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마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롬12장의 믿음의 분량과 은사는
각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그러나 많이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받은 분량을 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5분의 5도 1이며, 2분의 2도 1입니다.
8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시68:18절을 인용한 내용입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그리고 9절 이하를 설명합니다.
9절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주님께서 오르락내리락하십니다. 요1:51절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28:12절에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동선을 따르면서 구원을 받는(구원ing) 겁니다.
10절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함이니라”
내리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자기비하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시는
성육신의 사건입니다. 오르셨다는 뜻은 우리를 끌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는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었다가 다시 산 자가 되어 하늘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적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그 분과 함께 올라갔다(엡2:6) 이것이 바로 진정한 휴거입니다.
휴거가 따로 있나요? 그리스도께서 끌어올려 하늘로 가시면 휴거가 아닌가요?
11절 “그가 혹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7절의 선물의 분량의 은혜가 바로 직분입니다. 그래서 롬1:5절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주셨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은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주시면
받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을 위해 직분을 주셨습니다.
‘주셨으니’하는 말씀은 세우셨다는 것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주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가진 자들이 공동체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해서는 안 됩니다.
권투 선수들에게 샌드백과 같습니다. 쓰다가 떨어지면 바꾸어야 하는 겁니다.
그 직분 중에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 곧 선발대 역할을 하는 자이며
바울 같은 분입니다. 선지자는 성취될 말씀을 예언적으로 전하는 자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전해진 복음을 제대로 해석하는 자입니다(고전15:1)
지금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었으나 계시의 영을 가진 전도자가 필요합니다.
목사는 말씀을 양식화해서 풀어먹이는 자입니다.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며
말씀의 공급자입니다. 교사는 훈련을 시켜 내어 보내는 자입니다.
소위 제자훈련이라고 말하는 훈련인데 중요한 것은 그 교사가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하늘에 앉힌 자로서 온전한 진리의 복음을 알고 훈련시키느냐입니다.
성경지식만으로 사람들을 교육하는 걸 제자훈련이라고 말하면 이것 큰 낭패입니다.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오심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승천으로
인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자로 그 길을 따르는 훈련을 해야지요.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직분을 주신 목적입니다. 13절은 그 목표와 한계입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특정한
목적에 꼭 들어맞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안성맞춤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일 곧 섬기는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게 합니다.
세운다는 말은 일으킴이며 성취입니다. 따라서 직분자들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야죠.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지식이 충만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기
위하여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동년배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따라서 바울과 같이 교회의 비밀 곧 에베소서의 원형교회의 비밀을 모르고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일을 한다고요? 노릇을 하는 거겠지요.
14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에베소서를 안다면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의 교회가
어린아이를 만들어 놓고 강단에서 생쇼를 하고 있는 걸 보면 부아가 치밉니다.
요동치 않게라는 말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사꾼들의 놀음에 와하고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습니다. 지금 그러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모르고 번영만을 위해 치닫는 어리석은 기독교의 장사치들은 그의
고객들이 지금 스올 곧 음부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전혀 모릅니다(잠9:18)
모든 교훈의 풍조는 사람의 속임수 궤술 곧 주사위 던지듯 장난하는 겁니다.
성경구절을 뽑는 일, 성경 어느 한 구절만 가지고 생활에 적용하는 큐티 등등,
이건 자신의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는 주사위 놀이이며 신앙이 장난 생활인 겁니다.
간사한 유혹은 아주 교묘한 조직입니다. 돈만 생기는 일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예를 들면 음식도 재료를 가지고 다른 식품을 만들면 변질이 됩니다.
감을 먹고 싶으면 감을 먹고 사과를 먹고 싶으면 사과를 먹어야 합니다.
소젖을 짜서 우유를 만들어야지 저어대면 그만 버터가 되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가공해서 사람의 입맛에 맞도록 맞추면 변질이 되고 맙니다.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참 된 것은 진리입니다. 직분자는 사랑 안에서 그 분에게 까지
자라도록 진리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그리스도께 닿는
비밀을 알고 그 진리를 가르치고 증거해 내야만 합니다. 그게 참 교회요 참 직분자입니다.
이것이 바로 직분자들의 절체절명의 사명입니다. 모든 지체가 머리 곧 그리스도에게
연결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젖만 먹이는 자는 화가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몸 전체가 자라므로 그 가운데서 나도 자랍니다. 직분자가 사역에 있어서
맡은 양 무리들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면서 점점 밝아져 환해지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 가시는
뜻을 따라 각 지체의 분량대로 자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공급원이시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디마디를 통해 공급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네 것이 되어 자라갑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기능이며 직분자들의 사명입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감사를!