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신문 2023. 7월호
【윤승원 에세이】
네 편 내 편 ‘두 얼굴’ 갈등 시대
― 편 가르면서도 조화 이루는 ‘아름다운 상생’ 방안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경우회 홍보지도위원
전쟁터 같은 집단 폭력 시위 현장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관내에서는 극렬시위가 매일 같이 벌어졌다. 직속 상사가 큰 고민에 빠졌다. 대학생 시위 주동자가 그의 아들이었다.
진압복을 입고 현장 지휘하는 경찰관 아버지와 각목을 들고 학생 시위를 주도하는 그의 아들. 아들과 아버지의 대치상태가 연일 반복됐다. 대학생 아들은 경찰관 아버지를 향해 돌을 던지고, 경찰관 아버지는 이를 막아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 경찰관 아버지의 남모르는 고뇌
당시 나는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극렬시위 현장을 지켜보면서 ‘경찰관 아버지의 고뇌’를 읽었다. ‘데모 주동 학생인 자식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아비’라고 상급 기관에서는 질타가 심했다.
하지만 경찰관 아버지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누구도 쉽게 이렇다저렇다 단정하거나 한쪽 편의 입장만을 두둔하여 말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도 대학생 두 아들을 두었다. 경찰관 아버지는 가정에서도 중심을 잡아야 했다. ‘밥상머리 대화’에서도 두 대학생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 편이었다. ‘아버지의 심기’를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아들이었다.
둘째 아들이 먼저 ‘의무경찰’에 지원 입대했다. 대한민국에서 집단 폭력 시위가 가장 극렬하게 벌어지는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복무했다. 이어서 큰아들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전방 기갑부대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 전방에서 나라 지키고, 일선 치안 현장에서 힘든 일 겪어본 두 아들의 애국관
두 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확연히 달라졌다. 최전선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힘든 치안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봐야 안다. 경찰관 아버지가 말하는 ‘애국’에 대해 두 아들은 그 어떤 사소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신뢰하고 공감했다.
사안에 따라 개인적인 의견이 달라도 ‘국가관’만큼은 다르지 않았다. ‘공존공생’이라는 삶의 공익적 가치관도 다르지 않았다.
오늘 배달된 ‘경우신문(警友新聞)’에는 경찰 출신 여야 국회의원의 얼굴이 나란히 실렸다. 재향경우회 전국총회에 참석한 ‘내빈 축사’ 사진이었다.
정파가 달라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지는 국회의원이지만 ‘재향경우회 전국총회 축사’ 내용을 보면 어느 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관, 애국심, 과거 몸담았던 국가 조직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변함없었다.
◆ 정파와 성향 달라도 ‘국익’과 ‘애국 애민 정신’ 흐르면 싸울 일 없어
사상과 이념이 달라도 ‘국익’을 위한 것에는 충돌할 이유가 없다. 각자 추구하는 정치성향은 달라도 ‘애국 애민 정신’이 바탕에 흐르면 다투거나 싸울 이유가 없다.
이른바 ‘진영 논리’에 빠진 우리 사회는 자신과 의견이나 기본 철학이 다르면 무조건 적대감을 갖는다. 국토가 두 동강 난 나라에서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질시하고 갈등한다.
▲ 미대생 아들이 그린 수채화 - 그림 제목이 『이기적인 인터페이스』다. (2009. 수채화, 윤종운) ※ 그림 출처 = 아버지(필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청촌수필》 「아들의 옛 그림」 코너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서양화 작가인 아들에게 이 그림을 에세이 삽화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인데, 필자가 삽화로 사용하면서 다시 붙인 설명은 『성향이 서로 다른 친구, 또는 초대손님』이다.
【이솝우화 / 여우와 두루미】
◇ 개요 아무리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다 해도, 상대방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베푸는 호의는 오히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남들에게 골탕을 먹이면 언젠가 자신도 결국 그 남들로부터 골탕을 먹게 된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 줄거리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자신의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두루미는 약속한 시각이 되자 여우네 집을 방문했다. 여우는 두루미를 반갑게 맞이하며 곧 둥근 접시 두 개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그러나 부리가 긴 두루미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쫄쫄 굶은 채 돌아온 두루미는 여우가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했다고 생각해 앙심을 품었고, 언젠가 똑같이 갚아줄 것을 다짐했다. 며칠 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식사에 초대했다. 여우가 두루미네 집을 방문하자 두루미는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주둥이가 짧아 호리병 속의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여우는 자기가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었다. (출처 : 인터넷백과사전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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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부자(父子)나 부부간에도 의견이 달라 서운할 때가 있다. 하지만 특정 사안을 놓고 티격태격하다가도 서로 등 돌리지 않고 다시 얼굴 마주하는 것은 무언가 통하는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단체든 극도의 이기심이 아니라 세상의 상식과 이치에 부합하는 사안을 놓고선 언제든지 먼저 양보할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있어서 그렇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않는다는 애국심을 당신이나 나나 똑같이 갖고 있어서 그렇다.
◆ ‘불편한 관계’의 갈등 양상과 속내 감춘 ‘두 얼굴’의 공존
▲ 초등학교 동창회에서는 우파와 좌파, 각기 성향이 다른 친구들이 ‘죽마고우’라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료직원끼리는 우파, 좌파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동일 목적 사업수행을 위해 함께 땀 흘린다.
▲ 문단에서도 시를 쓰는 좌파 성향 문인과 수필을 쓰는 우파 성향 문인이 작품 교류하고, 문학 모임에서는 서로 작품세계를 칭찬하며 돈독한 관계의 ‘소주 뒤풀이’를 한다. ▲ 자식이 결혼하면 우파 사돈, 좌파 사돈이 정치성향을 감추고 겸상(兼床)해야 하는 일도 자주 생긴다. ▲ 스승과 제자 사이도 우파, 좌파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존경과 사랑으로 대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표면적으로는 ‘두 얼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는 ‘진실된 자기 본모습’이고,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변하는 ‘처세용 얼굴’이다. 이중 인격체가 아니라 사회적 동물의 ‘자기 보호색’이다.
◆ ‘양보할 수 없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고한 수호
그렇다면 내 편, 네 편 가르면서도 화합과 조화를 이루는 상생 방안은 무엇일까. 우편 배달된 ‘경우신문’ 지면에서 여야 국회의원이 나란히 웃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하나의 희망적인 ‘실마리’를 발견했다.
한쪽 날개가 아닌 두 날개로 균형 있게 날아야 하는 국가적 · 사회적 구조다.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확고한 수호’ 의지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과는 공존하기 어렵다.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든,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나 지도층의 지혜가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가는 국민이다. 적대감이 아닌 ‘조화로운 상생’의 아름다운 얼굴을 사회 지도층에서 먼저 보여주었으면 한다. ■
※ 본 글과 그림은 필자(윤승원)와 서양화 작가(윤종운)의 허락 없이 무단전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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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유튜브도 보수 성향, 일간지도 보수 성향입니다.
온건 보수를 좋아합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친북, 종북, 좌파입니다.
싫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는 언론 매체는 독극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보수가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듭니다.
아름다운 상생은 올바른 역사관에서 비롯됩니다.
자녀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어른들의
왜곡된 역사의식도 큰 문젭니다.
‘건강한 보수’, ‘품격 있는 나라’라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역사 왜곡도 심각하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어린 손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갈지
걱정스러운 할아버지입니다.
※ 그림감상 :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를 물감으로 그리고
제목을 『이기적인 인터페이스』라고 붙인 아들의 철학적 사고가 놀라웠다.
25살 대학생 청년의 깊은 사유가 담긴 수채화를 보면서 아비는 많은 생각을 했다.
「편 가르면서도 조화 이루는 ‘아름다운 상생’ 방안」,
문화계에서는 이를 《예술》이라고 하지요. (필자)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3.6.21.10:22
공존과 공생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우리는 태극기에 빨강 부분과 청색이 맞물려 공생을 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념적으로 다르다고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6.25 전쟁을 치르면서 좌우익의 살생과 파괴가 마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념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산주의자 북한은 형제도 친족도 자신의 체제 안에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공생, 공영, 공존을 주장합니다.우리는 양쪽의 극단을 배제하는 중도의 자리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체제를 우리가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국민은 역사의 흐름에 좀 더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가라앉는 중입니다. 저출산, 경쟁력 약화, 재정적 국가 부도 속에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 (계속)
좌우익의 이념분쟁, 종교적 갈등, 국가적 대치 속에서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안은 문학과 역사, 철학, 예술에서 함께 추구되어야 할 21세기의 역사적 과제입니다.
6월이 다 가기 전에 이런 좋은 화두를 제시해준 점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정구복)
▲ 답글/ 윤승원(필자)
존경하는 낙암 교수님께서 제가 본문에서 미처 강조하지 못한 부분을 역사학자님의 학문적 고견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는 6.25 전쟁을 치르면서 좌우익의 살생과 파괴가 마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 공산주의자 북한은 형제도 친족도 자신의 체제 안에서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요 대목입니다.
오늘의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호국의 달 6월’에 깊이 새겨봐야 할 원로 학자님의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저출산, 경쟁력 약화, 재정적 국가 부도 속에 현재 대한민국은 가라앉고 있다’는 경고의 말씀도 뜨끔합니다. ‘네 편 내 편’이 문제가 아니라 ‘공멸’의 심각한 위기를 역사학자님이 경고하고 계십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낙암 교수님 귀한 댓글 고견을 들을 수 있어 졸고를 소개한 보람을 느낍니다. 고맙습니다. (윤승원 올림)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高林 지교헌(철학가, 수필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06.21 21:53
「네 편 내 편, ‘두 얼굴’ 공존 시대」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여우와 두루미’의 우화를 ‘이기적인 인터페이스’라는 그림으로 나타낸 것도 잘 보았습니다. 그림에서는 여우와 두루미의 위치가 바뀌던가, 아니면 병과 접시가 바뀌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솝우화에 대하여는 우리가 흔히 해석하는 시각과는 달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이기적인 인터페이스’는 기법상의 수준도 대단하지만, 현대사회의 실상을 나타내는 분명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필에서 말하는 ‘두 얼굴의 공존시대’는 평화로운 공존시대가 아닌 ‘갈등의 공존시대’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화로운 공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정반대의 국면으로 달리고 있음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도무지 우리들 인간은 저 ‘빛 좋은 개살구’를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생명과 자유와 존엄을 희생시켜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구호가 나타난 지도 오래건만 아직도 이데올로기는 종언하지 않고 증오와 시기와 살의를 품고 작동함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청계산에서 高林)
▲ 답글 / 윤승원(필자)
그렇습니다. 핵심을 짚어주신 대로 ‘두 얼굴의 공존시대’는 평화로운 공존시대가 아닌 ‘갈등의 공존시대’입니다. 우리 사회는 대립과 갈등이 심각합니다. 하지만 인권과 자유가 없는 공산주의, 사회주의는 안 됩니다.
나라의 뿌리를 지키는 건강한 보수, 나라의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진보는 얼마든지 좋으나, 친북 종북 좌파는 이 땅에서 온갖 자유와 혜택 누리지 말고 북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포용하기 어려운 사상입니다.
高林 교수님 걱정하신 대로 증오와 살의를 품고 살아가는 가면 쓴 ‘빛 좋은 개살구’는 공존하기 어렵습니다. 귀한 고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