린 거울을 집안의 보배라고 챙기는 건 또 뭐요?
그 나무에는 지옥의 괴로움만 주렁주렁 달리고,
그 거울에는 온갖 상(相)만 켜켜이 서린다오.
➲ 송
북을 쳐 찾게 해도 그대 보지 못하나니,
➲ 강설
설봉스님이 그토록 애써 간절히 이끌어 주셨건만, 왜 또 엉뚱한 곳만 찾고 있누?
나는 누굴 괴롭히려 하지 않았는데, 상담 온 이들마다 날더러 괴롭지 않게 해 달라 하고,
내 누굴 죽인다고 한 일 없건만 왜 오는 사람마다 “스님, 좀 살려 주이소!”를 외치는고?
그 뜻이 아니라고? 그 뜻이 아니면 웬 헛소리를 하시오?
모름지기 괴로움이 일어난 그 자리를 봐야 하고,
죽음을 두렵다고 생각한 그곳을 철저히 봐야 한다.
보물찾기 한다면서 엉뚱한 쓰레기통만 뒤지다가 그만 두진 말 것!
➲ 송
온갖 꽃 봄 되매 누굴 위해 피는가.
➲ 강설
때가 되면 온 천지가 꽃으로 뒤덮인다. 저 설산에도 꽃이 피고 극지방에도 꽃은 핀다.
가난한 달동네 깨진 화분의 꽃도 곱게 피고, 왕궁의 화려한 정원에도 꽃은 핀다.
그 많은 꽃들 중에 어느 한 송이 꽃도 누구에게 피겠다고 약속한 일이 없다.
그렇다면 이 꽃들은 누굴 위해 피었을까?
설두스님도 지나쳤지만, 나는 꽃을 안고 아예 똥통으로 들어가누나.
[불교신문3674호/2021년7월13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