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제타숲 동산에 계실 때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일부러 업을 짓는다면 현세에 그 과보를 받을 수도 있고, 후세에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업을 지은 것이 아니라면, 과보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업에는 몸으로 짓는 세 가지가 있고, 입으로 짓는 네 가지, 뜻을 짓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몸으로 짓는 세 가지 업으로서 좋지 않은 고통의 결과가 따르고 그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되어 있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는 것이니, 동물의 피를 마시거나 해치고, 작은 미물을 죽이는 것이다.
둘째,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이니, 남의 재물에 집착하여 도둑질할 뜻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셋째, 사음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업은 선업이 아닌 악한 행위로서 고통의 결과가 있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된다.
다음,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은 무엇인가?
첫째, 거짓말이다. 알면서 모른다고 하고,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일이다. 또한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고 하며, 자기를 위하거나 남을 위해 혹은 재물을 위해 알면서 거짓말하는 것이다.
둘째, 이간질해서 사람들을 갈라서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듣고 저기에서 다른 말을 하거나 저기서 듣고 와서 여기서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끼리 당파를 만들어 그것을 즐기며 당파를 칭찬하는 일도 이 업에 포함된다.
셋째, 욕을 하거나 악담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남에게 욕하는 등의 행위이다.
넷째, 구미는 말이다. 때가 아닌데 말하고, 법이 아닌 것을 말하며,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데 쉼 없이 그치지 않는다. 또한 가르쳐 주지 않으며, 꼭 충고해야 할 때 하지 않는 것도 이 업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입으로 짓는 업은 선업이 아닌 악한 행위로서 고통의 결과가 있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뜻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이다.
첫째, 탐심이다. 남의 재물과 생활 기구를 내 것으로 만들고자 탐욕 부리는 마음이다.
둘째, 미워하고 성내는 마음이다. 미운 마음을 품어 ‘저 중생은 죽어야 하고, 묶어야 하며, 재물을 빼앗고, 파면시키고자 하며, 배척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질시하고 화를 내거나 성내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다.
셋째, 삿된 소견이다. ‘보시도 없고, 재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도 없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 세상에는 선지식이 사는 곳 좋은 곳도 없고, 이 세상 저 세상에 잘 가는 이도 없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해야 할 열반도 없다’라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다.
이 세 가지 뜻으로 짓는 업은 선업이 아닌 악업으로서 고통의 결과가 뒤따르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된다.
훌륭한 제자들은 신, 구, 의 삼업을 청정히 하고 선업을 닦는다. 청정하게 계를 갖추어 몸과 입과 뜻의 깨끗한 업을 성취한다. 또한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며, 의심을 끊고 아만심을 버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서 어리석지 아니하다.
그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차서 주위 사람들과 원한을 맺지 않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지낸다. 이렇게 모든 선남자 선여인은 자심해탈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만약 자심해탈을 잘 닦는다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과를 얻고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또한 연민히 여기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 평온, 평등한 마음을 모두 지니면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다툼이 없어 지극히 넓고 크며, 잘 닦아서 일체 세상에 두루 차 성취하여 노닌다.
따라서 비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게으르고 악업을 많이 지었다. 이렇게 지은 모든 업을 현생에 과보 받아야 하고, 다음 세상까지 가져가서는 안 된다.’
만약 평온한 마음 해탈을 닦는다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과를 얻고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를 것이다.“
중아함 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