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설교(105)
한 알의 밀
분문 : 요12:20-26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헬라인>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입성을
축하하며 환영하였습니다.
그 때 헬라 사람 몇 명이
명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가....
특별히 따로 면회신청을 하고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20-21절 읽어라>
20절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절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그들은 헬라에 사는 유대인이 아니라 ..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러 올라온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은밀한 중에 예수님을 뵙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찾아가지 아니하고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뜻을 전했습니다.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헬라어와
헬라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전에 면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빌립은 충분히 그들의 대변자가
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께 함께 나아가 그 말씀을 전했습니다.
22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헬라파 사람들이,
즉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다’는 것은....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이 이방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19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방해하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의 영향력이 이방인에게까지
퍼져갔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19절)라며
한탄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중요한 것은 장차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펴져나갈 것을
예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메시아가 나귀를 타고
영광스럽게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슥 9:9-10 읽어라>
9절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절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이미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올 메시아가
유대인만을 위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열방과 온 인류를 위한 메시아가
오실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을
이 예언의 성취의 시작으로 보는 겁니다.
헬라사람들의 면회요청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서 헬라인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방문은 머지않아 모든 족속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예견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그 헬라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이것을 이해하고 볼 때....
예수님의 답변은 이해가 갑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는 말씀은....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온 바로 그 사명을 완수할 때”......
“십자가의 복음으로 전 세계에
화평을 전하고 구원할 바로 그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영광을 얻을 때’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신 예수님의....
자기인식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겉으로는 패배처럼 보입니다.
실패처럼 보입니다.
어떤 이는 부끄럽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끄러워하시지 않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앞두고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이 사명완수를
‘영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빌 2:8-11 읽어라>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절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비유 - 한 알의 밀이>......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줄을 아셨습니다.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니 ...
혹시 무슨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을 줄로 오해할까 염려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를 통해 ‘영광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여 주십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하였을까 ?....
예수님은 분명히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한 알의 밀 비유’는
고난과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영광은
이 땅에서 큰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땅에 온 사명.....,
곧 자신을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한 알의 밀’에 비유하십니다.
변경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먼저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기 위해서는 ....
- 생명이 일단 떨어져야 하고,...
- 묻혀야 하며.....
- 그리고 비로소 썩고 죽어야 하는
절대조건이 있습니다.
이 절대조건이 시행됨으로 비로소
생명이 다시 살아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식물이 다 그렇습니다.
한 알의 밀도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되시고자
이땅에 오셨습니다.
썩어지는 한 알의 밀과 같이 땅에
떨어져 죽으려고 오셨습니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마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도 십자가상에서 죽어야
많은 구원자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자신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영광과 영광에 이르는 길>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영광’을 생각하시면서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영광’과
‘영광에 이르는 길’은 다릅니다.
우리가 ‘영광’만 생각하고
‘영광에 이르는 길’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우리는 영광을 얻을 때에
십자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생명을 생각할 때에 죽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명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셨지만.......
그 길(과정)은 “한 알의 밀과 같이
썩어져 죽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영광에 이르는 길이 곧 십자가의 죽음의
길임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 신앙생활 그 자체는 영광이지만...,
그 결말은 영광이지만...
그 신앙의 길로 가는 그 과정은
좁은 길이요,
희생과 고난과 십자가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영광스럽게 여기지만....,
그 영광을 참되게 하는 십자가의 길은....
가지 않으려 합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을
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모델이 되신 참된 삶의 원리>
예수님은 예수님이 자신이 모델이 된
참된 삶의 원리를 일반화시켜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십니다.
25절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이고
섬기는 삶을 살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삶의 목표와 방향이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지 뮬러 목사는
고아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많은 일을 하면서
훌륭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한 번은 그를 존경하는 후배들이
“어떻게 평생을 이렇게 훌륭한 사람으로
일하게 되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뮬러 목사는 “조지 뮬러가 철저히
죽는 날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중생’,.....
거듭남입니다.
1976년부터 시작해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집 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는 운동을 하는.....
‘국제 해비타트 운동본부’를
창설한 밀러드 풀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충남 아산 등에
수 백 채의 집을 지었습니다.) 순...
수한 자원봉사자들과 기업들이 낸 기금으로
이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1984년부터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이 운동의 봉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일정시간 다른 사람의 집을 짓는
노동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기사에 그가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사연이 나왔습니다.
그는 성공한 세일즈맨이었고 변호사였습니다.
이름난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965년 어느 날 그의
아내가 집을 나갔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즉 돈을 최고로 치는 그를
혐오했던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가난하게 컸던
그는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의 가출에 충격을 받고
드디어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것이 동기가 되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가진 재산 중에
살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아프리카에서 3년 동안 선교사로 일을 하고....
돌아와서는 조지아 주의 흑인 빈민들을
돌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에
‘국제 해비타트 운동본부’를 창립하고
그 자신이 봉사자가 되어.....
무주택 서민들의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바뀌자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맺는 말씀 -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삶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26절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오늘 본문 26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둘째,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이것이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삶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아버지로부터 귀히 여김을
받는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예수님과 같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이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십시다.
땅의 것에 집착하고 포기하지 못한다면
열매는커녕 한 알 그대로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드려 섬기기 시작할 때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부디 편안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썩어지는 한 알의 밀처럼 희생과 포기와
섬김을 통해 열매를 맺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