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4장 1-30절
찬송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말씀의 대상(1)
유다의 결국은 분명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두 눈이 뽑힌 체 바빌론의 포로 된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그 땅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42:10-13). 그러나 그들은 지체 없이 애굽 땅으로 이주했고(43:2), 이제 하나님의 칼끝은 그들을 향합니다.
(1)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애굽의 지명을 나열함을 통해 하나님의 칼끝이 미치는 범위를 가리킵니다. 애굽 땅의 중심에는 나일강이 흐르고, 동편 경계 부근에는 홍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믹돌은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너기 전 이스라엘이 진을 쳤던 곳으로 홍해 서쪽 수에즈 부근입니다. 다바네스는 나일강 하류에 형성된 삼각주 동편 지역으로 믹돌을 기준으로는 북쪽에 위치했습니다. 놉은 나일강 서쪽 지역으로 믹돌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언급 된 바드로스 지역은 특정 성읍이 아닌 나일강 상류 부분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는 믹돌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했습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애굽의 동서남북에 광범위하게 흩어졌어도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방에 흩어진 유다 사람들을 향한 즉각적인 심판에 앞서 예레미야를 통해 기회를 주십니다.
임한 심판의 결과와 원인(2-6)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애굽에 흩어진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 심판으로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는 내린 재난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과거에 목격했던 심판의 결과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야기했던 원인을 교훈하십니다.
(3-5)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참혹한 심판이 야기된 원인은 분명했습니다. 표면적 우상숭배, 이면적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선지자를 보내어 가증한 일(우상숭배)을 멈출 것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반복된 불순종은 피치 못할 결과를 일으켰습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일어났던 심판의 결과를 다시 한 번 언급하며, 이제 장차 일어날 심판에 대한 말씀하십니다.
임할 심판의 결과와 원인(7-14)
(7-8)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여 애굽으로 이주한 이들의 삶의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이전과 같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들은 분명 과거의 우상을 숭배하며 거듭된 선지자의 훈계조차 멸시함에 따른 참혹한 결과를 목도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애굽의 신들을 숭배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열방의 빛으로 삼아 구원(복음)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선택하셨습니다(사 42:6 ; 49:6). 그러나 지금의 모습에 이어질 장차는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어 심판의 도구(방법)와 그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13-14)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은 곧 칼과 기근, 전염병으로 인해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살아남은 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보다 더 주목해야할 표현은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입니다. 하나님 심판은 결코 지리(물리)적 제약이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심판의 원인을 똑바로 해석하지 못한 체, 애굽으로 이동했던 유다의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예고 된 일이었습니다. 애굽으로 이주한 유다 사람들이 회개가 아닌, 예레미야에게 확고한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합니다.
남은 자들의 의사 표명(15-19)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대상을 분명히 기록함과 같이, 여기서는 그들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 대답하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들의 의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6-17a)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눈을 비비고,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답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드시 선조들과 같이 계속해서 더욱 우상을 숭배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어 이와 같이 말하는 이유를 밝힙니다.
(17b-18)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심판의 원인이 우상 숭배에 있음을 목 놓아 전하며,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 올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남은 자들은 지금까지 이어진 재난의 원인이 전과 같이 우상을 잘 숭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미혹에 빠진 그들에게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없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대상과 원인을 다시 한번 언급하며, 심판의 결과를 선포합니다.
애굽의 남은 유다 사람들의 최후(20-30)
(27) 보라 내가 깨어 있어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
(30) 보라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곧 그의 생명을 찾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긴 것 같이 애굽의 바로 호브라 왕을 그의 원수들 곧 그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우상을 숭배하며 복을 바라던 애굽 땅의 유다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은 재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시드기야 왕을 그의 원수 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겨주심 같이, 애굽의 호브라 왕(바로)을 그의 원수의 손에 넘겨주실 것을 전하면서, 그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꼭 집어 기록합니다.
본문 2a, 7a, 11a, 25a, 30a 절에 반복해서 기록된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거듭 전하신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폐허가 된 유다 성읍, 황무지 위에 선 유다의 남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애굽의 기름진 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애굽의 기름 진 땅 위에 선 유다의 남은 자들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보다 교만한 지도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땅으로 이주했다 해도,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과거의 심판을 언급하며, 미래의 심판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유 역시 분명합니다. 반복된 죄악이 불러올 참혹한 결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의 명예나 권력, 지식이나 재물, 건강이나 자식 등. 우리 삶에 하나님보다 높이 숭배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는 경건의 생활화 생활의 경건화를 실천하기를 소망하고 결단할 때, 우리 삶의 결국은 심판이 아닌 주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감이 될 것입니다.
기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이른 새벽 주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목도했으면서도 남겨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지도자들을 쫓아 애굽 땅으로 이주했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거듭해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전하심을 보았습니다. 어리석게만 보이는 그 남은 백성의 모습이 오늘따라 삶의 자리에 선 제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입으로는 경건의 생활화 생활의 경건화를 이야기 하지만, 삶의 자리 만연한 우상들이 있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오늘 말씀에 힘입어 오직 주님의 말씀 만을, 주님 만을 좇아 함께 지어져가기를 소망하고 결단합니다. 세상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고,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은혜의 삶으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